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 수상은 영국에서는 벌써 잊혀진 인물이 되었건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살아있으면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이다. 그녀가 우리나라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은 어느덧 각색되고, 이데올로기화한 냄새마저 풍기고 있다. 소위 ‘영국병’을 고쳤다고 하는 대처의 개혁이란 게 뭔지, 어떤 방향으로 개혁했는지에 대한 논의가 영국에서는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으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영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가 전부인 양 소개되어 왔다. 영국에서 대처의 개혁과 그때 이뤄진 구조조정에 대한 여러 평가가 균형 있게 소개되어야만 그가 펼친 개혁의 진정한 모습을 이해하게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여기에서는 영국의 제조업을 중심으로 영국의 구조조정과 탈산업화 문제를 살펴봄으로써 대처정부를 포함한 보수당 정부의 개혁이 갖는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강력한 노조를 약화시킨 대처의 ‘위대한 업적’

세계경제에서 뛰어난 성장을 이루고 있는 국가들은 흔히 강력하고 역동적인 제조업을 그들 경제의 중요한 부분으로 가지고 있으며, 신흥공업국들도 제조업 제품을 생산하고 거래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에 기초해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제조업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기는 하지만, 세계 무역의 80%는 제조업 제품이고, 대다수 서비스 제공의 기초도 제조업 제품이다. 제조업은 서비스 산업보다 일관된 생산성의 성장을 이뤘고, 전후방 연관효과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기술혁신의 주된 원천 그리고 무역에서의 중요성 등을 통해 선진경제의 지속적 번영에 기여를 해 왔다. 이리하여 전국적인 판매망을 갖고 있는 영국의 양대 소매회사 가운데 하나인 세인스버리(Sainsbury)의 사장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성공적인 서비스 부문만큼 성장하는 역동적인 제조업 부문을 필요로 한다”고 한 말은 제조업이 나라 경제에서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서비스 부문은 부분적으로는 제조업 부문의 성장률과 크기에 의존하게 되어 있다.

대처 수상은 재임시절 구조조정과 관련해 역사에 남길 만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먼저 영국의 강력한 노조를 크게 약화시켰다. 경쟁력을 상실했지만, 고용유지를 위해 보조금에 의존해 유지돼 왔던 많은 제조업체들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함으로써 전통적인 제조업을 상당수 몰락시켰다. 또한 외국회사들이 이들 위기에 빠진 제조업을 인수하거나, 영국에 직접 투자하도록 유도했다. 공기업을 대대적으로 민영화함으로써 공공부문을 대폭 축소하여 국가가 경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이고 이들 민영화한 부문에서 효율성과 서비스를 개선하고자 했다.

대처정부는 막강했던 영국의 노동조합을 한꺼번에 패퇴시킨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지원했던 제도를 없애거나 노조활동을 제약하는 제도를 만들면서 단계적으로 조금씩 노동조합을 조여나갔다. 1984∼85년 1년여 동안 파업을 벌이던 영국광산노조의 패배로 노동조합이 더 이상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력을 갖지 못하게 되자, 영국 노동조합의 힘과 자신감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이리하여 Metcalf(1992) 같은 논자들은 노동조합의 약화를 통해 사용자들이 경영권을 장악함으로써 제조업에서 노동생산성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실업의 공포로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고, 격화된 경쟁을 이겨내기 위해 기업들이 노동조합의 별다른 저항 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또 단체교섭의 분권화와 더불어 생산성 증가를 위한 유연성 협약이 늘어났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이 크게 증가했다고 보았다. 또한 클로즈드 숍의 불법화와 동조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제의 도입 등 노동관계법의 개정도 생산성 증가에 부분적으로 기여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곧 다수의 학자들에 의해 논박되고 말았다. 또한 생산성과 연계되지 않은 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높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대처정부 그리고 그후 보수당 아래에서도 단위노동비용은 여전히 높았고, 낮은 생산성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즉 1982년부터 1991년 사이에 임금인상이 소매물가 인상을 매년 웃돌아 1979∼89년 사이에 실질소득이 21%, 명목소득은 145%나 증가했다.

다 팔아치우고 끝내 실패한 공기업 민영화

경쟁력을 잃은 제조업들이 망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1979년 700만 명을 웃돌았던 영국의 제조업 고용인구가 1990년에는 4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대처를 위시한 보수당 정부하의 영국 제조업은 상당수가 공장폐쇄, 생산축소, 해외시장의 상실 등 퇴보적인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다. 제약업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기술개발, 투자 등을 통해 산업의 현대화와 업그레이드를 이루는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다. 이리하여 제조업 고용인구는 축소되었는데, 이는 생산성의 높은 증가에 따른 ‘전진적인 탈산업화’의 결과가 아니라 생산성의 정체 혹은 약간의 증가 속에 이루어진 ‘퇴영적 탈산업화’의 결과였다.

보수당 정부는, 망해 버렸거나 경쟁력을 잃은 영국 제조업을 외국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인수하거나 직접 투자를 하게 했다. 따라서 2000년 영국 제조업 생산품의 25%를 외국인 소유 기업들이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당시 영국 차량 수출량의 3/4이 일본 자동차회사 소유의 조립공장이나 포드, GM 혹은 푸조 등의 영국 자회사들에서 생산되었다. 외국 기업들은 이들을 인수하거나 새로이 설립한 기업에 상당한 투자를 통해 당시 영국 제조업의 저조했던 투자를 보완함으로써 일정한 정도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면서 영국시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처를 위시한 보수당 정부는 유럽연합 각국에 영국 시장을 완전 개방해 외국기업이 영국기업을 자유롭게 매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공기업의 민영화에 외국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유럽연합이 내놓은 범유럽 차원의 사회적 규제와 유럽단일통화제에는 감정적으로 반대해, 스스로 매우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보수당 정부는 또 1984년부터 시작된 공기업의 대대적인 민영화로 팔 수 있는 거의 모든 국영기업을 다 팔아치웠다. 이들 민영화된 산업 가운데 2000년 현재 , 통신과 전력산업은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철도와 수도는 영국 국민 다수가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영국의 일반 국민들은 민영화의 혜택이 아주 불균등하게 배분되고 철도의 서비스 악화와 요금인상 등의 문제가 발생하자, 민영화를 지지했던 태도를 바꿔 다시 국유화를 찬성하고 있어 흥미롭다.

여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제조업에서의 낮은 생산성이다.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제거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영국 경제를 수술한 대처정부의 개혁을 통해서도 전반적으로 좀처럼 개선하지 못한 것이 낮은 생산성이었다. 오히려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을 외국에 개방함으로써 국제분업질서 속에서 영국경제는 그 구조적 약점인 상대적으로 저숙련-저임금-저생산성이라는 수렁에 더욱 깊숙이 빠지게 되었다. 1980년대이래 영국 국내 제조업 생산은 압도적으로 낮은 기술 혹은 중간 수준의 기술집약적인 산업에 집중되어 있었다. 영국 기업들은 고부가가치의 제품들을 수입하고 그 대신 저부가가치의 제품들을 수출해 왔다. 독일·일본·미국과 같은 나라들은 비록 제조업 고용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역동적인 제조업 부문이 산업생산의 지속적인 증가를 통해 번창하고 확대되는 서비스업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국가경제 전체적으로는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전진적 탈산업화’를 경험해 왔다. 그러나 영국은 제조업 생산이 투자 부족과 낮은 생산성이라는 내적인 취약성에 의해 규정되어 국내 수요의 패턴이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을 선호하게 되면서 제조업은 서비스업의 물질적인 토대를 제공하지 못한 채 그 기반이 잠식되어 점차 축소되면서 고용이 줄어드는 ‘퇴영적 탈산업화’를 겪게 되었다.

고 파운드화 유지정책, 제조업 경기불황 불러

이처럼 영국이 퇴영적 탈산업화의 원인이 된 저생산성의 제조업이라는 구조적 약점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그 동안 흔히 지적되었던 강한 노조와 대립적인 노사관계도 일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요인은 영국의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에 대해 갖는 우위, 높은 파운드화 가치 유지, 주식시장의 발전에서 비롯된 제조업 저투자와 단기적 시야일 것이다. 국가역할의 최소주의는 산업정책을 통해 경제성장과 생산성 향상에 국가가 전략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앴다. 영국이 20세기 동안 다른 나라에서 진행된 경영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현장에서 작업을 계획하고 조정하는 일을 관리직에 의존하기보다 숙련노동자에게 의존해온 영국기업의 비과학적인 관리능력도 제조업에서의 낮은 생산성을 낳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영국적 환경과 제도 아래에서 기업들은 공장설비, 기술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장기적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1960∼95년 사이에 영국의 투자율(투자액/GDP)이 18%인 반면, OECD 평균 21%, 일본은 32%에 달했다. 주식시장의 발달은 높은 이윤을 단기적으로 추구하는 금융자본의 이해관계 때문에 확실하지 않은 장기적인 제조업 투자를 기피함으로써 가치창조에 기여하기보다 단기적 금융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가치를 뽑아내는 데 적극적이었다. 예를 들면 1987년 영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영국기업들의 자산총액은 GDP의 86%였지만, 독일의 경우에는 16%에 불과했다. 영국의 산업경쟁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금융자본의 이해를 반영한 고 파운드화 정책은 영국 제조업의 수출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케임브리지의 계량분석적 연구에 따르면, 영국이 고 파운드화 유지 정책을 폄으로써 제조업 특히 전자산업, 자동차산업과 화학산업 등은 경기불황에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생산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경영혁신을 이루지 못한 영국기업들은, 지속적인 경쟁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적 능력을 쌓아가는 데 별다른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생산자원인 인적 자원, 그 중에서도 복잡한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 학습, 훈련, 숙련 등에 대한 조직적인 능력과 투자를 결여하고 있었다. 제조업 시설과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가 부족한 가운데 단기적인 수익을 좇는 경영진은 상대적으로 싼 저숙련 노동을 이용해 만든 제품을 상대적으로 외국에 대해 닫혀 있던 영연방국가들에게 팔아서 유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영국 제조업에서의 만성적인 과소투자의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적 안정을 증진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었다. 서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의 경우처럼 국가가 산업의 발전과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행했던 주요한 역할을 영국정부가 할 수 없었던 제도적 약점이, 영국경제의 저조한 실적을 설명해 주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높은 수준의 이자율과 큰 변동폭 때문에 자본의 투자의욕이 꺾였고 기업운영의 자신감이 상실되었다.

이뿐 아니라 영국의 사립학교나 케임브리지와 옥스포드로 상징되는 엘리트 위주의 교육구조 속에서 훈련제도의 미발달로 노동자들은 낮은 수준의 숙련도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대처 시대의 도제훈련제도마저 서서히 해체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초에 영국은 OECD의 통계에 따르면, 17세 청소년의 50% 미만이 중등교육을 받고 있는 세 나라 가운데 한 나라였다. 이런 낮은 수준의 교육, 훈련제도는 저숙련의 길로 영국을 안내하는 요인이었다. 대처정부의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완화는 노동집약적인 저임금·저숙련 노동력의 이용가능성을 더욱 확대하고, 노동조합이 여기에 대항할 수 없도록 묶어둠으로써 악화되는 세계시장의 교역조건 아래에서 낡은 기술과 노동집약적인 작업조직에 의존해 경쟁해 온 회사들(특히 한계기업들)에게 숨돌릴 틈을 주었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이 한 단계 발전하도록 고무하는 인센티브는 강하지 못했다. 채용과 해고, 노동조합 인정과 단체교섭 등의 측면에서 사용자들에 불리한 법적인 제약을 제거함으로써 기업에 전진적 구조조정을 하도록 하는 제도적 압력이 줄어듦에 따라 영국 기업들은 생산에서의 비효율을 제거하기보다 는 이를 유지한 채 생산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대처정부를 포함한 보수당 정부는 오히려 기존의 저숙련-저임금-저생산성의 구조를 더욱 강화시켰고, 퇴영적 탈산업화를 촉진시켰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영국은 유럽 속의 저임금 지대가 돼 왔다. 영국 제조업의 문제는 영국 제조업자들에게 공급하는 서비스부문의 매출액 감소 위협, 산업인력의 감원 문제 발생, 기업이윤이 약간 떨어질 때 해당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는 ‘부 효과(wealth effect)’, 줄어드는 수출로 무역역조가 커질 때 경제성장을 낮추는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정책결정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력 등을 통해 경제 전반에 확산되어 왔다.

저투자와 낮은 생산성

토니 블레어 총리가 2000년 12월 1일 연설에서 다시금 제기한 제조업의 ‘낮은 생산성’ 문제는, 대처를 포함한 18년 보수당 정부가 ‘너무 강한 노동조합’이라는 사소한 ‘영국병’을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투자와 ‘낮은 생산성’이라는 50년 이상된 진짜 ‘영국병’을 고치는 데는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제조업의 퇴영적 축소, 극빈층의 양산, 빈부격차 확대, 저임금층의 확산 등 여러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제조업과는 달리 대영제국의 유산인 런던의 금융가를 중심으로 은행업, 보험업, 증권업 등 금융서비스업 등이 오래 전부터 발전하여 런던을 세계의 금융중심지화한 지 오래되었다. 이와 함께 관광업, 호텔·숙박업, 문화산업, 영어산업, 도·소매업 등 서비스업이 발전해 왔다. 금융산업에 종사하는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첨단 금융기법을 이용한 금융거래를 함으로써 벌고 있는 높은 임금은 관광업, 호텔·숙박업, 도·소매산업 및 영어산업 등에 고용된 많은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저임금과 대조가 된다. 단기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금융자본과 주식시장의 발전이 영국에서 신경제와 관련이 있으면서 민영화가 원활하게 이뤄진 정보통신산업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돈줄을 제공한 것은, 제조업에서의 낮은 투자와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서비스업이 제조업과 긴밀한 연관 속에서 제조업의 생산성 증가를 성장의 물적 토대로 하여 발전했다기보다 별개로 커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보통신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재미를 본 금융자본은, 버블현상이 꺼지자, 이제는 정보통신산업의 투자에 매우 조심스런 태도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지속적인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에 기여할지는 두고볼 일이다.
배규식 산업경제학 박사 ·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2001/02/01 00:00 2001/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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