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퉈터 폐지 음모 결사 저지하자!!
1999/1999년 10월 :
1999/10/01 00:00
시민운동가 혹은 활동가로서 채 1년도 보내지 않은 나에게, 엄밀히 말하자면 시민운동단체라고 말하기 어려운 민예총에서 일하는 나에게 ‘시민운동, 앗 나의 실수’ 코너를 맡아달라고 청탁한 것은 그야말로 ‘『참여사회』, 엇 너의 실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못내 떨쳐버리지 못하겠다. 그러나,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이런 타령을 하는 것은 더욱 큰 죄를 짓는 것이리라. 게다가 나는 늘 문화예술운동의 시민운동으로의 확장을 민예총 내부에서 소리없이 역설해 오던 축에 속해 있었다(그렇다고 자부한다). 그러므로 나에겐 ‘앗 나의 실수’ 코너에 - 다소 엄청난(?) - ‘실수’, 혹은 ‘착각’으로 글을 기고하는 무모함을 감행할 알리바이가 있다.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문화예술영역의 ‘시민운동’이야말로 꼭 필요한 것 중 하나다. 민예총 회원 즉, 진보적 예술가들 모두가 ‘시민’이라는 점을 거론치 않더라도 결국 ‘모든 시민의 예술가화’, ‘모든 예술가의 시민화’야말로 문화예술운동의 궁극적 지향점이 아닌가? 뿐더러, 아무리 청아한 환경 속에서 그리고 수준높은 정치경제적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문화예술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시민사회, 삶의 질이 전혀 고양되지 않은 시민사회가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운동의 시민운동으로의 확장을 고민하면서 자원봉사자야말로 새롭게 주목되는 연대의 일차 대상자들이자 동지들일 것이라는 생각에 각 대학에서 반강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사회봉사’를 유치하기로 맘을 먹었다. 그들이 곧 사회인(시민)이 될 것이고 또, 이런 제도를 활용하여 문화예술 영역의 중요성 및 시민사회운동의 중요성도 널리 알리고, 그들에게 문화예술적 마인드를 확산시켜 ‘자원’봉사자 내지는 잠재적 동지로 꼬실 수 있는 무한정의 기회를 스스로 창출코자 했던 것이다.
어찌됐든 나름대로 1학점(30시간 사회봉사)을 따기 위해 민예총에 모여든 학생들을 데리고 6월에서 8월까지 석달 동안 ‘자율적’ 사회봉사자로 키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결론부터 말해 그 중에서 몇은 건졌다!).
그러나, 이쯤에서 나는 “균형”이라는 감각적인 단어를 머리에 떠올려야만 했다. ‘대학사회봉사’라는 제도와 ‘자원’봉사라는 이상 사이에서도 이 균형감각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균형감각을, 유사 상황 속에서 그런 균형을 견지할 백신을 불행히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대단치는 않았지만 여기 저기서 부작용이 생겨났다.
“오빠! 나는 왜 60시간이 넘게 일해요? 쟤는 20시간도 안하는데….”
“형! 자율적으로 하자고 해 놓구선 왜 자꾸 강제적으로 한다는 느낌을 갖도록 만들죠?”
그들의 말이 맞았다. 혼자서 10명을 다 감당하기도 힘들었지만, 턱없이 활동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내가 자원봉사자들을 감당하는 데 할애해야 할 시간을 많이 갖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사회봉사 얘들한테 너무 신경쓰는 거 아냐!”하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리고 무조건 ‘일만 시키면 되지, 뭐’라는 생각부터 앞세우고 덤벼드는 소수 몰지각(?) 활동가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각 업무 파트에서 자유롭게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리 애초부터 만무하다는 것부터 알아야 했다. 그리고 봉사자들간의 편차도 고려해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30시간만 채우면 되겠지, 뭐…’ 이렇게 생각한 축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했다.
그렇지만,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 집회 같은 자리를 통해 조금씩 변해가는 그들을 보며 가슴 뭉클함을 느끼기도 했다. 스크린쿼터의 ‘스’ 자(字)도 모르던 녀석이 정리 집회 때 자기도 모르게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던 걸 생각해 보니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온국민이 단결하여 스크린퉈터…?!?!”
“하하하 - - - “
좌중이 모두 웃음바다가 됐지만, 얼굴이 빨개진 그 숫기 없던 녀석은 그래도 “-퉈터”라는 다소 격앙된 발음을 조심스럽게 고쳐가면서 다시 한번 외쳤다.
“온국민이 단결하여 스크린‘쿼터’ 폐지음모 결사 저지하자!!”
녀석의 구호 속에서 쨍쨍하던 볕 아래 시작된 집회가 어느덧 노을 아래 담겨져 있었다.
문화예술운동의 시민운동으로의 확장을 고민하면서 자원봉사자야말로 새롭게 주목되는 연대의 일차 대상자들이자 동지들일 것이라는 생각에 각 대학에서 반강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사회봉사’를 유치하기로 맘을 먹었다. 그들이 곧 사회인(시민)이 될 것이고 또, 이런 제도를 활용하여 문화예술 영역의 중요성 및 시민사회운동의 중요성도 널리 알리고, 그들에게 문화예술적 마인드를 확산시켜 ‘자원’봉사자 내지는 잠재적 동지로 꼬실 수 있는 무한정의 기회를 스스로 창출코자 했던 것이다.
어찌됐든 나름대로 1학점(30시간 사회봉사)을 따기 위해 민예총에 모여든 학생들을 데리고 6월에서 8월까지 석달 동안 ‘자율적’ 사회봉사자로 키워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결론부터 말해 그 중에서 몇은 건졌다!).
그러나, 이쯤에서 나는 “균형”이라는 감각적인 단어를 머리에 떠올려야만 했다. ‘대학사회봉사’라는 제도와 ‘자원’봉사라는 이상 사이에서도 이 균형감각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균형감각을, 유사 상황 속에서 그런 균형을 견지할 백신을 불행히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대단치는 않았지만 여기 저기서 부작용이 생겨났다.
“오빠! 나는 왜 60시간이 넘게 일해요? 쟤는 20시간도 안하는데….”
“형! 자율적으로 하자고 해 놓구선 왜 자꾸 강제적으로 한다는 느낌을 갖도록 만들죠?”
그들의 말이 맞았다. 혼자서 10명을 다 감당하기도 힘들었지만, 턱없이 활동가가 부족한 상황에서 내가 자원봉사자들을 감당하는 데 할애해야 할 시간을 많이 갖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사회봉사 얘들한테 너무 신경쓰는 거 아냐!”하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리고 무조건 ‘일만 시키면 되지, 뭐’라는 생각부터 앞세우고 덤벼드는 소수 몰지각(?) 활동가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각 업무 파트에서 자유롭게 봉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리 애초부터 만무하다는 것부터 알아야 했다. 그리고 봉사자들간의 편차도 고려해야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30시간만 채우면 되겠지, 뭐…’ 이렇게 생각한 축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했다.
그렇지만,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 집회 같은 자리를 통해 조금씩 변해가는 그들을 보며 가슴 뭉클함을 느끼기도 했다. 스크린쿼터의 ‘스’ 자(字)도 모르던 녀석이 정리 집회 때 자기도 모르게 격앙된 목소리로 이렇게 외치던 걸 생각해 보니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온국민이 단결하여 스크린퉈터…?!?!”
“하하하 - - - “
좌중이 모두 웃음바다가 됐지만, 얼굴이 빨개진 그 숫기 없던 녀석은 그래도 “-퉈터”라는 다소 격앙된 발음을 조심스럽게 고쳐가면서 다시 한번 외쳤다.
“온국민이 단결하여 스크린‘쿼터’ 폐지음모 결사 저지하자!!”
녀석의 구호 속에서 쨍쨍하던 볕 아래 시작된 집회가 어느덧 노을 아래 담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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