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경쟁 거세한 BK21
1999/1999년 10월 :
1999/10/01 00:00
| 『참여사회』지난 8월호 참여사회칼럼 안경환교수의 「교수들의 데모」에 대해 지난 9월호에서 부산대 김창록 교수가 「교수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라는 제하의 반론을 요첨, 게재한 바 있다. 그러나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김교수가 안 교수 비판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지 않았기 때문에 시위참가 교수들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또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참여연대의 목표와 정체성 문제가 여기에 개입돼 있기 때문에 이 기고문을 보낸다고 밝혔다. <편집자 주> |
사실 저는, BK21 추진 정부측 관료가 “참여연대까지도 BK21반대 교수시위를 ‘교수들의 난동’이라고 비판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해 놀라서 문제의 글을 읽게 됐습니다. 참여연대의 운영위원장인 안경환 교수의 그 글을 읽은 뒤 그 글이 참여연대의 공식적 입장도 아니고 조직 구성원들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으나, 다른 단체도 아니고 참여연대처럼 어느 정도의 진보성을 담보한 ‘민중적 시민단체’라면 집행부, 나아가 회원들간에 최소한의 가치관과 인식의 공유가 필요한데 안 교수와 저는 너무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그렇다면 학식이나 사회적 명망성이나 조직에의 기여도나 모든 면에서 부족한 제가 참여연대를 떠나는 것이 순리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또 연구능력 부족으로 수혜자에서 제외될 주제에 자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의 공동의장으로서 문제의 ‘집단난동’이나 주동하여 참여연대의 명성에 누를 끼친 데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제가 안 교수와 함께 맡아 오던 참여사회연구소 이사직의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이사회는 사직서를 반려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사직서와는 별개로 안 교수에 대한 김창록 부산대 교수의 반론이 『참여사회』 9월호에 실렸습니다.
BK21반대론자=연구능력부족자?
이같은 ‘문제의 수습’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은 두 가지 이유입니다. 우선 김 교수의 반론이 뛰어난 논리에도 불구하고 안 교수의 비판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안 교수 글의 핵심은 BK21이 왜 필요한 제도이냐가 아니라 반대하는 교수들은 연구능력 등 경쟁력 부족으로 인해 “주로 이 정책의 수혜자에서 제외되거나 상대적으로 순위가 뒤질 처지에 선” 교수들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며 교수들의 시위는 이 낙오예정자들의 “집단난동”이라는 ‘탁월한(?)’ 분석인데 김 교수는 이 문제에 대해 답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경우, BK21반대론자=연구능력부족자라는 낙인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반대론자들, 특히 시위참여 교수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입니다. 두번째는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로서 참여연대의 목표와 정체성 문제가 여기에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안 교수가 BK21 반대론자들과 반대시위 참가교수들의 연구실적들을 일일이 검토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BK21반대론자=연구능력부족자라는 등식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쑥스럽지만 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집단난동의 수괴’입니다만 정치학자중 누구 못지 않은 연구실적을 발표해왔다고 자부하며 그중 한 책은 한 언론사가 사회과학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 의뢰하여 선정한 사회과학부문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또 김우창 고려대 교수, 도정일 경희대 교수 등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들이 공개적으로 BK21에 반대되는 글을 쓴 바 있는데 그 분들이 연구능력부족자들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비서울대 교수들이 주로 반대하고 있는 현실과 관련해, 혹시 소속대학을 중심으로 서울대 교수=연구능력최우수자, 비서울대 교수=연구능력부족자라는 등식에 의해 BK21반대 교수=연구능력부족자로 일반화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사실 서울대의 경우도 사회대는 BK21의 참여를 거부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서울대중 공대나 법대는 연구우수자들만 모여 있어 BK21사업에 찬성을 하고 사회대는 유독 연구능력 부족 교수들만 모여 있어 반대를 하는 것인가요?
안 교수가 BK21반대시위가 집단이기주의라는 이유로 제시하는 또 다른 논거, 즉 아무리 동기가 좋아도 “직접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이 거리에 나서면 이익집단이 되고 만다”는 주장역시 문제가 많습니다. 새 정부와 언론이 신종 마녀사냥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기이한 집단이기주의론을 답습한 이 논리에 따르면, 유신시절의 동아, 조선투위사건처럼 언론인들이 자신의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린 언론의 자유를 거리로 나와 외치는 것, 5·18유가족들이 전두환, 노태우 구속을 거리로 나와 외치는 것, 노예들이 노예해방을 외치는 것, 3·1운동 당시 우리 국민들이 자신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대한독립을 외친 것은 다 집단이기주의입니다. 경쟁력있는, 그 높은 서울법대 교수의 주장치고는, 너무 유치한 논리입니다.
공공성, 형평성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
저는 다른 글도 아니고 문제의 글처럼 논쟁적인 글을 쓰려면 최소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무엇인가를 읽고 쓰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면서 동시에 ‘적’을 효과적으로 공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글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우선 안 교수는 BK사업이 주로 대학원생에 지원되기 때문에 교수들이 반대하는 것처럼 비판했지만 우리의 입장은 전혀 그것이 아닙니다. 즉 민교협 등은 대학원생에게 지원을 하되 BK안처럼 교수들의 연구보조원으로 지원하면 대학원생들의 창의성이 저해되고 대학원생들이 교수의 노예가 되기 때문에 이들에게 공개경쟁을 통해 직접 지원하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안 교수는 대학에 경쟁이 필요하기 때문에 BK21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바로 BK21이 경쟁을 제거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즉 특정분야에 특정대학을 선정해 집중지원하면 그나마 있던 경쟁마저 사라지고 학문적 독점이 생겨나 오히려 생산성을 해친다는 것이 반대이유입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닙니다. 미리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서울대에 대한 사전 정보주기, 분야별 지원자격을 35명 등으로 제한해 아무리 우수해도 이 인원이 안 되는 대학은 사실상 지원을 못하도록 한 지원규정 등 모든 것은 불공정경쟁의 전형이었고 심사결과는 이 같은 내정설을 입증해주었습니다. 물론 BK21 반대운동에 대해 침묵하다가 심사결과가 불만족스럽자 갑자기 입장을 표변해, 이 사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임으로서 “내가 받으면 좋은 사업이고, 내가 못 받으면 잘못된 사업”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소위 양대 명문사립대학 역시 한심하긴 마찬가지지만 말입니다. 두번째 문제로 들어가, 저는 아직도 BK21은 참여연대의 취지에 절대 반대되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BK21은, 누차 지적되었고 정부 스스로 이 사업을 올 상반기 진행된 국가정책중 잘못된 5대 실정의 하나로 선정함으로써 인정했듯이, 그 입안과집행과정이 참여연대가 주장해온 참여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행정독재의 전형입니다. 또 안 교수는 BK21반대론이 “극단적 평등복지의 생리”라고 비판했습니다만 반대단체들의 문건을 읽어보면 반대론이 각 대학과 대학교수들이 똑같이 나눠 먹자는 식의 “극단적 평등주의”와는 거리가 먼, 최소한의 공공성과 형평성에 대한 요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 이는 참여연대의 본뜻과 일치하며 이 정도 수준의 공공성과 형평성마저도 주장하지 못한다면 참여연대는 존재의미가 별로 없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입니다. 물론 백화점식 시민운동이 비판받고 있는 상황에서 참여연대가 BK21이라는 교육문제까지 손을 댈 여력이 없어서 침묵을 지켰다면 그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고 이 안건을 논의했으나 일부 교수들의 반대로 참여연대는 이 문제에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못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파동이 우발적인 일회성 에피소드나 해프닝이 아니라 참여연대의 목표와 정체성이 걸린 중요한 문제가 단지 한 사건을 통해 터져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 글이 참여연대가 21세기에 지향해야 할 목표와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가를 한번쯤 깊이 논의하여 참여연대가 더욱 발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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