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맞은 시민참여형 정치문화
2001/2001년 08월 :
2001/08/01 00:00
생활클럽운동을 통해 본 생활자정치
일본의 생활클럽운동이 곧 생협운동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활클럽운동이 곧 가나가와 네트워크운동이라는 정치운동은 아니다. 생활클럽운동의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방식 중의 하나가 생협운동이며, 가나가와 네트워크운동인 것이다. 이 삼자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활클럽운동의 이념과 가치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생활클럽의 이념은 생활자(生活者)정치다. 이 개념은 일본의 사회운동이 1960∼70년대의 혁신운동에서 1980년대 이후 시민운동으로 넘어갔음을 알려주는 상징적 표현이다. 생활자정치의 이념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풀뿌리민주주의와 풀잎민주주의
첫 번째, 생활자/시민의 사회적 권력을 형성하여 산업 권력과 정부 권력을 상대화시키는 것이다. 생활클럽운동에서는 정치인을 주민의 생활용구(生活用具)로 정의한다. 정치인이란 생활자가 사회적 권력을 만들어내고 강화시키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생활자/시민의 사회적 권력 만들기 운동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정치 권력의 사유화를 견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권력이란 생활상의 문제와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이는 것이라는 정치권력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것이다.
생활클럽 내의 생협운동 등은 생활자의 참가와 동시에 책임이 동반될 때만이 비로소 활발해질 수 있는 운동이다. 따라서 생협운동 등의 활성화는 참가형 정치운동의 문화적 기반이자 정책적 기반이 된다. 한편, 생활클럽의 정치운동은, 생협운동과 같은 사회적 권력 만들기 운동의 참뜻을 시민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기회를 준다. 사회적 권력 만들기와 생활자 주권에 바탕을 둔 정치권력 만들기가 서로를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생활자정치의 두 번째 원리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철저한 실현이다. 가나가와현의 생활클럽 창시자인 요코다 카쓰기(橫田克己) 씨는, 일본의 시민운동을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과 ‘풀잎 민주주의 운동’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풀잎 민주주의 운동은 지식인들의 정보만으로 정치과정에 압력을 행사하는 운동이다. 예를 들어 다이옥신이 위험하다고 하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에 관해 생활자들이 논의하는 과정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의 제안과정에서 생활자들의 참여가 생략된다. 운동의 지도자들마저도 자신들의 일을 정부에 대한 문제제기로 한정하고, 그 해결은 정치인들과 관료가 해주는 것이라는 ‘청부형 정치문화’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그러한 운동은 일회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생활클럽운동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이에 반해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은 주민 스스로가 생활 속의 문제를 발견하고 정책 형성에 참여하는 운동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정책을 정치에 반영시키기 위해 주민들이 압력을 행사한다. 생활클럽운동의 조직화 원리는 참가·분권·자치·공개이다. 문제에 직면한 생활자는 문제해결을 위한 모임을 만들고, 그 운영에 스스로 참가한다. 그리고 이러한 참여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생활클럽은 결정권을 분산시켰다. 이러한 분권이 있기에, 자신들이 결정한 것은 자신들이 실행한다는 의미에서 자치와 책임을 실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참가·분권·자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원활한 양방향 의사소통을 중시한다. 참가·분권·자치·공개는 사회적 권력 만들기의 조직원리일 뿐만 아니라 생활상의 문제점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원리이기도 한 것이다.
생활클럽의 부문조직들 간의 연대는 정책의 공유에 의해 이루어진다. 도쿄 생활클럽의 창시자인 이와네 쿠니오(岩根邦雄) 씨에 따르면, 부문운동 간의 연대에서 중요한 것은 각 부문운동 조직들이 스스로 실천해온 것을 구체화시키고 이를 다시 이론화시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과정이 없으면, 연대가 있어도 일반주민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정책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각 지역의 부문운동 조직은 하나의 주제라도 좋으니, 자기 지역에서 철저하게 운동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역에서는 하나의 주제라고 할지라도, 생활클럽운동 전체로 보면 실로 다양한 운동이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대의 원리는 네트워크형 운동으로서의 생활클럽운동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있다.
생활클럽이 네트워크형 연대의 원리를 강조하게 된 데는 부분적으로 사회당과 공산당이 반면교사(反面敎師) 노릇을 했다. 이와네 씨는 좌파 정당의 민주집중제야말로 일본의 좌파정당들이 건전한 시민세력을 만들어 내는 데 실패한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민주집중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자율성, 개인과 조직 간의 자율성을 전제로 하는 연대의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시민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끌어내지 못하기 쉽다는 것이다.
도쿄 생활자네트워크의 힘
지난 6월 24일, 도쿄 도의회 선거가 있었다. 도쿄 생활클럽의 부문조직인 도쿄 생활자네트워크는 6명의 후보를 내 모두 당선시켰다. 반면 한때 제1야당이었던 사민당은 두 명의 후보밖에 내지 못한 데다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하는 참패를 당했다. 자민당은 현직 수상의 인기에 힘입은 바도 있었지만, 54명의 당선자를 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역설적이지만 생활자네트워크와 자민당의 성공에는 공통점이 있다. 생활자네트워크는 풀뿌리 시민세력을, 자민당은 풀뿌리 보수세력을 득표의 기반으로 삼았다. 생활가치관과 정치적 지향성은 다르지만 두 세력 모두 풀뿌리세력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사민당의 실패는 지지기반이 노조밖에 없다는 점, 일반주민들의 관심을 끌어낼 만한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일본의 시민운동은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민투표운동의 활성화와 최근 일련의 지사선거에서의 이변은, 새로운 문제해결방식을 원하고 있는 주민들의 변화를 보여준다. 참가형 정치문화의 부흥 속에서 생활클럽 또한 급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생활클럽이 생활자정치라는 유용한 대안을 시민들에게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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