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에서 중앙행정기관까지 ― 부실 회의록 백태
얼마 전 단군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구제금융 사태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기 위한 청문회가 열렸으나, 관련 기록이 없어 흐지부지 끝난 일을 기억한다. 분명히 경제 대책을 세우는 회의를 했다던데, 회의록을 일부러 작성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자료는 있으나 공개를 꺼리는 것일까.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은 무책임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까.

최근 몇 가지 굵직한 사례들만 살펴봐도 국가적 사안에 대한 기록이 얼마나 희박하고 허술한지 알 수 있다. 의도적으로 숨기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매주 화요일 청와대에서는 대통령과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들이 모여 국무회의를 한다. 국무회의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국가의 중대한 정책들을 심의하는 국정의 최고 심의기구다. 하지만 국무회의의 속기록과 녹음 기록은 전혀 남겨지지 않는다. 이 사실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참여연대에서 그 이유를 묻자 국무회의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의 한 관계자는 "국무위원들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의견 개진을 보장하기 위하여 속기록이나 녹음 테이프는 작성하거나 관리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회의록을 작성하면 '활발한 의견 개진'을 못 하기에 대통령, 국무총리와 장관들이 속기사도 두지 않고 녹음기도 꺼버린 채 비밀 회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5일 정부는 새만금 간척 사업의 추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오전, 오후 두 차례 회의를 열었다. 이날 오전에 열린 민간위원회에서는 참석위원 16명 중 8명이 사업 재추진에 반대, 5명은 찬성, 3명이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그러나 오후에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무총리 주재 물관리정책조정위원회에서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새만금 사업 추진 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회의록도 없는 이상한 국무회의

회의록 작성은 차치하고 열려야 할 회의가 아예 열리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3월말 현재 135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공적자금으로 쏟아부어졌다. 그 가운데 1999년 6월 제일은행에 지원키로 결정된 4조2000억 원과 2000년 6월 한국투자신탁증권과 대한투자신탁증권에 지원키로 결정된 5조 원은 예금보험공사의 분과회의 한 번 열리지 않고 나갔다. 9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에 대해 금융감독위원회가 예금보험공사에 지원 요청을 한 당일이나 이튿날, 곧바로 지원 결정이 내려졌으며, 이를 위한 의사결정과정이나 절차는 생략되었다. 서면결의라는 요식 행위만 거쳤을 뿐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국가의 중요한 정책 결정 과정이 얼마나 철저하게 가려져 있는지, 공무원들이 얼마나 자기의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지기 싫어하는지 잘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회의일수록 회의록이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행정기관들의 회의 운영 실태와 그 투명성은 어떠할까?

참여연대는 올 4월 22개 중앙행정기관에 2000년 1월부터 2001년 3월까지 차관급 이상 직위자가 주재한 회의의 회의록을 정보공개청구하고, 공개된 225개 회의에 대한 '작성 성실도'와 '공개 성실도'를 평가했다.

그 결과, 행정기관들의 회의록 공개 성실도는 차이가 심해 환경부의 경우 회의록을 100% 공개한 반면 국방부, 국정원, 법무부, 외교통상부 등 4곳은 모두 비공개했다. 그러나 회의록을 공개한 기관들도 내용이 부실해 회의록 작성 실태 평가에서 1위에 오른 환경부조차도 평균 점수는 60점도 채 안 됐다. 100점 만점에서 40점 이하인 F등급을 받은 기관이 전체의 86%, 10점도 안 되는 기관이 53%라면 무엇을 뜻하겠는가. 공개 이전의 작성 단계에서 이미 "빠질 내용은 다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22개 행정기관이 공개한 225차례 회의 가운데, 녹음 기록을 남긴 것은 하나도 없고 속기록을 남긴 것도 7차례에 지나지 않았다. 회의 결과만을 간략히 정리한 것이 전체의 43%,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거나 비공개한 경우가 전체의 38%다. 행정기관들 대부분이 '발언자와 발언 내용'을 남기도록 명시한 '공공기관의기록물관리에관한법령'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또 개별법령으로 회의 개최 근거를 명시하고 있는데도 1년 이상 회의를 열지 않거나 서면 결의로 대신한 회의가 모두 22회로, 이 역시 민주적 정책결정과정을 밟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투명행정과 미래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책임

한 현직 공무원의 말. 공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3대 원칙이었다고 한다. "문서 작성은 되도록 기피하고, 작성된 문서는 되도록 파기하며, 남아 있는 문서는 최대한 공개하지 않는다". 지금은 물론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예전'이란 어느 때를 가리키는 것일까?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군사 독재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너무 많은 것을 알아서는 안 되던 그 시절인가, 아니면 사관들이 목숨을 바쳐 사초를 작성하고, 국가 기록을 유산으로 길이 남기던 시절인가.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을 유리알처럼 보여주는 상세한 회의록 작성과 그 공개는 투명한 행정의 핵심이며, 미래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러나 지금 밀실 행정과 책임 전가가 우리의 현주소다. '무기록'의 어두운 관행이 언제쯤 사라지고 충실한 기록 관리의 전통이 제자리를 되찾을 것인지는 시민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때 가늠해 볼 수 있다.
이경미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 간사
2001/08/01 00:00 2001/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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