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전여전
1999/1999년 11월 :
1999/11/01 00:00
세살배기 우리 딸도 참여연대 회원이 됐다. 물론 딸의 자발적 의지가 발동한 건 아니고, 부모의 강권과 회비입금에 따른 것이다. 나중에 딸아이가 왜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마음대로 회원가입을 시켰냐고 따지면 이렇게 말해줄 생각이다.
“다 너를 위한 거다. 돈 되는 적금보다 훨씬 값진 ‘보험’이 바로 참여연대보험인 거다.”
참여연대에 가입해 우리 사회가 맑고 건전해지면 우리 딸이 누릴 세상이 그만큼 투명해지고 건강해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딸애가 ‘왜 어쩌구’ 하리라는 걱정은 없다. 부모로서 딸이 살아갈 세상을 위한 투자를 한 거니까, 오히려 큰소리 칠 일이 아닐까? 다만 딸이 다 클 때까지 참여연대가 변질되지 않고 올곧게 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어쩌나 사실은 그게 더 걱정이다.
나는 96년 겨울 참여연대 기금마련을 위한 연극 <로젤>을 통해 참여연대를 알게 됐다. <로젤>의 내용 때문이었을까? 내심 무슨 여성단체려니 생각했고, 매달 내는 회비가 소외된 여성들에게 조그만 힘이 된다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참여연대에 회원가입서를 냈다. 그후 회원소식지를 통해 참여연대가 어떤 단체인지 알게 됐고, 그리 친근해 보이지 않는(?) 상근자들과 안면을 익힐 무렵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각종 집회참석을 비롯 행사도우미, 회지발송 등. 그렇게 1년 6개월간 자원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사귀게 됐고, 열성회원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했다. 내가 바로 참여연대 회원커플 제1호가 아니던가!
지금 나는 아예 눌러앉아 상근하는 참여연대 활동가가 됐다. 담당업무는 참여연대 재정마련을 위한 보험업무. 일반사업부서에 속해 있는 나는 회원일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열심이고자 한다. 그저 즐겁게 시민운동이란 것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맘처럼 쉽지 않다. 또한 최근엔 회원들로부터 많은 문제제기를 듣는다. 딱딱하고 굳어진 표정, 열번씩이나 울려도 받지 않는다는 전화예법, 불결하고 질서없는 사무실 분위기, 이런 것들이 참여연대를 포장하는 이면에 가린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우린 언제부턴가 업무에 짓눌려 타인에 대한 작은 배려를 잊어버리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회원이었을 때 느꼈던 삭막함을 이제 회원들이 내 얼굴에서 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민운동가, 혹은 활동가의 위상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활동가란 무엇인가.’ 요즘 내가 하는 조금은 어려운 고민이다. 되도록 즐겁게 고민하려는데 생각보다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올바른 대중운동은 대중의 이익을 옹호하며, 대중이 사회의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활동에 대하여 고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대중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그 누가(?) 그러던데 왜 이리 내겐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참여연대 있는 동안엔 열심히 일하고 싶다. 이 다음에 우리 딸이 커서 “엄마, 왜 저를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시켰어요?”라는 소리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래서 진정 우리 딸이 참여연대의 회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고, 그런 데서 일하는 제 어머니를 존중하게 되기를 바란다. 좀더 바란다면 그렇게 우리 가족이 세상을 바꾸는 그 힘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기를 바란다. 우리 가족 모두는 참여연대의 ‘팬’이므로.
“다 너를 위한 거다. 돈 되는 적금보다 훨씬 값진 ‘보험’이 바로 참여연대보험인 거다.”
참여연대에 가입해 우리 사회가 맑고 건전해지면 우리 딸이 누릴 세상이 그만큼 투명해지고 건강해진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딸애가 ‘왜 어쩌구’ 하리라는 걱정은 없다. 부모로서 딸이 살아갈 세상을 위한 투자를 한 거니까, 오히려 큰소리 칠 일이 아닐까? 다만 딸이 다 클 때까지 참여연대가 변질되지 않고 올곧게 성장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어쩌나 사실은 그게 더 걱정이다.
나는 96년 겨울 참여연대 기금마련을 위한 연극 <로젤>을 통해 참여연대를 알게 됐다. <로젤>의 내용 때문이었을까? 내심 무슨 여성단체려니 생각했고, 매달 내는 회비가 소외된 여성들에게 조그만 힘이 된다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참여연대에 회원가입서를 냈다. 그후 회원소식지를 통해 참여연대가 어떤 단체인지 알게 됐고, 그리 친근해 보이지 않는(?) 상근자들과 안면을 익힐 무렵 자원활동을 시작했다. 각종 집회참석을 비롯 행사도우미, 회지발송 등. 그렇게 1년 6개월간 자원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사귀게 됐고, 열성회원이던 남편을 만나 결혼도 했다. 내가 바로 참여연대 회원커플 제1호가 아니던가!
지금 나는 아예 눌러앉아 상근하는 참여연대 활동가가 됐다. 담당업무는 참여연대 재정마련을 위한 보험업무. 일반사업부서에 속해 있는 나는 회원일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열심이고자 한다. 그저 즐겁게 시민운동이란 것을 하고자 한다. 그런데 맘처럼 쉽지 않다. 또한 최근엔 회원들로부터 많은 문제제기를 듣는다. 딱딱하고 굳어진 표정, 열번씩이나 울려도 받지 않는다는 전화예법, 불결하고 질서없는 사무실 분위기, 이런 것들이 참여연대를 포장하는 이면에 가린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우린 언제부턴가 업무에 짓눌려 타인에 대한 작은 배려를 잊어버리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회원이었을 때 느꼈던 삭막함을 이제 회원들이 내 얼굴에서 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민운동가, 혹은 활동가의 위상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활동가란 무엇인가.’ 요즘 내가 하는 조금은 어려운 고민이다. 되도록 즐겁게 고민하려는데 생각보다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올바른 대중운동은 대중의 이익을 옹호하며, 대중이 사회의 주체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우리의 활동에 대하여 고도의 책임감을 가지고 끊임없이 대중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그 누가(?) 그러던데 왜 이리 내겐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참여연대 있는 동안엔 열심히 일하고 싶다. 이 다음에 우리 딸이 커서 “엄마, 왜 저를 참여연대 회원으로 가입시켰어요?”라는 소리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할 것이다. 그래서 진정 우리 딸이 참여연대의 회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고, 그런 데서 일하는 제 어머니를 존중하게 되기를 바란다. 좀더 바란다면 그렇게 우리 가족이 세상을 바꾸는 그 힘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기를 바란다. 우리 가족 모두는 참여연대의 ‘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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