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총체적인 사회 개혁 전선에 다시 선다. 지난해 총선에서 ‘바꿔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그 바통을 이어받아 오는 2월 27일 ‘제2의 총선연대’를 띄운다.

이날 정식 발족할 전국 시민사회단체 연대체는 지난해 4월 총선연대 활동을 접고 1년여의 산고 끝에 태어나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전국적이고 상설적인 네트워크 조직이다. 이들이 지난 총선과정에서처럼 시민들의 폭발적 지지를 다시 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 연대체를 꾸리기 위해 지난해 4월 사실상 총선연대 해체 이후 곧바로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여성연합 등 총선연대의 주력이었던 단체들을 중심으로 후속 연대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지난 9월, 32개 단체가 참여하는 가칭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준비위가 발족됐고, 이들이 참여하는 대표자회의와 7개 간사단체가 참여하는 간사단체회의를 통해 새로운 연대체의 창립을 준비해왔다.

총선연대의 후신으로 새롭게 조직될 이 연대체의 예상가입 단체 수는 500여 개 이상. 이미 236개의 단체로 구성된 국보법폐지국민연대 등이 가입할 예정이고, 지난 총선연대 운동에 참여했던 각 지역, 부문별 단체 중 많은 단체들이 개혁전선에 함께 설 전망이다. 또 총선 때 ‘낙선운동’을 벌이지 않고 공정감시운동을 벌였던 일부 단체들도 이 새로운 연대기구 가입을 적극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총선 기간에 제한적으로 활동했던 1,000여 단체의 연대체인 총선연대가 한시적 연대기구로 사상 최대 규모였다면, 새롭게 출범하는 이 연대기구는 상설적 시민사회단체 연대체로는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80%의 낙선율’로 나타났던 총선연대의 지지도가 고스란히 이 연대기구로 옮겨진다면 향후 ‘개혁 운동’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또 총선연대가 4개월 간의 총선기간 동안 ‘낙선운동’에 집중해 중앙집중적ㆍ한시적 체계로 운영됐다면, 새롭게 구성되는 연대체는 지역ㆍ부문단체간 수평적 네트워크 활동을 지향하면서 상시적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따라서 이 연대기구가 그간 지적된 바 있듯이 ‘단체 이름걸기’ ‘큰 단체 들러리’ 등 시민사회단체 연대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3대 개혁입법 정치개혁 최우선 과제로

이 연대체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개혁 내적 동력을 어떻게 추동할 것인가이다. 특히 이 연대체에는 과제별ㆍ부문별ㆍ지역별 단체들이 총망라될 예정이어서 단체간 의견을 조율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이미 추진되고 있는 분야별 과제에 대해 새로운 연대조직이 간접지원하거나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참여단체를 중심으로 한 운영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개혁과제를 설정해 이를 공동 수행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운영위원회는 40∼50명의 단체 대표자로 구성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또 이미 광주, 대전 등의 지역단체간 협의체들은 새로운 연대체에 가입하기로 결의한 상태다. 대구, 제주, 부산, 전북 등지에서도 이 연대체 가입을 둘러싸고 논의를 진행중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단체들을 묶어내는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가장 큰 쟁점은 ‘이미 과제별 네트워크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전국적인 연대조직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여성단체연합 남윤인순 사무총장은 지난 2월 9일 시민사회단체 공동워크숍에서 “지역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된 연대운동의 필요성 논란은 많은 논의과정을 거치면서 일정부분 공론화됐다”며 “지역에서 제기되는 이슈를 전국화하고, 개별 단체들의 분산된 역량을 통합하기 위해서도 대체로 연대체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또 큰 단체 위주로 운영돼 작은 규모의 단체들은 ‘들러리’만 서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사실 이 같은 문제는 그간 시민사회단체 연대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제기돼왔던 것들이다.

이에 대해 새로운 연대체는 사무국이 없이 연락업무만을 담당하는 단체를 두고, 과제 선정 등 주요 사항은 분야별ㆍ지역별 운영위 체계에서 결정하면 일정부분 수평적 연대가 가능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같은 수평적 연대가 구현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보다 더 민감한 문제는, 한국시민단체협의회(이하 시민협)와의 관계이다. 사실 지난해 9월경부터 가칭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준비위’는 시민협과 접촉을 가지면서 결합방식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명칭과 참여지분 문제 등이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연대체 구성측은 “개방적인 태도로 시민협의 개별 단체가 가입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고, 실제로 환경운동연합, YMCA 등의 단체들은 적극 결합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협측은 “좀더 개방적인 느슨한 연대체로 구성돼야 한다”며 “시민협의 위상과 사업내용 면에서 크게 다를 바 없다”면서 다소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회개혁 신호탄 올릴 것인가

이에 따라 새로운 연대체 준비팀은 자칫 외부에서 볼 때 시민운동의 분열양상으로 비춰질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조희연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이와 관련해 “시민운동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언론이 만들어내는 ‘분열’이나 ‘하나의 시민운동’이라는 단일한 허상에 구애될 필요는 없고, 시민운동 내에서도 일정한 경쟁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대체의 조직 명칭도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그간 준비위 단계에서 사용해 오던 가칭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약칭 연대회의)와 가칭 ‘시민사회단체 개혁연대공대위’(약칭 개혁연대)라는 두 가지 안을 놓고 현재 논의중이다. ‘연대회의’라는 명칭은 가급적 많은 단체를 포괄하는 느슨한 연대조직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후자의 경우에는 ‘사회개혁운동체’라는 성격 규정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차원에서 제기됐다. 이 명칭 논의는 현재 2월 21일 개최될 대표자회의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이 연대체의 주력 사업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법, 정치자금법, 선거법 등 정치제도 개혁 및 정치자금 감시운동을 집중과제로 선정하자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또 국보법 폐지 등 3대개혁 입법을 당면과제로 선정해 현재 구성돼 있는 각 사안별 연대체에 적극 결합하겠다는 구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주민소환·투표제 등 지자체법 개정과 예산환수운동, 언론개혁, 시민운동 활성화 과제 등에 대해서도 검토하고 있다.

가칭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지은희 준비위원장은 “총체적으로 개혁이 미진한 상태에서 이를 추동할 세력이 없다는 게 가장 안타깝다”며 “이 연대기구의 목표는 총선연대가 보여준 유권자 운동의 힘을 전국적으로 네트워크화 해 개혁을 완성시켜나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총선연대 운동은 그 규모와 파장에 있어서 시민단체 연대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었다. 새롭게 탄생할 시민사회단체의 연대체가 그 뒤를 이어받아 사회개혁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2001/03/01 00:00 2001/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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