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전향적 판결에도 대법원은 요지부동
2001/2001년 08월 :
2001/08/01 00:00
법원판결로 본 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말할 때 우리는 정부의 검열이나 규제를 생각한다. 또 흔히 사법부는 자유와 권리의 수호자라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는 적어도 표현의 자유에 관해서 사법부는 수호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정부에 의한 일상적인 검열과 직접 개입에서도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법부의 판단은 정부의 직접 개입이나 규제의 한계이며, 모든 행정규제는 궁극적으로 법원의 판단에 맡겨지게 된다는 점에서 법원의 태도는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법원이 이런 구실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며, 오히려 그 반대였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적 수단을 ①사전적 행정규제(검열) ②사후적 행정규제 ③사후적 형사처벌 ④사후적 민사책임 등으로 구분해 본다면, ①과 ②는 정부의 몫이고 ③과 ④는 사법부의 몫이다. 우리는 이제 막 ①의 단계를 벗어나려고 하는 상태인데, 정보통신분야에서 정부는 ②의 탈을 쓰고 실제로는 ①의 행위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③과 ④의 영역은 타인의 권리(명예훼손 등), 사회윤리 및 공중도덕(음란), 국가안전(이적표현) 의 범주로 구분할 수 있다. 법원은 3가지 범주 모두에서 표현의 자유에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기보다는 이익형량의 관점을 유지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음란'과 '이적표현'의 범주에서 내려진 법원의 판례들은 시대에 부합하지 않다고 할 정도로 엄격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행정규제의 지나침을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인터넷에 대한 정부규제도 성표현물에 대한 법원의 엄격한 기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법원의 시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음란'에 관하여 법원은 체모가 드러난 나체로 마시던 우유를 몸에 흘려보내는 이승희의 나체 사진(1999)과 체모가 드러나지 않은 황색잡지 '오렌지걸'(의상이나 자세가 선정적)도 음란물이라고 하였다(1997). 심지어 고속도로에서 알몸시위를 벌인 농민에 대해 성기 노출을 이유로 공연음란죄로 처벌하기도 하였다(2000).
'이적표현'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법원은 신학철의 대형걸개그림 '모내기'가 농민으로 상징되는 피지배계급이 매판세력을 써레질하듯 몰아내면 38선을 삽으로 걷듯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뒤집었다(1998).
법원은 이른바 '공인'에 대한 언론의 비판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에 관한 일반이론을 적용하고 있는데, 적어도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은 '숨쉴 여지'를 주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최근 '음란'과 '이적표현'에 대한 사법부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지만 사법부, 특히 대법원의 기본적인 시각에 변함이 없는 상황에서 몇몇 하급심 법원에서 때로 이루어지는 전향적인 판결은 위로는 될지언정 변화를 느끼게 할 정도는 아니다. '음란'한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의 시대에 이승희 나체 사진을 음란물로 보는 법원의 태도가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표현의 자유를 논하는 것은 별 실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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