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민학살

2001/2001년 06월 : 2001/06/01 00:00
진상규명없이 야만의 시대는 끝나지 않는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본지는 한국전쟁 51년 간 아물지 않는 상흔, 양민학살의 증언채록을 시작한다. 유족들의 인권문제 뿐만 아니라 국가도덕성과 인권의 관점에서 양민학살문제를 다시 보기 위해서이다. 이로부터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진정코 산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지난 2000년 9월 7일 창립대회를 가졌다. 한국전쟁 이후 50년, 4·19 직후 결성되었던 전국피학살자유족회 활동 이후 40년 만에 학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학살은 얼마나 있었는가

정부는 지난 1996년 거창과 산청·함양 사건을 해결하기 위하여 ‘거창사건 등’의 특별법을 제정했고, 작년에는 제주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개별 피해지역의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해당 유족들과 관련 단체들의 끊임없는 탄원과 호소, 그리고 지속적인 활동의 결과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전후한 민간인 학살은 제주와 거창지역뿐 아니라 남한 전 지역에서 발생했으며, 그 규모만 하더라도 수십만 명에서 100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살은 그 유형에서도 매우 다양하다. 이미 한국전쟁 전인 1949년 12월 24일 문경 석달마을에서는 빨치산을 소탕한다는 이유로 어린아이와 부녀자, 노약자 87명이 국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했다. 그리고 개전 초기에는 보도연맹원을 조직적으로 검거하여 경찰서로 이송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행방불명으로 처리되거나 부음 소식만 전해져 오고 있다. 한국전쟁 직전 보도연맹원은 33만여 명, 그들 중 20~25만 명은 집단학살 당한 것으로 각종 증언과 기록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전쟁중에는 미군에 의해 학살이 심했는데, 노근리 사건을 비롯하여 익산역 오폭사건 등과 같이 미군기에 의한 주민들의 희생이 많았다. 9·28 수복 이후 공비토벌 작전지역이었던 함평을 비롯하여 나주, 고창, 순창, 남원, 장성 등 여러 지역에서 학살이 일어났다. 또한 우익청년단과 경찰에 의해 조직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는데 강화의 옥계갯벌과 고양 금정굴에서 사건의 실체를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전쟁은 형무소 재소자들의 목숨까지도 앗아가고 말았다. 대전 형무소를 비롯하여 대구, 전주, 마산, 진주, 목포, 부산 등 수원 이남의 전국 각 형무소에서 기결수와 미결수를 학살하거나 바다에 수장했다.

이처럼 광범위한 학살 중에서 미군에 의한 사건으로 민원이 제기된 지역이나 피해사례는 60여 건이 밝혀진 상태이고, 국군에 의한 학살피해는 신고 지역이 20건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민원으로 문제가 제기되지 못했고,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피해까지 종합한다면 그 수치는 아주 많을 것이다. 지금도 위원회에는 경기도 남양주 등지의 보도연맹원 학살사건과 파주, 충북, 장성 등지의 양민학살이 계속해서 접수되고 있다.

통합특별법 제정과 전국적인 피해 조사 움직임

작년 11월 25일 위원회는 민간인 학살문제 해결을 위한 토론회를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대표 김원웅 의원)과 공동주최했다.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장완익 변호사는 제주 4·3, 거창사건 등의 개별 특별법으로 다른 지역의 학살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통합입법을 주장했다. 특히 거창사건 등의 특별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50여 년 전의 사건을 진상규명하기에는 미비한 점이 너무 많다고 했다. 또한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간인 학살문제가 왜 해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주제발표를 했다. 토론에서 김동춘 교수는 이 문제가 유족들이나 일부 희생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도덕성과 인권의 문제이고, 유족들의 알권리 차원에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학살의 피해실태를 조사하고,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해줘야 하며,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위원회에서는 작년의 토론회에 이어 지역의 유족회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회 청원운동을 전개하여 특별입법과 국회진상조사특별위원회 구성을 재촉하였다. 문경을 비롯하여 고양 금정굴, 함평 등지에서는 국회가 바뀔 때마다 청원을 제출하고 있으며, 위원회에서는 통합입법청원을 제출하여 민간인 학살문제의 구체적인 정책결정을 국회에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 4월 30일 국회에서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의원들이 모임을 만들었고, 오는 5월 22일 통합특별법에 대한 국회공청회를 통해서 민간인 학살문제 해결의 큰 실마리를 풀어나가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위원회에서는 전쟁 당시 법적 절차 없이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 대량학살(genocide)의 진상규명을 위해 전국적인 피해실태를 조사, 연구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현재 여순사건 실태조사팀을 중심으로 전남 광주지역과 대구 경북지역, 그리고 경남 마산에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지역의 실태조사를 긴밀히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의 공유를 통해서 여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학살의 새로운 유형과 전국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울러 지역의 피해규모와 실태보고를 한데 묶어 발표하고, 민간인 학살문제 해결의 여론 조성을 위해서 오는 6월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관심 있는 학자들과 함께 학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인데 제노사이드의 사회적·정치적 의미와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한국의 민간인 학살을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학살당시의 생존자와 목격자, 그리고 2차 피해자 등에 대한 연구를 증언과 심층면접을 통해서 하고자 한다. 특히 전쟁 피해자, 학살 피해자에 대한 연구는 현재까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에 학계에서도 중요한 연구주제가 될 것이다.

양민학살의 과거 명백히 밝혀야

이와 더불어 행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정보공개사업을 벌여 현재 민간인 학살과 관련하여 공개되지 않은 문건을 발굴할 예정이다. 그 동안 학살과 관련된 대부분의 기록은 국방부와 경찰 등 권력기관과 연계되어 있어 자료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스스로도 정보공개의 필요성를 인정하고 있으며, 더 이상 학살 사실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정책적인 판단을 해야만 할 때이다. 이미 1960년 4·19직후 작성되었던 4대 국회 양민학살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양민학살 조사보고서가 밝혀져 당시의 진상을 부분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보다 많은 정보가 공개된다면 유족들이 학수고대하고 있듯이 어디서 어떻게 생사를 달리하게 되었는지, 누구에 의해서 무엇 때문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는지 명백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은 비단 유족들의 맺힌 한을 풀어내는 것뿐 아니라 다시는 이같은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지 않도록 법 제도의 새로운 구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전제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심화를 가져올 것이며, 국가폭력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될 것이다. 사회는 어떤 가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미래에 대한 희망은 현재에 이른 과거를 기억하는 그 지점에서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한성훈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진상규명위원회 연구원
2001/06/01 00:00 2001/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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