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 송파 시민단체협의회의 고향만들기
“강동 송파는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그래도 정주(定住)의식이 높은 곳입니다. 이 때문인지 10년 이상 지역에 뿌리내리고 활동하는 지역활동가들도 적지 않습니다.” 강동송파시민단체협의회(이하 강송시협) 황기룡 사무국장의 말이다. 그의 말처럼 서울의 동남쪽 끝 강동·송파지역은 주변에 자연녹지가 많고 한강을 끼고 있어 그나마 팍팍한 서울에서 정붙이고 살만한 지역으로 손에 꼽힌다. 또 하나, 강동·송파지역에는 활기찬 시민단체들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눈에 띄게 신바람을 내며 일하고 있다. 강송시협 공동대표인 김경호 강남향린교회 목사와 김동진 강동공동육아협동조합 이사장 등 강송시협에 참가하고 있는 여러 단체의 활동가들은 벌써 10년 넘게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에서부터 ‘인간의 존엄성이 옹호되는’ 건강한 공동체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취재를 위해 지하철 8호선 석촌역 인근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마음이 썩 가볍지만은 않았다. 적잖은 지역단체들의 실정이 어떠한지 몇 번 지방 나들이를 하면서 알게된 탓이다. 상근자가 외롭게 사무실을 지키며 무심한 지역여론에 상처받은 채 막강하고도 공고한 이권중심의 ‘토호 연대’와 힘겹게 맞서고 있는 게 대부분 지역단체들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기왕의 체험에서 비롯된 그런 염려는 기우였다. 사무실이 있는 4층 계단을 올라서기 무섭게 연신 까르르 웃음소리가 넘쳐 나오고 연이어 걸려오는 상담전화를 받는 활동가들의 목소리에도 경쾌한 리듬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활기였다.

14개 지역단체의 네트워크

강송시협에 넘치는 활기는 지역실정에 맞는 사업을 시의적절하게 펼쳐 주민들의 호응을 얻는 데서 나오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가락동농수산물시장의 ‘상인 친목회’의 몇몇 뜻있는 상인들이 지역내 실직자들의 고통을 분담하자는 취지로 매주 일정량의 부식거리를 기증하고 강송시협은 이를 지금까지 지역의 연750 가정에 나누어주었다.

이들이 매월 발행하는 실업극복소식지 『희망 나누기』에는 “산마루식품 유근선 대표 매주 생닭 20마리”, “은진농산 매주 1회 간마늘” 이렇게 기증자와 물품목록이 싱싱하고 훈훈한 소식으로 실려있다. 이렇게 모여진 농산물은 7,8 가구당 1명씩 임명된 ‘배송센터장’을 통해 전달되는데 현재는 이들을 주축으로 43명의 자원활동가들이 매월 한번씩 상근활동가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해 먹거리 배송뿐만 아니라 지역문제, 심지어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에 대해서까지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곤 한단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배송센터장들이 주도하는 지역여론은 강송시협에 대해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지난 3월부터 전개한 강동구와 송파구 구청장 판공비 공개요구서명에는 주민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굳이 자기이름을 써넣기까지 했다. 이런 주민들을 위해 상근 활동가들은 잠시 쉬는 시간에도 둘러앉아 기획중인 ‘실직가정 지원행사’에 안치환 같은 가수를 불러 목적의식성을 강조할 것인가, 지역의 밤무대에 나오는 무명의 트로트 가수를 초청해 실직가장을 위무하는 데 치중할 것이가를 놓고 서로 자기논리의 근거를 나열하며 갑론을박하고 있었다.

강송시협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강동구와 송파구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성격의 14개 시민사회 단체의 협의체조직이다. 이 단체의 공동대표인 김경호 목사가 이끄는 강남 향린교회를 비롯해 서울 중앙병원 노동조합, 서울특별시 농수산물공사 노동조합, 송파사랑 시민회, 어린이문고 ‘함께 크는 우리’, 강동공동육아협동조합 ‘재미난 어린이집’, 강동송파교육공동체협의회, 강동야학, 강동송파풍물패연합 등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교조,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전국노점상 연합회 등의 지부가 참가단체다. 이들 단체의 대표들은 매월 운영위원회를 통해 지역현안을 논의하고 시민단체협의회의 사업을 함께 준비한다.

지역사회안전망 구축에 주력

지금 이들이 힘쓰고 있는 현안은 실직가정 등 소외된 지역주민들을 돕기 위한 활동과 구청장의 판공비 공개문제 같이 지자체 운영에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시키기 위한 문제 등 크게 두 방향이다. 강송시협은 지난 3월부터, 연 40억 원이 넘는다는 자치단체장의 판공비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정보공개청구를 했으나 구청에서 ‘관례상 안 하게 되어있다’는 무책임한 대답만 되풀이하고 있어 주민서명운동을 펼치며 항의하고 있다. 공무원들의 이런 막무가내식 대응은 시민단체를 보는 그들의 시각이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양쪽 구청에서는 ‘실업극복 사업’ 같이 본래 관에서 해야 할 일들에 시민단체가 나서면 비교적 협조를 잘 하는 편이지만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지역구 국회의원, 단체장 등이 자신들의 지역기반, 이권, 조직관리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일체의 타협과 굴함이 없이 ‘자신들의 소신’을 지킨다는 것이다.

“지자제 실시 이후에 오히려 관변단체에 대한 지원은 늘었어요. 과거에는 음성적으로 하던 것을 이제는 드러내놓고 하는 게 달라진 정도라고나 할까요. 지역구 의원들이 정점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시민들의 권리 앞에 놓는 일에 오히려 지자제를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

황기룡 사무국장은 일례로 최근 강동구에서 실시한 구립 어린이집 운영자 선정에서 드러난 편법과 억지를 지적했다. 강동구립 상일 어린이집 운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강동구는 자신들이 내세운 원칙에도 맞지 않는 경력증명서를 낸 한나라당 소속 구의회의원 부인에게 시설운영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가산점을 줘가며 선정했다. 지역구 국회의원과 단체장이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고 기초의회의원 다수가 역시 야당 출신인 점이 자격심사의 주요기준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지역의 여론이다. 이에 대해 강동구 사회복지과의 담당 공무원 김순희씨는 “행정규제완화가 요즘의 대세고 민원인 편의를 봐주기 위해 내용상 문제가 없을 것아 그렇게 처리했다.” “ 우리도 법대로 원칙대로만 했으면 좋겠다. 공무원들을 그럴 수 있게 내버려두느냐” 며 적잖은 압력을 받았음을 간접적으로 토로했다.

강송시협은 “지역사회안전망구축”을 주요한 사업으로 전개하고 있다. 지역내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강동구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강동송파지부에 소속된 13개 병원, 7개 약국에서 실직자 가정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한 무료 진료를 펼치고, 각종 학원들도 여기 가세해 이들이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게끔 했다.

강송시협은 이뿐만 아니라 최근 국가보안법 반대국민연대의 발족과 함께 지역에서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지난 봄에 활발하게 전개했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촉구하는 거리캠페인과 서명운동에 나섰던 것처럼 지역 현안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사안에 대해서도 지역주민들의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황기룡 국장은 자신을 포함해 시민단체협의회에 소속된 많은 활동가들이 10년, 20년 지역에 뿌리내리고 노력해서 토호세력화한 지역 내 기득권세력이 이권 담합에 의해 지자체의 주요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관행을 바꾸고 시민들의 건강한 상식이 지자체 운영을 주도할 수 있게 반드시 역관계를 바꾸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주민과의 결합, 단체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기초의회와 지자체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활동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성희 본지홍보실장
1999/11/01 00:00 1999/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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