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이제 퍼블릭 액세스를 활용하라
퍼블릭 액세스란 말은 아직도 낯설다. 공공접근? 누가 무엇을 한다는 이야기일까?

미국의 경우 지난 70년대말부터 이미 퍼블릭 액세스가 도입되었고, 최근에는 무려 1,000여 곳에서 퍼블릭 액세스 차원의 프로그램 제작활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론학자들의 이론서를 보더라도 90년대에 들어와서야 퍼블릭 액세스라는 개념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오랜 시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군사독재의 특성상, 그리고 철저히 정치권력에 종속되어 그들의 홍보수단 이상이 아니었던 우리의 방송현실상 퍼블릭 액세스라는 공간에 대해 어느 누구도 미처 예견하고 이를 준비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결국 본격적으로 그 의미를 공유하기 시작한 것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통합방송법에 대한 논의가 한창 무르익고, 국민주방송설립운동이 진행되던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에야 방송이라는 공공영역에 일반 시청자들의 접근권이 허용되고, 또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라는 점이 서서히 인식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내 퍼블릭 액세스권의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나타나기에 이른다.

여성민우회에서 퍼블릭 액세스라는 개념에 접근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국민주방송설립운동에 중심적으로 참여하면서 현대사회에서 가장 먼저 보장받고, 확보해야 할 권리가 언론매체의 독립성이고 자율성이란 점, 나아가 공공매체를 통한 자기의사표현이 갖는, 그 혁명적인 의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부적으로는 방송과 신문 등 미디어분야의 모니터활동을 담당하던 회원들을 중심으로 액세스권에 대한 준비활동이 시작되었다. 물론 회원들 스스로 ‘비디오만들기소모임’을 운영하고, 간단한 영상작품을 만들기도 하며, 민우회 안팎의 활동을 비디오로 기록해나가는 실천활동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지만 이는 대중조직이 행하는 다양한 회원활동의 하나였을 뿐이다.

‘비디오 만들기’ 소모임부터 출발

퍼블릭 액세스의 개념을 공유하고 그 연속선에서 비롯된 활동은 96년에 진행한 ‘어린이방송학교’가 그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94년부터 ‘어린이방송학교’는 진행되어 왔지만 그 초기에는 폭력적인 영상물로부터 어린이들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미디어를 바로볼 수 있도록 기초를 제공하자는 의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거듭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미디어에 대한 이론식, 토론식 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게 되었고, 그 대안으로 미디어에 대한 적극적인 체험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는 미디어를 통한 자기표현으로 귀결되었고, 바로 제3기 ‘96어린이방송학교’에서 시도된 ‘어린이뉴스제작단’의 활동으로 나타난다. 첫 해인 96년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시도되었고, 다음해인 97어린이방송학교에서는 참가 어린이 모두에게로 확대되었다. 미디어에 대한 단순 이해교육에서 미래의 퍼블릭 액세스시대를 준비해나가는 기초적인 훈련단위로의 전환인 셈이다.

이와 함께 여성민우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퍼블릭 액세스를 담아내기 시작한 것은 미디어운동의 총괄단위로서 ‘미디어운동본부’가 발족을 준비하던 97년부터다. 당시 모니터활동에 집중되어 있던 미디어운동의 실천을 보다 새롭고 파급력있게 열어갈 방식은 무엇일까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있었고 그 자연스러운 귀결이 퍼블릭 액세스에 대한 준비였다. 그 준비는 미디어운동을 풀어갈 중심회원들이 우선 기초적이나마 제작능력을 담보해야 한다는 인식 아래 ‘영화읽기비디
1999/10/01 00:00 1999/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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