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통합과 희망이다
1999/1999년 10월 :
1999/10/01 00:00
진보정당의 새실험, 닻올린 민주노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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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9일 드디어(가칭)민주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의 깃발이 올랐다.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민주노동당'이라는 당명ㅘ 깃발뿐인 앙상한 조직이다. 그러나 기성정치세력을 뛰어넘어 새로운 진보정치를 열어가야 한다는 기대와 희망 속에 진보정당은 조심스런 첫발을 내딛었다. |
97년 권영길 후보추대에서 99년 민주노동당까지
민주노동당의 창당발기인대회가 있기까지는 짧지만 간단치 않은 2년여의 역사가 있다. 이를 되짚어보려면 우선 지난 97년 대통령선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권영길 씨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면서 탄생한 국민승리21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를 받으면서 선거에 임했다. 많은 이들이 땀을 모았지만 아쉽게도 현실정치의 벽은 상당히 두터웠다. 결과는 민주노총 50만 조합원에도 못 미치는 30만 6,000표를 얻는 수준에 그친 것. 하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국민승리21은 노동자와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활로 찾기에 다시 나섰다. 이에 지난해 6?지방선거에서는 울산 동구청 등 기초단체장 3명과 광역의원 2명, 기초의원 18명을 당선시키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어 9월 17일 국민승리21은 제3차 중앙위를 열고 “99년 5월까지 진보정당 창당에 동의하는 모든 진보세력과 함께 진보정당을 창당한다”고 결의, 올해 들어 그 움직임이 보다 본격화되었다.
국민승리21이라는 틀을 보다 확대시켜 1월부터 제 세력이 함께 모이는 원탁회의를 열고 의견을 모았고, 4월 18일 진보정당 창당추진위 결성대회를 열고 ‘노동자가 앞장서는 민중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결의했다. 97년 대선 이후 진보정당의 새로운 실험이 작은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계층, 지역을 아우른 6,000여 발기인
드디어 8월 29일 창당발기인대회가 열렸다. 29일 현재 6,215명이 발기인으로 등록했고 이중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회가 치러졌다. 실로 오랜만에 후끈한 열기 속에 진보진영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갑용 민주노총 위원장과 고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 문성현 금속연맹위원장 등 민주노총 대표자들, 류초하 충북대 교수, 장상환 경상대 교수 등 학계 다수, 김석연이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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