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전인권
길 위에 얼음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1월 중순, 뒤뚱뒤뚱거리며 사무실을 나온다. 삼청동으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 거의 다 쓰러져 가는 재즈카페로 전인권 씨를 만나러 들어갔다. 건물자체가 오두막인지 버려진 집인지 창고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곳. 그의 부스스한 외모가 갑자기 생각났다. 부조화의 조화라…. 인터뷰시간보다 15분 일찍 왔지만 혹여 그가 먼저 왔을까 하는 조바심에 종업원에게 물어봤다.

“전인권 씨요? 아, 그 머리 부스스한 동네 아저씨? 아직 안 왔어요.”

동네아저씨라…. 46년을 여기서 살았다는 그의 이력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잠시 후 약속한 시간에 그가 나타났다.

목청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공연한 ‘고교생 입장가’ 콘서트에 대해 그는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예전 들국화시대의 정신을 되찾았다는 그. 자연미·평화·자유의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대중에게 알렸다고 자평하는 말에서 자신감이 묻어 나온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서도 가수의 삶을 지켜나가고 있는 그에게 요즘 가요계는 불만 그 자체였다.

“10대 위주의 음악이 판치는데 그들을 너무 우습게 보고 노래하는 것 같아요. 정말 건강한 친구들을 건강하게 잡아끌 수 있는 그런 노래가 아쉬워요. 건강하다는 건 교육적인 면이 아니라 반항을 하더라도 정말 강하게, 멋있게 할 수 있는 그런 요소를 말하는 건데. 그런 게 부족한 것 같아요.”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에 강한 반감을 표현한 그는, 어느 때보다도 목청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가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94년인가, 그의 콘서트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자선모금이라는 부제로 열린 공연, 이에 대해 그는 할 말이 많단다. “그거 결국 사기당했어요. 기획은 강릉에 있는 내 팬이 했어요. 정신대 할머니가 주제이고 내 팬이고 한 번 하자길래 했죠. 그런데 사기를 당한 거예요. 가짜 공연이었고 돈을 들고 도망간 거죠. 황당했죠. 그런데 지금도 정신대 할머니를 위한 공연이라면 전 마다하지 않아요. 불쌍해서가 아니라 1년에 한 번이라도 그런 괴로움을 씻고 잊어버리게 해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왠지 위안받고 싶은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교도소 공연도 자주 했다. 교도소 안에서 한 경우도 두 번, 바깥에서 재소자들의 영치금을 마련하는 공연에도 세 번 참가했다. 교도소 하면 동질감을 느낀다는 그는 이제 그 안에 있었던 짧았던 경험을 하나의 추억과 낭만으로 여긴다고 한다.

때로는 몽환적인 노래(‘아침이 밝아올때까지’)나 세상을 초탈한 듯한 자유로운 노래(‘돌고 돌고 돌고’, ‘웃고 살아요’, ‘세계로 가는 기차’, ‘단순하게’) 또는 사랑의 아픔과 외로움을 노래(‘제발’, ‘사랑한 후에’, ‘빨간 풍선’)한 것까지 그는 주로 쉽지 않은 주제들을 다룬다. 이런 노래들에 담긴 그만이 가진 독특한 개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내가 만드는 주제는 세상을 아는 듯한 노래가 많아요. 내 개성이죠. 성격 자체는 반항적인데 세상을 아는 듯한 요소는 좀 들어 있어요. 예를 들면 김민기 씨가 제게 말똥구리 역을 맡겼어요. 말똥구리가 세상을 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거래요. 나와 흡사하다고. 그런데 그게 맞아요.”

‘돌고 돌고 돌고’와 같은 장난기 어린 노래를 무척 아낀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속엔 나름의 슬픔과 세상에 대한 풍자를 곁들인다고.

“예를 들어 ‘웃고 살아요’ 같은 노래가 그래요. 아버지! 고모! 외삼촌! 이라고 외쳐요. 그렇게 하는 건 다 장난기 때문이에요. 당시 얘긴데 우리끼리 ‘아버지’는 노태우를 풍자한 거라고 했어요. 단순히 아버지를 보면서 웃고 살자는 건 아닙니다.”

그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가지는 희망은 뭘까? 그건 문화를 통해 섬세한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다. 어딜 가도 음악을 할 때 그 사람들이 자신의 기분을 알고 즐긴다면 마냥 좋다는 말에서 어린애 같은 순수함도 느낄 수 있었다.

암적인 존재로 온 국민에게 퍼져야 하는 운동

이런 가수 전인권 씨가 보는 최근의 한국 사회는 어떤 형상일까?

“신문을 통해 보면 한마디로 웃겨요. 누구라도 그럴 거예요. 웃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다른 건 모르겠고, 경제는 거의 망가져 가는 것 같아요. 역사적인 큰 사건이 없으면 불황이나 공황이 될 것 같아요.”

대중음악계에도 공연기획자가 거의 흥행사가 다 돼간다고 안타까워하는 그. 그에게도 유토피아는 있다. 한 인터넷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돈을 많이 벌면 생각이 같은 500명의 집시들과 떼지어 합법적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고 싶다는 거예요.”

이런 막연한 생각 뒤에는 함께 모여 모닥불이라도 피워놓고 밤새도록 자신들만의 한을 노래하고 즐기고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이것이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이다.

골목길에서 소박한 목도리를 두르고 오뎅이나 순두부를 만드는 아줌마가 예뻐 보이고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얘기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런 삶조차 모르는 무뢰한들에게 멱살을 잡고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얌마! 태어나서 이런 것도 알아야지! 하는 마음이죠. 그게 내 노래고, 록이에요.”

록의 정신은 포크, 스타일은 블루스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록 자체가 민중음악에서 출발한 것을 의미한다. 결국은 민중의 희로애락을 대변하는 것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당시 사람들의 애환을 달래주잖아요. 3분이든 10분이든 부르는 그 순간은 다들 자기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잊어버리잖아요. 또한 ‘천안삼거리 흥흥’이나 민중음악 중에 ‘친구’라는 노래의 한 구절,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린다’의 멜로디와 가사는 한마디로 죽이는 거죠.”

노래가 의미하는 바를 읽어낼 줄 아는 그, 즉석에서 ‘친구’의 한 소절을 자신의 개성대로 불러준다. 가수 전인권 씨가 바라보는 시민단체 혹은 시민운동은 어떤 것일까? 그는 낙선운동을 보고 너무나 신이 났다고 한다. ‘암적인 존재가 되어 온 국민에게 퍼져야 하는 운동’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것이 시민운동이란다. 그가 느끼는 일상에서의 요구 하나. 핸드폰을 쓰는데 전파회사가 얻는 수익은 많으면서 일반인에게 전가하는 부당 요금이 너무 많단다. 안내 방송이 다 돈인데 너무 오래하고 길다면서, 그리고 이 돈은 전파회사가 물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은근슬쩍 시민에게 전가하는 요금부담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비를 들여 국산담배를 애용하자고 광고도 낸 전인권. 그의 남다른 생각과 기이한 행동, 그리고 어눌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어투와 목청껏 소리치는 노래, 이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었으면 한다. 그 속에 가지고 있는 그만의 자유와 저항을 또한 함께 공유하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카페 문까지 배웅을 나오며 그만이 할 수 있는 멋진 말 한마디를 보탠다.

“시민운동 하시는 분들, 분발하시고요. 옳은 일을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흥분감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최경석(참여사회 기자)
2001/02/01 00:00 2001/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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