‘절망의 빈곤’탈출구는 없는가?
1999/1999년 12월 :
1999/12/01 00:00
참여연대·UNDP 공동포럼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빈곤실태와 빈곤감시시스템』
조세개혁은 이제 한국사회 개혁과제중 일순위에 속한다. 그러나 전문직 종사자 등 일부 기득권층들의 반발과 ‘한솥밥의식’으로 힘있게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참여연대 조세팀이 나섰다. 앞으로 4회 연재를 통해 조세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지난 11월 10일 서울대 호암생활관에서 발표된 참여연대와 UNDP가 공동작성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빈곤실태 보고서’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특히 한국의 빈곤인구가 1,000만 명을 넘었다는 수치는 4∼5명 중 한명꼴로 빈민이라는 뜻으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숫자는 어떻게 계산된 것이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중산층이 붕괴되고, 빈곤층의 규모가 커졌을 것이라는 추측은 모두가 어느 정도는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체에 대해선 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고, 보고된 바 없다. 빈곤문제는 결식아동이나 노숙자 숫자의 급등이라는 단편적 측면에서만 사회적 주목을 받아왔다. 특히, 지난 60∼7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빈곤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사회적 믿음’은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이는 ‘빈곤에 대한 사회적 불감증’을 키웠고, 일반 시민들은 물론, 정부조차 빈곤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보고서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빈곤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아가 빈곤감시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일단 무엇보다 논란이 되고 있는 ‘1,000만 명의 빈곤인구’라는 수치가 어떻게 계산된 것이지 살펴보자. 한 사회의 빈곤인구의 규모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흔히 사용되는 것이 ‘빈곤선(Poverty Line)’이다. 빈곤선 이하의 가구가 바로 빈곤가구가 되는 것이다. 빈곤선 설정의 세계적 기준으로 흔히 사용되는 것이 ‘하루 1달러 소득’이다. 하지만, 이는 저발전국에겐 어느 정도 유용하지만 서구 선진국이나 한국의 경우에도 사용하기 힘든 기준이다. 따라서, 각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기준이 사용되곤 한다. 이번 보고서에서 인용되고 있는 세계은행(The World Bank)의 99년 6월 자료에서도 한국은 하루 4달러를 기준으로 잡고 있다(이 경우 한국의 빈곤선은 97년 8.6%에서 99년 19.2%로 급등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체 인구의 19.2%가 빈곤인구라는 뜻이다).
참여연대의 이번 보고서는 최저생계비를 빈곤율 계측의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최저생계비는 말 그대로, 정부가 정한 최저소득인 것이다(99년의 최저생계비는 1인당 23만 4천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한국의 빈곤율은 18.8%나 나왔다. 전체 가구수에 18.8%를 곱하면 빈곤가구수가 나오고, 여기에 다시 빈곤가구의 평균가구원수를 곱하면 빈민의 수가 나오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온 숫자가 1천 29만 8,853명, 즉, 빈민의 수가 1,000만 명을 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수치가 발표되자, 정부측에서는 당장 발끈하고 나섰다. 도대체 1,000만 명이 넘는 숫자가 빈곤선 이하라는 분석이 정확할 수 있겠는가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번 조사에서는 최저생계비 이하 가구의 소득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지출을 기준으로 삼음으로써 조사의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정부의 논리는 중요한 논리적 모순과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선, 1,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빈민이라는 말이 부당하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자. ‘빈민’ 또는 ‘빈곤’이라는 말은 당장 ‘절대적 기아상태’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빈곤’의 문제는 단순히 ‘절대적 빈곤’만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사회의 평균적 삶의 수준을 향유하지 못할 경우 이를 빈곤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듯, 최저생계비를 1인당 월평균 소득 23만 4천원으로 책정하고 있다. 이는 4인 가족을 기준으로 90만 원 이상의 소득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한달에 4인 가족이 최소한 90만 원은 벌어야 우리 사회에서 최저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번 보고서에서도 정부의 기준을 그대로 따라 적용하였고, 이렇게 했을 때 1,000만 명이 넘는 숫자가 빈곤가구를 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왜 ‘소득’을 기준으로 정하면서 분석할 때는 ‘지출’로 계산했냐고 비판한다. 너무나 중요한 지적이다. 그러나, 너무 허황된 지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득’을 기준으로 빈곤을 측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 조사의 원자료로 사용하였던 통계청의 ‘도시가계조사’ 자료는, 우리 사회의 빈곤현실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규모 자료이다. 통계청의 조사원들이 조사대상가구를 일일이 방문하여, 미리 배포된 가계부에 기입된 수치를 확인함으로써 이들의 정확한 지출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 불행하게도, 여기서도 ‘자영업자의 소득’은 모두 ‘0’으로 표시된다. 그들의 소득은 알 수 없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지출을 근거로 소득을 추정할 수 밖에 없다. 자의적으로 ‘지출’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정부 발끈, 그러나 빈곤은 사회적 현실
올 한해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궜던 이슈 가운데 하나가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파악’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연금의 전국민 확대실시를 계기로 드러난 정부의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파악실태는 저열하기 그지없었다. 가장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국세청의 과세자료만 하더라도, 300만 자영업자 가구의 60% 이상이 한달 소득 40만원 이하로 나타난다. 만약 정부의 주장대로 ‘소득’을 기준으로 삼아 우리 사회의 빈곤율을 추산한다면, 아마 두배 이상 높은 수치가 계산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보고서가 ‘지출’을 기준으로 정했다고 정부가 문제삼는 것은 ‘제 얼굴에 먹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번 보고서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언론, 특히 정부가 ‘1,000만 명’이라는 숫자에 호들갑을 떠는 것은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선 ‘이미 다 아는 얘기’라고 말하지만 이 역시 전혀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통계’란 말 그대로 ‘숫자놀음’일 수 있다. 꼭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시키기도 하고, 꼭같은 결과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가장 객관적이라고 얘기하는 ‘통계적 분석’이 실제로는 가장 ‘주관’과 ‘의도’가 많이 개입하곤 한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빈곤선을 설정하고 빈곤가구의 규모를 추정할 때, ‘1일 1달러’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고, 정부가 정하는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삼을 수도 있으며, ‘생활보호대상자’만을 빈곤가구로 볼 수도 있다.
당장 ‘1일 1달러’ 기준이나 ‘생활보호대상자’를 기준으로 빈곤율을 계측한다면 우리 사회의 빈곤율은 매우 낮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가? 빈곤율 그 자체는 결코 빈곤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보고서의 핵심을 ‘99년의 한국의 빈곤율은 18.8이고, 빈곤인구수는 1,000만명이다’라고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빈곤의 문제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20:80 사회’로 급진전
외환위기는 우리 사회의 빈곤에 대한 감시시스템과 사회적 안전망이 얼마나 부족하고 허술했는가를 여지없이 폭로해 주었다. 한국이 제3세계의 많은 다른 나라들과 비슷한 ‘절대적 기아’로부터는 분명 탈출했다고는 하더라도 이미 외환위기 이전부터 ‘절망의 빈곤’은 싹트고 있었다. 고도성장이 제공해 준 많은 일자리와 높은 교육열이 ‘탈출가능한 빈곤’, ‘희망의 빈곤’의 꿈을 꾸게 했지만, 그것이 단순한 꿈에 불과한 계층이 분명히 존재했던 것이다. 외환위기는 그러한 꿈을 가능하게 했던 물질적 기반, 즉 ‘고도성장의 신화’를 산산이 파괴했고, 물질적 기반의 붕괴는 ‘심리적 거품’현상마저 걷히게 만들었다.
특히, 높은 실업율과 저임금·불완전고용으로의 고용형태 변화는 많은 생산직 노동자들을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하향시켰고, 이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제 한국은 서구와 유사한 고실업율에 기반한 ‘빈곤의 재생산’을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어 ‘20대 80의 사회’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최근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정부발표와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지만, 그것도 결국 고소득층에 의해 주도되고 있고, 저소득층과 고소득층간의 소득과 지출, 양자의 차이는 점점더 커져만 가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보충교육비와 통신비 등 인적자원투자비용의 차이가 점차 커져, 이는 빈곤의 고착화와 세대간 재생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더하게 한다.
또한, 이제까지 한국은 정부의 빈곤대책(정책)보다는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얻어 생활을 유지하는 ‘비공식 복지’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것은 단순히 한국사람들이 착하고 인내심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지들의 도움으로 생계보전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정부에 의한 공적인 복지가 사적인 복지에 비해 10∼20배 이상인데 비해, 한국의 경우에는 그 반대로 사적인 복지비용이 공적복지비용보다 7배 이상 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이것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극빈층의 경우에는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받는 사적복지의 비용이 생활유지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절대금액이 너무 작음으로 인해 빈곤을 감소시키는 효과는 전혀 없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오던 사적 복지(비공식 복지)만으로는 이제 빈곤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음이 분명해 진 것이다.
부의 변칙세습막고 사회안전망 만들어야
그나마 다행으로, 정부는 올해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과시켰다. 올해 최저생계비 이하 가구를 약 20%로 볼 때, 단지 4%만이 정부의 생계보조를 받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 법안이 통과된 것은 빈곤대책에 있어서 중요한 진전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실제로 98년에는 530만명, 99년에는 440만명이나 되는 빈곤인구가 생활보호대상자 선정기준에 해당됨에도 불구하고, 부양가족 가운데 단 한사람이라도 근로능력이 있을 경우 제외된다는 조항으로 인해 정부 빈곤대책에서 누락되었던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빈곤층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그들의 생활사정이 더욱더 어려워졌으며, 그들의 생활을 유지해주던 가족이나 친지들로부터의 사적인 복지마저 한계에 도달한 시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이들의 삶을 지원하고자 하는 법안을 제정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내년 복지예산삭감이라는 현실 앞에서 더없이 초라하게 되어 버렸다. 기초생활보장법이 실시가 되면 당연히 현재보다 복지예산이 증액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복지예산은 4.1%가 축소된 것이다. 이는 정부가 현재 한국사회의 빈곤문제를 절실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한편, 정부의 복지정책은 단순히 빈민에 대한 생계비 지원만이 아니라 그들이 일자리를 갖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창출해는 방식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서구의 복지정책을 함께 검토했다. 저발전국의 절대적 빈곤과는 달리 서구의 빈곤문제는 전형적으로 실업에 기반한 상대적 박탈감과 그것의 장기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일자리 창출에 기반한 고용친화적 성장이, 강력한 사회보장정체계 구축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추진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결국 <참여연대―UNDP>의 보고서는 단순히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빈곤실태를 통계적으로 설명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빈곤실태에 대한 조사와 더불어 이를 기반으로 하는 빈곤감시시스템의 구축을 위한 첫걸음이다. 빈곤감시시스템이 과연 어떠한 내용과 형식을 갖춘 것인가에 대해선 아직 분명한 상이 잡혀져 있지 않다. 그것을 위해선 가장 우선적으로 빈곤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국가적·사회적 체계가 갖추어져야 하고, 이는 정부와 학계, 시민단체, 나아가 국민 모두가 빈곤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질 때 가능할 것이다.
‘20대 80의 사회’는, 이제 분명한 현실이 되었다. 부의 양극화 현상은 점점더 심화·가속화되고 있으며, 빈곤의 세대간 재생산 역시 충분히 예견될 수 있는 사실이다. 이제 ‘빈곤퇴치’는 더 이상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로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경제적 성장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신화를 다시한번 우리 사회에 끌어들여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사회적 부의 적절한 분배가 ‘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획기적 발상의 전환이 어느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의 구축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빨리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자영업자에 대한 정확한 소득파악과 부의 변칙적 세습차단 등을 골자로 하는 조세제도의 개혁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사회복지예산의 증액, 실업의 장기화를 차단하기 위한 충분한 일자리 창출과 같은 전체 사회의 구조적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빈곤문제란, 단지 이미 ‘빈민’이 된 자들의 생존을 유지시킨다는 소극적이고 협소한 차원의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빈곤으로부터 탈출케 하고, 새로운 빈곤계층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사회정책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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