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열어야 통일이 보인다
2001/2001년 07월 :
2001/07/01 00:00
'민족통일대토론회'에서 만난 북녘 사람들
6·15공동선언 한돌을 맞아 지난 6월 14일부터 16일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민족통일대토론회'에 다녀왔다. 이 기간동안 북녘의 동포들과 비교적 자유롭게 대화했다. '자유로운 대화'란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돌이켜 보면 그들은 말을 아꼈고 남측의 대표들은 벅찬 감격에 들떠 있었다. 그들이 한 얘기들은 굳이 금강산에까지 가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공식적 입장'들 뿐이었다.
뙤약볕이 쏟아지는 금강산호텔 마당에서 남북의 참가자들은 공식적인 토론회와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을 피웠다. 연단에서 14명의 공식적인 토론자들이 각자 토론문을 읽은 것에 비해 객석의 잡담들이 오히려 토론회를 '토론회답게' 만들어준 느낌이다. 필자와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뒷자리에는 김일성대학에서 '주체철학'을 40년 동안 연구하고 가르쳐왔다는 조필구 선생(65세)이 앉아 있었다. 연구자인 탓인지 남의 현실을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남쪽에서 비합법적으로 출판되었던 『주체사상총서』나 『불명의 역사』 등을 펴낸 출판사 이름과 가명으로 글을 썼던 필자들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는 황장엽에 대해 "컴퓨터로 치면 소자가 하나 나간 상태일 것"이라고 말해 주위 사람들을 허허 웃게 만들었다.
토론회에 이어 호텔 2층에서 연회가 진행되었다. 같은 좌석에 범민련 북측본부에서 상근하는 김경철 씨(41세)와 캐나다 조선인연합회에서 온 김수해 씨(60세)가 합석했다. 김수해 씨는 1987년까지 서울에 살다가 해외에 나가 통일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주했다고 말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부친이 1948년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참석했었고 1970년대에 강제징집을 당하는 등 신산스러웠던 개인사를 말해줬다. 그는 최근 남쪽에서 불고 있는 캐나다 이민열풍에 대해 '빨리 통일이 되어야 희망을 잃고 조국을 버리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표했다. 범민련 상근자 김경철 씨는 중학교에 다니는 열네살, 열두살 두 딸을 둔 아버지였다. 북에도 '남아선호' 경향은 있지만 자신은 정말 딸이 더 좋다고 말해 역시 두 딸의 아버지인 나를 크게 웃게 만들었다. 그는 섣불리 정치적인 의견을 말하지 않고 주로 듣기만 하는 유형이었다. 목소리도 작았고 태도와 자세도 무척 소극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테이블에 앉았던 김일성대학 여학생에게 한 남쪽 대표가 "청춘의 시기에 남녀간의 연애 문제에도 관심이 있지 않은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선생님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장군님께서 강성대국을 이루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그런 데나 관심을 기울인단 말입니까"라고 예상했던 대답을 말했다.
이번 토론회에 참석한 남쪽 사람들은 지난 시절 보안사로 끌려가 갈비뼈가 일곱 대 부러지고 창자가 터졌다는 서경원 전 의원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정권에 의해 온갖 핍박과 설움을 다 당한 사람들이었다. 그에 비해 북녘 사람들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체제옹호적인 모범생들이 아니었을까. 이들이 개인적으로 이해하는 분단의 고통과 사회현실에는 서로 차이가 있으리라. 이들 사이에 정말 가슴을 연 대화가 가능하려면 참으로 오랜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만남과 대화가 '감동'이 아니라 '일상'이 될 때 통일의 토대는 굳건해 지는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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