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없는 참여 이끄는 게 으뜸
지역에서 주민운동을 펼치고 있는 풀뿌리 현장활동가들은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만큼이나 다양한 고민들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어떻게든 그 해답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체된 고민이란 없으며, 어디에선가 그런 고민들을 해결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까닭에 풀뿌리 현장활동가들의 고민을 단 몇 가지로 정리할 수는 없으며, 고민 자체를 평면적으로 나열할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현장에서 주민운동을 벌이고 있는 운동가들이 한번쯤은 맞닥뜨렸을 법한 문제들 중 주요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과, 이를 해결해 나간 과정을 동시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 사례들은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각자가 느끼는 고민들에 대해 현장에서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나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다만, 고민의 내용과 해결 과정을 보다 명확하게 소개하고자 약간 각색하거나 상이한 지역에서 나타난 고민과 해결과정을 의도적으로 결합해 보기는 했다.

넘어야 할 산, 집단이기주의

맨 처음 빈민지역에 들어가 살면서 주민운동을 할 때 ‘일단 주민들 속에서 살면서 그들과 똑같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는 선배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자꾸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꾸미려 하니 주민들이 잘 모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주민들을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주민들과 만나기 위해 공부방을 개설하였다. 공부방을 개설하면 최소한 공부방에 나오는 아이들의 어머니라도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성공한 듯이 보였으나, 곧 한계에 부딪혔다. 그것은 주민들이 자신의 자녀들 때문에 어머니 모임에 나오기는 하지만, 또 그런 관계로 공부방에서 주관하는 각종 모임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동원’의 의미를 넘어서지 못하였다. 그러다 아이들이 자라 공부방에 나오지 않게 되면, 조직적인 관계도 끝이 나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번에는 공부방으로 주민들을 부르지 않고 좀더 적극적으로 만나기로 했다. 직접 주민들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매일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공부방에 아이를 맡겼던 주민을 만나게 되었고, 이 사람으로부터 당시 동네의 현안인 재개발에 관련된 질문을 받게 되었다. 드디어 뭔가 주민들과 함께 일을 도모할 ‘껀수’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그 문제에 대해 함께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을 좀 모아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자, 다음 날 이 분은 20명이 넘는 주민들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그로부터 얼마 후 시에서 쓰레기 소각장을 건설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 했다. 이에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나와 반대데모를 격렬하게 벌였다. 당시 주민들의 집단행동은 인근의 다른 지역에 소각장을 지으라는 식의 ‘집단이기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외부의 지원은 그리 많지 않았고, 시에서도 공권력을 동원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했다. 그러자 주민들의 참여열기가 조금씩 식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현장활동가는 소각장을 이곳에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소각장의 입지로 예정되어 있는 ○○산의 생태적 가치를 조사해 발표할 필요가 있음을 주민들에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후 주민들과 함께 ○○산 생태탐사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점차로 소각장이라는 개별 문제를 넘어선 전반적인 환경정책과 주민들의 친환경적 삶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산 생태탐사 프로그램은 ‘자연학교’라는 이름으로 지속되었다. 이는 무엇보다 이 생태탐사 프로그램이 매우 재미있게 진행되었고, 또 참여한 주민들이 점차 교사로 재활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이러한 자신의 위상변화에 무척 고무되어 지속적인 흥미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주민들은 단순히 환경 및 생태에 대한 인식의 전환뿐 아니라, 지역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 즉, 자연학교의 교사로 자신들의 처지가 바뀌면서 이들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삶의 보람과 기쁨을 이 활동을 통해 얻게 되었다.

어떻게 주민참여를 이끌 것이냐

동네 놀이터는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그런데도 이 지역의 어린이 놀이터는 쓰레기 집하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주민들과 함께 이 공간을 어린이들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구청방문과 지루한 설득 과정을 거치고, 주민들의 참여독려 등 여러 고비를 넘겨 드디어 놀이터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후 주민들은 이러한 활동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주민모임을 보다 확대하고 활동의 내용도 다양화하는 데에 동의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주민들의 태도가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즉, 이들은 계속해서 활동가들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었다. 기실 어린이 놀이터의 제 기능을 살리는 과정에서도 기획 등을 활동가가 주도적으로 수행하였고, 주민들은 그러한 기획대로 단순한 참여를 했을 뿐이었다.

활동가는 놀이터 살리기의 경험을 살려, 지역의 문제들이 무엇인지 조사할 것을 제안하였다. 즉, 동네를 다닐 때마다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주민들이 쉴 수 있는 녹지공간이나 공원 등의 문제에 대해 찾아오도록 한 다음, 동네 지도를 그리게 하고, 그 지도에 문제가 있는 곳을 표시하게 하였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졌고, 또 그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에 자연스럽고도 적극적으로 결합하게 되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목적의식만 강조하는 딱딱한 분위기로 진행했다면, 결코 주민들의 참여가 활발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놀이를 하듯 재미있게 공동작업을 한 결과 모임 자체에 대한 주민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그 결과 주민들은 모임에 대한 애정을 갖기 시작했고, 또한 자신들이 발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논의를 거쳐 그 방법들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활동가는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하는 일을 맡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사는 지역이라 오랫동안 공부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받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작업으로 지역주민 간의 공동체적인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동네잔치를 계획하였다. 동네잔치가 명실공히 주민 모두의 잔치가 되기 위해서는 동네의 다양한 주민조직들이 모두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 아래, 관변단체 등을 돌아다니며 함께 잔치를 준비하자고 제안하고 설득하였다. 동사무소를 비롯한 대다수는 그 뜻에 흔쾌히 동의하고 함께 준비하자는 제안에 승낙도 했다.

주민공동체와 관변단체와의 관계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관변단체들이 하나둘씩 발을 빼기 시작했다. 동장의 설명에 의하면,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동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지인데, 이 사람과 사전에 상의를 하지 않아 무척 화가 나 있으며,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참여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공부방에서는 부랴부랴 새마을금고 이사장을 찾아가 협조를 부탁했다. 그럼에도 화가 잘 풀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이 사람은 항상 동네 일에 대해 제일 먼저 보고를 받고 또한 어른으로 대접받아왔는데, 이번에는 그러한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이다. 결국 이사장에게 어른으로서의 예우를 깍듯이 갖추고, 행사에서도 주최측의 어른으로 대우를 하겠다는 언질을 간접적으로 주고 나서야 애초의 계획대로 잔치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이호 한국도시연구소 주민운동 실장
2001/06/01 00:00 2001/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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