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종로빌딩
도시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 변화와 성장이 도시가 지니고 있는 역사적 환경과 질서를 거스르거나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배제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도시에서는 이런 잘못이 너무 쉽게 저질러지고 있고, 사람들은 이것이 잘못이라고 인식하지 못한 채 위로 옆으로 건물을 키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형국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나라들은 도시를 개발하는 데 있어 아무리 경제우선의 정책을 펴더라도 마구잡이식 개발은 하지 않는다. 역사가 오래된 도시일수록 그 도시가 지니고 있는 시간의 궤적을 가능한한 살리려 애쓴다. 그래서 도시를 개발하려면 옛부터 있어왔던 구도시지역은 옛도시답게 잘 보존하고, 외곽에 신도시를 조성한다. 도시민의 경제생활에 필요한 여러 기능이 복합적으로 갖춰진, 사람을 위한 공동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도시는 어느 지역을 가릴 것 없이 재벌에 의해 ‘경제적 고부가가치’의 제물이 되어버린다. 그 결과로 서울역 앞은 어느 재벌, 세종로는 어느 재벌, 태평로는 어느 재벌 하는 식으로 자본의 힘이 도심을 장악한 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도시에 담겨 있는 일상의 생활문화나 장소적, 역사적 환경이 개발의 전제조건으로 끼어들 여지없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당장의 경제적 가치에만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 도심에 세워진 거대 재벌의 계열기업 사옥이 이와 관련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도심 스카이라인의 일대변화 예고

종로 통이 시작되는 네 거리의 모퉁이 종각의 북쪽 건너편에 세워진 삼성 종로빌딩. 지하 6층 지상 23층 높이에 연면적 18,000여 평 규모. 주변에 이미 지어진 재개발의 결과물들과 규모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지만 건물의 배치방법과 형태, 공법이나 재료 등의 독특함으로 지어질 때부터 화제가 되었던 건물이다. 건축물의 형태가 담고 있는 의미라든가 건축가의 작가적 의도 등이 무엇이든 대중의 정서에서 보면 이 건물은 분명 그간 도심의 고층건물이 보여주던 풍경과 비교되는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선 건축형태부터 기존의 박스형 건물에 미끈한 돌판을 붙여놓거나 반사유리를 씌워 현란한 풍경을 만들어내던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하이테크 건축의 대명사로 불리는 철과 유리를 주로 써서 건물에 투명성을 심어주고 있는 데다 지상에서 위로 오르면서 부위마다 입면 구성이 여러 모습으로 달라 보이게 하더니 급기야 옥상 부분은 거대한 철골 구조체로 들어 올려져 하늘의 구름을 암시하듯 ‘클라우드’라는 이름으로 공중에 떠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레스토랑으로 쓰일 이 떠 있는 ‘옥상’은 건물을 지어가며 건물 위에서 직접 제작해 잭(기중기)의 작동 원리를 이용, 세 곳에서 힘을 떠받치는 철골조를 안테나를 뽑아 올리듯 직접 덧대어 높여가면서 자리를 잡은 독특한 공법을 적용했다. 완성된 후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상부의 텅 빈 공간을 살리기 위해서는 원통형의 구조체를 먼저 세워놓고 공사하는 것보다 구조적인 안전성이나 시공상의 편의를 위해 건물의 맨 꼭대기 층은 미리 제작해서 기초부터 연속되는 실제의 구조체(세 곳의 원통형 구조체)에 연결시켜 들어올려야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적용한 공법인 셈이다.

비록 외국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긴 하지만 새롭게 적용된 건축 기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삼성 종로빌딩이 곱지 않은 시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건물의 형태가 풍기는 이미지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건물이 세워진 땅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와 도심 가로 풍경과의 부조화 때문이다. 이미 존재하던 건물을 헐고 새로 지을 때 담아내야 할 기존 환경과 역사의 흔적에 대한 배려가 실종된 상업주의의 횡포도 비판할 대목이다. 그러다 보니 길에 도열하듯 서 있는 주변 건물과 달리 네 거리의 모서리 땅이라는 장소적 여건에 맞춰 모로 서 있는 것을 두고도 ‘건방진’ 자세라고 일침을 가하는 건축인들이 있을 정도로 이 건물은 사사건건 트집의 대상이 돼왔다. 건물이 도시 가로에 모로 서 있다고 해서 굳이 흠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비난의 배경에는 여타의 건물들을 압도하며 독불장군처럼 도도히 자본의 힘을 내세우듯 서 있는 건물 형태상의 과장된 표정에 대한 거부감도 깔려 있다. 종로통의 가로 풍경은 물론 바로 근처에 펼쳐진 골목길에 넘치던 도시의 생명력과 활기는 이 건물로 인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건물 상부를 비워두고 떠 있는 꼭대기 층을 비롯한 건물의 전반적인 형태 구성의 논리가 주변의 건축과 도시환경을 지배하며 도심을 장악한 자본주의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요새와도 같아 보인다. 어쨌든 이 건물이 도심의 스카이라인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일대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건축의 사회적 가치

20세기초 국권을 상실하고 일제의 지배하에 놓였을 때조차 일본자본이 넘보지 못했던 곳이 종로통이다. 화신백화점은 그러한 역사적인 거리에 서있었다. 삼성종로빌딩에 대한 평가는 그 장소의 역사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일제 강점기의 후기인 1937년에 세워져 50년 동안 서울 도심의 근, 현대 역사를 증거하며 서 있던 화신백화점은 1987년 3월 1일 천민자본의 힘에 눌린 도심재개발의 붐을 타고 헐리고 말았다. 이 건물은 일본 강점기에 막 유입되기 시작한 서구 근대건축의 수용과정을 잘 설명해주는 건축물로, 우리 설계, 우리 자본, 우리 자재, 우리 인력으로 지어진 최초의 서양개념 상가건물이었다. 비록 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일한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신문화로서의 건축을 우리나라에 정착시키고 발전시키는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박길룡 선생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6층 짜리 철근 콘크리트구조로 지어진 이 건물은 당시 난방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몇 안 되는 건물중의 하나였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참고로 우리가 직접 생산한 엘리베이터는 1969년 금성사에 의해서 을지로 삼풍상가에 처음 설치되었다)되는 등 여러 면에서 우리 근대 건축의 역사를 증거 하는 귀중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이런 건축적인 가치는 자본의 힘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건축계의 보존 여론에도 불구하고 화신백화점은 서울의 도시환경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1980년대 도심재개발의 희생양이 됐다. 처음에는 한보그룹이 이 땅을 사들여 대규모 복합시설을 지을 셈이었으나 이 사업은 건립 자금 등의 사정으로 인해 지지부진하다 결국 삼성으로 땅주인이 바뀌게 된다. 당초 삼성은 이곳에 백화점 기능을 담은 대규모 상업시설을 짓기로 하고 공사까지 진행시킨 상황에서 건축가를 외국인(라파엘 비뇰리, 미국)으로 교체하면서 설계를 변경시킨다. 우리나라에 지어진 고층건물의 대부분이 외국인 건축가가 설계한 것임을 감안하면 대재벌이 서울 도심에 짓는 건물에 외국인 건축가의 참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미 공사가 진행중인 것을 바꾼 것은 자본의 논리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노린 가진 자의 권력남용에 다름아니다. 설계자가 바뀌면서 건물의 형태도 변화를 갖게 되고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건물의 주요 기능도 판매시설에서 사무시설 위주로 변화했다.

삼성 종로빌딩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최근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고, 아직 완공되기도 전에 정부기관인 국세청이 건물의 상당부분을 임대해 입주했다. 시민단체로부터 곧잘 공격을 당하고 있는 재벌기업의 건물에 국세청이 입주해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삼성 종로빌딩은 다시 한번 건축의 사회적 가치를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건물을 대하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비판이나 옹호적 태도에서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는 터전인 땅이 지니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 앞에 건축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겸손한 마음이 아닐까 한다.
이주연 건축비평가, 월간 『건축인POAR』편집인
1999/10/01 00:00 1999/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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