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신고 좀 솔직히 합시다
2001/2001년 07월 :
2001/07/01 00:00
경찰 정보과 NGO담당 3인이 말하는 한국의 시민운동
“야, 이 OOO들아! 일 똑바로 해!”
지난 5월 31일 경찰은 삼성직원과 함께 참여연대에 대한 영장을 집행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그날 저녁, 남대문경찰서장은 남대문서를 항의 방문한 참여연대 활동가들의 뒤꽁무니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책상을 발로 걷어차며 일선 경찰관들을 윽박질렀단다. 예상치 않았던 ‘사고’에 대한 서장의 응징(?)이리라. 서울지방경찰청 김영목 감사 담당관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담당경찰관이던 송아무개 경사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으며 수사과장은 인사조치됐다”고 했다. 아마도 이 사건으로 그 동안 법 원칙보다 ‘관행’과 ‘편의적 발상’에 의존해오던 일부 경찰들은 경각심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사건을 전후한 탓인지 경찰들은 시민운동단체에서 나오는 매체와의 인터뷰를 꺼렸다. 무조건 바쁘다며 전화를 끊는가 하면, 읍소형으로 입장을 개진할 ‘위치’가 아니라고 청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경찰 내의 정보부서에서 일하며 NGO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말 한마디 던지는 게 꽤 조심스럽다는 것. 어렵사리 정보과 사회반 NGO담당 경찰 3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실명보다 익명으로 처리해주기를 부탁해 이 글에 거론되는 경찰관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임을 밝혀둔다.
서민생활 도움되는 시민운동 해야
1994년에 임관해 올해로 8년째 경찰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철민 경장. 그는 말문을 열기에 앞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민운동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전달했다. 법 테두리 안에서 의사를 전달하고 정부 정책결정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며 한국 사회에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 같아 속으로 박수를 보낼 때가 많다는 것. 그러나 간혹 시민단체가 ‘투사’로 돌변해 위법적 행동을 하며 과격시위를 벌일 때는 경찰관의 한 사람으로서 법 집행을 할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시민사회운동진영에 붐이 일고 있는 1인시위는 시위문화를 한 단계 선도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1인시위는 참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참여연대가 처음 시작해서 지금은 전국적으로 1인시위 바람이 불고 있더군요. 법을 어기지 않으면서도 목적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시위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변형되지만 않는다면 권장할 만한 시위형태라고 봅니다.”
그러나 최근 서울 종로경찰서 정광섭 서장은 “1인 릴레이 시위나 인간띠잇기 시위 등 변형된 1인시위는 위법이므로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형된 형태의 1인시위는 불허해야 한다는 입장에 다름 아닌 것. 이에 대해 김 경사는 “종로서장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더 이상 코멘트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무영 경찰청장의 ‘무최루탄선언’ 이후 집회문화는 많이 향상됐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는 최루탄을 쏘지 않아 몸싸움이 잦고 사상자가 더 많이 나니 차라리 최루탄을 쏘는 게 낫다고 말하지만 저는 절대로 반대입니다. 최루탄을 쏘면 무고한 시민들에게 피해가 가고, 시위는 더욱 격렬해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최루탄을 다시 쏘면 폭력시위가 난무하게 될 거예요.”
그가 시민운동에 대해 가장 강렬한 기억을 갖는 건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다. 400여 시민단체가 참여해 벌인 운동은 부패정치 퇴출이라는 측면에서 전국민이 공감할 만한 운동의 성과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6대 국회가 시민들에게 만족을 줄만큼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앞으로는 서민들이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운동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남겼다.
“일반시민들이 관심 갖고 참여할 수 있는 시민운동이 활발히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정치적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기보다 서민생활과 밀착된 경제문제를 좀…. 최근 민주노동당과 참여연대가 함께 벌이는 이자제한법 부활운동은 서민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좋은데, 앞으로는 세금문제도 좀 다뤄줬으면 좋겠어요. 세금이란 모름지기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내고, 못 버는 사람은 적게 내야 하는 게 아닌지…. 누진적용 방식의 세제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광범위한 의제를 설정하기보다 서민밀착형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는 그는 하루 10여 건씩 신고되는 집회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경찰업무가 벅차 정보관련 활동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너무 경찰업무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시민운동가들의 업무를 들어보면 만만치 않은 것 같다며 박봉을 받으면서도 맑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전달했다. 다만, 시민사회단체들은 경찰이 무최루탄선언을 하고, 여경들을 앞세워 립스틱라인을 정한 만큼 위법적인 집회는 삼가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책임한 시민운동은 신뢰를 저버린다”
“한 환경단체에서 집회신고를 하러 왔어요. 1000명이 모이는 집회를 한데요. 정말 그렇게 많이 모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걱정 말라는 거예요. 10명 모이는 집회에 경찰이 한 명 필요하다면 1000명 모이는 집회에는 한 100명 필요하다고 칩시다. 만일 그 집회에 500명만 모였다고 한다면 나머지 50명은 놀아야 하는 거예요. 인력낭비죠. 그날 집회에 몇 명 왔는지 아세요? 200명 왔어요. 그런 무책임한 발언은 하지 말아야죠.”
집회신고 때 이런 일을 자주 겪는다는 이진우 경장은 집회를 포함한 모든 활동에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 신뢰가 쌓인다고 말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다보면 시민운동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무너지게 된다고. 무엇보다 시민단체는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 준하는 입법활동을 하기 때문에 신중성과 책임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가 의약분업을 주장한 덕에 의약분업은 실시됐지만, 결국 의사들의 배만 불러지고 국민들에게는 불편만 가중됐는데,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국민들 앞에 나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 시민단체는 제5의 권부인 사회권력으로서 정부와 공권력만 비판하지 말고 객관적 시각에서 시민사회의 법 준수 여부도 감독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의 과잉진압만 문제삼지 말고, 집회에서 불법적 요소가 없었는지, 경찰이 먼저 시민의 안전을 위협했는지 제대로 가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경찰은 끊임없이 시민단체의 평화시위를 보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하지만 때로는 좀 답답합니다.”
그는 시민단체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1인시위’ 같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경찰과 시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만 때로는 위법적 행동으로 국민에게 실망을 준다며 시민운동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공정성에 기초한 활동을 벌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풀뿌리민주주의와 정치감시운동에 박차를
일선 경찰서에 근무하는 정보과 소속 박정훈 경장. 그는 앞으로 시민운동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재정적으로나 인적으로 ‘고난기’에 해당하지만 앞으로는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앞으로 시민운동이 더 발전하려면 풀뿌리 민주주의와 정치감시운동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후보를 내고 선거에 출마한다고 밝혔는데, 아직까지는 섣부른 감이 있고 지금은 오히려 지역운동에 열중할 때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아직 전국민적으로 NGO에 대해 명확한 인식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들로부터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좀더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말고 간접적으로 생활정치를 하면 안 돼요? 내 생각에는 그게 훨씬 영향력 있을 것 같은데….”
시민운동이 담당해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도 있었다. 교육문제부터 세금, 정치개혁과 지방자치 문제 등등.
불법과 탈법 행위는 법으로 다스리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경찰들이었지만, 그들 역시 동시대인으로서 세상의 변화를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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