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은 우리 식당에 오라!
2001/2001년 06월 :
2001/06/01 00:00
국경없는 식당의 차별화된 음식가격 … 가난한 사람은 3천원, 부자는 7천원
신자유주의 폭풍 속에서 독일 복지관련 NGO들은 어떤 활동을 펼치고 있을까. 공공기관과 민간기구의 유기적 협조 속에서 비교적 잘 운영되고 있는 독일 사회복지 NGO현장을 직접 찾았다. AWO, 국경없는식당, 노숙자신문 『아스팔트』 등은 독일의 '틈새' 사회복지현장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축이었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후원으로 독일 NGO를 방문한 한 활동가로부터 독일 NGO 소식을 들어보자. 본지는 앞으로 3회간 독일 NGO방문기를 연재할 계획이다.
독일 사회복지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공공기관과 민간기구의 유기적인 협조관계이다. 민간기구 또한 잘 짜인 시스템 안에서 운영되면서, 정당과 교회, 시민사회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사회복지 민간기구는 노동과 복지(AWO), 평등복지연합(PARIT TISCHE)과 독일적십자사, 그리고 종교계에서 운영하는 카리타스(DCV), 디아코니(DW), 유대교복지연합(ZWST) 등이 있다. 대부분의 사회복지 관련 단체는 이 6개의 복지기관이 운영하거나 여기에 가입되어 있다.
다양한 서비스와 복지프로그램 제공
AWO(Arbeiterwohlfahrt, 노동과 복지)는 1919년 사회민주당 내의 사회복지위원회로 출발하여, 노동계급운동을 벌이면서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구호사업 등을 수행했다. 1933년 히틀러의 제3제국 기간 동안 탄압을 받고 폐쇄되었으나 2차대전 이후 재건되어 현재 65만 회원과 8만여 명의 자원활동가, 14만 명의 직원을 둔 독일 최대의 민간복지기구이다.
양로원과 유치원, 방과후 놀이방을 운영하고, 노인들이 가정에서 혼자 살 수 있도록 간병인 지원, 여가 프로그램의 개발, 장보기와 음식 배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외에도 청소년과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사회복지 예산의 증액과 각종 보고서 발간 등 정책적인 활동도 벌인다. 일종의 거대한 사회복지시설연합체로 보아도 될 것이다.
인구 58만 명의 에센시에서 AWO는 1만25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양로원(각 120여 명 생활) 여섯 군데와 15곳의 유치원을 운영하고, 청소년과 노인 등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에센시에 고용된 인원만 해도 1200명에 달한다. 회원들은 월 3000원(5마르크) 정도의 회비를 납부하고, 각종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물론 회비수입은 일부이며, 나머지는 정부와 민간기구의 지원으로 운영된다.
PARITAT(DER PARI TISCHE, 평등복지연합)는 1919년 ‘평등’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이 기구는 AWO와 다른 종교적인 복지기구에 속하지 않은, 대다수 독립적인 사회복지 시설과 NGO의 연합조직이다. 시설과 단체들은 PARITAT에 가입해 회비를 내고 사무국으로부터 재정, 물품 공동구매, 시설운영의 전문적인 상담, 기부금의 모집, 홍보,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활동 등의 지원을 받는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에 있는 2800여 개 단체와 뒤셀도르프시의 126개 단체가 가입되어 있는데, 주와 시마다 주요 단체의 대표자로 운영위원회가 구성된다.
뒤셀도르프시의 경우, PARITAT는 유치원 등 탁아시설의 운영에 관한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 독일 사회의 주요 문제인 청소년에 대한 상담·지원 업무, 양로원과 노인의 응급시설, 치매치료, 장애인 시설 등의 운영에 따른 지원, 실업자의 자활과 재활,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원과 후견역할을 하고, 각종 이슈에 대한 워크숍 등을 진행한다.
지역과 시설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복지서비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유치원의 경우, 일반적으로 학부모는 60DM, 우리 돈으로 3만6000원 가량의 보육료를 부담하지만 이것은 전체 비용의 2%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유치원의 운영과 임대료, 교사 임금 대부분을 주나 시정부가 보조한다. 부모와 정부가 부담하는 비용으로 운영하기 힘들 경우, PARITAT 같은 상급단체로부터 단체 운영과 관련해 전문적인 상담과 홍보, 기금마련 등의 지원을 받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여러 세기를 거쳐 다져진 독일의 안정된 복지시스템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식당에서 신문까지, 섬세한 복지문화 돋보여
국경없는식당(Grenzenlos)은 뒤셀도르프시 크론프리젠 거리 한 귀퉁이에 자리한 생생한 복지서비스가 제공되는 재미난 식당이다. 여기서는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가난한 사람은 3000원을, 부자는 7000원을 낸다. 화려한 경력의 요리사 덕에 음식은 매우 수준이 높았다. 일반 식당에서 한 끼에 9000원 이상이 보통이니 부자에게도 부담스러운 식탁은 아니다. 맥주를 팔고 있고, 가격이 비싸지도 않지만 술은 한 달에 고작 1박스가 팔릴 정도. 합석은 기본이고, 식탁을 매개로 실업급여나 각종 복지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한 대화가 이뤄진다.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것이 부끄럽거나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자신감을 얻고 자활을 위한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 독일에서도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급여를 지급받는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고 종류도 많아 이에 대한 정보제공이 필요한 것은 우리와 마찬가지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토마스 교수는 저소득층 주변에 존재하는 인종적 배타성을 극복하고 다국적인 문화를 인정하도록 하는 색다른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매주 한 번씩 각 나라의 문화그룹이나 자원활동가들이 각국의 전통음식을 만들어, 전통복장으로 서빙을 하고, 전통음악을 들려주는 문화공간으로 식당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신문을 사 주세요. 반은 신문을 만들고, 반은 노숙자인 제가 집을 마련하기 위해 쓸 겁니다. 2마르크 40페니입니다.”
독일 시내 전철역 주변에서 허름한 차림의 사람이 신문을 판다. 『fiftyfifty』. 이 신문에는 노숙자들이나 실업문제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생생한 체험이 실려 있다. 뒤셀도르프에만 100여 명의 노숙자가 이 신문을 팔고, 뒤셀도르프 인근에서 5만 부 정도가 판매된다. 베를린의 『MOTZ』, 『Obdachlos』도 같은 방식으로 판매된다. ‘아스팔트’는 전문 편집위원회를 구성해서 이 신문을 만들어, 노숙자들에게 배급한다. 판매하는 노숙자는 마약이나 술에 취해서는 안되며, 아스팔트에서 제공하는 신분증을 소지해야 한다.
뒤셀도르프의 ‘아스팔트’는 프란시스코 형제회의 도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형제회는 『fiftyfifty』 이외에 노인복지시설과 노숙자를 위한 주거시설과 재활교육장을 운영하고 있다. 주거시설은 방 4개와 목욕탕, 부엌으로 구성된 완전한 주거시설과 임시숙소로 나뉘어 있었다. 각자의 방이 제공되는 주거시설에 18∼24개월 동안 기거하면서 노숙기간 동안 잃어버린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회복하고, 재활교육장에서 교육을 받거나 국가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재활교육장에서는 25명에게 인쇄, 정원사, 가구운송, 칠, 도배 등의 교육을 한다. 교육은 12∼18개월 정도 이루어지는데, 일정한 교육기간이 끝나면 직접 현장에 나가 일을 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실제로 주문을 받아 수익을 남기고 있었다. 3년 동안 150∼200명 정도가 재활교육을 마치고 노동청을 통해 일자리를 알선받았다고 한다.
‘식탁’이라는 뜻의 ‘타펠’ 이름은 노숙자 급식과 마약중독자 보호, 모자가정에 대한 지원을 하는 단체로 독일 전역에 있는 250여 개의 급식소와 복지시설에 부식을 제공하고 있다. 뉴욕시의 노숙자 급식소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94년경에 5명의 적극적인 자원활동가들이 큰 식당이나 도매시장의 남는 음식을 모아다가 노숙자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제 타펠은 그 규모와 나눠주는 음식의 양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다. 뒤셀도르프 안에만 28개의 급식소가 있다. 타펠은 이러한 급식소와 국경없는 식당과 같은 여러 사회복지단체에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독일식 사회복지, 시민참여가 원동력
국가복지시스템이 아무리 잘 갖춰져 있더라도 지원을 받는 것이 자존심 상하거나 그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길거리에 나온 노숙자들을 지원하는 민간단체들은 국가복지시스템을 보완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들과의 대화와 지원을 꺼려하지 않는다. 이런 국가와 민간단체들의 총합이 우리가 말하는 ‘독일식 사회복지’를 의미할 것이다.
독일사회는 통일 이후 여러 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정부 재정에서 복지와 사회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지만, 실업률은 10%, 지역에 따라 40%에 달한다. 의료보험과 연금제도도 후퇴를 거듭하고 있으며, 청년실업으로 인한 청소년의 문제, 동구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독일사회의 사회적 비용을 계속해서 증가시키고 있다.
이런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독일식 사회복지시스템을 유지하는 원동력은 수세기를 거듭하며 국가와 정당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움직이고 있는 민간복지기구들과 단체, 그리고 이를 지탱하고 있는 시민사회의 참여, 자원활동 조직이다.
통독 이후 도시 전역에 건설장비가 높이 솟아 있는 이곳과 우리도 고민의 출발점이 같을 수 있다. 독일 사회가 이주노동자의 문제와 청년실업, 사회보험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풀리지 않은 숙제는 여전히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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