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은 어디로?
2001/2001년 07월 :
2001/07/01 00:00
인사동에 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거의 20년 전으로 올라간다. 안국동 쪽 입구 근처에, 그러니까 안국동 네거리에서 오자면 통문관에 이르기 조금 전에 작은 서점이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여름이었던가, 그 서점에서 친구와 김수영 전집 중의 마지막 권을 샀다. 수영에 관한 평론 모음집인 그 책은 아직도 내 책꽂이에서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나이를 먹고 있다. 그러나 인사동은 어떤가?
1999년 1월부터 인사동에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인사동길 역사·문화탐방로 조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공사의 목적은 ‘서울의 대표적 전통문화 거리’로서 인사동을 지키고 개발하는 것이었다. 36억 원이 넘는 큰 공사비가 든 이 공사는 원래 예정했던 공기를 조금 더 넘겨 2000년 10월에 끝났다. 잘 알다시피 이 공사로 인사동 길은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 공사는 과연 성공을 거두었는가?
종로 쪽에서 인사동으로 가는 길은 거의 늘 수많은 인파로 붐빈다. 안국동 네거리에서 들어가는 길은 종로 쪽만큼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안국동 쪽 입구에는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고, 종로 쪽보다 아늑한 길의 양편에는 잘 자란 은행나무들이 늘어서 있기도 하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을 늘 다니는 길이지만, 일요일 한낮에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길이라도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는 법이다. 인사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일요일 한낮의 인사동은 평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후와는 어딘지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사동을 찾는 시간이 바뀌더라도 그 느낌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인사동 길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면서 길 양쪽에 늘어놓은 돌덩어리들이 그것이다. 이 돌덩어리들은 누구인가?
전통문화를 느낀다?
처음에 이 돌덩어리들을 보았을 때는 너무나 황당했다. 익숙해지면 괜찮아지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황당함이 불쾌함으로 바뀌어 갈 뿐이다. 인사동 길을 이렇게 뜯어고친 성형술자는 건축가 김진애 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돌덩어리들은 여러 가지 포석의 산물이다. 그러니 괜히 맘에 안 든다고 함부로 욕하고 화내서는 곤란하리라. 그렇게 하는 것은 저 『타임』지에도 소개된 유명한 건축가 김진애 씨를 바보로 여기는 것일 테니 말이다.
김진애 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 돌덩어리들은 차도와 인도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인사동 길이 보행자 전용도로로 바뀌면 그 즉시 치울 계획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김진애 씨의 설명을 도무지 수긍할 수 없다. 그런 단순한 목적을 위해 그렇게 큰 돌덩어리들을 113개나 갖다 놓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듣자하니 그 돌덩어리들은 모두 정으로 세밀하게 다듬은 것이라 값도 40, 50만 원을 호가한다던데,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비싼 돌덩어리들을 길가에 주욱 늘어놓는단 말인가? 더욱이 그 큰 돌덩어리들은 인사동 길의 미관을 완전히 망쳐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통행에도 큰 장애물이 되고 있잖은가? 불법주차나 노점상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지만, 불법주차와 노점상은 오늘도 여전하다.
인사동의 돌덩어리들은 미래의 어느 날이 아니라 오늘 당장 싸그리 없어져야 마땅하다. 김진애 씨가 이렇게 돌덩어리들을 갖다 놓은 것은 그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그가 다른 사람들을 바보로 여기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돌덩어리들은 모두 네 가지 종류라고 한다. 돌방석, 물확걸상, 물확화분 등 그 이름도 희한하다. 단순히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의자와 화분의 용도를 겸한 다목적의 고안물이었던 것이다. 겨울엔 추워서 어떻게 앉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게 주인들이 방석을 내다 놓을 것이라고 답한다. 재털이나 쓰레기통으로 사용되지는 않겠느냐는 질문엔 역시 가게 주인들이 화분으로 잘 다듬을 것이라고 답한다. 인사동 길을 유심히 다녀본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아니 꽤 잘못되었다는 걸 아마도 눈치챘을 것이다. 돌덩어리들을 당장 없애야 한다.
내가 보기에 ‘김진애식 인사동 뜯어고치기’는 실패작이다. 돌덩어리들 때문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라는 인사동의 정체성에 있다. 만일 인사동이 정말로 그런 거리라면, ‘뜯어고치기’ 자체가 잘못이라고 해야 한다. 어떻게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를 확 뜯어고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고증 절차 같은 것도 없이 한 건축가가 맘대로 확 뜯어고친 것으로 봐서 인사동은 결코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라는 인사동의 정체성은 아마도 한옥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인사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한옥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안국동 네거리에서 인사동으로 들어서서 인사동 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다 보면 길 양쪽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4, 6층 정도의 양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반면에, 왼쪽으로는 간판 위로 기와가 조금씩 보이는 낡은 단층 한옥들이 늘어서 있다. 인사동의 과거와 미래가 마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한옥들은 결국 모두 사라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대부분의 한옥들은 너무나 초라한 몰골로 겨우 서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인사동의 한옥들은 대부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온돌을 놓고 기와지붕을 얹으면 한옥이고, 그런 집들이 많이 있으면 ‘전통문화 거리’인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애초에 발상부터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옥은 온돌과 기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 대해 열려 있는 주거형태로서 한옥에는 반드시 마당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마당 없는 한옥은 거짓이다. 인사동의 한옥은 태반이 이런 거짓 한옥이다. 대부분 식당으로 사용되는 이런 한옥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토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밖에서 햇살이 맑고 환하게 비치며 우리를 유혹해도, 아무리 밖에서 가랑비가 영화처럼 예쁘게 내려도, 이 ‘토굴’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그저 부어라 마셔라 지져라 먹어라 할 뿐이다.
세련된 검은색 건물인 가나아트센터 5층에는 테라스가 있다. 이 건물은 인사동에서 드물게 일반인에게 열려 있는 곳이고, 또 이 테라스에서는 적어도 인사동의 동남북을 잘 살펴볼 수 있다. 내가 이 건물을 찾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이 테라스 때문이다. 여기서 보면, 인사동의 한옥들이란 것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한옥지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뜬금없이 솟아오른 양식 건물들의 침입을 받고 있었다. 길가는 이미 모두 양식 건물들로 바뀐 지 오래이며, 한옥지구 자체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건물의 크기는 건물주의 힘의 세기를 반영한다. 이런 곳에 마구잡이로 들어선 건물일수록 그렇다. 일반인이 지은 건물은 2, 3층의 작은 건물이지만, 대기업이 지은 건물은 공룡처럼 거대하다. 아직도 적지 않은 한옥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지붕에 검은색 천막을 뒤집어 쓴 볼품없는 꼴들이다. 참으로 한심스럽다.
인사동을 정말 ‘전통문화 지구’로 만들고자 한다면, 형편없이 유지되고 있는 한옥들부터 살려내야 한다. 검은색 천막을 뒤집어쓰고 마당을 없애고 ‘토굴’로 변한 채,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악다구니의 공간으로나 이용되는 한옥들을 그대로 두고, 인사동 길이 어떻게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지구’가 될 수 있겠는가? 개발의 광풍으로부터 한옥들을 지켜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진짜 한옥다운 풍모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나아트센터의 테라스에서 보면 한옥의 꼴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집은 두 채가 있을 뿐이다. ‘경인미술관’과 ‘영빈회관’이 그것이다. 이 두 집의 넓은 마당은 작은 집들이 정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빽빽이 들어서 있는 인사동에서 공간적 여유를 느끼고 삶을 호흡할 수 있는 귀중한 곳이다. 경인미술관도 이제는 예전과 같은 호젓함을 많이 잃었고, 영빈회관은 얼마 전에 불이 나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운명이 되었지만.
집, 꽃들, 골목길, 사람 살리는 인사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사동의 생명은 골목길에 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는 맛이야말로 인사동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한옥들이 웅크리고 어깨를 맞붙이고 있는 사이로 난 골목길은 복잡하지만 정겹기도 하다. 한옥과 골목길은 뗄 수 없는 사이다. 그 둘은 갑자기 난폭하게 사라져 버린 시대, 일제와 독재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 시대를 상징한다. 인사동은 그런 시대를 걷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한옥이 없어지고 망가지는 것과 함께 골목길도 없어지고 망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골목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어서 인사동이 좋다고 한다. 자못 낭만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낭만적인 골목이 인사동엔 많지 않다. 아니 사실은 거의 없다. 인사동의 골목길은 시멘트를 처발라 놓은 길이거나 못생긴 보도블럭을 대충 깔아놓은 길이다. 둘 다 영 볼품없기는 마찬가지지만, 더 나쁜 것은 보도블럭을 깔아놓은 경우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겠지만, 낡은 보도블럭은 때론 함정으로 변한다. 밟는 순간 시커먼 구정물이 찍 튀어오르는 것이다.
인사동의 골목길은 대체로 음식점 골목길이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밤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휘황하게 빛나는 커다란 간판들을 그 좁은 골목길 밖에 아예 늘어놓고 있다. 좁은 골목길 양쪽에 어지럽게 서 있는 간판들은 보기에 영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길을 영 성가시게 한다. 가게 앞엔 음식 찌꺼기로 가득 찬, 국물이 새는 쓰레기 봉투가 나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선을 돌리고 코를 막은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수밖에 없다. 낡고 제멋대로 생긴 지붕들 사이로 엿보이는 초라한 하늘은 난마처럼 뒤엉킨 전깃줄로 넝마처럼 찢겨져 버렸다.
승동교회는 얼마 전에 서울시로부터 시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이다. 3·1운동의 사적지이기도 한 오래된 기품있는 건물이다. 이 교회의 담을 따라 YMCA 쪽으로 넘어가는 골목길이 있다. 여기도 인사동의 다른 음식점 골목길과 마찬가지로 초라하고 지저분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 고아한 근대 건축물인 승동교회가 군부대 혹은 교도소 건물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높다랗게 쌓아 놓은 낡은 블럭담과 그 위에 둘러친 날카로운 가시철조망을 따라 걷노라면, 이곳이 승동교회의 뒷골목이라는 생각 따위는 전혀 들지 않는다.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가?
인사동의 여기저기를 걷다 보면, 이곳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라는 서울시의 선전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한옥이 많다고 해도 정말 한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으며, 이곳의 전체 경관을 지배하는 것은 이미 한옥이 아니라 크고 작은 양식 건물들이다. 골목길은 한국의 도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그 수많은 ‘먹자 골목’들과 다른 것이 전혀 없다. 이런 점에서 인사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라는 것인가?
김진애 씨는 인사동 길의 입구에 ‘전통적인 상징물’을 세우는 것으로 이곳이 ‘전통문화 거리’라는 사실을 알리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낯선’ 기둥들을 세운다고 해서 인사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가 되는 것일까? 서울시가 ‘전통문화’를 주제로 인사동의 ‘도시 마케팅’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 인사동의 여기저기에서는 오히려 전통문화가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었다. 음식만 보더라도 맥도날드며 하까다 우동이 인사동의 길목에 자리잡았고, 골목 곳곳에는 심지어 이태리 요리점들도 들어섰다.
표구상이나 고서화점들이 많이 있어서 인사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사동에 가장 많은 것은 음식점이고, 일반적인 문화시설로 가장 많은 것은 주로 서양화를 다루는 화랑들이다. 그러니 표구상이나 고서화점들을 이유로 인사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라고 할 수는 없다. 도시의 변화와 발전에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정책당국에서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한 거리의 정체성을 정하고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사동은 복합문화의 거리일 뿐
시대의 흐름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 ‘전통문화’라면, 그것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다카키 마사오) 이래로 이 나라에서 ‘전통문화’를 지킨다는 건 ‘인간문화재’가 되든가 아니면 ‘미친놈’이 되는 게 아니었던가? 정부가 나서서 ‘전통문화’ 운운할 때는 실제로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상품화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잿밥에 눈먼 방식으로는 결코 ‘전통문화’를 되살릴 수 없다. 기껏해야 싸구려 상품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인사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서 이곳은 전통의 향취가 아직은 다른 상업지구보다 조금 더 남아 있는 ‘복합문화 거리’일 뿐이다. 또 앞으로도 인사동을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로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전통문화 거리’ 운운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안국동에서 종로로 이어지는 그 길지 않은 길조차 ‘전통문화 거리’다움을 거의 느끼기 어려운 꼴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문화 거리’ 운운하는 것은 대놓고 거짓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인사동은 참 많이 변했다. 앞으로도 많이 변할 것이다. 김진애 씨는 이제 골목길을 왕창 뜯어고칠 차례라고 벼르고 있지는 않은지. 인사동의 상업적 가치가 한껏 커져있는 상태이니 변화의 바람은 앞으로도 상당히 거셀 것이다. 그러나 이왕 변할 거라면 얼치기 ‘전통문화 거리’ 따위가 아니라 그냥 ‘문화거리’라도 좋으니 삶의 여유와 멋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낡은 만큼 삶을 돌이켜볼 수 있게 해주는 현명한 건물들, 음식 썩는 냄새가 아니라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골목길, 하늘을 갈갈이 찢어 버리고 가끔 누전사고도 일으키는 어지러운 전깃줄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커다란 간판이 아니라 저절로 눈길이 가는 작지만 개성적인 간판, 보기에도 답답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나무로 만든 그렇게 길지 않은 의자, 그리고 앉거나 서거나 걷거나 뛰거나 먹거나 마시거나 싸우거나 말하거나 일하거나 노는 사람들.
1999년 1월부터 인사동에서는 대대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인사동길 역사·문화탐방로 조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공사의 목적은 ‘서울의 대표적 전통문화 거리’로서 인사동을 지키고 개발하는 것이었다. 36억 원이 넘는 큰 공사비가 든 이 공사는 원래 예정했던 공기를 조금 더 넘겨 2000년 10월에 끝났다. 잘 알다시피 이 공사로 인사동 길은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 공사는 과연 성공을 거두었는가?
종로 쪽에서 인사동으로 가는 길은 거의 늘 수많은 인파로 붐빈다. 안국동 네거리에서 들어가는 길은 종로 쪽만큼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안국동 쪽 입구에는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고, 종로 쪽보다 아늑한 길의 양편에는 잘 자란 은행나무들이 늘어서 있기도 하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을 늘 다니는 길이지만, 일요일 한낮에 다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같은 길이라도 시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는 법이다. 인사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일요일 한낮의 인사동은 평일 저녁이나 토요일 오후와는 어딘지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아무리 인사동을 찾는 시간이 바뀌더라도 그 느낌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인사동 길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면서 길 양쪽에 늘어놓은 돌덩어리들이 그것이다. 이 돌덩어리들은 누구인가?
전통문화를 느낀다?
처음에 이 돌덩어리들을 보았을 때는 너무나 황당했다. 익숙해지면 괜찮아지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도무지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황당함이 불쾌함으로 바뀌어 갈 뿐이다. 인사동 길을 이렇게 뜯어고친 성형술자는 건축가 김진애 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돌덩어리들은 여러 가지 포석의 산물이다. 그러니 괜히 맘에 안 든다고 함부로 욕하고 화내서는 곤란하리라. 그렇게 하는 것은 저 『타임』지에도 소개된 유명한 건축가 김진애 씨를 바보로 여기는 것일 테니 말이다.
김진애 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 돌덩어리들은 차도와 인도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인사동 길이 보행자 전용도로로 바뀌면 그 즉시 치울 계획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김진애 씨의 설명을 도무지 수긍할 수 없다. 그런 단순한 목적을 위해 그렇게 큰 돌덩어리들을 113개나 갖다 놓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듣자하니 그 돌덩어리들은 모두 정으로 세밀하게 다듬은 것이라 값도 40, 50만 원을 호가한다던데,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비싼 돌덩어리들을 길가에 주욱 늘어놓는단 말인가? 더욱이 그 큰 돌덩어리들은 인사동 길의 미관을 완전히 망쳐놓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통행에도 큰 장애물이 되고 있잖은가? 불법주차나 노점상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지만, 불법주차와 노점상은 오늘도 여전하다.
인사동의 돌덩어리들은 미래의 어느 날이 아니라 오늘 당장 싸그리 없어져야 마땅하다. 김진애 씨가 이렇게 돌덩어리들을 갖다 놓은 것은 그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그가 다른 사람들을 바보로 여기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돌덩어리들은 모두 네 가지 종류라고 한다. 돌방석, 물확걸상, 물확화분 등 그 이름도 희한하다. 단순히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의자와 화분의 용도를 겸한 다목적의 고안물이었던 것이다. 겨울엔 추워서 어떻게 앉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게 주인들이 방석을 내다 놓을 것이라고 답한다. 재털이나 쓰레기통으로 사용되지는 않겠느냐는 질문엔 역시 가게 주인들이 화분으로 잘 다듬을 것이라고 답한다. 인사동 길을 유심히 다녀본 사람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아니 꽤 잘못되었다는 걸 아마도 눈치챘을 것이다. 돌덩어리들을 당장 없애야 한다.
내가 보기에 ‘김진애식 인사동 뜯어고치기’는 실패작이다. 돌덩어리들 때문만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른바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라는 인사동의 정체성에 있다. 만일 인사동이 정말로 그런 거리라면, ‘뜯어고치기’ 자체가 잘못이라고 해야 한다. 어떻게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를 확 뜯어고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고증 절차 같은 것도 없이 한 건축가가 맘대로 확 뜯어고친 것으로 봐서 인사동은 결코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가?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라는 인사동의 정체성은 아마도 한옥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인사동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한옥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안국동 네거리에서 인사동으로 들어서서 인사동 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다 보면 길 양쪽의 모습이 확연히 다른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4, 6층 정도의 양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반면에, 왼쪽으로는 간판 위로 기와가 조금씩 보이는 낡은 단층 한옥들이 늘어서 있다. 인사동의 과거와 미래가 마주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한옥들은 결국 모두 사라지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대부분의 한옥들은 너무나 초라한 몰골로 겨우 서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인사동의 한옥들은 대부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온돌을 놓고 기와지붕을 얹으면 한옥이고, 그런 집들이 많이 있으면 ‘전통문화 거리’인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애초에 발상부터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옥은 온돌과 기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 대해 열려 있는 주거형태로서 한옥에는 반드시 마당이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마당 없는 한옥은 거짓이다. 인사동의 한옥은 태반이 이런 거짓 한옥이다. 대부분 식당으로 사용되는 이런 한옥으로 들어가는 것은 일종의 ‘토굴’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밖에서 햇살이 맑고 환하게 비치며 우리를 유혹해도, 아무리 밖에서 가랑비가 영화처럼 예쁘게 내려도, 이 ‘토굴’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 그저 부어라 마셔라 지져라 먹어라 할 뿐이다.
세련된 검은색 건물인 가나아트센터 5층에는 테라스가 있다. 이 건물은 인사동에서 드물게 일반인에게 열려 있는 곳이고, 또 이 테라스에서는 적어도 인사동의 동남북을 잘 살펴볼 수 있다. 내가 이 건물을 찾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이 테라스 때문이다. 여기서 보면, 인사동의 한옥들이란 것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한옥지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뜬금없이 솟아오른 양식 건물들의 침입을 받고 있었다. 길가는 이미 모두 양식 건물들로 바뀐 지 오래이며, 한옥지구 자체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건물의 크기는 건물주의 힘의 세기를 반영한다. 이런 곳에 마구잡이로 들어선 건물일수록 그렇다. 일반인이 지은 건물은 2, 3층의 작은 건물이지만, 대기업이 지은 건물은 공룡처럼 거대하다. 아직도 적지 않은 한옥들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지붕에 검은색 천막을 뒤집어 쓴 볼품없는 꼴들이다. 참으로 한심스럽다.
인사동을 정말 ‘전통문화 지구’로 만들고자 한다면, 형편없이 유지되고 있는 한옥들부터 살려내야 한다. 검은색 천막을 뒤집어쓰고 마당을 없애고 ‘토굴’로 변한 채,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악다구니의 공간으로나 이용되는 한옥들을 그대로 두고, 인사동 길이 어떻게 ‘서울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지구’가 될 수 있겠는가? 개발의 광풍으로부터 한옥들을 지켜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진짜 한옥다운 풍모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나아트센터의 테라스에서 보면 한옥의 꼴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집은 두 채가 있을 뿐이다. ‘경인미술관’과 ‘영빈회관’이 그것이다. 이 두 집의 넓은 마당은 작은 집들이 정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빽빽이 들어서 있는 인사동에서 공간적 여유를 느끼고 삶을 호흡할 수 있는 귀중한 곳이다. 경인미술관도 이제는 예전과 같은 호젓함을 많이 잃었고, 영빈회관은 얼마 전에 불이 나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운명이 되었지만.
집, 꽃들, 골목길, 사람 살리는 인사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인사동의 생명은 골목길에 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는 맛이야말로 인사동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한옥들이 웅크리고 어깨를 맞붙이고 있는 사이로 난 골목길은 복잡하지만 정겹기도 하다. 한옥과 골목길은 뗄 수 없는 사이다. 그 둘은 갑자기 난폭하게 사라져 버린 시대, 일제와 독재에 의해 파괴되어 버린 시대를 상징한다. 인사동은 그런 시대를 걷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한옥이 없어지고 망가지는 것과 함께 골목길도 없어지고 망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골목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어서 인사동이 좋다고 한다. 자못 낭만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낭만적인 골목이 인사동엔 많지 않다. 아니 사실은 거의 없다. 인사동의 골목길은 시멘트를 처발라 놓은 길이거나 못생긴 보도블럭을 대충 깔아놓은 길이다. 둘 다 영 볼품없기는 마찬가지지만, 더 나쁜 것은 보도블럭을 깔아놓은 경우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겠지만, 낡은 보도블럭은 때론 함정으로 변한다. 밟는 순간 시커먼 구정물이 찍 튀어오르는 것이다.
인사동의 골목길은 대체로 음식점 골목길이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밤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휘황하게 빛나는 커다란 간판들을 그 좁은 골목길 밖에 아예 늘어놓고 있다. 좁은 골목길 양쪽에 어지럽게 서 있는 간판들은 보기에 영 시끄러울 뿐만 아니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길을 영 성가시게 한다. 가게 앞엔 음식 찌꺼기로 가득 찬, 국물이 새는 쓰레기 봉투가 나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선을 돌리고 코를 막은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수밖에 없다. 낡고 제멋대로 생긴 지붕들 사이로 엿보이는 초라한 하늘은 난마처럼 뒤엉킨 전깃줄로 넝마처럼 찢겨져 버렸다.
승동교회는 얼마 전에 서울시로부터 시 문화재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이다. 3·1운동의 사적지이기도 한 오래된 기품있는 건물이다. 이 교회의 담을 따라 YMCA 쪽으로 넘어가는 골목길이 있다. 여기도 인사동의 다른 음식점 골목길과 마찬가지로 초라하고 지저분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그 고아한 근대 건축물인 승동교회가 군부대 혹은 교도소 건물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높다랗게 쌓아 놓은 낡은 블럭담과 그 위에 둘러친 날카로운 가시철조망을 따라 걷노라면, 이곳이 승동교회의 뒷골목이라는 생각 따위는 전혀 들지 않는다.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가?
인사동의 여기저기를 걷다 보면, 이곳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라는 서울시의 선전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한옥이 많다고 해도 정말 한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으며, 이곳의 전체 경관을 지배하는 것은 이미 한옥이 아니라 크고 작은 양식 건물들이다. 골목길은 한국의 도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그 수많은 ‘먹자 골목’들과 다른 것이 전혀 없다. 이런 점에서 인사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라는 것인가?
김진애 씨는 인사동 길의 입구에 ‘전통적인 상징물’을 세우는 것으로 이곳이 ‘전통문화 거리’라는 사실을 알리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낯선’ 기둥들을 세운다고 해서 인사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가 되는 것일까? 서울시가 ‘전통문화’를 주제로 인사동의 ‘도시 마케팅’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 인사동의 여기저기에서는 오히려 전통문화가 계속해서 사라지고 있었다. 음식만 보더라도 맥도날드며 하까다 우동이 인사동의 길목에 자리잡았고, 골목 곳곳에는 심지어 이태리 요리점들도 들어섰다.
표구상이나 고서화점들이 많이 있어서 인사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인사동에 가장 많은 것은 음식점이고, 일반적인 문화시설로 가장 많은 것은 주로 서양화를 다루는 화랑들이다. 그러니 표구상이나 고서화점들을 이유로 인사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라고 할 수는 없다. 도시의 변화와 발전에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정책당국에서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한 거리의 정체성을 정하고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사동은 복합문화의 거리일 뿐
시대의 흐름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이 ‘전통문화’라면, 그것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다카키 마사오) 이래로 이 나라에서 ‘전통문화’를 지킨다는 건 ‘인간문화재’가 되든가 아니면 ‘미친놈’이 되는 게 아니었던가? 정부가 나서서 ‘전통문화’ 운운할 때는 실제로 전통문화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그 상품화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잿밥에 눈먼 방식으로는 결코 ‘전통문화’를 되살릴 수 없다. 기껏해야 싸구려 상품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인사동이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게 말해서 이곳은 전통의 향취가 아직은 다른 상업지구보다 조금 더 남아 있는 ‘복합문화 거리’일 뿐이다. 또 앞으로도 인사동을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로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전통문화 거리’ 운운하기에는 너무나 많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안국동에서 종로로 이어지는 그 길지 않은 길조차 ‘전통문화 거리’다움을 거의 느끼기 어려운 꼴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문화 거리’ 운운하는 것은 대놓고 거짓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인사동은 참 많이 변했다. 앞으로도 많이 변할 것이다. 김진애 씨는 이제 골목길을 왕창 뜯어고칠 차례라고 벼르고 있지는 않은지. 인사동의 상업적 가치가 한껏 커져있는 상태이니 변화의 바람은 앞으로도 상당히 거셀 것이다. 그러나 이왕 변할 거라면 얼치기 ‘전통문화 거리’ 따위가 아니라 그냥 ‘문화거리’라도 좋으니 삶의 여유와 멋을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낡은 만큼 삶을 돌이켜볼 수 있게 해주는 현명한 건물들, 음식 썩는 냄새가 아니라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골목길, 하늘을 갈갈이 찢어 버리고 가끔 누전사고도 일으키는 어지러운 전깃줄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커다란 간판이 아니라 저절로 눈길이 가는 작지만 개성적인 간판, 보기에도 답답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나무로 만든 그렇게 길지 않은 의자, 그리고 앉거나 서거나 걷거나 뛰거나 먹거나 마시거나 싸우거나 말하거나 일하거나 노는 사람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