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와 시민운동, 안 어울리나요?
2001/2001년 07월 :
2001/07/01 00:00
환경정의시민연대 홍보대사 된 영화배우 추상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잘차흐강은 우리나라의 한강처럼 도심을 흐르는 강이에요. 여행중에 우연히 그 강을 내려다보고 전 너무 놀랐어요. 강물 속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깨끗한 거 있죠. 중세 때 지어진 고성들과 하늘을 나는 아름다운 새들, 깨끗한 강물이 절 매료시켰어요. 녹지도 잘 조성돼 있고…. 유럽의 도시는 정말 부럽더군요. 그때, 우린 언제쯤이나 이런 도시에서 살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연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허리가 잘록한 빨간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영화배우 추상미 씨는 아름다운 오스트리아의 자연환경을 “빼앗아 오고 싶다”는 표독한 상상을 했단다. 허나 유럽 여행길에 올랐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욕심을 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쯤 되면 제 목 조르는 일인 줄도 모르고 무조건 이 땅을 파헤친 한반도의 ‘미련한 개발론자’들을 원망하게 된다. 추상미 씨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추씨는 지난 5월 30일 환경정의시민연대(공동대표 김상원)의 ‘2002 블루스카이캠페인’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평소에 환경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실천한 적은 없지만, 우연히 TV에서 대지산살리기운동에 관한 프로그램을 보고 관심을 갖고 있던 중에 환경정의시민연대의 제의를 받아들인 것.
“TV에서 대지산살리기운동 하는 걸 봤어요. 나무꼭대기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몸으로 환경의 중요성을 말하더군요.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무 위에서 농성한 덕에 대지산 개발이 중단됐잖아요. 정말 감동했어요. 힘없는 시민들이 정부와 싸워 이긴 것이니까 더 감격스럽더라구요. 뿌듯하잖아요. 뭔가 해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새만금간척사업, 눈앞에 닥친 현실만 고려한 결정
그는 자기가 바로 대지산 나무 위에서 농성했던 환경운동가라도 된 것처럼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비록 자신이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환경단체의 홍보대사가 된 만큼 환경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피부에 와 닿는 작은 일이라도 하나씩 실천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 환경전사가 되겠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 싶어요. 자연은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1차적인 유산이잖아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연유산을 잘 보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새만금간척사업도 후손을 생각하지 않고 눈앞의 현실만 보고 내린 결정 아니에요? 바다에는 무수한 생명이 살고 있는데 이를 막아 논을 만든다? 저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워요. 선진외국은 쌓았던 방조제를 뜯어내고 바다를 살리려 한다는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 정말이지, 바다를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생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흑백논리에 염증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판에 박힌 논리로 반대편을 공격하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걸로 봐서 우리 사회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어느 분야보다 독창성과 다양성이 살아 있어야 하는 문화판, 영화판의 획일주의가 심각한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친구>… 잘 만들었고, 재미있어요. 속칭 ‘뜬 영화’예요. 그럼 계속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하나요? 요즘 충무로에서 제작중인 영화가 150편 가량 돼요. 그 중 절반이 깡패영화래요. <친구> 하나 나왔으면 됐지, 또 서너 편 있으면 됐지, 절반이나 비슷한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요? 그게 무슨 경쟁력이 있어요?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야지… 전 답답해요. 상상력, 창조력… 그런 게 너무 부족해요.”
그의 불만은 봇물처럼 터졌다. 영화평론가들이나 영화 잡지들도 외국영화에만 몰리지 말고 국산 영화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독려해야 할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얼마 전 한 영화잡지에 최근 홍콩영화의 경향에 대한 기사가 실렸더군요. 중국 반환 이후 홍콩인들의 정체성을 찾는 내용의 영화가 많아진다는 내용이에요. 그러나 정작 우리도 남북분단 상황에서 살고 있는데 이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미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나 연변(延邊) 동포들의 문제가 언론에 종종 나오잖아요. 그런데 우린 그 문제에 대해 별 고민이 없는 것 같아요. 대중문화예술은 그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데, 그저 왕가위 감독 영화를 분석하는 수준이라 좀 속상해요.”
뮤직비디오·만화·영화로 영상세대와 함께 해야
문화의 다양성에 목말라 있는 대중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려면 대중문화예술인들이 한발 더 앞서서 뛰어야 한다는 지론을 편다. 앞으로 영화인들이 대중에 영합하거나 끌려가기보다 시대를 통찰하는 능력을 갖췄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럼 영화배우 추상미씨가 진단하는 한국 시민운동은 어떤 모습일까?
“너무 딱딱하게 안 했으면 좋겠어요. 춤추고 노래하면서 무언극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면 어떨까요? 시민운동은 꼭 인상 쓰고, 찡그리고 해야 돼요? 언젠가 유럽에서 얼굴을 과일, 채소 , 나무와 풀 따위로 분장한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걸 봤어요. 전 행위예술을 하는 극단인 줄 알았어요. 가만히 서서 구경했는데, 알고 보니 환경단체의 지구사랑 캠페인이었어요. 왜 우린 그렇게 못해요. 제 생각에는, 노래와 춤으로 시민운동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지금보다 열배 이상 대중과 친밀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제 시민운동도 영상세대와 결합할 수 있어야죠. 뮤직비디오, 만화, 영화 등 다양한 표현수단을 갖춰 거부감 없는 시민운동 했으면 좋겠어요.”
실컷 얘기하고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영락없는 배우였다.셔터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변하는 풍부한 표정은 주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8월 개봉예정인 영화 <세이예스> 촬영을 마친 그는 곧 또 다른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사는 영화배우지만 환경단체 홍보대사임을 한시도 잊지 않는 그가 던진 마지막 한마디.
“하늘도 우리나라의 얼굴이에요. 파란 하늘 맑은 공기를 지킬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내년엔 월드컵도 연다는데, 자동차 매연 등으로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된다면 창피하잖아요. 깨끗한 하늘 만들기, 저도 여러분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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