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전투부대파병 어떻게 볼 것인가
동티모르 다국적군 파병에 대해 기본 속성상 비폭력 평화주의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는 시민단체 실무자가 군병력을, 그것도 전투병력을 중심으로 파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전투병 파병에 대한 논거는 간단하다.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익이란 두 가지 면에서 의미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은 별도로 떨어져 있지 않고 결합돼 있는 개념이란 걸 먼저 말해둔다.

먼저 전투병 파병의 첫째 이유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무장 민간인이 무장군부와 테러집단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을 방치한 채 인간이 평화적으로 존재해야 할 문명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구촌이 한 공간에서 생존과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반인간적 학살행위를 방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동티모르 학살사태는 지구촌사회에서 나라안과 밖의 개념으로 구분할 수 없는 기본적 가치에 대해 세계시민이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를 강요하고 있다. 이것이 파병의 가장 큰 이유고 명분이다.

둘째, 국제분쟁은 이제 강대국이나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보편적 인류가치, 즉 인권·자유·민주주의·자치 등의 합리적이고 인간중심의 기준에 의해 해결되는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 나토의 코소보공습명분은 ‘국가주권보다 보편적 인류가치가 우선’이었고 이는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강대국은 자신들이 필요한 경우에만 ‘진리’를 꺼내드는 이율배반성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이번 동티모르 사태개입에 소극적인 것이 대표적 케이스다. 이런 식의 국제분쟁 해결모델은 인류의 야만성만 연장시키는 행위다. 이는 19세기까지의 식민지개척과 20세기의 식민지해방이란 세계정신을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의한 21세기적 질서, 혹은 패러다임을 만드는데 근본적인 장애물이고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역사적 과제다. 그러나 이러한 전형은 강대국이 만들 수 없는 가치다. 강대국은 정치·경제·군사·외교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 ‘인간적 가치’에 의한 세계평화유지는 강대국들로부터 침략받고 이를 극복해낸 국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해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 이치다.

셋째,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소말리아 등지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했지만 모두 의료·공병 등 부차적인 지위의 군부대만 파견함으로써 자신들의 안전문제를 외국군대에 의탁하는,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들러리, 혹은 주변국가로 머물러 있다. 굳이 6·25때 도움받은 은공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경제력에 걸맞는 도리를 해야 일본처럼 경제동물이란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한편 필자는 한국군을 1만 명 수준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한국군이 다국적군, 혹은 평화유지군의 주력이 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호주와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 인근 국가들간의 이해관계에서 오는 국제정치지형 때문이다. 호주의 경우 75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강제합병당시 동티모르 앞바다 유전 등에 대한 권리를 인도네시아로부터 인정받고 동티모르합병을 눈감아준 전력 때문에 동티모르인들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외국군대’다. 인도네시아 역시 인근지역에서의 경쟁국이자, 금번 동티모르사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잠재적 적국이 될 수 있는 호주가 동티모르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고 이런 면에서 한국정부에 다국적군 파병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즉 태국 등의 아세안국가와 더불어 호주·뉴질랜드 등은 이런 저런 이유로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로부터 경원시되고 있어 앞으로 동티모르지역에서의 국제분쟁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고 국제정치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도 인권과 민주주의 등 보편적 인류가치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아시아국가로 떠오를 수 있는 대단히 좋은 기회다. 더군다나 동티모르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이유는 아시아민주주의 수출국으로서 국가위상을 세울 수 있는 조건과 역량이 맞아떨어진다는 데 있다.

아시아는 아프리카와 중남미와 함께 2차세계대전 이후 신생독립국이 많은 지역이나 불행히도 강대국 중심의 세계체제 재편과정에서 대부분 강력한 군사정권이나 군부세력이 들어섰다. 이는 냉전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과 소비에트 양대 체제가 대다수 약소국을 냉전의 대상물로 삼은데 기인하나 다행히도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가장 먼저 군사정권을 극복한 나라가 되었다. 이는 20세기의 탈식민지 역사과정에서 약소국에 들어선 강력한 군사정권, 혹은 군부세력을 극복해나가는 21세기적 흐름의 맨 앞에 서 있는 것이다. 필자는 바로 이 점에서 우리가 다소 무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주력군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시아국가들의 민주화를 주장하더라도 미얀마군부나 인도네시아군부, 혹은 태국군부를 상대로 촉구하고 행동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오히려 현실적 외교관계만 악화시킬 우려가 훨씬 더 높다. 그러나 수하르토 이후 인도네시아군부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고 그 한가운데 동티모르독립이란 변수가 자리하고 있다.

다민족국가인 인도네시아가 지금처럼 통일되어 있는 것은 강력한 군부세력 때문인데 동티모르의 독립은 상대적으로 인도네시아군부의 영향력을 줄여나가는 핵심고리가 되고 있다. 이렇게 인도네시아군부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은 인도네시아 민주세력을 지원하는 것인데 한국은 유엔이 인정하고 세계적인 명분을 갖는 동티모르평화유지업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수출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이 아시아의 정통성 없는 군부세력과의 외교관계보다 민주세력과의 외교관계를 만드는 것은 국익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관점이다. 중국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시아의 지도국이 못된 것이나 일본이 엄청난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국가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보편적 인류가치를 추구하지 못하는 한계와 더불어 아시아국가간의 문제발생시 개입할 수 있는 명분과 조건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이번 동티모르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조건과 자격을 동시에 충족시키고 있는 국가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이 냉전시절 비동맹운동의 중심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지도력을 인정받았으나 냉전이 사라지고 21세기를 맞는 지금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한국이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일은 정부보다 민간단체들이 나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NGO의 존재가치와 부합된다는 점에서 한국NGO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자치 등은 NGO들이 추구하는 가치다. 동티모르사태는 이런 면에서 NGO들이 할 일이 대단히 많은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아시아국가의 인권과 자치, 민주주의 등은 한국NGO들이 적극적으로 구현해내야 할 가치이지 평화주의에 대한 도덕적 콤플렉스 때문에 소극적으로 대처할 일은 아니다. 이미 시민운동이 국가의 테두리를 넘어 국제화되어 있는 마당에 한국 NGO들도 세계화된 관점으로 동티모르사태에 적극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느 집단, 어느 민족이든지 새로운 시대를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항상 뒤쳐지기 마련이다. 21세기는 보편적 인류가치를 실현하는 세기여야 하며 이를 위해 그 준비를 지금부터 능동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은 정부와 NGO차원에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김석수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시민연대 사무처장
1999/11/01 00:00 1999/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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