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천후 인간 병기는 평화유지에 도움 안된다
1999/1999년 11월 :
1999/11/01 00:00
동티모르 전투부대파병 어떻게 볼 것인가
지난 달 코소보의 번화가를 걷던 불가리아 출신 한 유엔 직원은 행인이 묻는 말에 무심코 대답한 후 그 자리에서 집단 구타당한 후 사살되었다. 살인자들은 지나가던 알바니아계 청년들. 이유는 세르비아말로 답했다는 것뿐. 지금 나토와 미국이 ‘승리’했다고 자랑하는 코소보는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새로운 피해자는 세르비아계. 새로운 가해자는 알바니아계. 유엔 평화유지군? 이들은 평화유지는커녕 국제사회가 야기한 증폭된 증오의 현장에 버려져 있는 ‘폭격 후 무대책과 무관심’의 상징일 뿐이다.
국제 분쟁의 한 복판에서 항상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과연 무엇이 분쟁 ‘해결’인가? 보통 나토와 미국은 대대적인 폭격과 고압적인 응징이 ‘해결책’이라고 본다. 동티모르의 경우 많은 이들이 민병대를 격퇴시키고 독립정부가 들어서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라크에는 지금도 미군의 폭격이 계속되고 있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무역제재 때문에 병들어 죽고 있다. 과연 이것이 해결인가. 나토를 믿고 자행되는 세르비아인들에 대한 보복과 증오가 해결인가. 마약범죄조직이었던 코소보해방군이 권력을 획득한 것이 해결책인가? ‘전천후 인간병기’들이 포함된 다국적군이 민병대나 인니군인을 사살하고 체포하는 일이 해결의 실마리가 될까.
무엇이 분쟁 해결인지 묻지 않는 국제 관료사회의 관습은 신기하게도 동티모르 파병에 관한 우리 사회의 논란에 그대로 수입되었다. 그 결과 속전속결의 가치가 논의를 압도했다. 물을 것을 묻지 않는 관습은 숙제의 제목, 즉 ‘군대가 동티모르에서 할 역할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묻지 않는 데에서 절정에 달했다.
파병 논쟁이 회피한 주제들
전투병력 파병을 반대한 측은 주로 야당과 인니 교민들이었는데 그 주장을 요약하면 한국-인니 관계의 악화 위험, 교민 안전의 위협, 동티모르에서 인도주의적 지원활동에 집중하자 등이다. 반면 정부와 시민사회에서 파병을 추진하거나 찬성한 측의 주장은 끔찍한 학살의 중단, 국제 평화에 기여, 한국 위상 고양, 군 이미지 개선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찬반 양측 다 공통으로 침묵한 주제가 두 가지 있다. 동티모르에서 무려 20만 명 가량이 학살되는 동안, 그리고 선거후 위기 발발에 대한 수많은 경고가 날아오는 동안 도대체 한국 정부나 언론, 사회지도층은 무얼 했는가의 문제와 앞으로 한국이 동티모르에 어디까지 책임지고 개입할 것인지 이다. 즉 평화를 말하면서 진짜 책임은 생략하는 편리한 논쟁이 벌어졌다.
주한 인니 대사도 확인해 주었지만 인니 현지 상황을 보면 사람들의 분노는 하비비 정부와 호주에 집중되어 있어서, 파병 반대론에서 한국의 국익이나 교민 안전을 내세우는 것은 근거가 약하다. 반면 파병 찬성론 중에 가장 흔히 언급되는 민병대에 의한 학살 문제는 그 규모가 최근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반면 상당한 만행이 인니군에 의해 자행되었고 민병대들이 인니 군부에 의해 훈련되고 무기를 조달받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중요한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인니 군부에 대해서, 또 인니 군부의 학살전문가들을 비밀리에 돈주고 훈련시키고 무기를 조달해온 미국 정부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인데, 이 역시 편리하게 생략하고 넘어갔다.
그렇다면 찬반논쟁에서 남는 내용은 두 가지. 반대론 - 다 제쳐놓고 인도주의 지원만 하자. 찬성론 - 꽃다발속의 파병과 군 이미지 개선. 그러나 호주가 아시아에서 미국의 역할을 대신하려 하지 말라는 아시아국가들의 비난에 직면하듯이 미군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한국군이 과연 이미지 개선에 성공할지는 미지수이다. 결국 모든 찬반 주장은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동티모르인들의 염원과 인니와 장사해서 큰 돈을 번 대신 수하르토 독재를 지원했던 한국이 반성을 건너 뛰는데 기여했을 뿐이다.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목
과거 월남전 파병 때에도 가족들의 눈물겨운 꽃다발 배웅 속에 미국의 용병으로 목숨과 달러를 바꾸러 간다는 사실이 숨겨졌듯이, 이번 꽃다발 배웅에도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베트콩을 악마로 낙인찍은 대가로 주어진 과거의 꽃다발처럼, 이번 꽃다발 속에도 ‘민병대 = 악마’라는 가시같은 도식이 숨어 있다. 그러나 파병 찬성론자들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유엔 평화유지활동에 악마를 사냥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한국군에 가족을 다 잃고도 ‘그들은 단지 불쌍한 미국의 용병이었을 뿐’이라고 용서하는 베트남인들의 성숙함이 유엔 평화유지활동의 정신에 가깝다.
유엔의 평화유지활동은 유엔 헌장에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례에 따르거나 국제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동해왔는데, 대략 관행에 따라 6가지 원칙에 입각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1)분쟁 쌍방의 동의에 따른 파견, (2)분쟁 국가 내정 불간섭, (3)중립성, (4)방어 목적외 무력 사용 불가, (5)안보리 결정 변화에 순응, (6)유엔 사무총장의 감독에 순응 등이다. 초기의 평화유지활동은 단순한 폭력 억지에 모아졌으나 최근에는 ‘다차원적, 제3자적 분쟁조정’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와서는 다국적 평화유지단의 자세로서 ‘제3자적’ 지위, 다시 말해서 분쟁 당사자들에 의한 분쟁 해결을 지원하는 제3자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당사자들의 역량과 조건을 향상시키는 것이 최대 임무이지 평화유지단 자체로는 평화를 만들 수도 유지할 수도 없고, 또 대규모 평화유지단은 그 자체로 현지에서 새로운 사회문제를 야기한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평화유지단에서 전투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제한적이며 호주군이 하는 일도 잘못된 것이 많다. 우리의 논의는 처음부터 동티모르 평화의 전체 구도를 상상하며 시작했어야 하는데, 이는 급한 김에 편리하게 생략되었다.
진정한 해결과 진정한 국익
노벨 평화상을 받은 동티모르 망명정부의 지도자 죠세 라모스 오르타 씨는 몇년 전에 “한국 정부는 우리의 호소를 줄곧 무시했다. 한국 정부는 사죄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필자도 유엔 주재 한국 외교관들이 오르타의 면담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들은 아직도 외교통상부나 다른 요직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올 9월에도 한국 정부는 인니정부의 책임을 묻는 유엔 인권위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지금 한국 정부가 우선 할 일은 동티모르인들에게 공개적으로 사죄하는 일이다.
그 사죄 방법은 동티모르인들의 새 국가 건설을 전면적으로 지원하는 일이며 이는 진정한 분쟁 해결의 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많은 자원과 기술전문적 지원, 국제사회에서의 보호자 역할이 필요하고, 인니 만행을 사실상 후원했던 미국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호시탐탐 동티모르 앞바다의 대규모 유전을 노리는 인니, 호주, 미국의 욕심도 함께 견제하고, 인니의 민주화를 적극 지원하는 등 큰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조속히 동티모르 전역에 행정, 경찰 조직이 만들어지도록 물자와 통신장비 및 기술적 지원을 하는 것은 동티모르인들의 자치와 안전의 핵심이다. 인니 군부를 제어하고 자치 행정조직을 갖추면 민병대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보복심리도 줄어든다. 이는 현지 문화, 언어에 까막눈인 총잡이들을 보내는 것보다 더 어렵고 다차원적인 일이다. 또 관조직과 민간단체의 협력 아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과연 우리 정부나 사회가 이런 준비가 되어있는지 의문이지만, “세계평화에 기여” 같은 거창한 말을 한 이상, 이 정도는 책임져야 사죄도 되고 앞 뒤 말도 맞는다.
우리 사회에서 군대와 그 박수부대는 평화의 힘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성찰은 ‘적’과 ‘전쟁불사’ 등 호전적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적 완전섬멸’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전천후 인간병기’에 박수치는 일은 국내외 평화노력에 도움되지 않는다. 또 온갖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이 지역에서 실탄 들고 국경넘는 생각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고 뿌리부터 반대해야 할 일 아닌가? 군대를 보내면 뭔가 ‘해결’될 듯한 착각, 코소보와 이라크를 보면서 이 남성적 군사적 조급증에서 이제는 벗어나자. 우리의 경우 동티모르 국가 건설의 동반자가 되거나, 그게 힘들면 부드러운 열정으로 ‘국경없는 의사회’ 같은 활동을 벌이는 것이 진정하게 우리 국익에 도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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