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산동네는어디로 갔을까
2001/2001년 02월 :
2001/02/01 00:00
국토의 75%가 산인 산악국가 한국. 제 아무리 서울이 특별시라고 해도, 이런 지리적 조건에서까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서울은 산중 도시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본래 한성은 북악, 인왕, 타락(낙산), 목멱(남산)의 내사산 속에 자리했거니와, 그 안에는 또한 크고 작은 동산이나 언덕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산중 도시 서울은 이러한 자연적 조건을 적절히 이용하여 조성된 생태도시였다.
산중 도시의 산동네
도성 밖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더 많은 산들을 볼 수 있다. 서울의 확장과정은 어떤 면에서는 이 모든 산들의 주거공간화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들판은 업무용지로 바뀌고, 산은 주거용지로 바뀌는 것이 바로 서울이 지리적으로 확장되어 가는 중요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산동네란 산중 도시 서울에서 결코 특이한 주거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산중 도시 서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일반적 주거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산동네’라고 할 때, 그것은 특이한 주거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도시 빈민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불량주택지구’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성북동이나 평창동도 분명히 산동네이지만, 우리는 이런 동네를 산동네라고 부르지 않는다. 산동네는 도시 빈민의 ‘불량주택지구’로서 서울의 남루한 외관이며, 이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며, 따라서 없애거나 ‘정비’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1990년대 이후 서울에서는 참으로 많은 산동네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도 산동네를 없애는 작업은 서울의 곳곳에서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다. 정의론의 견지에서 보자면, 이와 함께 도시 빈민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산동네는 없어져도 도시 빈민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듯하다.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많았던 산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아니 그 많았던 도시 빈민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본 산동네들
나는 청량리에서 나고 자랐다. 그곳의 홍릉산 일대는 전형적인 산동네였다. 지금 홍릉산 정상에는 예쁘고 편리할 뿐만 아니라 전망마저 좋은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때 그곳에서는 방 한 칸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살기도 했다. 비구니 절인 청량사를 거쳐 청량리 경찰서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이 산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이 지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나, 산동네를 완전히 없애는 변화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 시작되었다. 지금 그곳은 거의 모두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청량리를 벗어나서 내가 처음으로 만난 산동네는 봉천동이었다. 서울대에 입학하게 되어 거의 매일같이 봉천동 고개를 넘나들며 이 동네를 보았다. 산 전체에 빼곡이 들어찬 남루한 집들이 빚어내는 경관은 청량리 산동네 출신인 내 눈에도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곳을 ‘가마니 골’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1990년대에 들어와 이곳도 거의 모두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마치 낡은 가마니를 들어내 태워 없애듯이, 그런 식으로 그곳은 완전히 파괴되고 사라져 버렸다.
1990년대 중반의 어느 해 겨울에 난곡으로 지역조사를 가게 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신림동이지만, 그곳은 난곡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남부순환도로에서 삼성산 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산을 만나 끝나는 곳에서 난곡의 산동네는 시작된다. 1960년대부터 고향을 떠난 산업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이 동네는, 1970년대 초에 한번 ‘정비’되었기 때문에 다른 산동네와 달리 집들이 줄을 맞춰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그당시 이미 그곳은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될 계획이었다. 지난 12월에 다시 그곳을 찾았더니 그 계획이 이제 바야흐로 실행에 옮겨지고 있었다.
삼양동 산동네는 지난해 여름 정릉길에서 삼양동으로 빠지는 산길을 넘다가 만나게 되었다. 서경대 뒤쪽에 자리한 이 지역에서는 지금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북악산에서 미아리로 이어지는 능선의 정릉 쪽 산동네는 거의 모두 파괴되었으나, 삼양동 쪽 산동네는 상당 부분이 아직 파괴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능선 마루에서 보노라면, 오른쪽으로는 한창 들어서고 있는 초고층 고밀도 아파트들 위로 거대한 타워 크레인들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왼쪽으로는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산동네의 집들이 고단한 도시 빈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참으로 기괴한 경관이다. 그것은 빈익빈 부익부 사회의 실상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마포의 홀리데이 인 호텔 뒤로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우연히 이 단지에 들렀다가 단지 뒤 산 정상에 작지만 보기 좋은 건물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 찾아가 보니 그 건물은 용산성당의 종탑이었다. 종탑 주위는 넓은 공지여서 주변의 경관을 시원스레 볼 수 있었다. 한때 이 종탑은 근방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리라. 동쪽으로는 용산 전체를 굽어볼 수 있고, 남쪽으로는 마포나루를 지켜볼 수 있고, 서쪽으로는 노고산을 넘어오는 노을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 용산성당은 아파트들로 둘러싸여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미아리에서 장위동으로 가는 길의 오른쪽으로 월곡동 산동네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고 오던 날, 이곳에서는 아파트를 짓기 위한 강제철거가 실행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산 정상에는 정자가 한 채 지어져 있다. 원래 그 자리는 두 살에 죽은 고종의 장자 완의 무덤이 있던 곳이라 ‘애기능터’라고 부른다. 이 정자의 바로 아래에는 성북구민 체육회관과 동덕여대가 자리잡고 있다. 전망이 참으로 좋은 곳이다. 그러나 별로 볼만한 것이 없다. 더욱이 공사 현장의 소음이 자꾸 신경을 거스른다. 소음과 진동은 공사현장 주변 주민들의 거센 민원대상이기도 하다. 공사업체를 비판하는 현수막이며 낙서들이 공사장 주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다.
‘판자촌 산’에서 ‘아파트 산’으로
산동네가 들어선 지역들은 아마도 대부분 본래 민둥산이었을 것이다. 이 산들에 전쟁난민이며 산업난민들이 정착하면서 그것은 점차 ‘판자촌 산’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파르게 진행된 산업화의 결과이며, 그 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그 부정적 상징이었다. 이런 점에서 산동네는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동네를 강제로 없앤다고 산업화의 부정적 결과가 사라지는 것일까? 산동네를 강제로 없앤다고 도시 빈민이 없어지는 것일까? 어디선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산동네가 만들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1990년대 이후 서울의 산동네는 급속하게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갔다. 그 결과 ‘판자촌 산’은 졸지에 ‘아파트 산’으로 바뀌고 말았다. ‘난지도’ 산이 서울 시민들이 내쏟은 쓰레기들로 세워진 산이라면, 서울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아파트 산’들은 도시 빈민들의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산이다. ‘아파트 산’들은 도시 빈민들의 주거 공간을 강압적으로 빼앗아 만들어진 산이다. 청량리에서, 사당동에서, 봉천동에서, 행당동에서, 도화동에서, 월곡동에서, 아니 거의 모든 산동네에서 재개발계획에 대한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저항은 거의 언제나 철거용역반의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 철저히 진압되었다. 산동네를 없애는 일은 어디서나 커다란 이권사업이었다. ‘아파트 산’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때문이다.
종래의 산동네가 일부 남은 채 ‘아파트 산’이 조성된 곳에서는 산동네와 ‘아파트 산’ 사이에 높다란 담장과 그 위에 무섭게 둘러쳐진 철조망을 흔히 볼 수 있다. 산동네와 ‘아파트 산’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둘은 이웃이 아니며 친구는 더욱더 아닌 것이다. ‘아파트 산’의 중산층 주민들은 산동네의 도시 빈민들을 예비적 범죄자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아파트 산’의 중산층 주민들은 남은 산동네 사람들을 기껏해야 집값을 떨어뜨리는 천덕꾸러기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처참하게 쫓겨난 사람들은 쫓겨난 사람들대로, 남은 사람들은 남은 사람들대로, ‘아파트 산’에게는 그저 ‘정비’ 대상일 뿐인 모양이다.
‘아파트 산’의 조성은 기존의 모든 공간적 자취를 지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체로 산동네는 대로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2차선 남짓 되는 중앙로를 중심으로 그 양 옆에 많은 골목길들이 복잡한 미로를 형성하는 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길들은 단지 지나다니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고 소통하고 일하고 노는 공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산동네에서 집은 물론이거니와 길도 삶의 내음이 물씬 배어 있는 곳이다. ‘아파트 산’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하고 조성된다. 공간은 시간이 펼쳐지는 장이다. 그러므로 ‘아파트 산’은 공간을 파괴함으로써 동시에 시간까지도 함께 파괴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도시 빈민은 주거 공간에 관한 어떤 추억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산동네는 줄곧 서울의 도시 경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그 산동네를 완전히 파괴하고 조성된 ‘아파트 산’은 어떤가? 지금 서울의 곳곳은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시멘트 덩이들로 요새화되었다. 늘 보던 산들을 졸지에 볼 수 없게 되고, 볕이 잘 들던 곳들이 졸지에 ‘언제나 그늘’로 바뀌고, 대기순환마저 여의치 않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요새들은 모두 수십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결코 부숴 없앨 수 없다. 이 요새들을 다시금 ‘자연의 산’으로 바꿔 놓으려면 이만한 돈을 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주거지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고층 고밀도 아파트 단지는 ‘공간의 죽음’이며,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10년 사이에 서울은 이러한 ‘최후의 선택’을 그야말로 밥먹듯이 해 왔다. 그것도 대체로 산동네를 파괴하고 산 위에 ‘아파트 산’을 짓는 방식으로 해 왔다. 우리는 봉천동과 돈암동에서 그 결정판을 볼 수 있다. 산꼭대기와 산등성이에 들어선 그 우람한 ‘아파트 산’들. 언제까지 이런 식의 건설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아파트 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아무래도 편할 수 없다.
달동네 정비계획
나는 어려서부터 산동네라는 말을 듣고 써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달동네’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이 말을 거의 쓰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산동네를 ‘달동네’라고 부르는 것을 듣는다. 아마도 1970년대 말에 방영되었던 <달동네>라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일 것이다. 이 드라마는 정윤희 씨가 주연을 맡았고, 추송웅 씨가 조연을 맡았던 것이지만, 이들보다 더 인기를 끌었던 사람은 ‘똑순이’라는 이름의 아역 탤런트였던 것 같다.
당시 AFKN에서는 이 드라마의 제목을 ‘Moon Village’로 옮겼다. ‘달동네’나 ‘Moon Village’는 산동네보다는 어쩐지 낭만적 향취를 느끼게 하는 말인 듯하다. 그만큼 산동네의 현실을 호도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말이기도 할 것이다. 산동네는 ‘달동네’가 아니다. 그곳에는 물론 달을 보고 집을 나서서 달을 보고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그렇게 해도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빠듯한 사람들이 많이 산다. 그러니 ‘달동네’라는 말에서 어떤 낭만적 향취를 느끼는 것은 적잖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 날, 그러니까 2000년 12월 26일, ‘국민의 정부’는 ‘달동네 정비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요체는, “2003년까지 4조6,000억 원을 들여 현재 남아 있는 504곳의 달동네 가운데 400곳은 집도 고치고 골목도 뜯어고쳐,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한 신문은 이 계획을 “도시 서민과 빈민들의 주거안정 대책과 관련해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띠고 있다”고 평했다(『한겨레신문』, 2000년 12월 27일자).
이 기사에서 우선 내 눈길을 끈 것은 ‘달동네’를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구절이었다. 지금의 ‘달동네’는 ‘사람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사실 여러 면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수돗물도 잘 안 나오고, 장마철에는 하수도도 역류하고, 겨울이면 연탄을 져 날라다 쌓아 두어야 한다. 요즘은 아주 드문 일이 된 것으로 보이지만, 산동네에서는 연탄가스에 중독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나도 청량리 산동네에서 살 때, 두 번이나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기절했던 적이 있다. 집의 내부 공간이 좁아 화장실 문은 흔히 대문 옆에 마련되어 있다. 그러니 화장실을 드나들 때면 길에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가 몹시 신경 써야 한다. 여름철에 냄새가 심한 것은 물론이고.
‘달동네’에서 살아 보면 가난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불쾌하기도 하고 심지어 수치스럽기도 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적빈과 청빈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자리잡고 있다. 적빈한 ‘달동네’ 주민들은 다들 더 좋은 주거공간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자신이 들어가 살 수만 있다면, 아무리 ‘아파트 산’이 된다고 해도 ‘달동네’의 그 누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입자는 물론이거니와 집 주인이라고 해도 대체로 ‘딱지’를 팔아 조금 나은 곳으로 겨우 떠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달동네’를 철거해서 ‘아파트 산’으로 바꾸지 않고 ‘정비’해서 기존 주민들이 좀더 편리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은 분명히 진일보한 구상이다. 불과 3년 사이에 4조6,000억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쓸 사업인데, 아무쪼록 ‘달동네’를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이 계획이 또 하나의 ‘정치적 선심형 혈세낭비사업’으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산중 도시의 산동네
도성 밖으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더 많은 산들을 볼 수 있다. 서울의 확장과정은 어떤 면에서는 이 모든 산들의 주거공간화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들판은 업무용지로 바뀌고, 산은 주거용지로 바뀌는 것이 바로 서울이 지리적으로 확장되어 가는 중요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산동네란 산중 도시 서울에서 결코 특이한 주거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산중 도시 서울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일반적 주거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산동네’라고 할 때, 그것은 특이한 주거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도시 빈민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불량주택지구’를 가리키는 부정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성북동이나 평창동도 분명히 산동네이지만, 우리는 이런 동네를 산동네라고 부르지 않는다. 산동네는 도시 빈민의 ‘불량주택지구’로서 서울의 남루한 외관이며, 이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며, 따라서 없애거나 ‘정비’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1990년대 이후 서울에서는 참으로 많은 산동네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도 산동네를 없애는 작업은 서울의 곳곳에서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다. 정의론의 견지에서 보자면, 이와 함께 도시 빈민도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산동네는 없어져도 도시 빈민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듯하다.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많았던 산동네는 어디로 갔을까? 아니 그 많았던 도시 빈민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본 산동네들
나는 청량리에서 나고 자랐다. 그곳의 홍릉산 일대는 전형적인 산동네였다. 지금 홍릉산 정상에는 예쁘고 편리할 뿐만 아니라 전망마저 좋은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때 그곳에서는 방 한 칸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살기도 했다. 비구니 절인 청량사를 거쳐 청량리 경찰서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이 산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이 지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나, 산동네를 완전히 없애는 변화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 시작되었다. 지금 그곳은 거의 모두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청량리를 벗어나서 내가 처음으로 만난 산동네는 봉천동이었다. 서울대에 입학하게 되어 거의 매일같이 봉천동 고개를 넘나들며 이 동네를 보았다. 산 전체에 빼곡이 들어찬 남루한 집들이 빚어내는 경관은 청량리 산동네 출신인 내 눈에도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곳을 ‘가마니 골’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1990년대에 들어와 이곳도 거의 모두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마치 낡은 가마니를 들어내 태워 없애듯이, 그런 식으로 그곳은 완전히 파괴되고 사라져 버렸다.
1990년대 중반의 어느 해 겨울에 난곡으로 지역조사를 가게 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신림동이지만, 그곳은 난곡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남부순환도로에서 삼성산 쪽으로 들어가는 길이 산을 만나 끝나는 곳에서 난곡의 산동네는 시작된다. 1960년대부터 고향을 떠난 산업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이 동네는, 1970년대 초에 한번 ‘정비’되었기 때문에 다른 산동네와 달리 집들이 줄을 맞춰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그당시 이미 그곳은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될 계획이었다. 지난 12월에 다시 그곳을 찾았더니 그 계획이 이제 바야흐로 실행에 옮겨지고 있었다.
삼양동 산동네는 지난해 여름 정릉길에서 삼양동으로 빠지는 산길을 넘다가 만나게 되었다. 서경대 뒤쪽에 자리한 이 지역에서는 지금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북악산에서 미아리로 이어지는 능선의 정릉 쪽 산동네는 거의 모두 파괴되었으나, 삼양동 쪽 산동네는 상당 부분이 아직 파괴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능선 마루에서 보노라면, 오른쪽으로는 한창 들어서고 있는 초고층 고밀도 아파트들 위로 거대한 타워 크레인들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왼쪽으로는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산동네의 집들이 고단한 도시 빈민의 삶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참으로 기괴한 경관이다. 그것은 빈익빈 부익부 사회의 실상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하다.
마포의 홀리데이 인 호텔 뒤로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우연히 이 단지에 들렀다가 단지 뒤 산 정상에 작지만 보기 좋은 건물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호기심에 찾아가 보니 그 건물은 용산성당의 종탑이었다. 종탑 주위는 넓은 공지여서 주변의 경관을 시원스레 볼 수 있었다. 한때 이 종탑은 근방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리라. 동쪽으로는 용산 전체를 굽어볼 수 있고, 남쪽으로는 마포나루를 지켜볼 수 있고, 서쪽으로는 노고산을 넘어오는 노을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 용산성당은 아파트들로 둘러싸여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미아리에서 장위동으로 가는 길의 오른쪽으로 월곡동 산동네가 자리잡고 있다. 지난 12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고 오던 날, 이곳에서는 아파트를 짓기 위한 강제철거가 실행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산 정상에는 정자가 한 채 지어져 있다. 원래 그 자리는 두 살에 죽은 고종의 장자 완의 무덤이 있던 곳이라 ‘애기능터’라고 부른다. 이 정자의 바로 아래에는 성북구민 체육회관과 동덕여대가 자리잡고 있다. 전망이 참으로 좋은 곳이다. 그러나 별로 볼만한 것이 없다. 더욱이 공사 현장의 소음이 자꾸 신경을 거스른다. 소음과 진동은 공사현장 주변 주민들의 거센 민원대상이기도 하다. 공사업체를 비판하는 현수막이며 낙서들이 공사장 주위에 어지럽게 널려 있다.
‘판자촌 산’에서 ‘아파트 산’으로
산동네가 들어선 지역들은 아마도 대부분 본래 민둥산이었을 것이다. 이 산들에 전쟁난민이며 산업난민들이 정착하면서 그것은 점차 ‘판자촌 산’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파르게 진행된 산업화의 결과이며, 그 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것은 그 부정적 상징이었다. 이런 점에서 산동네는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동네를 강제로 없앤다고 산업화의 부정적 결과가 사라지는 것일까? 산동네를 강제로 없앤다고 도시 빈민이 없어지는 것일까? 어디선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산동네가 만들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1990년대 이후 서울의 산동네는 급속하게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갔다. 그 결과 ‘판자촌 산’은 졸지에 ‘아파트 산’으로 바뀌고 말았다. ‘난지도’ 산이 서울 시민들이 내쏟은 쓰레기들로 세워진 산이라면, 서울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아파트 산’들은 도시 빈민들의 피와 눈물 위에 세워진 산이다. ‘아파트 산’들은 도시 빈민들의 주거 공간을 강압적으로 빼앗아 만들어진 산이다. 청량리에서, 사당동에서, 봉천동에서, 행당동에서, 도화동에서, 월곡동에서, 아니 거의 모든 산동네에서 재개발계획에 대한 주민들의 격렬한 저항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 저항은 거의 언제나 철거용역반의 무자비한 폭력을 통해 철저히 진압되었다. 산동네를 없애는 일은 어디서나 커다란 이권사업이었다. ‘아파트 산’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때문이다.
종래의 산동네가 일부 남은 채 ‘아파트 산’이 조성된 곳에서는 산동네와 ‘아파트 산’ 사이에 높다란 담장과 그 위에 무섭게 둘러쳐진 철조망을 흔히 볼 수 있다. 산동네와 ‘아파트 산’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고 해도, 둘은 이웃이 아니며 친구는 더욱더 아닌 것이다. ‘아파트 산’의 중산층 주민들은 산동네의 도시 빈민들을 예비적 범죄자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아파트 산’의 중산층 주민들은 남은 산동네 사람들을 기껏해야 집값을 떨어뜨리는 천덕꾸러기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닐까? 처참하게 쫓겨난 사람들은 쫓겨난 사람들대로, 남은 사람들은 남은 사람들대로, ‘아파트 산’에게는 그저 ‘정비’ 대상일 뿐인 모양이다.
‘아파트 산’의 조성은 기존의 모든 공간적 자취를 지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체로 산동네는 대로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2차선 남짓 되는 중앙로를 중심으로 그 양 옆에 많은 골목길들이 복잡한 미로를 형성하는 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 길들은 단지 지나다니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고 소통하고 일하고 노는 공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산동네에서 집은 물론이거니와 길도 삶의 내음이 물씬 배어 있는 곳이다. ‘아파트 산’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파괴하고 조성된다. 공간은 시간이 펼쳐지는 장이다. 그러므로 ‘아파트 산’은 공간을 파괴함으로써 동시에 시간까지도 함께 파괴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도시 빈민은 주거 공간에 관한 어떤 추억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산동네는 줄곧 서울의 도시 경관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그러나 그 산동네를 완전히 파괴하고 조성된 ‘아파트 산’은 어떤가? 지금 서울의 곳곳은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시멘트 덩이들로 요새화되었다. 늘 보던 산들을 졸지에 볼 수 없게 되고, 볕이 잘 들던 곳들이 졸지에 ‘언제나 그늘’로 바뀌고, 대기순환마저 여의치 않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요새들은 모두 수십억 원에서 수천억 원의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결코 부숴 없앨 수 없다. 이 요새들을 다시금 ‘자연의 산’으로 바꿔 놓으려면 이만한 돈을 들여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주거지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고층 고밀도 아파트 단지는 ‘공간의 죽음’이며,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 10년 사이에 서울은 이러한 ‘최후의 선택’을 그야말로 밥먹듯이 해 왔다. 그것도 대체로 산동네를 파괴하고 산 위에 ‘아파트 산’을 짓는 방식으로 해 왔다. 우리는 봉천동과 돈암동에서 그 결정판을 볼 수 있다. 산꼭대기와 산등성이에 들어선 그 우람한 ‘아파트 산’들. 언제까지 이런 식의 건설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아파트 산’을 바라보는 마음은 아무래도 편할 수 없다.
달동네 정비계획
나는 어려서부터 산동네라는 말을 듣고 써 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달동네’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나는 이 말을 거의 쓰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산동네를 ‘달동네’라고 부르는 것을 듣는다. 아마도 1970년대 말에 방영되었던 <달동네>라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일 것이다. 이 드라마는 정윤희 씨가 주연을 맡았고, 추송웅 씨가 조연을 맡았던 것이지만, 이들보다 더 인기를 끌었던 사람은 ‘똑순이’라는 이름의 아역 탤런트였던 것 같다.
당시 AFKN에서는 이 드라마의 제목을 ‘Moon Village’로 옮겼다. ‘달동네’나 ‘Moon Village’는 산동네보다는 어쩐지 낭만적 향취를 느끼게 하는 말인 듯하다. 그만큼 산동네의 현실을 호도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말이기도 할 것이다. 산동네는 ‘달동네’가 아니다. 그곳에는 물론 달을 보고 집을 나서서 달을 보고 집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 그렇게 해도 하루하루 먹고살기가 빠듯한 사람들이 많이 산다. 그러니 ‘달동네’라는 말에서 어떤 낭만적 향취를 느끼는 것은 적잖이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 날, 그러니까 2000년 12월 26일, ‘국민의 정부’는 ‘달동네 정비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의 요체는, “2003년까지 4조6,000억 원을 들여 현재 남아 있는 504곳의 달동네 가운데 400곳은 집도 고치고 골목도 뜯어고쳐,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한다. 한 신문은 이 계획을 “도시 서민과 빈민들의 주거안정 대책과 관련해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띠고 있다”고 평했다(『한겨레신문』, 2000년 12월 27일자).
이 기사에서 우선 내 눈길을 끈 것은 ‘달동네’를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구절이었다. 지금의 ‘달동네’는 ‘사람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사실 여러 면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수돗물도 잘 안 나오고, 장마철에는 하수도도 역류하고, 겨울이면 연탄을 져 날라다 쌓아 두어야 한다. 요즘은 아주 드문 일이 된 것으로 보이지만, 산동네에서는 연탄가스에 중독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나도 청량리 산동네에서 살 때, 두 번이나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기절했던 적이 있다. 집의 내부 공간이 좁아 화장실 문은 흔히 대문 옆에 마련되어 있다. 그러니 화장실을 드나들 때면 길에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가 몹시 신경 써야 한다. 여름철에 냄새가 심한 것은 물론이고.
‘달동네’에서 살아 보면 가난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불쾌하기도 하고 심지어 수치스럽기도 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적빈과 청빈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자리잡고 있다. 적빈한 ‘달동네’ 주민들은 다들 더 좋은 주거공간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자신이 들어가 살 수만 있다면, 아무리 ‘아파트 산’이 된다고 해도 ‘달동네’의 그 누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입자는 물론이거니와 집 주인이라고 해도 대체로 ‘딱지’를 팔아 조금 나은 곳으로 겨우 떠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 ‘달동네’를 철거해서 ‘아파트 산’으로 바꾸지 않고 ‘정비’해서 기존 주민들이 좀더 편리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은 분명히 진일보한 구상이다. 불과 3년 사이에 4조6,000억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쓸 사업인데, 아무쪼록 ‘달동네’를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이 계획이 또 하나의 ‘정치적 선심형 혈세낭비사업’으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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