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폐차 고발한 박용갑씨
카센터에 수리를 맡겼던 차가 폐차 처리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더욱 기막힌 일은 주인이 버젓이 있는 차량이 폐차되었음에도 카센터도, 구청도 뒷짐만 지고 있는 현실이다. 발이나 다름없는 차를 잃어버린 박용갑 씨의 2년여에 걸친 힘겨운 싸움을 소개한다.

홍대 앞에서 자그마한 논문제작 대행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박용갑 씨(39)에게 지난 97년은 유난히 힘겨운 해였다. 8년간 몸담았던 보험회사를 정리해고나 다름없이 그만두면서도 재직시의 ‘손실’로 인해 퇴직금조차 변변히 챙길 수 없었던 그가 어렵게 논문대행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IMF 한파가 몰아닥친 것이었다.

사라져버린 자동차

그런데 12월 20일경, 한푼이 아쉬운 현실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인쇄종이를 옮기고, 물량을 운반하는데 요긴하게 사용하던 승용차 87년형 스텔라가 말을 듣지 않았다. 집 근처 ㅇ카센터에 의뢰하니 전기배선에 이상이 있는데다 밧데리를 교체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10년이 넘었지만 차량 상태가 향후 4~5년은 족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던 터라 박씨는 카센터에 수리를 부탁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수리 여부를 확인하니 아직 끝내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 와중에 사단이 생겼다. 건강 하나만은 자신하던 박씨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한 살림인데 병원비에 약값이 적잖게 들어갔다. 98년 1월 중순 수리가 끝났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그는 현재 한시적 생활보호대상자이다) 박씨는 안전한 곳에 주차를 부탁하며 곧 찾아갈 것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몇번의 왕래가 있었던 카센터 주인은 ‘허가지역으로 분류되어 딱지를 안 떼는’ 안전한 철길변에 보관해 놓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말이다.

건강을 추스린 박씨가 차량 수리비 13만 원을 마련해 카센터를 찾은 때는 이듬해인 98년 3월 초순. “차를 찾으러 갔더니 없는 거예요. 잠시 후 견인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마포구청을 방문,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2월 23일경 무단방치 차량이라는 주민의 신고를 받고 견인한 후 주소지 및 소유자 확인 절차를 거친 뒤 폐차를 했다는 겁니다. 저는 물론 차량 무단방치에 대한 책임으로 형사고발에 처해 있는 상황이었구요.”

일의 특성상 을지로 인쇄소를 수없이 드나들어야 하는데 이를 어찌할 것이며, 안전한 보관을 약속했던 카센터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박용갑 씨는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지만 흥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하나 짚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생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자니 형사고발에 대해 무효를 입증해야 했다. “무단방치가 아니라 수리의뢰 차량이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카센터 주인에게 확인서를 부탁했더니 못써주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의뢰 날짜도 두달 가까이 차이가 나고 나중에는 연락이 두절되어버렸다고까지 말하더군요. 안전한 지역에 주차를 했다는 것도 주민의 신고가 들어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핑계를 대구요.”

‘사건 관계자와 만날 때 녹음을 해두라’는 변호사 친구로부터 조언을 듣고 녹음을 해두지 않았더라면 온전히 박씨의 무책임이 빚은 불상사로 결정이 날 뻔했다.

‘무단방치 차량으로 신고받고 폐차했다’는 구청측의 답변에도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박씨가 알기로 방치차량을 폐차하기 전에는 반드시 차적조회를 거쳐 소유자에게 연락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문은커녕 전화 연락 한번 받지 못했다.

이유를 알고 보니 이전 주소지인 상도동으로 서류가 발송되었기 때문. 96년 9월 방배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전입신고를 했는데 98년 2월까지 처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전입신고시 자동차 주소변경신청까지 부기하였음에도 소유자의 주소지가 변경되지 않았으니 통보서류가 도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마포구청은 행정처리 잘못에 대한 부분은 방배동사무소의 책임이며, 오히려 차를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은 관리책임을 들어 박용갑 씨의 귀책사유를 강조하여 되풀이했다.

또 하나 차량 안에 있던 각종 물품의 행방도 묘연했다. 박씨의 주장대로라면 당시 차안에는 면허증을 포함, 자동카메라, 공기정화기, 환풍기 등 수십만 원에 달하는 물품들이 있었다는 것. 그러나 차를 견인한 마포구청측은 당시 차안에는 쓰레기만 가득 차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씨는 견인 당시 차를 촬영한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 실제 승용차는 전혀 ‘쓰레기차’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카센터 주인과도, 마포구청과도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형사고발에 대한 해명과 조사를 위해 경찰서를 쫓아다녀야 했던 박씨는 경찰서의 권위주의 앞에서 여러 번 상처를 받아야 했다. “전산처리 시스템의 문제는 고려도 않고 꾸짖고, 다그치고 마치 범죄자 취급을 하는 거예요. 살인사건에 있어서도 형이 확정된 이후에야 범죄자라는 원칙이 우리 현실에서는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새삼 절감했습니다. 행정적 편의주의만 앞세운 이런 소모적인 처사가 어디 있는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쫓아다니는 피해자의 심적 고통을 줄이는 것은 물론 자원 낭비와 각종 범죄예방 효과를 위해서도 통합시스템이 한시 바삐 운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박씨는 각 관계부서에 진정서를 내기 시작했다. 마포구청, 서울시, 감사원, 청와대 등에 몇번이고 성의있는 답변이 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98년 9월 서울시는 마침내 마포구청 직원의 행정착오를 인정, 형사고발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인정하였다.

공권력의 사유재산 침해, 정당하게 보상해야

무혐의 처리에 힘을 얻은 박씨는 99년 2월 한 시민단체에 법률자문을 구해 정당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상대는 카센터와 마포구청측. 이들에게 박씨는 차량 가격 50만 원, 폐차에 따라 차량운행이 불가능한데 따른 대체교통비 및 수송비 480만 원, 정신적 피해 등을 포함한 위자료 300만 원 등 총 830만 원을 청구하였다.

하지만 박씨는 또 한번 쓰라린 경험을 해야 했다. 비록 소액분쟁이었지만 소송비용 마련이 여의치 않자 대리인을 자처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소장만 접수시킨 뒤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던 탓이다. 7월 22일 서울지방법원은 마포구청을 상대로 한 박용갑 씨의 소송에 대해 각하 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국가배상법 제9조 규정에 의거, 배상심의회를 거친 후 소를 제기해야 하는 ‘결정 전치주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박용갑 씨는 바로 항소를 제기했다. 행정 착오로 시민의 사유재산이 침해당한 사실이 부당하고 무심한 공권력 앞에서 포기될 수 없다는 판단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움이 필요했다. 이때 연결된 곳이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공중전화 박스의 깨진 유리에 찔려 상처를 입은 한 시민을 대신해 공익소송을 제기, 보상을 받아냈다는 소식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기일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곧 진행되겠죠. 소송비용이나 생업 때문에 전적으로 매달릴 수 없어 여전히 불리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제2, 3의 피해자를 막는 동시에 공권력의 남용 또는 무책임을 시정하는 공익적 의미를 살려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가 힘이 되어 준다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구요. 대다수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제도나 관행은 사회 전체를 붕괴시키게 될 겁니다. 그러한 행정제도가 국민들의 탈출심리를 자극할 것이구요. 국민이 나라를 버리는 상황이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손정미 본지 편집위원
1999/12/01 00:00 1999/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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