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라리꼴라리
2001/2001년 08월 :
2001/08/01 00:00
45년 전, 초등학교 2학년, 소풍 갈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 지도자인 나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아이들은 그 소리에 열심히 발을 맞추어 걸었다. 요즈음은 어떤지 몰라도 그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들은 대개 모범생이었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45년 전 그날은 그냥 걷기에도 비식비식 땀이 나는 무지하게 더운 날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호루라기를 불면서 대열을 관리하고 지휘해야 하는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자부심과 이에 상응하는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날이었다. 지도자인 까닭에 나는 흐트러지지 않는 몸가짐을 견지하면서 품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치 사관학교 생도대장이라도 된 듯한 자세를 견지하며 걸었다. 정말 웃기는 짱구였다. 얼굴에서 흐르던 땀이 급기야 온몸으로 흘러내리고 일사병에라도 걸릴 것 같아질 때, 드디어 나는 지도자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난생 처음으로 지도자의 길이 얼마나 외롭고 험난한지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한 여학생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 무슨 일? 순간 내 가슴에 솟구치던 본능적인 책임의식이라니. 나는 벌써 품위 있고도 절도 있게 묻고 있었다. “박경옥, 너 어디 아프니?”
그런데 박경옥은 “아니” 라면서 점점 더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나의 지도력에 도전하는 박 경옥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며 전광석화처럼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이미 박경옥은 그의 얼굴을 내 얼굴 앞에 바싹 들이대면서 살짝 웃는다.
“얘, 너 땀이 너무 많이 났어. 내가 닦아줄게.”
말이 끝났을 때는 이미 경옥의 손수건이 내 얼굴과 목덜미를 닦아 내리고 있었고, 우리 반 아이들은 ‘얼라리꼴라리’를 합창하고 있었다.
“조용~, 반장을 생각하는 박경옥은 정말 착한 학생이죠. 모두 박수 쳐 주세요.”
선생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구세주의 목소리였다.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박경옥은 활짝 웃었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더 이상 지도자일 수 없는 나를 슬퍼하고 있었다. 박경옥이 나를 몰락시킬 줄은 정말 몰랐다. 적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진리를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박경옥에게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한번 더 내게 다가와서 그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 한심한 지도자여!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경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걷고 있었다. 나는 다시 호루라기를 불기 시작했지만 그 소리가 영 시원치 않았다. 우리 반 아이들도 더 이상 호루라기 소리에 발을 맞추는 것 같지 않았다. 호루라기 부는 일이 지겨워졌다. 자부심도 싫어졌고, 인내심은 더욱더 싫어졌다. 외롭고 험난한 지도자의 길을 끝내고 그냥 대열에 섞인 하나가 되고 싶었다. 박경옥 옆에 서서 걷고 싶었다. 박경옥이 또 땀을 닦아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 찼다. 어린 녀석이 쯧쯧이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박경옥이 혹시 내게 ‘이성’을 느끼게 한 첫 번째 여성? 그래서 아직도 그 일과 그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라고. 지금은 손주의 땀을 닦아주고 있을 박 경옥 할머니가 문득 그립다. 더위에 땀을 흘리며 앉아 있자니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결코 ‘아이 러브 스쿨’에 접속할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못하다. 이런 그리움 하나쯤 가지고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일 테니까.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45년 전 그날은 그냥 걷기에도 비식비식 땀이 나는 무지하게 더운 날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호루라기를 불면서 대열을 관리하고 지휘해야 하는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자부심과 이에 상응하는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날이었다. 지도자인 까닭에 나는 흐트러지지 않는 몸가짐을 견지하면서 품위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치 사관학교 생도대장이라도 된 듯한 자세를 견지하며 걸었다. 정말 웃기는 짱구였다. 얼굴에서 흐르던 땀이 급기야 온몸으로 흘러내리고 일사병에라도 걸릴 것 같아질 때, 드디어 나는 지도자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난생 처음으로 지도자의 길이 얼마나 외롭고 험난한지를 실감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한 여학생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 무슨 일? 순간 내 가슴에 솟구치던 본능적인 책임의식이라니. 나는 벌써 품위 있고도 절도 있게 묻고 있었다. “박경옥, 너 어디 아프니?”
그런데 박경옥은 “아니” 라면서 점점 더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나의 지도력에 도전하는 박 경옥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며 전광석화처럼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이미 박경옥은 그의 얼굴을 내 얼굴 앞에 바싹 들이대면서 살짝 웃는다.
“얘, 너 땀이 너무 많이 났어. 내가 닦아줄게.”
말이 끝났을 때는 이미 경옥의 손수건이 내 얼굴과 목덜미를 닦아 내리고 있었고, 우리 반 아이들은 ‘얼라리꼴라리’를 합창하고 있었다.
“조용~, 반장을 생각하는 박경옥은 정말 착한 학생이죠. 모두 박수 쳐 주세요.”
선생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구세주의 목소리였다.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박경옥은 활짝 웃었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더 이상 지도자일 수 없는 나를 슬퍼하고 있었다. 박경옥이 나를 몰락시킬 줄은 정말 몰랐다. 적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는 진리를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박경옥에게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한번 더 내게 다가와서 그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 한심한 지도자여!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경옥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걷고 있었다. 나는 다시 호루라기를 불기 시작했지만 그 소리가 영 시원치 않았다. 우리 반 아이들도 더 이상 호루라기 소리에 발을 맞추는 것 같지 않았다. 호루라기 부는 일이 지겨워졌다. 자부심도 싫어졌고, 인내심은 더욱더 싫어졌다. 외롭고 험난한 지도자의 길을 끝내고 그냥 대열에 섞인 하나가 되고 싶었다. 박경옥 옆에 서서 걷고 싶었다. 박경옥이 또 땀을 닦아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 찼다. 어린 녀석이 쯧쯧이다.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박경옥이 혹시 내게 ‘이성’을 느끼게 한 첫 번째 여성? 그래서 아직도 그 일과 그를 기억하고 있는 걸까? 라고. 지금은 손주의 땀을 닦아주고 있을 박 경옥 할머니가 문득 그립다. 더위에 땀을 흘리며 앉아 있자니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나는 결코 ‘아이 러브 스쿨’에 접속할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못하다. 이런 그리움 하나쯤 가지고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일 테니까.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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