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울대 학생이 던지는 서울대 개혁론
#1. 1995년, 고등학교 1학년생인 YJ는 대학 진학을 고민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어느 대학, 어느 과든지 골라 갈 수 있도록 성적을 먼저 올리라고 조언했다. 그는 고민을 접어두고 공부에 전념했다. 이듬해 한국의 모든 대학과 모든 학과에 합격할 정도의 성적을 받게 된 YJ는 진로 선택을 미룰 수 없어 이것저것 뒤져보기 시작했다. 평소 광고를 즐겨 보던 그는 C대 광고홍보학과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결정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신기하다’, ‘용감하다’, ‘아깝다’ 등으로 나뉘었다. 성적이 좋은데 왜 굳이 합격선이 낮은 학과를 가려하냐는 것이었다. 세칭 명문 사립대인 Y대에 들어간 선배는 “너는 결국 서울대에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YJ는 성적이 낮아서 가고 싶은 대학에 못 가는 일은 있어도 서울대에 ‘갈 수밖에 없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 명예, 사회적 특권 모두 학벌로 가능한 사회

1997년, 고3이 된 YJ는 부모님과 선생님께 자기 뜻을 밝혔다. 선생님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했고, 부모님은 “웃기는 소리”라며 일축해버렸다. 어른들이 거세게 반대라도 하면 싸울 작정이었지만 “웃기는 소리”라며 한마디로 무시당하니, 당혹스러웠다. 고집을 꺾지 않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친척들까지 나섰다. 그들은 너는 아직 세상물정을 모른다, 서울대에 가야 더 성장할 수 있다, 광고계에서 일하고 싶다면 C대 보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구슬렀다.

그는 성적을 한없이 높게만 받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말을 믿었다. 그러나 그가 맞닥뜨린 것은 원치 않는데도 서울대에 갈 수밖에 없는 ‘우울한’ 상황뿐이었다.

“내가 너라면 무조건 서울대 간다. 오만하게 다른 사람 마음에 상처주지 마.”

친구들도 어른들과 다를 게 없었다.

사실 그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학생은 아니었다. 학벌주의를 질타한 강준만 교수의 『서울대의 나라』 정도는 읽어봤고 한국사회에서 학벌이 가지는 힘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자기 뜻과 상관없이 사람을 성적순대로 차곡차곡 쌓는 방식이 역겨웠고, 자신만은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그는 서울대에 진학했다.

#2. 대학교 4학년이 된 YJ. 그는 총학생회에서 교육운동을 맡고 있다. 어느 날 YJ는 P잡지로부터 학벌사회에 관한 원고를 청탁받았다. 총학생회실에 멍하게 앉아 과거를 돌아보던 그는 법대생인 B에게 물었다.

“왜 서울대 법대에 왔나요?”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당연히 서울대에 가야 되는 줄 알았지.”

또 다른 법대생 S에게 물었다.

“출세하려고.” S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때 옆에 있던 법대생 Y가 “보통 별 생각 없이 성적이 되니까 오지, B처럼” 하고 끼어 들었다.

마지막으로 서울대에 오기 위해 삼수까지 한 법대생 K에게 물어보았다. K는 “남자라면 모름지기 서울대 법대에 가야 한다는 집안의 압력이 있었다”고 답했다.

순간 YJ는 드라마 <아들과 딸>의 귀남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법관, 그것도 서울대를 나온 법관에 대한 갈망이 아직도 이렇게 강하게 남아 있구나, 생각하면서.

B는 덧붙였다.

“돈, 명예를 쥘 수 있고, 군대문제까지 해결되는 법대에 대한 열망은, 사법고시가 자격제로 바뀌고 사회적 특권이 줄어들지 않으면 아마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거야. 마찬가지로 전사회적으로 학력에 대한 보상을 없애거나 감소시키고, 학력을 통한 개인의 지위상승이 아닌 집합적 지위상승의 기회를 만들어주지 못하면 집단 히스테리 같은 교육열 또한 해소되지 않아.”

대학간 서열화 타파 위한 대학인 연대 구축해야

#3. YJ는 다른 국립대에서 교육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서울대를 ‘서울왕립대’라 부르는 그들은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 B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문득 YJ는 그들에게 B의 어디가 좋으냐고 물었다. “서울대생이면 다들 거만하고 다른 사람을 무시할 줄 알았는데 B는 의외로 착하고 겸손하더라고요. 서울대생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사람 같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학력주의의 원인과 폐해가 개인을 넘어 사회·역사적으로 안착되어 왔음을 뚜렷이 인식하고 대학간 서열화를 타파하기 위한 대학인의 연대 구축에 힘써왔다. 그런 그들마저 편견임을 인정하면서도 서울대생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YJ는 잠시 난감해졌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이 갖는 사회적 서열은 일상적인 체험에서부터 내면화되어 있으니 어쩌겠는가. 문제는 학력·학벌주의가 가로막고 있는 연대성의 회복일 것이라고 생각을 가다듬은 그는 국립대의 연대구축을 주제로 한 회의에 다시 집중했다.

#4. YJ는 총학생회실에서 “대학 간의 서열화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대학의 평준화밖에 없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때 이곳에 놀러온 한 친구가 뚱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왜 대학을 평준화해야 되지? 지금은 고등교육이 대중화되어 있는데 소수의 인재를 고급인력으로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 필요한 건 사실 아닌가?”

YJ는 순간 흠칫했으나 이내 자신의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넌 ‘소수의 인재’들이 고등교육과정에 진입하기 위해 받은 초중등교육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을 공백으로 남겨놓고 있어. 게다가 서울대가 다른 대학과 분명한 차별성을 지닌 우수한 학교라고 과대평가하고 있어. 실제 일류대에서 학생들이 얻어 가는 건 대학간판이야. 대학이 평준화된다고 해서 고급인력 양성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아. 그리고 교육이 만인의 보편적 권리라는 고전적 관점을 되살릴 필요가 있어.”

대학간 서열화 해체의 방법 모색

YJ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B가 나섰다.

“평준화를 말하려면 대학의 전반적인 질적 하락을 막기 위한 재정확충과 분배의 문제를 빠뜨리면 안 돼. 그리고 획일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통제의 수준과 영역을 규정하는 문제도 고민해야 할 거야. 또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 평준화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은 사실이잖아.”

YJ는 실망스러웠지만 B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평준화와 함께 대학간 서열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대 개혁이 시급하다고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또 학벌을 타파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서울대 해체, 국립대 통합’의 논의를 활성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단, 서울대 개혁 문제는 그 자체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서열화 타파를 실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가진 채 말이다.

YJ는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오늘도 여전히 대학개혁운동을 하고 있다.
유진 서울대 총학생회 정책담당
2001/08/01 00:00 2001/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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