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민들레가게 회원 - 대치동 '호프하우스' 주인 황명철
이제 겨우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승주란 녀석이 아까부터 계속 주위를 맴돌고 있다. 낯선 손님 앞인데도 아랑곳없이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기도 하고, 저 혼자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옮겨 다니며 쿵쾅대기도 한다. 너무 편안하게 돌아다니길래 이 집 주인의 친척쯤 되나 보다 했더니, 그냥 손님 아들이란다. 숫제 자기 집인 양 구는데도 별 탈이 없는 사장 아저씨란 걸 녀석도 알아챈 게다. 이미 여러 번 놀러오기도 했고.

“중년 세대들 갈 데가 없잖아요?”

“우리 집에서 연애하다가 결혼한 단골손님 아들이에요. 결혼식에도 갔었으니까 그게 벌써 몇 년 전인가…. 한번 오신 손님은 그 날로 단골이 되어 버리니까요.”

대치동 한 자리에서 무려 15년 동안 생맥주집을 운영하고 있는 참여연대 회원 황명철 씨. 1년만 지나도 가게 간판이 휙휙 바뀌는 요즘 세상에 그렇게 오랫동안 변함없이 똑같은 가게를 열고 있다는 것이 우선은 신기하다. 하물며 그 가게란 것이 경제 분위기 따라 매상이 오르락내리락 정신없는 맥주집이 아닌가 말이다. 처음 이 호프집을 열었을 때만 해도 주변은 온통 허허벌판이었단다. 새로 들어선 아파트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찾아왔고, 그 사람들이 단골이 되어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는 모든 공을 사람들에게 돌린다.

이 집에서 곧잘 데이트를 했다는 승주의 엄마와 아빠는 연애 시절, 살갑게 대해 주는 황명철 씨가 고마워서 청첩장을 건넸다. 물론 기꺼이 초대에 응한 그는 봉투에다 ‘호프하우스’라 쓰는 것이 민망해서 그냥 이름만 적고 왔다. 부부는 1년 뒤에야 그 이름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게 됐다고. 그 뒤로는 승주의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몽땅 이 곳으로 몰려와 집안모임을 가진다는데, 마침 그 날도 그런 날 중의 하루였다. 황명철 씨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우리 옆에서 왔다갔다 장난칠 틈만 노리던 승주 녀석을 번쩍 안아 가족들 자리로 데려갔다. 가족모임 자리에서는 왁자하니 정겨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 황명철 씨가 손님을, 아니 사람을 대하는 원칙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중년손님이 많은 편이지요. 갈 데가 없으니까. 룸살롱 같은 데 가 봐야 부정한 돈, 부패한 냄새 나는 돈이나 쓰면서 사람만 버리거든. 여기 음식 하나는 진짜 맛있다고 내가 보장할 수 있어요.”

잠시 독립해서 흑맥주집을 열었다가 다시 돌아온 주방 아저씨와는 서로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정도. 그만하면 가족 이상의 관계라 하겠다. 그는 일류 레스토랑 못지않은 음식을 내놓고 당당하게 장사하는 것을 자랑으로 안다. 며칠 걸러 한 번씩 손수 가락시장에 나가 싱싱한 재료를 직접 사 가지고 들어오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똑같은 일을 오래 하니 지겹지 않느냐구요? 힘겹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뭐든지 힘든 거예요. 명절에만 쉬고, 1년 내내 문을 열어 두지만 저는 그 낙으로 살아요. 혹시라도 손님들이 왔다가 돌아가면 죄송하니까.”

이 곳의 의자나 탁자는 대개 20년 이상 된 것들인데도 깨끗하고 정갈해 보인다. 아마도 그의 그런 서비스 정신 덕분이 아닐까 싶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청결을 강조한다는 그의 영업 원칙을 가게 식구들도 잘 지켜 주고 있는 것이다.

황명철 씨는 술장사를 시작하면서 술담배를 끊었다. 주인이 손님이랑 술을 먹는다는 것은 그의 원칙에서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가장 자주, 그리고 강하게 얘기하는 것도 “바른 자세를 지닐 것! 이를 잘 닦을 것!”이란다. 얼핏 그렇게 구체적으로 강권하는 아버지가 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바른 자세에서 바른 삶의 태도가 나오고 스스로를 청결히 함으로써 삶의 태도 또한 깨끗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나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들 교육에 혹시라도 나쁜 본이 될까 하여 변명이 필요한 외박 같은 건 아예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아들이 요즘은 기타에 푹 빠져서 공부는 나 몰라라 하는 것이 내심 걱정이긴 하면서도 인성 하나 바르면 그걸로 됐다, 싶어 가만 보고 있단다. 그저 아무 대학에나 가서 몸값이나 올릴 작정이라면 갈 필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런 생각 저편에는 나름대로 고생하며 산 지난날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젊은 날엔 명동에 있던 아버지의 양복집에서 하루 종일 앉지도 못하고 일했다. 내로라 하는 연예인들이 전부 그 집에 와서 옷을 맞춰 입었던 곳이란다. 지금도 명동의 ‘맨숀 양복점’이라고 하면, “아, 거기?” 할 사람들이 많다고. “나도 총각 때는 잘 나갔지” 하며 흠흠 헛기침을 하는 그의 모습이 밉지 않다. 앉지도 못 하게 하고 일을 시키는 아버지랑 싸우고 구둣가게에서 일하다가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버지와 한바탕 싸운 덕분에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되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그 뒤 삼촌과 같이 구둣방을 열어 장사를 했는데, 삼촌이 캬바레 사업에까지 손을 뻗어 곧 망하고 말았다. 손에 쥔 것도 별로 없는 가운데, 친구의 부탁으로 이 가게를 인수했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나는야, 시민운동 예찬론자

자신의 가게를 참여연대의 ‘민들레가게’로 등록하고 소식지 「아름다운 사람들」과 회원가입 안내서를 계산대 옆에 진열해 두면서 그도 욕심이 커진 것이 사실이다.

“강남 사람들 부자라고 하죠? 마음은 전혀 부자 아니에요, 내가 보기엔. 일부러 손에 쥐어 줘도 저만치 가서 그냥 던져버리고 가기도 하더라니깐. 배가 불러서들 그래.”

총선시민연대의 활약을 보면서 자기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 주고 있는 시민단체를 못내 고마워했단다. 하고 있는 일이 맥주집이라 여기저기 눈치볼 일도 많고, 맘놓고 마구 얘기해대지 못하는 답답함을 안고 살았는데 그 일을 대신 해 주는 곳들이 있으니 자기로선 더할 나위 없이 고맙다고. 그는 15년 간 술장사를 하면서 한 번도 관공서에 돈봉투를 내민 적 없고, 미성년자 출입 등 불법행위로 경찰서에 드나든 적이 없다고 자부했다. 그러니, 돈을 쌓아놓고 살면서 스스로를 기득권자로 여기는 강남 사람들이 막상 참여연대 회원 얘기만 꺼내면 꼬리를 내려 버리는 것이 불만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참여연대 예찬론자’로 부르는 황명철 씨. 시행착오조차 이뻐 보이기만 한다니 증상도 그 정도면 중증에 가깝다. 한 달에 5000원이라도 좋으니 일단 가입해서 회원 수를 늘리자고, 그래야 참여연대가 이 수를 무기로 쓸 수 있다고 틈만 나면 얘기한다. 귓등으로만 듣고 마는 이들이 내심 야속할 따름.

그를 믿고 이 가게를 찾아오는 단골 손님들도 언젠가는 그의 충정(?)을 이해하고 함께 해 주리라 믿어 보자. 양복점 점원에서 생맥주집 사장이 된 그의 말이라면, 대치동에서는 곧 보증수표처럼 여겨진다고 하니 그 신뢰를 한번 믿어보고 싶어진다. 진심은 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가 좋아서, 이 곳의 분위기가 좋아서 시원한 맥주 한 잔에 입맛을 다시며 찾아오는 정겨운 이들을 대하는 황명철 씨의 얼굴이 밝다. 덥고 지치는 한여름 뙤약볕, 이 곳에 가서 그를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시원한 한 줄기 바람 있으라.
김은주 본지 객원기자
2001/07/01 00:00 2001/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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