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NGO 담당 요원 3인이 말하는 한국의 시민운동
2001/2001년 06월 :
2001/06/01 00:00
요즘 이슈파이팅 어째 좀 …
본지는 이번 호부터 세 차례 동안 '공권력이 본 시민운동'을 연재한다. 대표적 권력기구인 국가정보원 ·경찰 ·검찰은 한국 시민운동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바라보는지 심층 취재해본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은 성역이다. 서울 세곡동에 있다고 하지만 서울시내 어떤 지도에도 국정원의 위치는 나와 있지 않다. 물론 이정표도 없다. 안보전시관 등 정문에서 본관까지 사진촬영도 금지돼 있다. 무엇보다 철저히 신분을 숨기고 정보활동을 하는 국정원 직원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가끔 주요 시민단체로 전화해 최근 동향을 묻는 직원들이 있다. 기자는 김대중정부 시절에도 ‘사찰’의 끈을 놓지 않는 국정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시민운동은 어떤 것일까. 먼저 국정원 공보관실에 전화를 걸었다. 공개적인 인터뷰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담당 공보관은 “국정원 직원 복무규정상 공식적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개별 접촉을 통한 시도만 남은 셈이다. 기자는 수차례 통화를 시도한 끝에 국정원 내부에서 NGO를 담당하는 직원 4명과 어렵사리 연결될 수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개인적으로도 시민운동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사양했다. 다른 한 명은 직접 만나기는 어렵지만, 전화로 의견은 개진할 수 있다고 했다. 나머지 두 명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박상철 씨(가명)는 무엇보다 NGO담당 업계에서 3D(국정원 내부에서는 ‘말 안 통하는 단체’로 한총련 다음에 참여연대를 꼽고 있었다)로 알려진 참여연대 발행 매체에서 연락이 왔다는 점에 끌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신분상 비밀유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 가명으로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지면에 소개되는 국정원 직원들은 모두 가명임을 밝혀둔다.
극한투쟁보다 부드러운 시민운동을?
5월 10일 정오. 자유시민연대(공동의장 정기승) 회원 7∼8명은 안국역 1번출구 앞에서 “주장만 있고, 책임은 없는 게 시민단체인가?”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참여연대 규탄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새로운 풍경이다.
같은 날 기자는 환경단체를 ‘목표’로 하는 국정원 요원 이철수 씨를 만났다. 그는 “시민단체가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더 많이 생겨나 잘못된 정책의 방향을 바꾸고 시민들에게 도움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각 분야에 시민단체가 뿌리내리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투명해질 게 아니냐는 것. 풀뿌리 주민자치는 물론 기업·정부·공무원의 부조리와 부정부패가 없어지는 것만 해도 우리사회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국정원 내부에는 시민단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국민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는데 왜 싫어하느냐”고 반문하며 “보수우익세력들이 말하는 것처럼 시민운동은 체제전복세력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시민단체들이 여전히 재야시절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어떤 정책에 대해 입장이 정해지면 그 반대의견을 주장하는 사람은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면 일반시민들이 접근하기 부담스러워지죠. 특히 환경분야의 경우 후손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자는 취지에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극한투쟁 방식을 택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겁니다. 선명성, 극단성을 보이면 대중과 유리된다고 봐요.”
그는 한 환경단체의 홈페이지에 실린 회원의 글을 읽고 현재 시민단체가 제대로 못하는 부분이 뭔지 눈치챘다고 말했다. 회원의 글을 요약하면 이렇다.
“지방회원이다. 환경에 관심 많아 그 동안 300만 원의 회비를 냈다. 지방에 있어 직접 참여는 못하지만 일 잘하는 게 기특하고 고마워 행사가 있다기에 직접 서울까지 찾아갔다. 그런데 지방에서 온 회원보다 소위 힘깨나 쓰는 정치인·유명인사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섭섭하다. 회원이 설 자리가 없었다.”
짤막한 글이지만 그는 지금 한국 시민단체의 현주소가 이쯤 아닐까 싶단다. 정부를 상대로 한 정책 개발 혹은 저지운동을 한 축으로 한 애드보커시 활동과 소박하고 따뜻한 시민들 간의 연대라는 양 다리에서 정확한 자리를 못 찾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이 관심을 갖고 있는 대목은 “왜 환경단체는 다국적기업 감시활동을 하지 않느냐?”란다.
“맥도날드, KFC… 국내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기업들의 환경파괴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환경단체들은 이에 대해 손놓고 있어요. 혹시 다국적기업으로부터 협찬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할 정도예요. 참여연대도 예전에는 국제연대에서 다국적기업 감시활동을 열심히 한 것 같은데 최근에는 아무런 활동을 안 하는 것 같더군요.”
시민단체 동향파악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 하고 있고, 도·감청에 대해서는 ‘묻지 말라’는 주문을 했다. 시민단체의 가장 신기하고 놀라운 부분은 활동가들이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요. 먹고는 살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자기희생을 한다 해도 너무 봉급이 박하다고 생각해요. 참여연대는 정부 돈 기업 돈 안 받는다,천명했으니 더 어려울 것 아니에요. 또 어떤 환경운동가는 200일 동안 생태조사 하며 산 속을 다닌다고 하대요? 그럼 가족관계는 어떻게 유지하는지 정말 궁금해요.”
, 새로운 이슈 개발하라!
‘시민단체는 국가를 이끌어가는 우수집단’이다! 김태우 씨는 governance이론을 들며 한국사회는 이미 ‘정부-기업-NGO’의 삼두마차가 이끌어가는 시대로 돌입한 게 아니냐고 했다. 기자와 만나는 날 아침에도 회사(국정원 직원들은 국정원을 ‘회사’라고 부른다)에서 ‘참여연대 앞 자유시민연대 시위’에 대해 토론했는데, 이에 대한 대체적인 평가는 우익단체에서 시민단체를 비난할수록 시민단체의 인기는 높아질 것으로 모아졌다고 했다.
“견제와 균형 원리로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슈에 따라 찬반토론을 하며 시민사회 내부에서 자율정화될 걸로 생각해요. 그런데 정작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 문제보다 이동전화 요금인하라든가, 삼성 이재용 씨에 대한 과세 등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너무 앞서가며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내다보니 공무원 사회에서는 불만이 많은 것 같다고 전했다.
최근 한 우익단체가 일부 단체를 사회주의세력이라고 공격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묻자 “설득력이 없는 주장 같다”고 일축했다.
“참여연대만 하더라도 회원이 1만3000명이잖아요. 이 사람들은 대부분 건전한 시민들이에요. 이런 종류의 양식있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규범화된 행동 이외에 일탈하는 걸 싫어해요. 그렇기 때문에 일부 보수단체의 지적이 옳다면 시민들이 그 단체를 탈퇴하겠죠. 그런데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정부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아마추어’ 운운하는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고. 다만 시민단체들은 ‘열린 사회’를 표방하느니만큼 정부관계자들을 만나는 걸 꺼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국가와 국가의 대화가 중단되면 전쟁이 나는 거잖아요. 시민단체도 너무 문을 닫으려 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두루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특히 저희들이 찾아가면 상종 못할 사람처럼 취급 하지 말고 공개된 범위에서는 만날 수 있는게 아니냐, 그렇게 생각해요.”
무엇보다 최근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면 과거의 주장이 되풀이되고 있어 ‘시민단체가 예전만큼 새로운 이슈를 개발하지 못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시민운동가들이 아이디어의 빈곤상태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판단이 든다고. 국민들이 모르고 있는 부분을 밝혀내 우리사회의 소금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박상철 씨는 시민단체의 이미지는 “젊고 깨끗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우리사회의 난제들을 시민운동가들이 나서서 풀어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울 따름이라고. 그는 자신을 ‘참여연대 팬’이라고 소개하며 이런저런 내용을 늘어놓았는데, 놀랍게도 그는 참여연대 간부회의 내용을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취재할 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웃음’으로 화답할 뿐이었다.
기자가 만난 국정원 NGO담당 요원들은 한국시민운동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기관차인 만큼 장원 총장 사건이나 최열 총장의 사외이사 문제처럼 부정적 사건이 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시민단체 정보수집 활동의 내용, 방법, 그들이 최근 취합중인 시민단체 주요동향 등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간첩잡기’ 위한 유일한 법으로서 폐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어렵사리 만난 그들은 시민운동에 대한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냈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부한다는 내용도 적지 않았다. 국정원마저 기대가 큰 시민운동, 어깨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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