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에서 상생으로, 역사의 완결은 이제부터다
살다보면 때로 격렬한 논쟁을 하게 되고 갈등에 빠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무시로 논쟁과 갈등의 와중에 상대방을 증오하게 된다. 그건 개개인이나 사회집단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증오가 문제인 것은 논쟁과 갈등을 발전의 계기로 이끌지 못하고, 상호파괴와 파멸로 나아가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달엔 두 권의 장편소설을 읽었다. 한민족의 큰 이야기꾼인 황석영 씨의 『손님』(창작과비평사 펴냄)과 언론개혁운동의 한 상징이기도 한 손석춘 『한겨레』 여론매체부장의 『아름다운 집』(들녘 펴냄)이 그것이다. 『손님』이 한국전쟁기의 한 국면을 통해 화해와 상생의 역사적 적실성과 이를 위한 우리의 과제를 일깨워주고 있다면, 『아름다운 집』은 한 사회주의자의 ‘실패한 삶’(그릇된 삶이 아니다)을 통해 ‘진짜 조선인의 전형’을 그리려 한다.

문학과 언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두 대가의 작품을 읽으며, 나는 ‘아마겟돈’을 연상케 하는 최근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사회적 대립을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선 왜 중요한 일일수록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한가. 논쟁의 상대방을 시도 때도 없이 ‘빨갱이’, ‘악령’, ‘홍위병’으로 몰아붙이는 무지막지함의 밑둥치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언론개혁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한나라당과 『조선』, 『동아』, 『중앙』의 주장대로 ‘언론탄압’으로 받아들이는 이가 절반을 넘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맑스주의와 기독교 갈등, 그리고 ‘우리끼리’의 살육

『손님』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신천 양민학살 기념관’을 지어 한국전쟁기 ‘미제의 만행’을 되풀이 강조하고 있는 우리 현대사의 한 국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에게 ‘신천학살’은 미제국주의자의 조선인 학살이라기보다는 1950년 미군의 인천상륙 뒤 45일 동안 벌어진 ‘우리끼리’의 살육이었다.

그 이면에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로 천대받으며 일만 해야 했던 빈농과 머슴, 그리고 이들을 부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부농이나 양반과의 신분과 계급 갈등이 놓여 있었다. 한국전쟁은 그 내연하던 갈등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더 큰 비극은 갈등을 이성적으로 조절하지 못한 민족의 무모함에 있다. 불행하게도 살육은 맑스주의와 기독교(작가는 이 둘을 ‘손님’에 비유했다. 주인을 잡아먹은 손님 말이다)의 외양을 빌려 진행됐다. 그걸 소설의 주요인물인 류요한 같은 부르주아 기독교도는 ‘십자군과 사탄의 세력’간의 대결로 묘사했다.

그리하여 요한과 상호네들은 일제가 만들어놓은 방공호에 마을 주민 수백 명을 몰아넣고 휘발유를 부어 태워 죽이고, 한 식구나 다름없던 마을머슴 이찌로 아저씨(물론 그는 해방 이후 공산주의자가 됐다)의 코를 철사로 꿰어 질질 끌고 다니다 나무에 전화줄로 목을 매어놓고 복날 개 패듯이 때려 죽였다. 두더지 삼촌(그 또한 해방 이후 공산주의자가 됐다)은 워낙 착한 탓에 총 맞아 죽었으니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상호는 같은 십자군이었던 요한의 누이들 가족을 도륙하고, 요한은 그 복수로 상호의 애인 가족을 살육한다.

먼 타향 미국 뉴욕에서 외롭게 죽은 뒤, 동생 류요섭 목사의 고향 방문길에 넋이 되어 동행한 요한은 요섭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엇 땜에 그런 몹쓸 짓을 저질렀어요?”

“그냥… 나중에 다 알게 될 거다.”

“상호 형은 형님의 오랜 동무 아니었어요?”

“기랬디. 그 새낀 나보다두 더 많이 해치워서.”

“둘은 같은 편이잖아요.”

“야야, 그 얘긴 관두라. 우린 아무 편두 아니야.”

그리고 평생 가슴에 담아온 뒤늦은 깨달음을 고백한다.

“나는 그가 젊은 날의 ‘욱’ 하는 감정 때문에 누이들을 쏘았다는 걸 잘 안다. 우리가 적이라고 정하여 살해한 행동은 바로 그 비슷한 일들이었다. 당에 들거나 직맹에 들거나 어쨌든 핑계거리만 있으면 죽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까지도 증오했다.”

그러나 그 잔혹했던 살육은 한국전쟁기의 미친 짓에만 머물지는 않았다는 게 역사의 비극이다. 모질고 질긴 목숨 탓에 신천에서 살아남아 후에 고향을 찾아온 조카 요섭을 맞이한 소메 삼촌은 이렇게 말한다.

“야소교나 사회주의를 신학문이라고 받아 배운 지 한 세대도 못 되어 서로가 열심당만 되어 있었지, 예전부터 살아오던 사람살이의 일은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사램이 어드러케 노상 미체 있을 수야 잇갔나. 세월이 가문 제각기 혼자가 되구 늙구 동무덜두 사라디구 세상두 달라제. 아무두 기억얼 하디 않갔디만 맘속 깊언 데선 알 게라. 저이 태가 묻힌 땅얼 피로 물들이구 꿈에두 다시넌 돌아갈 수 없넌 곳으루 맹글구 말아서. 한데 기거이 오십년 세월으 게우 시작에 지나디 않다니.”

작가는 “한반도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들을 이 한판 굿으로 잠재우고 화해와 상생의 새 세기를 시작하자”는 뜻에서 소설을 ‘황해도 진지노귀굿’(지노귀굿은 망자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전국적인 형식의 넋굿으로, 진오귀 오구 지노귀 등으로 불린다) 열두 마당을 기본얼개로 하여 써내려 갔다. 내용과 형식을 맞물려 돌아가게 하는 이 선택의 적실함은 전문가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직접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아름답고 순결한 민중의 사회를 꿈꾸며

증오를 상생으로 바꾸기 위한 『아름다운 집』의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소설은 일제 말기부터 조선공산당원으로 민족해방투쟁에 나선 사회주의 지식인 이진선(‘이이가 진짜 조선 사람’의 약자인 듯 하다)을 주인공으로 한다. 1938년 4월 1일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의 평당원으로 1998년 10월 10일 총기 자살로 생을 마칠 때까지 그의 내면 풍경과 고뇌를 담은 일기가 소설의 뼈대이자 살이다.

조선공산당에 자기 삶의 뿌리를 두고 있는 이진선에게 북조선에서의 반세기 삶은, 조선노동당의 유일사상 방침이 “공화국 모든 인민의 삶을 화석화”하는 “당의 퇴보요, 조선공산주의운동의 명백한 후퇴”라는 아픈 인식만을 남겨주었다(1968년 1월 3일).

그러나 그는 1950년 9월 20일 미군의 평양 폭격으로, 태어난 지 다섯 해 만에 숨을 거둔 아들 서돌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잘 살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거”라고 말했던, 사회주의 혁명의 꿈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접지 않는다. 대신 ‘아직 오지 않은 동지’에게 피맺힌 당부를 건넨다. “아름답고 순결한 꿈은 언제나 민중의 몫이었습니다… 온전한 사회주의 국가는 아직 지상에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사회주의를 지상에 내오는 것, 바로 그것이 당신의 과제입니다…” 라고.

여기서 그가 꿈꾸는 사회주의란, 이진선의 일기를 빌리면 “니체와 맑스의 조화 또는 통합, 새로운 사회, 새로운 사람을 위하여” 필요한 것이고, 완전한 사상의 자유를 통해 전진하는 사회이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남도 북도 아닌, 그렇다고 최인훈의 『광장』처럼 ‘제3지대’로의 이탈도 아닌, ‘아직 오지 않은 역사’를 호명하는 그 어딘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남은 궁금증 하나, 작가와 주인공은 얼마나 같고 다를까).
이제훈 『한겨레』기자
2001/08/01 00:00 2001/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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