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당시 정치인으로서 절정에 올라 있던 영국의 대처(M. Thatcher) 수상은 한 정치집회에서 사회보장제도의 개혁방향을 놓고 청중과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국가도 가계와 마찬가지로 절대로 번 것 이상을 지출해서는 안됩니다.” (대처)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은 보호받아야 합니다.” (청중)

“그러면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지요?” (대처)

“당연히 사회가 책임지고 이들을 보호해야 하지요.” (청중)

이 때 대처는 책잡히지 않으려고 온갖 현란한 정치적 수사를 구사하는 영국의 다른 정치인과는 달리 단도직입적으로 되받아쳤다.

“사회란 것은 없지요(No Such Thing As Society), 납세자의 돈(Taxpayers’ Money)이 부담하고 있을 뿐이지요.” (대처)

이렇듯 황당하게 들리는 대처의 “사회란 것은 없다”는 주장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사회’ 또는 ‘사회적’이라는 어휘에 내포된 고정관념을 우익적 시각에서 예리하게 비판한 것으로,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대처의 인식을 가장 뚜렷하게 나타낸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 대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사회적’이라는 수식어가 ‘공공선(公共善)’, ‘합의’, 또는 ‘공동체적 가치’ 등과 같은 긍정적인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이 수식어가 지니고 있는 다른 측면, 즉 ‘사회적’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될 수도 있는 개인의 자유와 소유권의 침해 문제는 망각되기 쉽다고 비판한 바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언어사회학적 해석을 일반적인 제도의 수준, 특히 사회보장제도에까지 확대 적용하는 것은 확실히 무리가 따를 뿐만 아니라 정치적 간계마저 엿보인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정부의 공공정책은 납세자의 세금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세제도와 이에 기초한 정부의 공공지출은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 편향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즉 납세자가 낸 세금에는 교묘하게 꼬리표가 달려 있어서 세금을 많이 내는 기득권자에게 그만큼의 혜택이 돌아가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도로와 공항을 새로 건설하게 되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거나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더 큰 혜택을 보게 된다. 또한 정부가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면, 대학에 다닐 형편이 되는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계층이 혜택을 보게 되어 있다. 이런 경우는 사회보장제도도 예외가 아니다. Goodin과 Le Grand는 『Not Only the Poor』(1987)란 책에서 전후 선진국에서 건설한 복지국가체제는 가난한 사람뿐만 아니라 중산층에게도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대처가 추상적인 ‘공동체 사회’가 아니라 ‘납세자의 돈’으로 사회보장제도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포괄적인 재정지원은 가능한 한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희생자 탓하기(Blaming the Victim)” 전략에 다름이 아니다.

대처리즘과 사회보장제도의 변화

대처가 최초로 집권한 1979년에 발표된 『공공지출백서』(The Public Expenditure White Paper)에서는 “영국의 경제가 침체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공공지출에 있다”고 규정하였고, 이에 따라 당연히 공공지출의 과반수를 상회하는(약 55%∼60%) 사회보장제도가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사실 대처리즘의 근저에는 영국경제의 침체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이러한 분노가 영국대중들에게 큰 호소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들로부터 계급을 떠난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대처리즘의 추종자들에 따르면, 고도의 산업사회에는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기관인 국가가 자신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서 시민생활 곳곳에 개입하는 ‘불가능의 정치(Politics of Impossibility)’를 했기 때문에, 영국은 시장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의 잠재력을 극대화하여 영국경제가 번영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기와 이의 발현인 복지국가 체제에 충격을 가하여 그 안에서 길든 개인의 국가의존성을 타파하고 자유시장경제의 활력을 북돋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개인’과 ‘국가’ 간의 상대적인 역할관계를 재정립하고,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빈곤의 덫(Poverty Trap)을 만들어 이를 고착화시키는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개인의 책임성 증진, 근로의욕의 촉진, 그리고 개인의 저축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처 정부는 전국민의 복지에 대한 국가의 포괄적 책임을 천명한 베버리지적 전통을 과감하게 버리고 개인의 책임과 자조를 사회보장제도에 반영했으며, 보편주의를 대체하여 표적화(Targeting)의 원칙으로 주어진 자원을 ‘진정한 니드(Genuine Need)’가 있는 집단에게 선별적으로 할당되도록 했다. 또 수급자의 근로의욕을 촉진하기 위한 열등처우의 원칙을 확립해 상병수당과 실업급여를 최소수준에서 정액화하기도 했다. 실로 올슨(Olsen)이 표현한 대로 세계 최초로 복지국가를 건설해 그 이상을 전 서구세계에 확산시킨 영국은 복지국가라는 늪에서 빠져 나오는 방법 또한 세계 최초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처리즘에 입각해 시행한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포함한 시장활성화 정책은 특히 하층계급에게 경제적 고통이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선 완전고용정책을 포기한 대가로 실업률은 집권 초기인 1979년 4.5%에서 1987년에는 10.4%로 급상승하였으며, 특히 실업구조의 악화로 전체 실업자 대비 장기실업자의 비율이 1979년 24%에서 1987년 43%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장기실업자는 재취업률이 매우 낮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그 심각성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실업률의 증가는 곧바로 빈곤인구의 증가로 이어진다. 대처 집권 초기인 1980년대 초 약 450만 명 정도였던 빈곤인구(평균 가구소득의 50% 이하)는 1988년에는 1,000만 명을 넘어섰고, 이는 공공부조예산의 엄청난 증대를 가져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득불평등의 정도가 매우 악화되었는데, 최하위 20% 계층 대비 최상위 20% 계층의 소득배율은 1979년 3.5에서 1990년에는 5.8로 증가됐다. 이렇듯 대처집권 기간에 영국은 사회정책의 기본지표라고 할 수 있는 실업률, 빈곤율, 그리고 소득분포에서 모두 최악의 결과를 기록했다. 이러한 사회정책 지표의 악화는 결국 범죄의 증가로 이어져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대처집권 초기인 1981년 296만 건이었던 범죄행위(Notifiable Offenses)는 대처가 실각할 무렵인 1991년에는 약 527만 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취약계층 희생 전제한 시장활성화는 실패

그러면 하층민뿐 아니라 간접적으로는 중산층에게까지 사회경제적 고통을 안겨준 대처식 시장활성화 정책의 결과로 경제성장은 이뤘는가? 물론 대처가 집권한 1979년 무렵에도 영국의 경제는 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지만, 2%∼3%대의 GDP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대처가 물러난 1990년대 초에는 기록적인 마이너스 성장(1991 -2.0%, 1992 -0.5%)을 보이는 등 경제성장에도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가 대처리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사회의 하층계급 등 취약계층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시장활성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인과 식자층은 이렇듯 명백히 실패로 드러난 대처식 시장활성화 정책을 배우자고 선동하고 있고, 또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발언이 대처리즘의 본질과 그 결과로 초래된 현상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식에도 정도가 있지, 아예 나라를 망칠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러한 무모한 발언을 서슴없이 하겠는가. 또 언론에서는 이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1/02/01 00:00 2001/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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