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중립화에 힘 좀 써 주시죠
2001/2001년 08월 :
2001/08/01 00:00
소장검사 4인이 말하는 한국의 시민운동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인터뷰를 거절했다. 법무부의 한 공보관에 따르면,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굳이 『참여사회』 인터뷰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라고 했다. 혹 총선연대 재판 때문이라면 그 문제는 에둘러가겠다고 양보했지만, 그래도 대답은 노(No). 역시 대한민국 검찰은 범인(凡人)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닌 모양이다.
검찰은 대한민국 공권력의 요체라 할 수 있다. 범죄수사에서부터 재판, 형 집행에 이르기까지 형사사법절차 전반에 관여하는 그들은 언제나 거대권력의 상징으로 군림해 왔다. 실제 그들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 아래 인권침해 시비가 그치지 않았고,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한 채 검찰의 중립성 여부는 여전히 의심받고 있다.
1999년 1월 27일 대전 이종기 변호사 수임비리사건 직후 검찰 수뇌부에 직격탄을 날린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 이후 386세대 서울지검 검사 40여 명은 ‘검찰중립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5가지 검찰개혁 과제를 제시했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일선 소장검사들은 검찰개혁과 NGO활동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몇 명의 검사를 접촉해 의견을 들어보았다. 검찰 조직문화상 “익명은 없다”지만, 그래도 그들은 “실명으로 발언”하는 걸 꺼렸다.
법조인감시운동 긍정적, 그러나…
지난 7월 12일 서울지법 형사합의 23부(재판장 김용헌 부장판사)는 총선연대 지도부에게 선거법 위반혐의를 적용,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에 대해 한 검사에게 개인적인 의견을 물었다.
“500만 원, 300만 원 벌금형이 내려졌죠. 지금으로서는 위법으로 보는 게 맞죠. 그러나 이것은 법 해석의 여지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피고인들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면 그건 법정에서 다퉈봐야 할 것 같습니다.” A검사는 “이 사건은 상당히 중대하기 때문에 이의제기나 항소 등으로 다시 판단받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검사가 아닌 자연인으로서 볼 때 낙선운동은 참신했고, 통쾌했다고 털어놓았다. 대체로 시민단체가 벌이는 활동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지만, 때로는 미흡한 대목을 발견해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고.
“법조인 감시운동은 저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되겠죠. 청문회에 대비해 수사나 판결 자료를 보관한다면 법조인들의 투명한 성적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시민들의 법조인 감시가 전문적이고 실질직인 힘을 가지고 있느냐는 좀 따져봐야 할 문제인 것 같더군요.”
A검사는 검찰개혁에 대해 “외부의 간섭 없이 검사 스스로 판단해 사건을 조사할 수 있고, 청탁으로부터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대로 검사 양심에 따라 휴머니즘과 전문성을 갖고 사건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검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했다.
B검사는 시민운동이 풀뿌리민주주의를 강화시키리라는 걸 인정하지만, 시민운동진영에는 발로 뛰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명망가 위주의 시민운동을 비판했다. 그는 또한 시민운동을 제대로 하려면 전문적인 연구와 현실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필요한데도 때로는 공허하게 목청만 높여 안타까움을 준다고 말했다.
사건 처리하느라 너무 바빠 길게 얘기하기 어렵다는 그는 “그래도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운동가들에게 고생많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정치권이 너무 세요”
C검사는 시민단체가 중산층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중산층 이상을 흡수하려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정책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명분만 앞세워 밀어붙이는 방식이어서 답답하다는 것.
“의약분업은 정부가 지출해야 할 비용이 꽤 많은 정책인데, 심층적 연구 없이 밀어붙인 경우가 아닌가 싶어요. 최소 3∼4년 동안 전문가들의 깊이있는 연구로 부작용도 충분히 검토했어야 하는데…. 새로운 정책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패의 충격도 큰 것 같아요. 저는 시민단체가 제도개선 방안을 제시할 때 대충 구호만 외치는 식으로 하는 건 반대예요. 중산층은 합리적으로 설득이 되는, 깔끔한 대안을 원해요. 아직 역량이 부족하겠지만 시민운동은 정부보다 앞선 대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다듬어 다음세대라도 잘 살게 할 수 있는 긴 안목의 정책을 개발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자신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엔 자신이 없다고. 솔직히 마음 속으로는 스스로에게 “너나 잘해!”라는 핀잔을 던지고 있다며 웃었다.
참여연대의 사법감시운동에 대해서 그는 검사들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밖에서 ‘감시와 견제’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초창기 『사법감시』지에 나온 내용을 보면 우리가 너무 매도당한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반성보다 반발하는 마음이 앞서기도 했죠.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어쨌든, 저희들이 그걸 보고 진정으로 반성하고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물론 사법감시라는 말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법조인들 많습니다. 하지만 내부감시만으로는 큰 성장을 하기 어렵죠. 외부감시와 내부견제의 조화를 통해 서로 발전할 수 있어야죠. ”
검찰수사 지휘를 왜 밖에서 해?
그는 참여연대에 다음과 같은 주문도 잊지 않았다. 사법시험 합격자수 늘리라는 주장만 할 게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의 생계 문제도 고려해줬으면 한다는 것. 물론 법조인 수가 많아져야 분쟁이 생겼을 때 법률적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겠지만, 1000명 정도로 늘린다는 건 무리한 요구고, 500∼600명이 합당한 것 같다고 말한다. C검사가 던지는 검찰개혁 방안.
“사법적 판단이 제1우선 원칙으로 고려되고 나머지는 부수적이어야 해요. 그런데 정치권이 너무 세요. 정치적 사건을 수사할 때 보면 언론과 정치권이 이미 수사방향과 결론을 다 내고 있어요. 판사한테 판결을 맡기듯이 검찰독립도 반드시 필요해요. 수사지휘를 왜 밖에서 하게 하냐, 고 일선 소장검사들이 검찰총장한테 따지지만 소용없어요. 검찰 중립화를 위해서는 정치권과 NGO가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그는 시민운동가들이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사명감을 갖고 꿋꿋하게 일해 칭찬해주고 싶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주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말했다. 또 NGO는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구조를 갖추는 게 중요한데 대부분의 단체들이 그렇지 못해서 안타깝고, 시민운동가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에서 자유로워져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털어놓았다.
D검사는 “대화를 하면 오해도 풀리고 서로를 이해시키는 노력이 되기 때문에 좋지만, 검찰이 공개적인 토론에 익숙한 조직은 아닌 것 같다며 대화에 응하기가 꺼려지는 건 조직 안에서 약자일 때는 언젠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D검사가 던진 마지막 한마디.
“인생이 다 고해(苦海) 아닙니까? 언제 맥주 한잔 하면서 속내를 보여드리지요.”
검찰은 바깥 일에 관심을 갖기에는 자신에 대한 고뇌가 너무 많고 깊은 것처럼 보였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