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승 한국소정회 이사장님께

저는 월간 『참여사회』 2000년 1월호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릴레이 편지’를 보면서, 매호마다 이 편지가 과연 언제 어느 곳의 누구에게 어떤 내용으로 이어져갈 것인지 늘 궁금해하던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면에 대해 특별한 입장이나 의견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잡지를 받아볼 때마다 그저 ‘참 괜찮은 메시지가 실렸구나’ 혹은 ‘참 괜찮은 분에게 연결되었구나’ 하는 생각만을 되풀이하던 평범한 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릴레이 편지 속에 담겨져 있는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 간의 대화내용에서 비록 그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분들의 일상생활과 활동 속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던 진솔한 면면을 발견해 가는 것이 한 달에 한 번씩 느끼는 개인적 즐거움 중의 하나였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은 지난 4월호에 김칠준 변호사께서 이사장님께 릴레이 편지를 보내셨을 때까지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많고 많은 주변 인사 가운데서 저도 잘 알고 있는 이사장님을 다음 수신자로 선정하신 김칠준 변호사의 인간미에 대해서 새삼스레 고개를 끄덕이면서 릴레이 편지의 독자로서 고마움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5월호를 먼저 받아본 어느 동료교수에게서 제가 ‘릴레이 편지’ 수신자로 되어있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부끄러움과 당혹감 때문에 어쩔 줄 몰라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자격 미달자로서 느끼는 부끄러움은 저로 하여금 갖가지 핑계를 끌어다대며 답신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급기야 해당지면이 공란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는 협박에 가까운 원고독촉을 받은 오늘 이 시간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펜을 들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군요.

김동승 이사장님. 무릇 교수는 일상적으로 교육, 연구, 사회봉사라는 3가지 중의 어느 하나에는 관련될 수밖에 없는 직업인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그가 교수라면 이와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은 직업상 수행해야 할 책임과 의무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고, 그런 일을 성실하고 훌륭하게 해내야 한다는 것은 교수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자세나 직업 윤리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이런 상식적인 측면에서 제가 다른 사람의 주목의 대상이 된다거나 (이사장님께서 편지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저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는 식의 평가를 들은 적도, 또 들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감히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추측하건대, 과거 정치적으로 어둡기만 했던 시절,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회원으로서, 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으로서, 이 땅의 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서 애쓰시던 교수님들과 초·중등 선생님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분들을 조금 도왔을 뿐입니다. 그리고 근래에 이르러서는 ‘참여연대’와 ‘경기복지시민연대’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을 돕는 시늉을 하고 있는 제 겉모습이, 이사장님께 마치 사회복지분야에서 연구와 교육과 실천을 솔선수범하는 교수인 것처럼 비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대목에 이르게 되면,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주체하기 힘든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래도 만에 하나, 너무나 평범하기만 한 저 같은 사람에 대해서, 김 이사장님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또 있다면, 그것은 제 자신이 진정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 만큼 합당한 모습을 갖추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이 사회의 적지 않은 교수들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기인한 반사이익일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아무리 둘러봐도 참다운 모습을 갖춘 구석이라곤 좀체 찾아보기 힘든 추악한 세태의 덕택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사회전체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성장해온 기업에게서 받은 44억 원도 부족해서 온갖 교묘한 탈세방법을 동원하여 불려만든 4조 원의 재산을 세금 한푼 내지 않은 채 대물림하는 재벌집안을 보면서, 30여 년 교직생활 끝에 받은 퇴직금 전액을 복지관 건립을 위해서 아낌없이 털어 내놓은 김동승 이사장님의 바보 같은(?) 처신이 한없이 아름답게만 여겨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01년 5월 17일 임종대 드림(한신대 교수)
임종대 한신대 교수
2001/06/01 00:00 2001/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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