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전자주민증이 당신을 노리고 있다
2001/2001년 07월 :
2001/07/01 00:00
전자건강카드 추진 … 개인정보 유출 적신호
인적사항과 혈액형, 알레르기 등 개인 병력의 특이사항을 담아 환자의 신분 및 건강보험 자격을 확인해준다는 전자건강카드. 이는 '개인정보유출'논란을 빚은 제2의 전자주민증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IC칩을 넣은 스마트카드 형식으로 고안 중이라는 전자건강카드의 문제점을 진단한다. 편집자 주
지난 4월 건강보험증을 스마트 카드(제2세대 신용카드. 교통카드처럼 IC칩 등에 정보를 넣어 컴퓨터로 작동, 독특한 장비에 의해서만 해독되는 카드)로 바꾸는 계획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더니 곧바로 신용카드사, 정보통신업체, 통신사업자 등으로 이뤄진 5개의 컨소시엄이 긴급 구성됐고, 5월 말에는 복지부 내 사업설명회까지 개최되는 등 숨가쁘게 진행됐다.
5월 31일,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안정 종합대책의 하나로 전자건강카드를 도입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6월 14일에는 여당이 전자건강카드 도입을 명문화한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전자건강카드가 무엇인지, 무엇이 좋다는 것인지 국민은 어느 한 가지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인데 사업은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제2의 전자주민증 될 판
전자건강카드는 IC(집적회로)칩이 들어간 스마트카드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혈액형, 알레르기 등 특이사항 정보를 담아 환자의 신분 및 건강보험 자격을 확인할 수 있다. 병원에서 전자처방전을 발행해 카드에 저장해주면 이것을 약국에서 읽고 약을 조제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가 신용카드 기능까지 더한 것, 이것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전자건강카드의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자건강카드에 담을 내용과 카드의 형태 등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컨소시엄에 따라 전자지문감식, 무선데이터 송수신, 전자화폐 등의 다양한 기능을 제안하고 있고, 어느 컨소시엄과 기능이 선택될지는 알 수 없다.
개인정보 중 특히 신체와 의료 정보는 대단히 민감하고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개그우먼 이영자 씨의 미용수술 여부가 담당의사의 불법적인 공개로 인해 알려져 개인적,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을 지켜봤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수진내역을 건강보험 가입자들에게 우편통보한 뒤 허위·과다 청구사례를 신고받고 이를 자율정화라는 미명아래 의약계에 전달함으로써 오히려 신고자가 의사들에게 홀대를 받은 것도 경험했다. 앞으로는 특정 병원의 방문사실과 진료내용, 복용한 약 등 개인의 의료정보가 담당 의사와 무관하게 알려지게 되는 것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된다. 이를 ‘선행된 위험’이 아닌 ‘예측된 가능성’이라 하여 쉽게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전자주민증은 무산되었다고 하지만 국가 행정전산망의 통합으로 인해 사실상 개인정보의 집적과 통합전산관리체계가 구축됐다. 전자감시 시스템은 이미 골격을 갖춘 것이다. 전자주민증 대신 전자건강카드에 IC칩을 넣어 상용하게 된다면, 이는 또 다른 전자신분증이며 전자감시를 하겠다는 의도로 보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신용카드 기능이 건강카드에 덧붙여지고 의료비 지불내역이 카드회사를 통해 유통, 집적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신용카드의 사용이 선택적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사회적 위험을 증폭시키는 대목이다.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은 전자건강카드가 사용되고 이에 대한 정보가 흐르는 곳곳에 도사리게 된다.
과연 어떤 효용가치가 있기에 정부는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전자건강카드의 도입을 무리하게 추진하려는 것일까?
전자건강카드 도입으로 건강보험 재정지출을 확실하게 줄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바로 가짜 보험가입자 적발이다. 보험료를 내지 않아 보험자격이 정지된 사람이 남의 카드로 병원에 갔을 때 이를 적발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들이 있다. 하나는 신원확인 문제. 병원에 가서 보험카드와 함께 신분증을 제출하거나, 전자건강카드에 사진이나 지문감식기능을 넣어야 한다. 그러나 신분증 제출로 신원확인을 한다면 현재 종이카드로도 가능한 것이므로 굳이 전자카드를 만들 이유가 없다. 전자카드에 사진을 넣는다 해도 카드발급 비용과 발급카드 수가 많아져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비난이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또 있다. 보험자격을 확인하려면 의료기관과 약국에서 보험 체납자와 자격상실자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방법에 따라서는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이 대단히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컨소시엄의 제안서에 따르면 미납자와 체납자의 정보를 의료기관과 약국의 단말기에 월별로 갱신, 저장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공공기관도 아닌 민간의료기관과 약국에서 개인정보를 관리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실효성보다는 국민 부담만 가중돼
최근 우편을 통한 수진내역 통보가 개인정보 유출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험재정 건전화에 적잖은 도움을 준다고 한다. 작년과 최근의 수진내역 통보를 통하여 확인된 허위부당청구 사례를 비교해 보면 그 유형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확인된 허위부당청구사례를 유형별로 보면 가짜 환자 만들기가 91.6%, 진료내역 부풀리기 5.8%, 본인부담금 과다산정이 2.6%였다. 이에 반해 올 3, 4월 부당청구가 확인된 1만1522건을 살펴보면 가짜 환자 만들기가 54%로 크게 줄어든 반면, 진료내역 부풀리기(34.4%)와 본인부담금 과다산정(11.6%)이 늘었다. 오지도 않은 환자를 왔다고 해 급여를 청구하는 것보다 온 환자 중 하지도 않은 치료를 허위로 보고해 부당하게 급여청구를 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허위부당청구는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이나 감시장치의 변화에 따라 그 유형이 변화하게 마련이다. 전자건강카드의 도입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당연히 ‘가짜 환자 만들기’이다. 환자의 카드를 통해 처방전이 전달되고, 진료내용이 확정되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허위부당청구는 상당히 근절될 수 있다. 그러나 위 자료에서 확인되듯이 가짜 환자 만들기는 수진내역통보를 통해 이미 근절 효과를 보고 있고, 전자건강카드의 도입 없이도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진료내역 부풀리기와 본인부담금 과다산정은 전자건강카드로도 쉽게 막기 어렵다.
“자, 환자님은 이러저러한 진료를 받으셨고, 의사인 저는 이런 처방을 합니다. 확인하셨지요. 이제 카드에 내용을 저장합니다. 아, 그리고 환자님의 진료내역서는 이러저러한 금액과 내용으로 되어 있고, 그 중 이만큼을 본인이 내시면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야 부풀리기나 과다청구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만 된다면 허위부당청구를 막기 위한 전자건강카드도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전자건강카드 도입의 초기 비용은 약 1조5000억∼2조 원 정도로 예측되고 있다. 애초에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의 돈은 한 푼도 안 들이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여당의 전자건강카드 도입 근거법령(안)에는 병원과 약국에 필요한 시설, 장비를 위한 국고지원의 근거가 명문화되어 있다. 결국 카드 발급, 신용카드 수수료를 비롯한 전자건강카드 도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장기적으로 국민이 부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전자건강카드는 막대한 시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한국 시장뿐 아니라 동남아 시장으로의 수출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굴지의 기업들이 전자건강카드 도입에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확장을 위해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전자건강카드가 종이보험증보다 지니기 편하고, 약간의 재정절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이것이 몰고올 사회적 위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정부는 전자주민증 도입 실패의 경험 때문인지 전자건강카드 도입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개인의 정보를 담게 되고, 여러가지 위험이 예상되며, 4500만 국민의 일상과 관련된 중차대한 일인데도, 이에 대한 국민적 동의와 합의를 구하는 절차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전자건강카드 도입 발상의 허술함과 함께 국민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정부에 등을 돌리게 한다. 과연 지금 전자건강카드를 꼭 도입해야 하는지 정부는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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