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은 기본, 용도 불분명 수두룩
2001/2001년 06월 :
2001/06/01 00:00
정당국고보조금 유용백태
2000년 한 해 동안의 각 정당과 국회의원, 후원회 회계신고에 대한 공고가 지난 3월 초 시작돼 3개월 간 계속된다. 이 기간에는 자료의 열람 및 필사가 가능하다. 본지는 국민의 혈세로 지원되는 정당 국고보조금 사용실태를 몇 차례에 걸쳐 집중 보도할 계획이다. 이번 호엔 '어처구니없는 중앙당의 국고보조금 사용백태'를 고발한다. 편집자 주
여야 3당의 국고보조금 사용이 대부분 마구잡이식 혹은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된 ‘2000년도 국고보조금 및 정치자금 회계보고서’를 조사한 『세계일보』 등의 4월 초 보도를 살펴보자. 민주당은 정당법상 중앙당 유급사무원 수가 정당법의 규정보다 많자 그 중 47명을 정책위 전문위원으로 바꿔 국고보조금에서 임금을 지급했다. 한나라당은 한 꽃집에 화환값으로 1300만 원을 주었다고 보고했지만, 실제 이 가게에 보내진 돈은 1000만 원이었다. 자민련은 이한동 총재에게 지급하지도 않은 판공비 1억4000만 원을 지급했다고 보고했다. 또 속칭 ‘미아리 텍사스’로 불리는 윤락업소 이용료를 선관위 보고서에서는 당의 선전활동비로 처리했다. 정치자금을 유흥비로 사용한 것이다. 이는 모두 정당법 관련규정을 위반한 것이며 허위 보고에 해당하는 사례들이다.
현재 각 당은 선관위에 소명자료를 낸 상태지만 이미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논평을 내고 “선관위가 철저히 진상을 파헤쳐 검찰에 고발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아직 소명자료를 정리하고 검토하는 수준”이라고 답변했다.
탈법행위 혹은 도덕적 해이
국고보조금은 4대 정치자금(당비, 후원금, 기탁금, 국고보조금)의 하나로 정당의 공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음성적인 자금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국민 혈세로 지급되는 돈이다. 보조금의 항목은 인건비, 사무용 비품 및 소모품비, 공공요금, 정책개발비, 조직활동비, 선전비, 기타 정당활동에 소요되는 경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국고보조금 총액의 20% 이상을 정책개발비로 써야 한다.
문제는 각 당이 국고보조금을 나눠먹기식으로 지급하거나 허위보고 및 공금유용 등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책개발비만 하더라도 정책개발에 관계된 일체의 비용이라고 폭넓게 해석해 유흥비나 간식비, 버스요금 등으로 마구 쓰고 있다. 앞으로 선관위의 조사결과가 나와야겠지만, 이는 탈법행위이거나 최소한 ‘도덕적 해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언론에 발표된 내용 외에도 국고보조금의 용도외 사용으로 논란이 될 만한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기자 역시 중앙선관위를 찾아가 필사작업을 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해본 결과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몇 가지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민주당부터 먼저 살펴보자. 작년 12월 민주당 국고보조금 내역 중에는 공공요금 항목에 변호사선임 비용으로 1500만 원이 지출된 것으로 나와 있다. 변호사 선임비용이 공공요금? 납득되지 않는 회계처리다. 지난해 민주당은 창당기념식을 준비하며 소정의 기념품을 나눠줬는데 그 사건이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에 위반돼 고발됐다. 민주당은 이 사건을 맡은 변호사에게 1500만 원을 지불하고, 공공요금 항목에 끼워 넣은 것이다.
이뿐 아니다. 정책개발을 위해 아시아 회의에 참가한 비용내역에는 단 1명의 외국 호텔 숙박비가 669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증빙서류인 3장의 영수증 중 1장에는 보고된 사람과는 전혀 다른 이름이 올라 있었다.
조직활동비 중에는 서로 다른 이름이 씌어 있어야 할 영수증이 한 사람 이름으로 되어 있어 의심을 사기도 했다. 작년 9월에는 대의원대회를 열면서 안내질서유지비로 13개 시도지부 총무부장에게 총액 695만 원을 지불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13개의 자체 영수증을 각각 첨부했지만, 그 중 동일인 명의로 된 영수증 2장이 있다.
그 외 용처를 밝히지 않고 불투명하게 지급된 활동비도 많다. 작년 11월 말 정책조사, 정책입법활동 지원이라는 내용으로 119명의 의원이 1인당 200만 원씩 총 2억3800만 원을 받아갔다. 그러나 영수증이라고는 자체수령증이 전부이며, 더구나 날짜도 없고 무슨 내용으로 쓴 것인지는 더욱더 알 수 없다. 단지 의원 이름 옆에 도장만 찍혀 있을 뿐이다. 또 4·13 선거에서 낙선한 사람에게 조직활동비라는 명목으로 작년 12월 350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증빙서류가 무통장입금증으로 되어 있어 그 사용내역을 도저히 알 수 없다.
민주당의 경리 관계자는 “국고보조금 중 경상보조금은 선거비를 제외하고는 정당의 모든 활동비로 쓸 수 있다”며 무엇이 문제인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잡다한 부대비용이 모두 정책개발비로 둔갑
한나라당의 경우도 정책개발비를 용도와는 거리가 한참 먼 데 쓴 것으로 드러났다. 작년 10월 민원실 표지판 설치에 쓴 돈이 3800만원, 의원들의 연찬회 운동복으로 쓴 돈이 980만 원이다. 증빙서류의 부실도 문제다. 정당의 회계보고시 세금계산서, 카드전표 등 세법상 인정되는 증빙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지만 간이영수증이 제출된 경우도 많았다. 실례로 작년 6월 총재가 주재한 부산지역 간담회 때 관광버스 대여비로 60만 원을 정책개발비로 책정된 항목에서 빼내 썼으나 간이영수증만 있고 돈을 받은 사람의 날인조차 없다. ‘50만 원 이하의 지출은 영수증을 생략할 수 있다’는 정치자금 사무관리규칙을 악용한 흔적도 있다. 작년 9월 조직활동비로 버스 임대를 하루에 여섯 번이나 했다. 증빙서류도 간이영수증이었다. 사무실유지비 항목에는 엘리베이터 수리비가 있는데 작년 6, 9, 12월 세 번에 걸쳐 수리한 총액이 1340만 원이나 된다. 한 달에 두 번 나눠서 쓴 적도 있다. 기타경비로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작년 9월 한번에 48만 원을 쓴 적도 있다. 이것 또한 50만 원을 넘지 않아 영수증이 생략된 상태다.
한나라당 재정국 관계자는 “정책에 관련된 비용이라면 넓게 봐서 운영비도 포함시킬 수 있다”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현행법상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또 “정당이 정치활동을 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활동을 일일이 사례를 들며 규정지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민련은 유별나게 잡다한 부대비용 지출이 눈에 띄었다. 정책개발비 중 대부분이 각 전문위원실에서 보는 신문대금이나 생수 구입 혹은 생수기 소독 등의 잡비였다. 국고보조금의 기타경비 중에는 작년 추석에 각 당 주요인사들에게 선물한 내역도 있었다. 작년 10월말 모 백화점에서 종합선물세트를 사는 데 총 587만 원이나 썼다. 정치인들끼리 인사치레하는 데 국민의 혈세를 쓴 것이다. 기타항목의 설정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사사로이 쓴 것은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자민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생수나 신문 대금은 전반적인 운영비에 포함되는 것이며 정책개발비도 폭넓게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타경비를 선물비로 쓴 것에 대한 비판은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인정했다.
3당의 회계신고 내역을 보면 수많은 문제점이 드러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정치자금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면서 크게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다. 국고보조금의 ‘내 맘대로’ 사용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참여연대 김두수 시민감시국장은 “정치자금법 중에서 국고보조금 사용은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할 부분”이라며 “이를 위해 정치자금법 개정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국고보조금 등 정치자금에 대한 철저한 회계감사, 국고보조금 지출용도의 제한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득표수에 비례한 지급방식, 지급총액제한, 당원의 당비로 재정자립도 제고에 노력한 만큼 보조금을 주는 ‘매칭펀드제’ 도입도 주장하고 있다.
왜곡된 정치관행으로 인해 국민의 혈세가 정당의 쌈짓돈처럼 쓰이는 현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자금의 투명성과 적절한 사용, 엄격한 회계감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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