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와 개방이 부른 신영국병
2001/2001년 02월 :
2001/02/01 00:00
출판이 한 나라의 사회적 흐름을 보여 주는 단면이라고 한다면 대처는 어떤 의미에서든 여전히 영국을 지배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그에 대해 새로 출판되는 책은 줄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출판물들이 그 이름을 달고 나와 있다. 대처 시대의 영국경제뿐 아니라 대처와 사회복지, 대처와 영국정치, 심지어 대처정책하의 가족제도, 대처와 여성문제까지 안 다뤄지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대처는 지금도 영국사회 전 분야에 개입하고 있다.
대처의 경제정책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자유화, 민영화, 개방화이다. 현재 세계경제가 그 원리를 교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대처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남들보다 먼저 영국사회를 그 원리로 몰아갔고 이를 통해 이른바 ‘영국병’을 고쳤기 때문에 대처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정치 경제적 명의로 대접받고 있다.
실제로 대처가 영국사회에 남긴 공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지자들이 주장하듯이 그의 정책은 70년대 영국의 비효율적 부문을 상당부분 해소했고, 그 결과로 외국인 투자도 증가했다. 90년대 영국경제가 미국과 함께 높은 성장을 구가한 것은 대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노동당의 경제정책도 대처 때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전반적인 거시정책에 반감을 표시한 노조를 여하히 다룰 수 있는 존재로 변화시켰다. 국영기업을 대대적으로 민영화한 것이나 비효율적 제조업을 정리 또는 해외에 매각한 것도 그의 성과이다. 수치상 실업률도 현저하게 낮아졌다. 런던의 금융가인 ‘시티’를 유럽 금융의 중심으로 거듭나게 한 것 역시 규제를 완화하고 개방을 단행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작고 강한 정부’라는 매력적인 조어를 남겼다.
승객 목숨 담보로 효율 높일 셈이냐
그러나 이 같은 경제적 효율이 영국사회에 남긴 결과는 외형적 성과만큼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대처와 관련된 출판내용도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많다.
대처의 정책은 노동당의 주장대로 빈부의 격차를 넓혔다. 외형성장과 달리 산업간 불균형도 심화됐다. 금융은 비대해진 반면 제조업은 쭈그러들었다. 이는 제조업 지역의 침체와 금융지역인 런던의 영화로 나타났다. 이를 영국에서는 남북문제라고 한다. 남쪽의 금융, 첨단산업 지역과 북부의 전통적 제조업 지역의 경제적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낮아졌어도 고용불안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사회문제로 연결된다. 범죄율이 높아지고 부랑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경찰 수를 늘리기로 한 노동당의 공약은 이러한 사회현상을 반영한다. 런던정경대(LSE)의 교수 존 그레이 같은 이는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작은 정부가 결국 큰 정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부가 사회적 문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치안이나 질서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지출항목이 끝없이 등장하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어떤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는 이미 수없이 지적돼 왔으며, 영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영국에서 나타난 현상은 이러한 정책의 부산물로 비롯된 사회 문제가 아니라 정책 자체가 실패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 동안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아왔던 철도의 민영화이다. 민영화된 영국의 철도는 현재 25개의 기차 운영회사와 한 개의 철도 관리회사로 나뉘어 있다. 민영화에 대한 회의가 표출된 계기는 잦은 대형사고이다. 지난 99년에는 런던 외곽의 패팅턴 역에서 열차가 충돌해 3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지난해에는 핫필드라는 곳에서 탈선사고로 4명이 죽고 3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철도 관리회사의 대표는 “현재의 철도체계가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효율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 승객들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했다. “그렇다면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냐”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됐다. 차제에 철도 민영화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대두됐고, 민영화 이후 불편을 겪던 이용객들이 이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철도 민영화의 문제는 민영화 시행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수익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한계 지역의 서비스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정부의 보조금으로 어느 정도 완화되기는 했지만 적지 않은 승객들이 새로운 철도체계를 불신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 같은 문제는 민영화 추진 당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다. 구간과 노선을 분할 운영토록 한 민영화는 큰 독점을 작은 독점으로 나누는 변화를 가져 왔을 뿐, 동일 구간 내의 경쟁과 서비스 향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일정 구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승객들의 항의와 규제기관의 감시를 통해 개선될지언정 경쟁을 통해 자동 조정되지는 않았다.
민영화 이후 나타난 신호체계의 혼선과 부실한 정비는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등장했다. 서로 다른 운용회사가 겹치는 구간에서 각 기차가 서로 진행을 하다가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99년 패팅턴의 사고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 발생했다. 이 같은 요인 때문에 영국은 유럽에서도 철도 사고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국제철도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10억km당 사망자 수가 이탈리아의 0.10명, 프랑스의 0.27명, 독일의 0.31명에 비해 영국은 0.3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영화 이후 철도요금이 상승한 것도 승객들에게는 불만 요인이다. 더구나 핫필드의 사고 이후 이 같은 불만은 극단적으로 증폭됐다. 요금인상에도 불구하고 철도의 보수 관리가 민영화 이후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민영화를 추진한 보수당조차 자신들의 철도 민영화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현재 제시되고 있는 유력한 대안은 철도 관리회사를 공기업으로 만들어 정부가 종합적인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차피 정부가 철도보수를 위해 50억 파운드(약 10조 원) 가량의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절차상으로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는 결국 재정자금은 고스란히 들어가면서 안전문제만 야기한 실패작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업체 철수를 협상카드로
대처의 또 하나 공헌으로 평가되는 것이 자유화, 개방화에 따른 외국인 투자유치이다. 특히 경쟁력이 떨어진 것으로 평가됐던 제조업 부문에 외국인 투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영국의 제조업은 해외자금으로 소생한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실제로 자동차, 기계, 전자 등 제조업 전반에 영국기업은 거의 없다. 부품산업에 영국의 중소업체들이 연결돼 생존하고 있지만 완성품 시장에서는 세계 유명업체들만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개방의 논리는 ‘자국민의 고용을 늘리면 우리기업’이라는 생각을 배경에 깔고 있다. 한때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던 개방의 논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들어올 때는 그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나갈 때는 얻은 만큼 국민경제가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영국경제는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외국인 투자업체들이 여러 차례 목소리를 높여 뉴스의 초점으로 등장하곤 했다. 그 하나는 파운드 강세와 정부 보조금 문제였다. 지난해 내내 영국의 파운드화는 강세를 보인 반면, 다른 유럽국가들이 사용하는 단일통화 유로는 약세를 나타냈다. 이로 인해 영국의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이에 대해 영국기업들은 대체로 금리를 낮춰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업체들은 투자철수를 협상카드로 내밀었다. 정부가 경쟁력을 확보해 주지 않으면 나가겠다고 이들은 으름장을 놓았다. 영국 최대의 자동차 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닛산이 포문을 열었고, 포드, 혼다, 도시바, 캐터필러 등 대부분의 외국업체들이 동조했다. 닛산은 심지어 연말까지 발생할 손실 위험에 대해 정부가 보장을 해야만 투자선을 다른 지역으로 돌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제인들 사이에서 ‘땅 짚고 헤엄치려는 것이냐,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냐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등 강한 항의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아쉬운 쪽은 외국인 투자업체들이 아니었다. 결국 블레어 총리가 닛산 사장을 만나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가 수습됐다. 투자액수가 클수록 현지 정부에 대한 협상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려 준 셈이다.
외국인 투자업체들의 움직임은 지난해 주권침해 문제까지 불러일으켰다. 논란은 영국의 유로(EURO)가입을 둘러싸고 발생했다(영국은 현재 유럽연합(EU)에는 가입해 있어도 단일통화에는 참여하고 있지 않다).
외국인 투자업체들은 영국정부에 유로 가입을 종용했다. 영국이 유로에 가입하면 강한 파운드의 문제가 자동 해소되는 것은 물론 평상시의 거래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영국정부에 유로 가입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영국정부가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자 지난해에는 철수를 거론하면서 유로 가입을 압박했다. 절반 이상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는 유로 가입에 대해 이들은 실력행사를 수단으로 시위를 벌였다. 물론 노동당 정부는 유로 가입을 기본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들의 주장에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보수당의 친미 노선과 달리 상당수 인사들도 유로 가입을 선호한다. 기자의 생각에도 경제적으로는 유로에 가입하는 것이 영국에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당장 보이는 경제적 이해 외에 파운드를 포기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국민적 자존심의 문제, ‘유로시민’을 받아들일 때 생길 수 있는 정체성의 혼란 등 적지 않은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득실과 무관하게 영국인들이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파운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거주자 이상의 주권을 행사하고 있고, 주권자들은 이를 불쾌해하면서 극단적인 의견으로 대응하고 있다.
주권침해당하면서도 투자자 달래
올초 외국인 투자와 관련해 우스꽝스런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외국인 업체들 대부분이 나간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토요타가 투자를 확대(약 300명 정도 고용증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영국의 투자환경이 나쁘지 않음을 입증한 것이라며 대서특필했고, 영국정부의 웬만한 인사들도 모두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정작 도요타측에서는 투자환경이 개선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규모의 경제성 측면에서 설비를 확대하는 것이 현재의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국외자인 기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애써 자위하는 서글픈 안간힘으로 느껴졌다. 철수하겠다는 규모는 천 명, 만 명 단위인데 불과 몇백 명 규모의 투자를 늘린다는 소식에 상황이 반전된 양 반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영국 제조업의 현황인 것이다.
이쯤에서 한국을 생각하게 된다. 대처의 정책이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한 즈음에 한국은 영국을 배우려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 전반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철도, 전력, 가스 등 적어도 기간망을 보유한 산업의 민영화는 영국 철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민영화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전력산업이 최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는 네트워크 산업을 단기 효율 개념으로 민영화할 경우 기업 자체가 장기적으로 비효율을 낳게 될 뿐 아니라 연관 산업 전반에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이다.
모름지기 후발자의 이점은 선발자의 실패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화려해 보였던 외국인 투자가 영국사회에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는 사실도 이런 측면에서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그나마 영국은 주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개도국에 비해서는 투자자를 달랠 여유가 있는 편이다. 자체적으로 작지 않은 시장을 보유하고 있고, 기술 수준도 높은 편이다. 급하면 해외의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보조금을 지급할 만한 외교력도 있다.
그 어느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한국이 이러한 정책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물론 세계경제의 요구가 거세게 몰아 닥치는 상황에서 변방의 작은 변수에 불과한 한국이 그 모든 것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환상은 갖지 말아야 한다. 선발자의 고민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빨리 증폭돼 나타날 것인지를 재가면서 방어책을 강구해야 한다.
설득과 협력이냐 대결이냐
이 같은 정책의 부작용 외에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처의 정책을 수용할 때 한국은 자연스럽게 영국사회의 선택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70년대 중후반 노조가 맹위를 떨친 것은 비단 영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68년 노동자 학생 대투쟁의 영향으로 프랑스도 그랬고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설득과 협조체제를 강화하면서 사회 구성원 간 공존과 번영을 모색했다. 이들 국가의 현재 여건은 모든 면에서 영국보다 못하지 않다.
유럽 국가 중에 유독 영국만이 대결을 택했고, 일방의 승리를 이끌어 냈다. 기술수준이 이들 국가보다 특별히 우수하지 않은 영국에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외국인 투자가 이루어지는 비결도 이와 관련이 있다. 노동권이 약해지고 노동비용이 싸졌기 때문이다. 복지비를 포함한 영국의 노동비용은 대략 독일의 7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일방이 승리한 결과였고, 대처의 선택이었다. 많은 영국 노동자들이 ‘시티’의 화려함을 먼 나라 얘기로 알고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 역시 대처가 선택한 영국의 미래였다. 이들에게 ‘시티’는 범접 못할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다.
한국은 현재 이러한 앞날을 구상하고 있는 것일까. 방법론은 철학적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책적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방법론이 어떤 미래로 귀결될 것인지 연장선을 그어 보아야 한다. 인터넷이 초를 다투는 시대에 한국에는 아직 영국의 결과가 도달하지 않은 것일까. 화합보다는 대결을 선택한 대처, 그나마 정책적 실패까지 드러나고 있는 영국의 모습을 한국은 배우려 하는 것일까.
대처의 경제정책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자유화, 민영화, 개방화이다. 현재 세계경제가 그 원리를 교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대처는 선견지명이 있었던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남들보다 먼저 영국사회를 그 원리로 몰아갔고 이를 통해 이른바 ‘영국병’을 고쳤기 때문에 대처는 일부 사람들로부터 정치 경제적 명의로 대접받고 있다.
실제로 대처가 영국사회에 남긴 공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지자들이 주장하듯이 그의 정책은 70년대 영국의 비효율적 부문을 상당부분 해소했고, 그 결과로 외국인 투자도 증가했다. 90년대 영국경제가 미국과 함께 높은 성장을 구가한 것은 대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노동당의 경제정책도 대처 때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전반적인 거시정책에 반감을 표시한 노조를 여하히 다룰 수 있는 존재로 변화시켰다. 국영기업을 대대적으로 민영화한 것이나 비효율적 제조업을 정리 또는 해외에 매각한 것도 그의 성과이다. 수치상 실업률도 현저하게 낮아졌다. 런던의 금융가인 ‘시티’를 유럽 금융의 중심으로 거듭나게 한 것 역시 규제를 완화하고 개방을 단행한 결과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작고 강한 정부’라는 매력적인 조어를 남겼다.
승객 목숨 담보로 효율 높일 셈이냐
그러나 이 같은 경제적 효율이 영국사회에 남긴 결과는 외형적 성과만큼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대처와 관련된 출판내용도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많다.
대처의 정책은 노동당의 주장대로 빈부의 격차를 넓혔다. 외형성장과 달리 산업간 불균형도 심화됐다. 금융은 비대해진 반면 제조업은 쭈그러들었다. 이는 제조업 지역의 침체와 금융지역인 런던의 영화로 나타났다. 이를 영국에서는 남북문제라고 한다. 남쪽의 금융, 첨단산업 지역과 북부의 전통적 제조업 지역의 경제적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은 낮아졌어도 고용불안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게 사회문제로 연결된다. 범죄율이 높아지고 부랑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최근 경찰 수를 늘리기로 한 노동당의 공약은 이러한 사회현상을 반영한다. 런던정경대(LSE)의 교수 존 그레이 같은 이는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작은 정부가 결국 큰 정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부가 사회적 문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치안이나 질서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지출항목이 끝없이 등장하게 될 것이란 얘기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어떤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는 이미 수없이 지적돼 왔으며, 영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영국에서 나타난 현상은 이러한 정책의 부산물로 비롯된 사회 문제가 아니라 정책 자체가 실패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 동안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받아왔던 철도의 민영화이다. 민영화된 영국의 철도는 현재 25개의 기차 운영회사와 한 개의 철도 관리회사로 나뉘어 있다. 민영화에 대한 회의가 표출된 계기는 잦은 대형사고이다. 지난 99년에는 런던 외곽의 패팅턴 역에서 열차가 충돌해 30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지난해에는 핫필드라는 곳에서 탈선사고로 4명이 죽고 3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철도 관리회사의 대표는 “현재의 철도체계가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효율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 승객들의 불안감을 더욱 자극했다. “그렇다면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효율을 높이자는 것이냐”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됐다. 차제에 철도 민영화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대두됐고, 민영화 이후 불편을 겪던 이용객들이 이에 호응하기 시작했다.
철도 민영화의 문제는 민영화 시행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수익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한계 지역의 서비스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정부의 보조금으로 어느 정도 완화되기는 했지만 적지 않은 승객들이 새로운 철도체계를 불신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 같은 문제는 민영화 추진 당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다. 구간과 노선을 분할 운영토록 한 민영화는 큰 독점을 작은 독점으로 나누는 변화를 가져 왔을 뿐, 동일 구간 내의 경쟁과 서비스 향상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일정 구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승객들의 항의와 규제기관의 감시를 통해 개선될지언정 경쟁을 통해 자동 조정되지는 않았다.
민영화 이후 나타난 신호체계의 혼선과 부실한 정비는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요인으로 등장했다. 서로 다른 운용회사가 겹치는 구간에서 각 기차가 서로 진행을 하다가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99년 패팅턴의 사고는 이러한 문제로 인해 발생했다. 이 같은 요인 때문에 영국은 유럽에서도 철도 사고율이 높은 편에 속한다. 국제철도연합의 조사에 따르면 10억km당 사망자 수가 이탈리아의 0.10명, 프랑스의 0.27명, 독일의 0.31명에 비해 영국은 0.3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민영화 이후 철도요금이 상승한 것도 승객들에게는 불만 요인이다. 더구나 핫필드의 사고 이후 이 같은 불만은 극단적으로 증폭됐다. 요금인상에도 불구하고 철도의 보수 관리가 민영화 이후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민영화를 추진한 보수당조차 자신들의 철도 민영화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현재 제시되고 있는 유력한 대안은 철도 관리회사를 공기업으로 만들어 정부가 종합적인 통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차피 정부가 철도보수를 위해 50억 파운드(약 10조 원) 가량의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절차상으로도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철도 민영화는 결국 재정자금은 고스란히 들어가면서 안전문제만 야기한 실패작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투자업체 철수를 협상카드로
대처의 또 하나 공헌으로 평가되는 것이 자유화, 개방화에 따른 외국인 투자유치이다. 특히 경쟁력이 떨어진 것으로 평가됐던 제조업 부문에 외국인 투자가 대거 유입되면서 영국의 제조업은 해외자금으로 소생한 대표적 사례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실제로 자동차, 기계, 전자 등 제조업 전반에 영국기업은 거의 없다. 부품산업에 영국의 중소업체들이 연결돼 생존하고 있지만 완성품 시장에서는 세계 유명업체들만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개방의 논리는 ‘자국민의 고용을 늘리면 우리기업’이라는 생각을 배경에 깔고 있다. 한때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던 개방의 논리와 유사하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들어올 때는 그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나갈 때는 얻은 만큼 국민경제가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영국경제는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외국인 투자업체들이 여러 차례 목소리를 높여 뉴스의 초점으로 등장하곤 했다. 그 하나는 파운드 강세와 정부 보조금 문제였다. 지난해 내내 영국의 파운드화는 강세를 보인 반면, 다른 유럽국가들이 사용하는 단일통화 유로는 약세를 나타냈다. 이로 인해 영국의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이에 대해 영국기업들은 대체로 금리를 낮춰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업체들은 투자철수를 협상카드로 내밀었다. 정부가 경쟁력을 확보해 주지 않으면 나가겠다고 이들은 으름장을 놓았다. 영국 최대의 자동차 업체를 보유하고 있는 닛산이 포문을 열었고, 포드, 혼다, 도시바, 캐터필러 등 대부분의 외국업체들이 동조했다. 닛산은 심지어 연말까지 발생할 손실 위험에 대해 정부가 보장을 해야만 투자선을 다른 지역으로 돌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제인들 사이에서 ‘땅 짚고 헤엄치려는 것이냐,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냐 하지 않겠다는 것이냐’는 등 강한 항의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아쉬운 쪽은 외국인 투자업체들이 아니었다. 결국 블레어 총리가 닛산 사장을 만나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가 수습됐다. 투자액수가 클수록 현지 정부에 대한 협상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려 준 셈이다.
외국인 투자업체들의 움직임은 지난해 주권침해 문제까지 불러일으켰다. 논란은 영국의 유로(EURO)가입을 둘러싸고 발생했다(영국은 현재 유럽연합(EU)에는 가입해 있어도 단일통화에는 참여하고 있지 않다).
외국인 투자업체들은 영국정부에 유로 가입을 종용했다. 영국이 유로에 가입하면 강한 파운드의 문제가 자동 해소되는 것은 물론 평상시의 거래비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영국정부에 유로 가입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영국정부가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자 지난해에는 철수를 거론하면서 유로 가입을 압박했다. 절반 이상의 국민이 반대하고 있는 유로 가입에 대해 이들은 실력행사를 수단으로 시위를 벌였다. 물론 노동당 정부는 유로 가입을 기본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들의 주장에 싫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보수당의 친미 노선과 달리 상당수 인사들도 유로 가입을 선호한다. 기자의 생각에도 경제적으로는 유로에 가입하는 것이 영국에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 당장 보이는 경제적 이해 외에 파운드를 포기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국민적 자존심의 문제, ‘유로시민’을 받아들일 때 생길 수 있는 정체성의 혼란 등 적지 않은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득실과 무관하게 영국인들이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파운드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분위기는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거주자 이상의 주권을 행사하고 있고, 주권자들은 이를 불쾌해하면서 극단적인 의견으로 대응하고 있다.
주권침해당하면서도 투자자 달래
올초 외국인 투자와 관련해 우스꽝스런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외국인 업체들 대부분이 나간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토요타가 투자를 확대(약 300명 정도 고용증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영국의 투자환경이 나쁘지 않음을 입증한 것이라며 대서특필했고, 영국정부의 웬만한 인사들도 모두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정작 도요타측에서는 투자환경이 개선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규모의 경제성 측면에서 설비를 확대하는 것이 현재의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밝혔다. 국외자인 기자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애써 자위하는 서글픈 안간힘으로 느껴졌다. 철수하겠다는 규모는 천 명, 만 명 단위인데 불과 몇백 명 규모의 투자를 늘린다는 소식에 상황이 반전된 양 반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영국 제조업의 현황인 것이다.
이쯤에서 한국을 생각하게 된다. 대처의 정책이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한 즈음에 한국은 영국을 배우려하고 있다. 공기업 민영화 전반에 대해서는 좀더 자세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철도, 전력, 가스 등 적어도 기간망을 보유한 산업의 민영화는 영국 철도가 안고 있는 문제를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민영화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전력산업이 최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는 네트워크 산업을 단기 효율 개념으로 민영화할 경우 기업 자체가 장기적으로 비효율을 낳게 될 뿐 아니라 연관 산업 전반에 심각한 해를 끼치게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사례이다.
모름지기 후발자의 이점은 선발자의 실패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화려해 보였던 외국인 투자가 영국사회에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는 사실도 이런 측면에서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그나마 영국은 주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개도국에 비해서는 투자자를 달랠 여유가 있는 편이다. 자체적으로 작지 않은 시장을 보유하고 있고, 기술 수준도 높은 편이다. 급하면 해외의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보조금을 지급할 만한 외교력도 있다.
그 어느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한국이 이러한 정책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물론 세계경제의 요구가 거세게 몰아 닥치는 상황에서 변방의 작은 변수에 불과한 한국이 그 모든 것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환상은 갖지 말아야 한다. 선발자의 고민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빨리 증폭돼 나타날 것인지를 재가면서 방어책을 강구해야 한다.
설득과 협력이냐 대결이냐
이 같은 정책의 부작용 외에 더 근본적인 문제는 대처의 정책을 수용할 때 한국은 자연스럽게 영국사회의 선택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70년대 중후반 노조가 맹위를 떨친 것은 비단 영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68년 노동자 학생 대투쟁의 영향으로 프랑스도 그랬고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설득과 협조체제를 강화하면서 사회 구성원 간 공존과 번영을 모색했다. 이들 국가의 현재 여건은 모든 면에서 영국보다 못하지 않다.
유럽 국가 중에 유독 영국만이 대결을 택했고, 일방의 승리를 이끌어 냈다. 기술수준이 이들 국가보다 특별히 우수하지 않은 영국에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외국인 투자가 이루어지는 비결도 이와 관련이 있다. 노동권이 약해지고 노동비용이 싸졌기 때문이다. 복지비를 포함한 영국의 노동비용은 대략 독일의 7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일방이 승리한 결과였고, 대처의 선택이었다. 많은 영국 노동자들이 ‘시티’의 화려함을 먼 나라 얘기로 알고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 역시 대처가 선택한 영국의 미래였다. 이들에게 ‘시티’는 범접 못할 ‘당신들의 천국’일 뿐이다.
한국은 현재 이러한 앞날을 구상하고 있는 것일까. 방법론은 철학적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책적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방법론이 어떤 미래로 귀결될 것인지 연장선을 그어 보아야 한다. 인터넷이 초를 다투는 시대에 한국에는 아직 영국의 결과가 도달하지 않은 것일까. 화합보다는 대결을 선택한 대처, 그나마 정책적 실패까지 드러나고 있는 영국의 모습을 한국은 배우려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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