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웃 나라를 비롯 지구촌 각지에는 아직도 인권의 사각짇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참여사회』는 소외된 제3세계와 한반도의 인권이야기를 연재한다. 이를 통해 고통받는 이에게 참된 평화를 주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곰곰 생각해보자.

30여 년의 암울한 세월 동안 인권의 사각지대를 경험한 한국인들은 아직도 미진한 점이 많지만 옛날에 비하면 많은 분야에서 인권이 신장 및 개선되었거나 적어도 개선으로 가는 진통을 겪고 있다고 느낀다. 1948년 유엔에서 전문과 30조로 된 ‘세계 인권선언’을 채택하고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이에 서명했지만, 현실은 그다지 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인권유린으로 고통받는 아시아 이웃 나라들의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해 보겠다. 이들의 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인권 향상을 위한 우리의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외롭게 싸우고 있는 이웃 나라 사람들과 우리의 경험을 나누고 힘을 보태주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성숙한 자세를 갖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까닭이다.

종족 문제와 독재정치에 시달리는 미얀마 국민

그 첫 번째는 인권이 가장 열악한 나라 중의 하나인 미얀마이다. 지난 4월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만난 미얀마 망명정부의 센 윈(Sen Win) 박사는 나에게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권고문에 다른 선진국들과 함께 한국이 제안국이 되어 준 것에 대해 아웅산 수지(Daw Auung San Suu Kyi) 여사를 대신해 한국의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전했다. 지금 세계는 미얀마 군부와 수지 여사 사이의 대화 접촉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난 10년 간 이같은 시도는 번번이 군부의 조작극으로 판명났기에 이번에도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회담에 수지 여사만이 초대되고 있는 점, 미얀마 국내 언론은 이 회담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는 점들이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그래도 이번의 회담들은 군부가 계속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 5년 가까이 문을 닫았던 대학교가 수업을 시작했으며 연금상태이던 민주민족동맹 부위원장 우 틴 오(U Tin Oo)가 최근 자유의 몸이 됐다. 이러한 현상들이 회담의 성공에 대한 희망을 낳고 있다.

인도, 방글라데시, 중국, 태국, 라오스와 접경하고 있는 미얀마는 인도의 영향을 수세기 동안 받아오다 1885년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의 일개 주로 인정받아 영국 식민지로 편입됐다. 그러다 1930년 우선 인도로부터 해방을 쟁취하였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3년 간의 일본 식민지 체험은 미얀마의 독립운동을 활성화시켰고, 마침내 아웅산 장군의 지도 아래 1948년 1월 4일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미얀마 연방은 공산주의 게릴라들과 소수 민족의 봉기로 인해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었다. 네윈(Ne Win)장군이 1962년 정권을 잡으면서 14년 동안의 짧은 의회민주주의는 막을 내렸다. 그후 오늘날까지 40년간 군부정치가 이어졌고, 네윈의 통치는 미얀마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켰다.

1974년부터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한개의 정당만이 미얀마를 지배하는 독재정치가 계속되었다. 이에 반대하는 국민의 저항이 일어나 1988년 8월과 9월의 민중항쟁으로 1000명 이상이 희생됐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도 없이 소마웅(Saw Maung) 장군이 이끄는 군부세력이 국가법질서재건위원회(SLORC)를 선포한 뒤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1990년 5월 전국적인 선거를 실시하였다.

이 선거에서 수지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이 82%의 지지를 받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군부는 여러 가지 핑계를 내세우며 지금껏 정권 이양을 미루고 있다. 예를 들면 “서구 민주주의는 미얀마에 맞지 않는다”, “수지 여사는 서구식 지도자이기에 미얀마에 맞지 않는다” 따위의 이유들이다. 그러면서 총선 후 오늘까지 군부독재를 지속하고 있다. 국가법질서위원회는 1997년 11월 새로운 군부지도자인 킨 누엔트(Khin Nyunt) 중장이 정권을 잡으면서 국가평화발전위원회(SPDC)로 명칭을 바꾸었고, 나라 이름도 버마에서 미얀마(Myanmar)로 바꿨다.

발목에 쇠고랑차고 노역장으로 끌려가는 미얀마 양심수들

인구 4700만의 미얀마는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이웃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며, 특히 천연가스, 루비, 비취 등은 그 진가를 전세계에 자랑하고 있다. 미얀마는 버마족, 친족, 카렌족, 시얀족, 몬족, 카친족, 화족 등 7개 부족으로 이뤄져 있다. 버마족은 그 중 가장 수가 많은 부족이며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군부의 실력자들도 버마족이다. 소수 부족들이 버마족에 대항하는 위험을 없애기 위해 군부는 소수 부족 말살정책을 쓰고 있다. 강제이주, 강제노역 동원 등으로 고향을 떠나 태국 국경을 따라 흩어져 살게 하고 있다.

현재 미얀마에는 1000명 이상의 양심수가 복역하고 있다. 양심수들은 열악한 감옥 환경과 강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면 1990년 5월 총선에서 당선된 민족민주동맹 국회의원 392명 중 34명이 수감돼 있고 36명은 1996년부터 지금까지 속칭 국가 영빈관에 갇혀 있다. 37명은 병석에서 신음하고 있고, 14명은 국외에 망명했으며, 123명은 강제로 의원직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 부족 출신 국회의원 당선자들도 민족민주동맹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감금되는 실정이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10년 이상 등원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수준이 서구 민주주의를 수행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게 집권 군부가 내세우는 이유다. 세계 어느 나라에 이러한 경우가 있을까?

1996년 11월이었던가, 독일의 한 유명 일간지의 여기자를 미얀마 수도 양군의 한 호텔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관광객으로 위장해 북부 미얀마를 다니면서 찍은 정치범들의 강제노역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눈물을 흘렸다. 발목에 묶인 쇠고랑, 노역장으로 끌려가고 있는 양심수들의 처참한 환영이 지금도 나의 뇌리에 선명하다.

“아시아 기업들과 미얀마 군부의 결탁을 막아달라”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세계인에 각인돼 있는 아웅산 수지 여사. 그녀는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군부에 맞서 평화적으로 싸워왔으며,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95년 9월 어느 날 나는 수지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6년 간의 긴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직후였기에 만남은 삼엄한 경계 속에서, 그리고 1년여의 노력 끝에 간신히 이루어졌다.

7개 종족의 문제와 민주화라는 이중고가 가녀린 그녀의 어깨에 얹혀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는 두 아들의 어머니이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마이클 아리스 박사(그는 전립선암으로 1999년 사망했다)의 아내였다. 겉보기에는 가냘픈 여성이지만 카리스마가 우러나는 결연한 태도가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는 이야기에 나 역시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대화에서 수지 여사는 흐트러짐 없이 이렇게 얘기했다.

“저에게 가족과 내 나라의 민주화 중 택일하라면 저는 내 민족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저를 지금까지 지탱해 주는 힘은 기도입니다.”

“일본, 한국, 태국, 싱가포르, 중국 기업들의 군부세력과의 결탁을 막아주십시오. 그들의 투자는 군부의 힘을 길러주고 우리 국민을 계속 착취하는 결과밖에 안됩니다.”

“박 선생님, 나는 불교신자였던 아버지(아웅산 장군), 기독교를 믿었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니 나야말로 에큐메니컬(초교파)입니다. 저를 방문하는 것은 전혀 위험하지 않으니 무서워 말고 저를 찾아 주시라고 미얀마 교회 목사님들께 말씀해 주세요.”

가족보다 민족을 우선할 수밖에 없었던 수지 여사는 1999년 3월 남편의 임종도 하지 못했다. 옥스포드 대학 시절 만나 결혼한 남편이다. 군부는 남편의 입국사증 발급을 거부했다. 수지 여사는 남편을 보기 위해 조국을 떠났다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처지였기에 양군에 남기로 결정했다. 최근에야 수지 여사는 둘째아들 킴의 딸을 양군에서 안아볼 수 있었다. 이제 그녀도 할머니가 된 것이다. 미얀마 얘기는 다음 달에 계속하겠다.
박경서 인권대사
2001/07/01 00:00 2001/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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