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한방이면 참여민주주의 OK
1999/1999년 11월 :
1999/11/01 00:00
딴지일보가 시민운동가들에게 날리는 직격탄
컴퓨터 얘기만 나오면 먼 산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선을 피하던 컴맹들에게조차 인터넷은 더 이상 낯선 단어는 아니다. 켜자마자 알 수 없는 영어를 토해내며 초반부터 기를 죽여버리는 컴퓨터를 피해 신문과 TV속에 안주하려 하지만, 이곳에서조차 WWW로 시작되는 이상한 암호문이 난무하고 있다. 이젠 인터넷은 피해 갈 수 없는 길이 되고 말았다.
지난 날 대학생의 공식레포츠로 인정받으며, 뛰어난 방향 예측력과 각도 판별력을 키워주던 당구장은 사양산업이 되어 버렸고, 그 자리를 이젠 PC방이 차지하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한 게임할까’는 당구 한 게임이 아닌 스타크래프트 한 게임을 의미하게 되었다. 직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야근을 자청하고 사무실에 남아 삼삼오오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있는 직장인들의 얘기가 낯설지 않다. 이제까지 아무 일없이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왔던 넷맹들조차 네크워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복잡다단한 이름의 스타크래프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동료들과의 대화에 왕따가 되어 버리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주위를 한 번 둘러 보시라. 대화에 소외되어 한쪽 구석에서 울다 지쳐 잠이 든 동료가 없는지….
더구나 지난해 <쉬리>를 제치고 비공식 관객동원 1위를 차지한 “오양비됴”를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은 넷맹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가 아닌 ‘나도 해야만 한다’는 강한 동기의식을 불어넣게 했다. 엘도라도를 향한 서부개척자처럼 오양을 향한 집념은 많은 사람의 인터넷 서핑실력을 급속도로 향상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오양비됴는 전국민의(특히 후천적 컴퓨터공포증을 겪고 있던 30, 40대의) 인터넷 마인드 함양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인터넷 마인드 함양에 기여한 “오양 비됴”?
이젠 웬만한 건물에는 하나씩 들어앉아 동네오락실만큼이나 친근해진 PC방은 주머니 속 천원짜리 몇 장만으로도 최신 컴퓨터로 편안하게 인터넷을 맛볼 수 있게 만들었다. 더 이상 인터넷은 피할 수, 또 피해갈 수 없도록 우리 앞에 떠억 버티고 서 있다. 이쯤에서 감히 『참여사회』 독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날린다.
“그럼, 인터넷이 무엇인가?” 컴퓨터라면 자다가도 경기부터 하고 보는 40대 넷맹부터 인터넷을 주업으로 삼는 필자까지 인터넷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복잡한 미적분 문제를 대하는 고등학생의 심정이 되고 만다. 과연 인터넷이란 무엇일까.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2,500여 년 전의 고대 아테네로 휘리릭 한번 날아가 보자. 왜? 글쎄 보자면 한번 보자.
오늘날 민주주의의 원형이 된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시민 모두가 국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형태였다. 모두들 한 장소에 모여 의견을 주고받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쪽의 이런 대화는 다른 쪽의 저런 대화를 부르고 이런 행동은 저런 행동을 유발하고… 모두들 ‘주고, 또 받았다’, ‘인터랙티브’했다는 말이다. 또 누구나 미디어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광장 한가운데서 발언하는 것은 전 아테네 시민을 향해 생방송을 하는 것이었으니까. 발언자 자신이 곧 방송국이자 신문이었다.
인구가 늘고 활동 지역이 넓어져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상호 피드백이 이루어질 수 없는 시대가 되자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고, 누구나 미디어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대중적 인터랙티브의 시대도 더불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 이후 지난 2,500여 년간 그 누구도, 어떤 것도 이 대중적 인터랙티브의 시대를 우리 앞에 완벽히 다시 불러들이지 못했다.
그러다 몇십 년 전 TV가 등장했고, 비로소 다시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재래했다. 더구나 이번엔 전세계인을 상대로. 아테네 시대 이후 TV가 등장하기 전까지 어떤 미디어도 해낼 수 없었던 일이다. TV로 인해 누구나 한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돌아왔다. 2,500년 전 아테네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나 TV는 반 쪽짜리 인터랙티브밖에 구현해 내지 못했다. 미디어의 주체는 소수며, 일방적이고 단방향이다. 아프리카의 어린이와 에스키모 노인이 같은 메시지와 즐거움을 전달받을 수는 있어도, 그 메시지에 대한 당장의 의견을 교환할 수도, 현재 느끼고 있는 즐거움을 TV를 보고 있는 지구 저편의 다른 누군가와 동시에 공유할 수도 없다. 여기까지가 TV의 한계다. 아테네시대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TV의 시대까지는.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 ‘아테네’가 다시 오고 있다. 누구나 미디어의 주체가 되어 동일 공간에서 동일 순간을 공유하며 그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교감하던 아테네가 인터넷을 통해 다시 오고 있다.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던 2,500여 년이 마감되고, 완전한 대중적 인터랙티브의 시대가, 그 옛날 아크로폴리스의 아테네인들 앞에 펼쳐졌듯, 우리 앞에 다시 열리려 하고 있다. 마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아카이아인들이 모여 인터랙티브하게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아 그들만의 사회시스템을 만들어 가던 그 시절처럼,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에 전세계인이 모여들고 스스로들 미디어의 주체가 되어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자본과 조직보다 유연한 사고와 아이디어가 힘
이제 새로운 디지틀 아테네의 시대가 열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어떤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갈지는 모르지만, 도래할 신시대의 시민이 되려거든 자신의 디지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디지틀 아테네의 커다란 장점은 자본의 논리가 직접적으론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힘은 자본과 권력, 그리고 언론이 가지고 있었다. 자본은 권력을 조종하고, 권력은 언론은 조정하며 이들은 거대한 힘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러한 거대한 힘 앞에 일반 시민의 작은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러한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이다. 삼성, 현대와 같은 거대자본이 돈을 쏟아부어도 그들에게 허용된 공간은 한 개의 사이트뿐이다. 현실에서 최고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와 디지털로만 생명력을 이어가는 딴지일보가 이곳에서 별다르지 않다.
오히려 현실에서 그들 힘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해 주었던 탄탄한 조직과 자본은 이곳에서 그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었다. 유연한 사고와 뛰어난 아이디어가 생명을 얻고, 힘을 갖는 곳이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초등학생의 서툰 홈페이지와 삼성의 홈페이지는 동일한 공간으로 보여진다. 보통 직장인이 자기 집을 갖기 위해선 10년이 넘는 시간으로 벌어들인 돈이 필요하지만, 이 곳에선 금새 우뚝선 재벌 사옥과 똑같은 크기의 자신의 집을 몇 푼으로 후다닥 세워 버릴 수 있다. 자본과 권력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없었던 시민들도 이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나타난 것이다.
인터넷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여기에 있다. 인터넷은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소통의 공간도 아니고, 일시적 문화현상만도 아니다. 인터넷은 새로운 디지틀 아테네를 향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인 것이다. 이러한 틀 속에서 새로운 시민사회가 열리고 있다. 자~ 뭣들 하시는가…. 여러분도 이제 이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컴퓨터 얘기만 나오면 먼 산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시선을 피하던 컴맹들에게조차 인터넷은 더 이상 낯선 단어는 아니다. 켜자마자 알 수 없는 영어를 토해내며 초반부터 기를 죽여버리는 컴퓨터를 피해 신문과 TV속에 안주하려 하지만, 이곳에서조차 WWW로 시작되는 이상한 암호문이 난무하고 있다. 이젠 인터넷은 피해 갈 수 없는 길이 되고 말았다.
지난 날 대학생의 공식레포츠로 인정받으며, 뛰어난 방향 예측력과 각도 판별력을 키워주던 당구장은 사양산업이 되어 버렸고, 그 자리를 이젠 PC방이 차지하고 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한 게임할까’는 당구 한 게임이 아닌 스타크래프트 한 게임을 의미하게 되었다. 직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야근을 자청하고 사무실에 남아 삼삼오오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있는 직장인들의 얘기가 낯설지 않다. 이제까지 아무 일없이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왔던 넷맹들조차 네크워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복잡다단한 이름의 스타크래프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동료들과의 대화에 왕따가 되어 버리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주위를 한 번 둘러 보시라. 대화에 소외되어 한쪽 구석에서 울다 지쳐 잠이 든 동료가 없는지….
더구나 지난해 <쉬리>를 제치고 비공식 관객동원 1위를 차지한 “오양비됴”를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은 넷맹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가 아닌 ‘나도 해야만 한다’는 강한 동기의식을 불어넣게 했다. 엘도라도를 향한 서부개척자처럼 오양을 향한 집념은 많은 사람의 인터넷 서핑실력을 급속도로 향상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오양비됴는 전국민의(특히 후천적 컴퓨터공포증을 겪고 있던 30, 40대의) 인터넷 마인드 함양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인터넷 마인드 함양에 기여한 “오양 비됴”?
이젠 웬만한 건물에는 하나씩 들어앉아 동네오락실만큼이나 친근해진 PC방은 주머니 속 천원짜리 몇 장만으로도 최신 컴퓨터로 편안하게 인터넷을 맛볼 수 있게 만들었다. 더 이상 인터넷은 피할 수, 또 피해갈 수 없도록 우리 앞에 떠억 버티고 서 있다. 이쯤에서 감히 『참여사회』 독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날린다.
“그럼, 인터넷이 무엇인가?” 컴퓨터라면 자다가도 경기부터 하고 보는 40대 넷맹부터 인터넷을 주업으로 삼는 필자까지 인터넷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복잡한 미적분 문제를 대하는 고등학생의 심정이 되고 만다. 과연 인터넷이란 무엇일까.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2,500여 년 전의 고대 아테네로 휘리릭 한번 날아가 보자. 왜? 글쎄 보자면 한번 보자.
오늘날 민주주의의 원형이 된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시민 모두가 국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형태였다. 모두들 한 장소에 모여 의견을 주고받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쪽의 이런 대화는 다른 쪽의 저런 대화를 부르고 이런 행동은 저런 행동을 유발하고… 모두들 ‘주고, 또 받았다’, ‘인터랙티브’했다는 말이다. 또 누구나 미디어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광장 한가운데서 발언하는 것은 전 아테네 시민을 향해 생방송을 하는 것이었으니까. 발언자 자신이 곧 방송국이자 신문이었다.
인구가 늘고 활동 지역이 넓어져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상호 피드백이 이루어질 수 없는 시대가 되자 많은 것들이 사라져 갔고, 누구나 미디어의 주체가 될 수 있었던 대중적 인터랙티브의 시대도 더불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 이후 지난 2,500여 년간 그 누구도, 어떤 것도 이 대중적 인터랙티브의 시대를 우리 앞에 완벽히 다시 불러들이지 못했다.
그러다 몇십 년 전 TV가 등장했고, 비로소 다시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시대가 재래했다. 더구나 이번엔 전세계인을 상대로. 아테네 시대 이후 TV가 등장하기 전까지 어떤 미디어도 해낼 수 없었던 일이다. TV로 인해 누구나 한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돌아왔다. 2,500년 전 아테네에서처럼 말이다. 그러나 TV는 반 쪽짜리 인터랙티브밖에 구현해 내지 못했다. 미디어의 주체는 소수며, 일방적이고 단방향이다. 아프리카의 어린이와 에스키모 노인이 같은 메시지와 즐거움을 전달받을 수는 있어도, 그 메시지에 대한 당장의 의견을 교환할 수도, 현재 느끼고 있는 즐거움을 TV를 보고 있는 지구 저편의 다른 누군가와 동시에 공유할 수도 없다. 여기까지가 TV의 한계다. 아테네시대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TV의 시대까지는.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 ‘아테네’가 다시 오고 있다. 누구나 미디어의 주체가 되어 동일 공간에서 동일 순간을 공유하며 그 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교감하던 아테네가 인터넷을 통해 다시 오고 있다.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던 2,500여 년이 마감되고, 완전한 대중적 인터랙티브의 시대가, 그 옛날 아크로폴리스의 아테네인들 앞에 펼쳐졌듯, 우리 앞에 다시 열리려 하고 있다. 마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아카이아인들이 모여 인터랙티브하게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아 그들만의 사회시스템을 만들어 가던 그 시절처럼,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에 전세계인이 모여들고 스스로들 미디어의 주체가 되어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자본과 조직보다 유연한 사고와 아이디어가 힘
이제 새로운 디지틀 아테네의 시대가 열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어떤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갈지는 모르지만, 도래할 신시대의 시민이 되려거든 자신의 디지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디지틀 아테네의 커다란 장점은 자본의 논리가 직접적으론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힘은 자본과 권력, 그리고 언론이 가지고 있었다. 자본은 권력을 조종하고, 권력은 언론은 조정하며 이들은 거대한 힘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러한 거대한 힘 앞에 일반 시민의 작은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인터넷은 이러한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이다. 삼성, 현대와 같은 거대자본이 돈을 쏟아부어도 그들에게 허용된 공간은 한 개의 사이트뿐이다. 현실에서 최고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와 디지털로만 생명력을 이어가는 딴지일보가 이곳에서 별다르지 않다.
오히려 현실에서 그들 힘의 네트워크를 공고히 해 주었던 탄탄한 조직과 자본은 이곳에서 그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있었다. 유연한 사고와 뛰어난 아이디어가 생명을 얻고, 힘을 갖는 곳이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초등학생의 서툰 홈페이지와 삼성의 홈페이지는 동일한 공간으로 보여진다. 보통 직장인이 자기 집을 갖기 위해선 10년이 넘는 시간으로 벌어들인 돈이 필요하지만, 이 곳에선 금새 우뚝선 재벌 사옥과 똑같은 크기의 자신의 집을 몇 푼으로 후다닥 세워 버릴 수 있다. 자본과 권력의 힘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가 없었던 시민들도 이젠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나타난 것이다.
인터넷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은 여기에 있다. 인터넷은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소통의 공간도 아니고, 일시적 문화현상만도 아니다. 인터넷은 새로운 디지틀 아테네를 향한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인 것이다. 이러한 틀 속에서 새로운 시민사회가 열리고 있다. 자~ 뭣들 하시는가…. 여러분도 이제 이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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