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 지원 민간단체 성적표 분석
시민운동 역사상 처음으로 두 개의 민간단체 성적표가 작성됐다. 하나는 국회의원, 다른 하나는 행정자치부에 의한 평가서다. 경우에 따라서는 민간운동에 ‘보약’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민간단체를 평가하고도 되레 공개하기를 꺼리고 있다. 성적표를 들춰봤다.

두 개의 민간단체 성적표.

이중 하나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소속 박상규, 추미애 의원실에서 작성됐다. 지난 10월 18일 각 언론사에 공동 명의로 뿌린 두 장짜리 보도자료가 정치권이 매긴 최초의 민간단체 평가서다. 이 성적표는 민간단체들이 사업공모를 신청하려고 행자부에 제출한 ‘자기소개서’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한국의 전체 민간단체를 평가한 보고서가 아니라 행자부 프로젝트에 당첨된 125개 단체에 대한 성적이다.

평가결과 1등은 환경운동연합. 전체 총점에서 29점을 받았다. 다음으로는 한국YMCA전국연맹, 한국보이스카웃연맹,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등의 순이다. 보도자료는 상위 5등까지의 성적만 제시됐다.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이번 평가가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민간단체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 때문에 구체적인 순위발표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본지가 그 뒤 BEST 15위까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공동 6위는 한국자유총연맹,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상록회, 한국여성민우회, 새생활국민운동본부였고, 공동 7위는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청소년폭력예방재단, 한국교통장애인협회, 한국환경생태계연구협회였다. 국회의원들이 매긴 민간단체 성적표는 결론적으로 “행자부 프로젝트를 평가한 결과 민간단체들이 올린 사업계획 자체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회원도 없이 대표자, 상근자 1인으로 예산조차 감당할 수 없는 데 지원하는 사례도 있었다”며 단체 현황을 고려해서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지적이다. 사업 뿐만 아니라 사업집행 능력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자부의 민간단체 지원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국회의원들이 매긴 시민단체 채점표는 다소 어수룩해 보인다. 가령 회원수를 10점 만점으로 놓고 1백명 이상이면 1점, 2백명 이상이면 2점을 주었다. 또 민간단체들이 제출한 자료에 따라 재정자립도(10점 만점)가 10% 이상이면 1점, 20% 이상이면 2점을 계산했고, 지난해 사업실적(5점 만점)은 10건 이상이면 5점, 9건이면 4점 등으로 채점했다. 상근직원 수(3점 만점) 역시 1명이면 1점, 3명이면 2점, 3명 이상이면 3점을 주었다. 양적인 평가에 치중했고, 점수 차이에 대한 근거가 빈약하다. 지난 4개월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국회의원들의 정성, 정량 평가 지표를 개발해 국감 평가에 임했던 국감모니터시민연대 활동에 대해 전문성이 모자란다며 국감 방청을 거부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다.

소규모 단체가 점수 좋아

또다른 하나의 성적표는 행자부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단체들을 대상으로 매긴 중간평가서다. 행자부는 평가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9명의 평가위원을 선정하고, 민간단체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이틀간의 워크숍을 가졌다.

행자부는 이 워크숍에서 각 단체별로 50%의 사업비 내역을 보고받고 A(우수), B(만족), C(보통), F(부적합)으로 분류해 성적을 매겼다.

행자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평가에서 대체로 좋은 성적을 받은 곳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큰 큐모의 단체보다 소규모의 단체가 많았다”고 밝혔다. 가령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한 무료 진료나 백혈병 어린이들을 치료해주는 사업 등 대시민 서비스 프로젝트나 일본해로 표기된 동해 지명을 바로잡기 위한 ‘지명 되찾기 운동’ 등 정부가 직접 추진하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사업들이 높게 평가됐다.

한 평가위원의 경우 “시민단체들의 사업이 대부분 도시에 집중돼 있고,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프로젝트 사업은 수익자부담의 원칙도 적용돼야 한다”며 “시민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받기 위해선 과거의 교육 또는 강좌 커리큐럼을 대폭 개편해 시민들로부터 강의료를 챙기면서 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운동의 연대 활동의 취약성도 드러났다. 가령 ‘안전한 도시관리’ ‘자전거와 친숙한 거리만들기’ ‘안전한 도로만들기’ 등의 사업은 단체별로 연대할 수 있는 사업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단체들이 연대를 꺼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소위 관변단체의 경우 과거 ‘캠페인’ ‘일회성 행사’ 위주의 성과를 가름할 수 없는 사업을 벌이고 있어 예산낭비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평가 워크숍 불참한 단체 ‘F학점’

행자부의 이번 중간평가가 나름의 의미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점도 적지 않았다. 행자부가 F학점을 준 곳은 두 단체이다. 한곳은 일반 시민들에게 잘 알려진 서울의 한 단체이고, 다른 한곳은 지역 단체이다. 이들은 유일하게 행자부의 워크숍에 불참한 단체들이다. 왠지 성적과는 무관한 듯한 인상이다. 혹시 ‘괘씸죄’에 걸려든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행자부측은 이번 평가에서 평가위원들이 매긴 성적을 100% 반영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성적에 어느정도 반영됐는지는 알 수 없다. 평가위원들조차도 성적표를 아직 받아보지 못했고, 점수가 아주 형편없는 일부 단체들도 2차 보조금을 지급받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행자부의 보조금을 전용·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일으킨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이 실제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민간단체들이 자발적으로 제출한 자료에 근거한 평가작업의 한계일 수도 있다.

한 평가위원은 “처음으로 실시한 평가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틀을 마련하기 어려웠고, 다분히 형식적인 것에 그친 감이 없지 않다”며 “보조금 역시 국민이 낸 세금이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사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행자부가 내년 프로젝트 보조금으로 책정한 예산 1백50억원에 대한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야당측에선 총선을 앞둔 ‘정치성 예산’이라며 전액 삭감을 요구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과거처럼 관변단체들에게 정액보조하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자부가 이처럼 정치 시비에 휘말려들지 않기위해서라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틀이 시급히 마련되고 나아가 공정한 심사기구가 구성되어야 한다.

▲인터뷰 민간단체 평가한 박상규 의원

민간단체 평가 취지는.

“새마을운동단체나 자유총연맹 등은 개별법에 근거해 지원하기 때문에 운영비 지원이 가능했지만 현재 민간단체에 대한 보조금 지원 사업은 엄밀한 의미에서 법적 근거가 없다. 하지만 민간단체들이 시민 속에 깊게 뿌리내리려면 정부적 차원에서의 예산지원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지원 방향이나 기준이 올바르게 자리잡으려면 평가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평가를 시도했다. 평가 기준이 자의적으로 설정돼 정부가 예산지원을 조건으로 민간단체의 활동을 제약할 수는 없다.”

민간단체를 평가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텐데.

“행자부에 사업보조금을 요청한 140개 단체의 기초자료를 근거로 평가했다. 물론 겉으로 보이지 않는 성과들을 평가하지는 못했다.”

국감모니터단이 국회의원을 평가할 때는 상당히 신중을 기했는데.

“국회의원들을 평가하려면 의정활동에 대한 총체적 검토가 필요하다. 단순히 회의에서의 발언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령 국회에서 존경받지 못한 의원이 시민단체들로부터 인정받았을 경우 그런 사실을 수긍하기는 어렵다. 또 대동소이한 점수를 가지고 순위를 매기면 의원들간에도 갈등의 소지가 있다. 따라서 전문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국감모니터단은 전문가들이 대거 동원돼 몇 개월에 걸쳐 지표를 개발했을 정도로 전문성에서는 손색이 없다고 자평하는데.

“시민단체 평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또 언론이 감시하는 데 굳이 시민단체가 나설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한다. 의원 평가는 유권자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서류 검토 결과 행자부가 민간단체들을 제대로 골라 지원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행자부 지원 방법도 앞으로는 상당한 근거를 두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징적이었던 것은 여성단체나 장애인단체들이 회원수가 많고 재정자립도도 높아 내실있는 단체들이 많이 포진돼 있었다는 것이다.”

민간단체의 최근 활동을 평가한다면.

“최근 민간단체들의 활동 폭이 환경운동에서부터 시민 권리 찾기 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활동의 연륜만큼 시민사회에 깊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재정문제가 해결된 단체는 극히 드문 것같다. 그리고 최근 시민단체 활동이 지나치게 언론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꾸준한 활동보다 일과성 행사 위주로 성과주의적 경향을 보인다고 생각된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1999/12/01 00:00 1999/12/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3424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