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막으면 우린 다 죽는 당께
2001/2001년 07월 :
2001/07/01 00:00
르포 ·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생존권 박탈 위기 놓인 군산 내초도 사람들
단비가 내리고 있었다. 온 나라를 시름에 잠기게 했던 90년만의 큰 가뭄이 해갈되려나…. 한동안 애절하게 기다렸던 귀한 손님, 빗방울이 전국을 촉촉이 적시던 지난 6월 13일 아침, 군산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군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승용차로 15분. 널따란 지평선 위에 살풍경한 공장들이 성냥갑처럼 줄지어 있다. 입이도, 가래도, 오식도, 내초도…. 이곳은 1970년대 군산 외항건설과 군장(군산-장항)국가공단 조성을 위해 매립된 땅이라고 한다.
군장국가공단 내 대우자동차공장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내초마을'이라는 작은 나무팻말이 보인다. 행정구역상 전북 군산시 내초도동. 이곳은 군산에서 비응도-야미도-신시도-가력도-부안까지 33km 방조제를 건설해 농지를 확보하겠다는 새만금간척사업지구의 북단에 위치한 어촌마을이다. 현재 이곳엔 81가구 305명의 어민들이 살고 있다. 전형적인 어촌부락으로 고씨 문씨 들이 모여 산다는 씨족마을. 1970년대 섬 부근이 매립되면서 김씨 이씨 박씨가 많이 이주해왔지만, 여전히 내초마을의 터줏대감은 문씨 고씨 들이다.
"갈고리로 바다만 뜯어먹고 살았는디…"
왼쪽 군장산업기지, 오른쪽 쓰레기매립장…. 초록표지판이 내려다보이는 내초도는 예전에 섬마을이었다는 것을 방증하듯 그 근방에서 가장 도도록한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다.
"우리 좀 도와줘유. 여긴 농사도 뭣도 암껏도 못하는 데여. 평생 바다만 보고 살았당께. 뭐 헐 줄 아능 게 있어야제. 갯벌에 나가서 갈고리로 바다만 뜯어먹고 살았는디 이제 죽으란 말이여? 디웅 잡고, 맛살 잡고, 가무락에 생합(백합), 꽃게… 이것덜 잡아서 자식들 가르치고 먹고살았는디 앞으로 뭐 먹고사는가 막막혀. 진짜 막막하당께."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고봉자 씨(49세)의 절규다. 그 곁에 앉아 있던 내초도 부녀회장 이성숙 씨(39세)는 새만금간척사업 결정을 강행하는 정부를 원망하는 낯빛이 역력했다. 울분이 터지는지 그는 각혈하듯 불만을 쏟아냈다.
"기자님, 내가 솔찍허니 말할팅께 청와대에 쫌 일러주쑈. 내가 하도 폭폭해서 그려. 새만금 방조제로 바다를 막는다는 건 정부가 '내초도 너들 다 뒤져 버려라' 그런 거 아뇨? 1년만 꼬챙이질 해도 980만 원은 번 당께. 갈고리보상으로 일인당 980만 원 줬응께 잔소리말고 있어라? 음마, 애들한테 사탕 주는 거여, 시방?"
두 여성은 정부가 내초도 주민들을 버렸다며 서글퍼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러 문제가 내초도에 겹쳐 있기 때문. 내초도에서 1.8㎞ 거리에는 군산시 쓰레기매립장이 있다. 1.5㎞ 거리 안쪽에는 건축물중간처리업소, 그 옆엔 냉동공장 초원냉장, 3㎞ 거리엔 지정폐기물처리장이 있다. 마을 주민들은 너나없이 호소했다.
"새벽이면 냄새 때문에 아주 죽어, 죽어. 메스꺼워 미친 당께. 애들은 피부병 땀시 병원 댕기고, 어른들도 한여름엔 다들 긁적거리고 댕겨. 오죽 폭폭하면 시청에 다 쫓아갔을라구. 그래도 눈 하나 깜짝 안해. 여가 그런 동네요." 이씨의 쓴소리다.
쓰레기매립장에 파견 나와 있는 군산시 청소정책과 이수진 계장(46세)은 "작년 7월 내린 호우로 매립장에 찬 물이 배수구를 빠져나가지 못했고, 그래서 악취가 심한 걸로 생각됩니다. 시공때 홍수 등의 재난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내초도 주민들은 쓰레기매립장의 악취는 기본이고, 맑은 날에는 먼지 때문에 더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건축물중간처리업소 때문. 하루에 불어오는 먼지바람으로 목이 칼칼할 정도라고. 척박한 땅, 내초도. 이곳을 군산시의 한 관계자는 기형화 된 택지라고 부른다. 마을 인근에 환경유해시설이 밀집해 있고 도저히 인간다운 삶을 영유하기 어렵기 때문. 오귀일 군산시 청소정책 과장에 따르면 군장국가공단을 세울 때 내초도와 오식도는 집단이주지역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초도 주민들이 극렬히 반대해 오식도 주민들은 떠나고, 내초도 주민은 남았다는 것. 그는 "이주하는 것보다 남아 있는 게 주민들에게 더 큰 이익이라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냉소했지만 내초도 사람들은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었다.
금 보석을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바다
정오가 되자 마을사람들은 노랗고 긴 장화를 꺼내 신고, 우비를 입었다. 남자들은 모자를 눌러쓰고, 아낙은 수건으로 머리와 목, 입을 감쌌다. 모두들 고무장갑을 뒤집어 끼고, 한 손엔 바구니, 다른 손엔 거랭이(꼬챙이처럼 생긴 조개 잡는 기구)나 갈고리를 들고 딸딸이를 탄다.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경운기를 타고 엉덩이가 팡팡 튀도록 고르지 않은 바닷길을 향해 30여 분….
경운기에서 내린 내초도 사람들은 저마다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곤 긴 철사를 갯바닥에 쑤욱 넣어 맛을 잡는다. 손놀림이 빠른 전문가급은 하루 30kg, 아마추어들은 20kg 정도 잡는다. 요즘 거래되는 맛의 가격은 1kg당 1700원. 중간상인을 통해 식탁에 오를 때는 맛이 1kg당 4000원에 거래된다고. 이 고장 특산물이기도 한 맛은 내초도 앞바다에 널려 있다. 사시사철 바다에만 나가면 칠순노인도 하루 3만 원 벌이는 할 수 있을 정도.
"아, 벌어야 먹고 살제. 이거 캐서 손녀딸 학비도 대고, 내 용돈도 쓰고. 여가 금밭이여. 열아홉에 시집 와 이날 이때까정 바다 일을 하네. 꼬부랑 할머니 다 되았어. 깔깔깔. 나랏일 보는 양반들이 여글 막는다고 하데? 그럼 이제 큰일이여. 뭘 먹고 살랑가. 대통령한티 말 좀 혀. 이 작은 마을 사람들 먹고살게 이 바다 좀 그냥 내두라고.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들 워디 가서 뭐 먹고살라고 바다를 막는가? 나는 참 슬프네." 임매월 할머니(70세)는 직장 없는 아들과 며느리, 손녀딸과 연명하려면 그나마 바다가 있어야 한다며 더욱 바쁘게 철사를 바다에 넣고 맛을 감아 올린다.
바닷바람과 정적만 감도는 가운데 내초도 주민들은 고개 한번 들지 않고 일을 했다. 곁에 다가가 말붙이는 것조차 실례될 정도로 그들은 성실히 일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바다를 막으면 우린 다 죽는다!" 대부분 40∼50대에다 90% 이상이 바다에 생업을 걸고 살기 때문인지 그들의 절규는 더 큰 울림을 만든다. 이처럼 바다는 내초도 주민들의 생존권과 깊숙이 관련돼 있다. 그러나 군산시는 생존권을 박탈하지 말라는 그들의 목소리에 별로 귀기울이지 않는 눈치다.
오 과장은 "10년 전 즈음 군장국가공단 설립을 계기로 양식업 하는 사람부터 맨손어업자들까지 다 보상을 받아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심지어 그는 국가가 '초법적 방법'을 동원해 보상 못 받을 사람까지 맨손어업이라는 명목으로 보상을 해준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덧붙였다. 따라서 마을주민들이 새만금간척사업으로 바다를 막게 되면 생계에 위협당하므로 적절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억측이고, 이중보상이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말했다.
자연통장을 빼앗지 말라
당시 내초도 주민들 중 일부는 맨손어업이란 명목으로 980만 원의 돈을 지급 받았다. 그러나 그 돈은 이씨의 전언처럼 1년치 품삯도 안 되는 돈이다. 만일 그때 새만금간척사업으로 바다가 막히게 된다고 귀띔해주었더라면 그들은 절대로 도장 찍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형태로 막는다는 걸 알았으면 우린 죽기살기로 싸웠을 거여. 그땐 바다 전부를 막는다는 말은 아예 허질 않였어. 아직까지는 바다에 나가면 생활소득 있으니까 참지만, 바다가 완전히 막힌다 그러면 우리도 가만히 안 있을 거여. 그리고 우린 뭐 첨단산업단지가 들어온다고…. 그런데 논을 만든다미? 농협창고에 가면 나락이 보관할 디가 없대여. 좋은 논 3만 원이면 사는 디, 몇조를 들여 만든 7만 원짜리 논을 누가 사? 누가 그 땅 사서 농사를 져? 이런 넉 빠진 놈들. 하여간 정치한다는 놈들이 머리가 썩었어. 안 그려?"
내초도 이장 문영호 씨(65세)의 말이다. 앞으로 1∼2년 내에 바다가 막혀 내초도 사람들이 오갈 곳 없어지면 그때는 청와대로 도청 앞으로 쫓아다니면서 싸울 거라고. 부락민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첨언했다. 수억만금의 금보석 준대도 바다와는 바꿀 수 없다는 게 내초도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바다는 평생 통장이여. 금보석이야 팔아서 쓰면 그만이제. 바다는 영원히 그대로랑게. 나도 바다 뜯어먹고 살고, 내 새끼도 뜯어먹고, 내 손주도 헐 것이 없으면 여서 생합이랑 맛이랑 잡아먹고 살면 된당께. 이걸 왜 없셔. 배운 것 없고, 헐 일이라곤 바다일뿐인 사람도 좀 살아야제." 평생 내초도에서 동죽 바지락 잡으며 살아온 문일돔 씨(64세)가 던진 말이다.
내초도를 바라보는 군산지역 시민단체들의 시선도 안타깝다. 군산참여자치시민연대 권태홍 사무처장은 새만금간척사업 이후 파괴당할 내초도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함께 싸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평생 어촌마을에서 조개 잡던 사람들에게 입막음용으로 980만 원 던져주고 이제 도시로 나와 살라고 하는 게 오늘의 현실입니다. 10년 전 쥐어준 돈으로 지금 어디에 나가 방 한 칸 얻을 수 있습니까? 이건 그들에게 당신들은 이제 그만 죽으라는 말밖에 안 됩니다."
여기에는 지역언론도 한몫했다.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한 어민들의 간절한 이야기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초도 온누리교회 임춘희 목사는 "지역언론은 이 문제와 관련해 한번도 지역어민들의 입장을 취재하러 한번도 오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군산사람들도 이 지역 어민들의 인권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으로 황폐해지고 있는지 별 관심을 갖지 않죠."라고 말했다.
정부는 5월 25일 새만금간척사업을 순차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의 길이로 방조제를 만들어 땅을 개간한다는 이 사업. 이를 결정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의 입장이 빠져 있다. 바로 그 바다를 일터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내초도뿐 아니라 개화도 등 군산에서 부안까지 이어지는 해안가 마을 주민들은 이 사업에 대해 별로 찬성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바다는 목줄과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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