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오너들의 모임
2001/2001년 06월 :
2001/06/01 00:00
양팔 장애인에게 양발 자동차를
부지런히 운전대를 돌려야 하는 심한 고갯길이나 유턴 지점에서도 팔이 운전대에 올려져 있지 않은 앞차 운전자를 본 일이 있는지. 그때 ‘저 사람은 뭐야?’ 하고 너무 놀라지 마시라.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의 ‘손 같은 발’은 열심히 핸들 장치를 돌리고 있을 테니까.
‘발로 운전을 해?’ 상상이 안 된다면 잠시 영화 〈나의 왼발〉을 떠올려 보시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한쪽 발만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던 영화의 주인공. 그처럼 뇌성마비, 사고로 인한 절단장애, 선천적 발육장애 등으로 남들과 같이 양팔과 손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은 발을 손처럼 사용해 밥을 먹고 컴퓨터 마우스를 작동시킨다. 그리고 이제 운전도 한다.
이렇게 어쩔 수 없는 신체 조건으로 ‘발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오너들’은 현재 국내에 단 3명. 다른 1명은 운전면허는 땄지만 아직 차를 마련하지 못했다. 물론 모두 적법한 절차를 거쳐 면허를 땄다. 1998년 12월 양팔 장애인에 대한 운전면허 취득을 허용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도대체 발로 어떻게 운전을 할 수 있느냐’는 의심 가득한 시선이 쏟아지는 가운데 도로교통법이 개정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멀고도 험난했다. 그 험한 길을 거쳐 오늘의 결실을 맺기까지의 일등공신이 바로 박재현 씨(26세·대구대 일어일문학과 4년)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버스, 택시 요금을 직접 낼 수 없으니…”
현재 ‘발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오너들의 모임’(이하 발자모 myhome.netsgo.com/dsvdpjh) 회장을 맡고 있는 박씨는 출생 직후 앓은 뇌성마비로 하필이면 두 팔과 손에 장애가 집중됐다. 눈물겨운 노력으로 장애의 상당 부분을 극복했지만 배변이나 세면, 단추 채우기 같은 일은 여전히 남의 손을 빌려 해결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게임하는 재미에 빠져든 컴퓨터는 발만으로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 발자모 홈페이지를 손수 만들어냈을 정도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자 결정적인 문제가 생겼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차로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 그러나 버스나 택시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은 그에게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손잡이를 잡지 못하니까 자리에 앉지 못하면 버스가 급정거했을 때 크게 다칠 위험이 있는 거죠. 거기다 제 주머니에서 요금을 좀 꺼내서 내달라고 부탁하면 운전기사나 다른 승객들이 아예 요금을 안 받거나 대신 내버리는 거예요. 그 때의 낭패감이란….”
아버지가 서둘러 운전을 배우고 차를 마련하는 것으로 박씨의 등하교 문제는 해결됐지만, 졸업 이후까지 생각할 때 언제까지나 아버지에게만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중학교 시절 한 선생님이 보여준 비디오 가운데 스웨덴의 한 장애인이 발로 운전을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러나 운전면허 시험장을 찾았을 때 자신이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모르고 있었는지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 운전능력측정기는 양손으로 움직이게 돼 있었고, 신체검사를 받으러 들어선 그를 보고 의사는 “다음 분”이라고 외쳤다.
박씨는 자신의 양발 운동능력을 믿었기에 면허취득을 거부당한 이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전공인 일본어 실력을 발휘해 인터넷 자료를 뒤졌다. 일본에서는 양팔 장애인의 면허취득이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버지와 함께 일본으로 날아갔다. 일본의 양발 운전자를 만나 그 차에 타보고는 양발 운전에 대한 자신감을 한층 굳혔다.
자신의 의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 그는 일본에서의 체험이 담긴 비디오를 한 방송사 시사프로그램에 보냈고, 그 결과 방송사측의 일본 현지취재에 동행하게 됐다. 취재 과정에서 장애 정도가 그와 비슷한 한 일본 여성이 능숙하게 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박씨도 그 차로 시운전을 해보면서 운전능력이 충분함을 입증해 보이기도 했다. 그 내용이 방송된 후 장애인인 이성재 의원을 비롯해 22명의 국회의원들이 양팔장애인 운전면허 취득요건 완화를 뼈대로 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98년 12월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었다.
그러나 법률 개정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양발운전자의 신체 특성에 맞춘 차량 개조도 이에 못지 않게 까다로운 일이었다. 전례가 없었기에 박씨는 장애인용 차량 개조 전문가를 수소문해 두 발로 핸들과 브레이크, 가속기까지 한 번에 작동시킬 수 있는 풋콘트롤러 제작을 의뢰했고, 98년 성공했다. 그러나 관할구청과 자동차검사소에서는 구조변경한 차량에 대해선 안전성을 검사할 기준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승인을 오늘내일 미루기만 했다. 결국 서울의 양팔(절단)장애인 김인화 씨가 지난해 11월 박씨보다 먼저 승인을 받아냈고, 박씨도 그 해 12월 승인을 받았다. 이후 박씨는 12월 28일 필기시험 합격, 29일 기능시험에 99점으로 합격한 데 이어 올 1월 3일 도로주행시험까지 가볍게 통과했다.
20여 년 전 사고로 두 팔을 자르고 의수를 단 채 생활해온 김인화 씨도 1월 30일 박씨의 뒤를 이어 면허증을 손에 쥐었다. 김씨는 곧바로 차를 몰고 도로에 나섰는데 그때 느낀 자유로움이란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제가 손이 없으니까 뭘 들고 다닐 수가 없었는데 이젠 문제 없죠.” 이제 안전하고 큼지막한 운송수단을 갖게 된 그는 얼마 전부터 의류 도매업자에게 물건을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부산의 발자모 회원 마하문 씨도 운전을 하고 난 뒤 부인을 차로 출퇴근시키는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 최근에는 일자리도 나타나 곧 자기 힘으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들떠 있기도 하다.
경북 봉화에 사는 변광면 씨는 사고로 양팔에 장애를 갖기 전 운전을 해본 경험이 있어 박재현 씨의 차를 빌려 쉽게 면허를 땄다. 변씨는 발자모 모임을 통해 무엇보다도 삶의 자세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제껏 어머니의 도움에 의지해 집안에서만 지내던 그였지만 같은 처지의 김인화 씨가 차를 운전하며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삶에 대한 의지와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운전에 대한 희망은 삶에 대한 희망”
현재 등록된 발자모 회원은 모두 13명. 아직 면허가 없는 발자모 회원들은 다들 하루라도 빨리 운전면허따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런데 양팔 장애인이 운전면허를 따려면 일단 배기량 2000cc 이상의 중형차량을 마련해서 최저 300만 원의 비용을 들여 개조해야 가능하다. 면허 취득은 허용하지만 자기 차량으로 기능·도로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양팔 장애인의 면허 취득을 가로막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래서 발자모 회원들은 전국의 면허시험장 가운데 단 한 곳에서라도 양발운전자들의 기능시험 응시용 개조 차량을 갖춰주기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박재현 씨와 김인화 씨의 차 뒷부분에는 ‘양발운전’이라는 글자와 표시가 선명하고 크게 박혀 있다. 양발로 운전한다는 사실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겠지만 그 자체가 일반인의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발자모는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전국 7개 도시 일주행사를 갖는다. 집안에만 갇혀 생활하는 많은 양팔 장애인들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양발 운전자라도 남들과 똑같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박재현 씨는 “직업도 없이 집안에서 가족들에 의지해 살아가는 양팔 장애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런 그들에게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삶에 대한 희망”이라고 재현 씨는 거듭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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