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는 이번 호부터 드라마, 대중가요, 영화, CF 등 대중문화예술에 비친 한국사히의 현주소를 찾아본다. 동시대인들이 대중문화예술을 통해 공감하는 시대의 화두는 무엇일까. 함께 고민하고 느껴보자.

이번호엔 드라마에 비친 한국 사회 개혁의 그림을 그려본다. 편집자주

<용의 눈물>의 역전노장 사극 감독 김재형, 그가 <여인천하>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너무나 의아스러웠다. 궁중 여인들의 앙탈 섞인 싸움질이야 텔레비전 사극에서 신물나도록 보아왔던 것 아닌가. 70년대까지 이런 멜로형 사극이 유행하다가 ‘조선왕조오백년’ 시리즈로 사료에 입각한 사극이 본격화되었고, <용의 눈물>로 남성용 사극 붐이 절정에 오르기 시작해 <허준>과 <태조 왕건>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가 제일 잘 알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여인천하>라는 퇴행적 제목이 웬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려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제목이 그러하듯 여자들의 싸움이기는 했지만 단순한 퇴행은 아니라는 게 지금의 내 생각이다. 만약 단순히 예전의 멜로형 사극으로 되돌아간 것이었다면, 평론가가 뭐라기에 앞서 멜로형 사극에 신물 난 시청자들이 먼저 외면했을 것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얼굴에 잔주름이 생긴 강수연과 전인화 앞에 시청자들을 끌어다 놓았단 말인가.

<여인천하>는 언뜻 보기엔 뻔하고 익숙한 사극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면밀히 보면 그 안에 뭔가 새로운 것을 지니고 있으며, 그 새로운 것이 최근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대중의 경험과 관심, 사회심리 등과 조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물론 대중예술의 정치경제적 한계는 분명히 있는 것이지만). 그리고 이는 최근 SBS <여인천하>, MBC <홍국영>, KBS <명성황후>로 맞붙어 붐을 이룬 사극들의 핵심 화두이기도 하다. 요점부터 말한다면, 최근 사극들의 공통적인 특징, 핵심적 화두는 ‘개혁’과 ‘야망’, 이 두 가지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요즘 사극들이 지금의 시청자들의 관심사·욕구·욕망 등과 만나는 지점인 셈이다.

드라마의 개혁관

요즘 사극에서는 유난히 난세를 헤쳐나가는 개혁가들이 조명된다. 이런 개혁가는 연산군이나 장희빈 같은 사극 단골메뉴에서는 만들어내기 힘든 소재이다. 궁예, 허균, 조광조, 홍국영, 흥선대원군 모두 그런 인물이다. 사극의 소재 변화는 그 시대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다. 70년대의 멜로형 사극에서 벗어나던 80년대에는 조선 후기 민중봉기 소재의 작품들이 영화와 연극, 드라마 등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그때는 민주화운동, 민중봉기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다 90년대에 이르러서 정권교체기 소재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독재정권의 장기집권만 경험했던 우리들은 문민시대인 90년대에 이르러서야 정권교체기의 여러 현상들과 그 복잡함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용의 눈물>은 바로 그 시기의 대표작이었다. 그런데 이제 난세 속의 개혁, 개혁가의 실패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 사회 대중의 경험과 관심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최근 드라마 속의 개혁과 개혁가는 실패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어느 시대건 개혁가의 해피엔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일이지만, 그들의 말로가 불행했다 하더라도 그 개혁과정의 모습들은 충분히 낙관적으로 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 드라마에 비친 개혁은 매우 비관적이다.

<태조 왕건>의 궁예는 살아있는 미륵으로 불린 성군이었지만, 절대권력을 잡고 초조해지자 폭군으로 전락하고, <여인천하>의 조광조는 시청자에게 아무런 호감과 동의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막무가내 고집불통으로 그려진다. <홍국영>의 홍국영은 개인적인 한풀이를 위해 정치에 뛰어들며 정감록에 기대는 정후겸과 문도인은 그야말로 혁명에 임하는 최소한의 도덕성조차 갖추지 못한 인물이다. 대원군은 선문답 같은 말로 사람들을 조종하는, 때가 묻을 대로 묻은 정치9단이다. 도대체 요즘 드라마 속의 개혁가들은, 믿고 따를 만한 인물이 아니다. 허준이나 <천둥소리>의 허균이 비교적 깨끗한 인물이었지만, 허준은 정치 이외의 전문영역에 머문 인물이고, 허균은 그렇게 깨끗하게 그려지고 나니 매력이 없어 시청자에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드라마 속 개혁가 인물이 하나같이 이 모양인 것은, 역사 속의 인물이 원래 그래서가 아니라, 지금의 시청자 대중의 정치와 개혁에 대한 생각이 그러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이와 다른 시각으로 그려진 <천둥소리>는 시청자가 외면했다. 개혁은 막무가내식의 비현실적 시도이거나 개인적 한풀이거나 누군가의 정치적 야망만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바로 요즘 드라마의 개혁관(改革觀)이다.

여성 인물의 변화

세상은 난세다. 개혁과 정치는 매력 없거나 가능성 없다. 따라서 환멸뿐인 드라마 속의 세계에서, 매력 있는 인물은 단연 여성이다. 예전 사극에도 여성 인물은 넘쳐났으나, 요즘 사극의 여성 인물은 그와 확실히 다르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몫이었던 정치적 야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인물, 혹은 남성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 인물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여인천하>가 이전의 멜로형 사극들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전 사극의 여성들은, 임금의 총애를 받기 위해 비방과 독약까지 마다하지 않는 혈투를 벌였다면, 이 드라마의 여성들은 오히려 자신의 지위상승과 정치적 야망을 위해 남자를 선택한다. 길상과의 심상치 않은 관계에도 불구하고 정난정은 윤원형을 선택한다. 문정왕후도 명성황후도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기꺼이 유능한 왕후가 되어 정쟁의 한복판에 선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대개 남성들의 고유한 능력 혹은 속성처럼 여겨졌던 정치적 야망과 권모술수의 능력을 매우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무예나 장사 등의 능력을 지닌 왕건의 둘째 부인, 견훤의 누이동생, <여인천하>의 능금, <홍국영>의 서씨처럼 남복 차림이 어울리는 인물들의 출현도 이와 흡사한 맥락이다. 그야말로 <여인천하>라는 제목 그대로 정치를 개판으로 만들어놓는 어리석고 무능하며 이기적인 남성들의 환멸스러운 세상 속에서, 여자들이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놓고 남자들 틈에서 이전투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인물들의 적극적 야망도 환멸스런 정치판에 불과

이런 여성 인물의 변화는 여성 시청자의 변화 때문이다.

즉 많은 여성들의 삶의 목표와 욕망이 남자의 사랑에서 더 나아가, 사회적 진출과 일의 성공, 지위상승 등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요즘 사극의 여성 인물들은, 한편으로는 야망의 세계에 익숙한 남성 시청자들에게는 새롭고 신선한 인물이라는 매력을 덧붙여 다가가며, 변화한 욕망을 지닌 여성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이런 점에서,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남성의 야망을 중심에 놓은 <홍국영>에 대중이 매력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여성 인물의 변화는 확실히 나아간 측면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야망을 불태우는 여성 인물은, 그 정쟁에 뛰어드는 심리적 근거가 충분히 납득할 만하더라도, 아직은 역사 발전이나 정의 등의 정당한 명분을 결여한 채 단순한 파워게임에만 목을 매고 있다(명성황후만이 조금 예외일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아마 대원군과의 파워게임이 큰 비중을 차지할 듯싶은 게 내 추측이다). 말하자면 이들 여성들의 적극적 야망이 지니는 신선함에도 불구하고 환멸스러운 정치판을 더욱 극악스럽게 만드는 데에 기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드라마의 뒷맛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2001/07/01 00:00 2001/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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