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밴드
나눔콘서트를 비롯, 시민사회단체가 주관하는 음악회에서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어 왠지 친근한 느낌을 주는 윤도현밴드.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등에 참여해 때론 파격적 노래를 불렀던 그들은 가끔 ‘운동권’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아직도 저희를 그렇게 보는 사람들이 있나요?”

이렇게 반문하면서도 윤도현 씨는 “사실 노래 경향이 요즘 좀 바뀌어서 변절했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지, 우리가 갖고 있는 성향은 그대로”라고 덧붙인다. 단지 예전에는 젊은 혈기에 어떤 얘기를 들으면 당장 “어, 열 받네. 이거 이러면 안 되지. 우리도 힘을 합쳐서 같이 부셔버려야지” 하는 생각으로 곡을 썼지만 이제는 두루 얘기를 듣고 충분한 사전지식을 가지려고 한단다. 나이가 들어 그런지 이제는 모두가 평화로운, 사랑 넘치는 세상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지기도 했다. 이전의 ‘투쟁’에 가까운 표현보다는 “답답하다”든가 “안타깝다”고 토로하게 된다고.

“지금의 저희 노래에서 예전에 비해 확실히 ‘사랑’이 더 많이 묻어나는 것 같아요. 그걸 변절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아무튼 옛날이나 지금이나 저희 생각은 똑같습니다.”

모순된 사회구조가 가슴을 타고 노래로 흘러

사실 이들의 음악 색깔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듯하다. 국내 주류 음악계에 사랑, 이별타령이 아닌 삶의 문제, 사회문제를 노래하는 가수나 밴드가 너무 없기 때문 아닌가. 10대에서 장년층까지, 랩에서 트로트까지 사랑 아니면 노래가 안 되는 것 같은 천편일률적인 대중음악계의 흐름은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이상할 정도다.

그 흐름에 의식적으로 휩쓸리지 않으려고 하는 배경을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윤도현밴드는 쉽게 “우리가 다들 가난한 집 출신이라서”라고 답하기도 한다. 기타 연주자인 박태희 씨는 서울 돈암동 달동네, 드러머 김진원 씨는 강원도 속초 출신이고 지난 해 새로 한 식구가 된 막내 허준 씨도 “험하게 자랐다”며 웃는다.

윤씨가 경기도 파주의 세탁소집 아들이라는 건 조금 알려진 사실. 그나마 몇 해 전 거듭된 수해로 폭삭 망했단다. 아버지 혼자 심심풀이로 세탁소는 계속하지만, 그 지역의 경기가 침체하다 못해 상권 자체가 죽어버렸단다. 수해당시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있었지만 시작되자마자 다 잡혀가 제각각 다른 곳에 ‘버려’졌다. 순박한 동네 아저씨들은 험한 꼴을 당하고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듣더니 기가 질린 얼굴로 데모는 더 못하겠다며 한숨만 쉬어댔다. 그때 윤씨는 울컥 치미는 분노와 함께 이전에 읽은 박노해의 시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노래가 ‘이 땅에 살기 위하여’다. 물론 1997년 발표 즉시 방송 금지곡이 돼 제대로 방송도 못 탔지만.

이렇게 모순된 사회구조보다는 그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윤씨의 가슴을 움직일 때 노래가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다. 운동권 아니냐는 질문에 황당해하는 이유도 바로 자신은 그저 ‘사람들’을 보기 때문이다. 노래 ‘철문을 열어’도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선생에 대한 기사와 TV프로그램을 보고 저절로 흐르던 눈물이 빚어냈다. ‘처음처럼’은 연습실에 걸려 있던 신영복 교수의 글귀가 어느 날 가슴을 저며 만든 노래란다.

그러나 재미있어 불러본 ‘먼훗날’이나 ‘너를 보내며’ 같은 발라드풍 노래가 방송을 자주 타면서 이들의 대중적 인기를 높여온 것도 사실이다. 인터뷰 도중 “우리 발라드 가수예요”라고 장난스레 말했지만, 그 말에서는 오히려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방송용 타이틀’에는 신경 쓰지 말고 우직하게 라이브에만 승부를 걸자는 생각에는 변함없다. 1년에 200일 정도씩 계속되는 라이브 공연 일정 중에 ‘자유’나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과 같은 ‘공짜’ 초청공연도 심심찮게 끼여 있다.

“예전에는 우리도 돈 없어 죽겠는데 공짜 공연이 너무 많아서 가끔은 속상할 때도 있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돈 안 되는 장르로 알려진 록의 한길을 걸어오느라 배고픔을 물리도록 겪은 그들이다. 김진원 씨는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공연 한번 하고, 친형들이 쥐어주는 용돈으로 생활하면서 잠도 녹음실을 전전하며 잤다고 한다. ‘우리가 돈을 좀 더 벌면 이런 초청공연을 정말 즐겁게 할텐데…’라고 생각했던 그때를 잊지 않고 이제는 취지만 좋다면 어느 무대든 기꺼이 함께 하리라 생각한다고.

김씨는 “다른 록밴드에 비해 우리가 돈을 좀 벌긴 했지만 욕심을 부리자면 끝이 없죠. 그래도 이제 베풀 수 있는 위치가 됐다는 데 은근히 자부심도 생겨요. 공연 다니면서 어렵지만 꿋꿋하게 생활하시는 분들 만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고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기획했던 기획사가 이들과 함께 활동하며 이들을 ‘오늘의 자리’로 이끌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그 횟수가 그리 많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너무도 당연히 와야 하는 것처럼 요구하는 곳에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고도 말한다.

시민운동가들 일에 치여 사랑 잃을까 걱정

“그래도 지난 나눔콘서트 때는 주최한 아름다운재단측과 사전에 충분히 얘기가 됐고, 음향에서부터 대기실, 당일 관객 반응까지 공연의 앞뒤가 다 좋았다”고 모두 만족감을 표했다. 마지막으로 시민운동진영에 한마디 던진다면? 먼저 윤도현 씨.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틀린 걸 보고 틀렸다고 말한다는 게, 저도 해보니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목소리를 높이는 만큼 나중에 당하는(?) 게 있던데. 제가 평소에도 ‘노동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사실 사회 전체도 위에서만 뚝딱댄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아요. 시민운동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죠. 힘껏 박수를 쳐드리고 싶어요. 그렇지만 힘들다면 잠깐 한 걸음 물러나도 괜찮을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하면서도 계속하는 사람을 봤는데 좀 안타까워서 말이죠.”

다음 김진원 씨. “저도 서울시민으로서, 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다보면 불만스러운 일이 참 많아요. 그런 불만을 가끔은 막 발산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은데 언론을 보면 나 대신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시민운동 하는 분들이요. 그러면 너무 기쁘죠.”

인터뷰 내내 조용히 있던 박태희, 허준 두 사람은 이번에도 조용히 같은 생각이라고만 하는데 다시 윤도현 씨가 말을 받는다.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게 사랑 같아요. 시민운동 하시는 분들도 일에 치이다 보면 사랑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늘 사람들을 대할 때 사랑으로 편안하게 대하시길 감히 부탁드릴게요.”

윤도현밴드는 요즘 외부활동을 줄이고 한창 새 음반을 녹음중이다. 6월중 작업을 마치면 곧 새 노래로 팬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이번 음반에도 “정신은 언더지만 갈 길은 오버”라는 이들의 생각이 녹아 있을 것이다. ‘다양성’과 함께 자신들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지키면서. 이들이 ‘또 하나의 발라드 밴드’에 머물지 않도록 하는 길, 그 길은 시민운동이 가야 할 길과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한혜영 본지 객원기자
2001/06/01 00:00 2001/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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