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전쟁과 지식인, 이중잣대의 진실 사이에서
2001/2001년 02월 :
2001/02/01 00:00
발칸반도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3월 24일 미국과 나토가 코소보의 세르비아군에 대해 공중폭격을 개시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보적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견해가 양극을 달린 것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체코의 전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과 ‘제3의 길’의 전도사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 생태주의자인 오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 등은 공습을 지지했다. 심지어 ‘20세기의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는 “국가들 사이의 고전적인 국제법에서 세계 시민사회의 세계주의적 법률로 향해 가는 도상의 한 단계(를 표상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와 독일 사민당 당수였던 오스카 라퐁텐 등은 극력히 반대했다.
왜 이런 혼돈이 일어난 것일까? 타리크 알리 『뉴레프트 리뷰』 편집장 등 미국과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이 쓴 글을 모은 『전쟁이 끝난 후 - 코소보를 둘러싼 나토의 발칸전쟁이 남긴 것들』(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옮김, 이후 펴냄)은 혼돈에서 빠져나갈 길찾기에 관한 것이다. 지은이들은, 2차대전 당시의 히틀러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비유되는 ‘전범’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군의 잔학 행위를 종식시키기 위한 ‘인도적 개입’을 명분으로 전개된 발칸 공습을 ‘새로운 냉전을 조성하려는 미국의 패권전략’과 ‘지식인의 죽음’이라고 비판한다.
공습은 불가피했을까?
발칸공습은 정확히 1999년 3월 24일 시작돼 그해 6월 3일 끝났다. 랑부예 회담에서 미국과 나토가 ‘코소보 지역에서 평화유지군을 나토로 제한(러시아 제외)할 것과 활동지역을 코소보뿐만 아니라 세르비아 전역을 조사할 권한’(평화유지군을 치외법권지대에 놓으려는 것으로 주권의 완전한 무시이다)을 요구하자, 세르비아 쪽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간 뒤 공습은 바로 시작됐다. 지상군 투입 없이 비행기로만 전쟁을 수행한 미국과 나토는 3만 6,000여 차례의 출격으로 코소보 땅을 초토화한 뒤 러시아와 독일의 중재를 거쳐 세르비아와 ‘코소보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다(결국 유럽과 세계 세력 균형의 한 축인 러시아는 이 사태에 개입했다!).
공습은 불가피했을까? 아니다. 세르비아 의회는 공습 하루 전인 1999년 3월 23일 ‘나토의 군사점령은 거부하지만 유럽안보협력기구와 유엔의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 도모를 촉구한다’는 요지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로빈 블랙번(영국 에섹스대학 사회학 교수)는 이 점에서 “재앙과도 같은 공중전은, 또 다른 군사적 선택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르비아군을 철수시키고 유엔이나 유럽안보협력기구의 평화유지군으로 대체하는 협상이 애초부터 가능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는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공습이 있었다.
미국과 나토는 왜 1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군사비를 써가며 공습을 감행해야 했을까. 먹고살기도 바쁜 와중에 ‘돈도 되지 않는’ 인도주의의 실천을 위해? 뭔가 미심쩍지 않은가.
“미국과 나토의 동맹국들은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 공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힘의 과시야말로 이번 전쟁의 진정한 목적이다. 인간적 감정에 대한 호소(인도주의적 개입 명분)는 목적으로 위장된 단순한 수단이었으며,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었던 부적절한 폭력의 행사에 대해 국내외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지오반니 아리기, 뉴욕 주립대학 사회학 교수).
“러시아와 중국의 비토권 행사로 유엔안보리는 서방정책의 믿음직한 도구가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표현을 빌리면, ‘중동에서 중부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세력’으로 나토를 재정의하려는 것이다”(알렉스 캘리니코스, 영국 요크대학 정치학교수).
실제 이런 지적은 공습을 지지한 쪽이 표명한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국방부는 옛 소련 붕괴 뒤 미국의 정책목표를 담은 ‘방어계획지도’에서 “첫 번째 목적은 새로운 라이벌의 재등장을 저지하는 것…우리는 나토의 근간을 파고들지도 모르는 유럽만의 안보협정이 등장하는 것을 저지해야만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공습을 열렬히 지지했던 자유주의자이자 『뉴욕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급변하는 세계를 위한 선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세계화 과정의 지속은 우리 국익에 있어 최우선의 과제이다…세계화는 곧 미국이다…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맥도널드는 F-15기의 설계자인 맥도널 더글라스 없이는 번창할 수 없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을 위해 세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보이지 않는 주먹은 미 육군과 공군, 해군과 해병대이다.”
위장된 인도주의, 지식인들의 배반
이 때문에 지은이들은 세계 유수의 지식인들과 운동가들이 공습을 지지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인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명분 뒤에 감추어진 ‘이중잣대’와 ‘이성의 마비’, ‘정치의 종언’에 대해 깊은 우려와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심지어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발칸공습을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자유민주주의적 버전”이라고 명명했다.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특징은 민족국가의 주권을 유린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사례를 확인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근대 민족국가 체제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래 국제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이에 따라 폐기됐다. 리처드 고트는 ‘인도주의적 개입주의’ 프로젝트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독립국가들과 민중의 문제에 거리낌없이 개입했던 지난 세기의 식민주의로 후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캘리니코스)”.
이 대목에서 나는 “재난지역에 대한 NGO의 접근권이 해당 국가의 주권에 우선한다”는 ‘쿠슈네독트린’과 함께, 국경없는의사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의 ‘인권과 주권의 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떠올랐다. 머리가 아프다.
“인도주의적 전쟁은 정서에 의한 지배에 의존한다. 정치는 이성의 전개를 요구한다. 인도주의의 헤게모니가 강요한 만장일치의 도덕주의는 민주주의를 살아있게 만드는 차이들을 질식시킨 것이다”(로베르 레데케르, 『현대』 편집위원).
“유고슬라비아의 인종청소가 죄악이라면 - 물론 죄악이다 - 터키나 팔레스타인, 아프리카, 아니 그 어떤 곳의 인종청소도 죄악이다. CNN이 보도를 멈춘다고 위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중의 기준이 있을 수는 없다”(에드워드 사이드, 전 콜롬비아대 석좌교수). “네타야후와 투즈만은 ‘우리편’에 서 있었고,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히틀러 비유의 유일한 기능은 정치담론을 흐리게 하고 무모한 군사행동을 자극하는 것이다”(알리).
그리고 이렇게 호소한다.
“재앙일 뿐인 밀로셰비치의 오랜 집권에 식상해하는 모든 세르비아인들의 비판에 그를 노출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평화의 구현뿐이다(의미심장하게도 강력한 저항운동이 솟구친 1996∼1997년은 평화의 시기였다)”(블랙번).
“기억과 보편주의 없이는 저항이 있을 수 없다. ‘민족’에 대한 충성을 모든 것 앞에 두고 있는 것…여기에는 지식인들의 배반과 도덕적 파산이 있을 뿐이다”(사이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체코의 전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과 ‘제3의 길’의 전도사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 생태주의자인 오슈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 등은 공습을 지지했다. 심지어 ‘20세기의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는 “국가들 사이의 고전적인 국제법에서 세계 시민사회의 세계주의적 법률로 향해 가는 도상의 한 단계(를 표상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와 독일 사민당 당수였던 오스카 라퐁텐 등은 극력히 반대했다.
왜 이런 혼돈이 일어난 것일까? 타리크 알리 『뉴레프트 리뷰』 편집장 등 미국과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이 쓴 글을 모은 『전쟁이 끝난 후 - 코소보를 둘러싼 나토의 발칸전쟁이 남긴 것들』(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옮김, 이후 펴냄)은 혼돈에서 빠져나갈 길찾기에 관한 것이다. 지은이들은, 2차대전 당시의 히틀러와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비유되는 ‘전범’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군의 잔학 행위를 종식시키기 위한 ‘인도적 개입’을 명분으로 전개된 발칸 공습을 ‘새로운 냉전을 조성하려는 미국의 패권전략’과 ‘지식인의 죽음’이라고 비판한다.
공습은 불가피했을까?
발칸공습은 정확히 1999년 3월 24일 시작돼 그해 6월 3일 끝났다. 랑부예 회담에서 미국과 나토가 ‘코소보 지역에서 평화유지군을 나토로 제한(러시아 제외)할 것과 활동지역을 코소보뿐만 아니라 세르비아 전역을 조사할 권한’(평화유지군을 치외법권지대에 놓으려는 것으로 주권의 완전한 무시이다)을 요구하자, 세르비아 쪽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간 뒤 공습은 바로 시작됐다. 지상군 투입 없이 비행기로만 전쟁을 수행한 미국과 나토는 3만 6,000여 차례의 출격으로 코소보 땅을 초토화한 뒤 러시아와 독일의 중재를 거쳐 세르비아와 ‘코소보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다(결국 유럽과 세계 세력 균형의 한 축인 러시아는 이 사태에 개입했다!).
공습은 불가피했을까? 아니다. 세르비아 의회는 공습 하루 전인 1999년 3월 23일 ‘나토의 군사점령은 거부하지만 유럽안보협력기구와 유엔의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결 도모를 촉구한다’는 요지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로빈 블랙번(영국 에섹스대학 사회학 교수)는 이 점에서 “재앙과도 같은 공중전은, 또 다른 군사적 선택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니라, 세르비아군을 철수시키고 유엔이나 유럽안보협력기구의 평화유지군으로 대체하는 협상이 애초부터 가능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는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공습이 있었다.
미국과 나토는 왜 1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군사비를 써가며 공습을 감행해야 했을까. 먹고살기도 바쁜 와중에 ‘돈도 되지 않는’ 인도주의의 실천을 위해? 뭔가 미심쩍지 않은가.
“미국과 나토의 동맹국들은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위협이 공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힘의 과시야말로 이번 전쟁의 진정한 목적이다. 인간적 감정에 대한 호소(인도주의적 개입 명분)는 목적으로 위장된 단순한 수단이었으며,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었던 부적절한 폭력의 행사에 대해 국내외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지오반니 아리기, 뉴욕 주립대학 사회학 교수).
“러시아와 중국의 비토권 행사로 유엔안보리는 서방정책의 믿음직한 도구가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표현을 빌리면, ‘중동에서 중부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세력’으로 나토를 재정의하려는 것이다”(알렉스 캘리니코스, 영국 요크대학 정치학교수).
실제 이런 지적은 공습을 지지한 쪽이 표명한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국방부는 옛 소련 붕괴 뒤 미국의 정책목표를 담은 ‘방어계획지도’에서 “첫 번째 목적은 새로운 라이벌의 재등장을 저지하는 것…우리는 나토의 근간을 파고들지도 모르는 유럽만의 안보협정이 등장하는 것을 저지해야만 한다”고 밝히고 있다.
공습을 열렬히 지지했던 자유주의자이자 『뉴욕타임스』의 수석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급변하는 세계를 위한 선언’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세계화 과정의 지속은 우리 국익에 있어 최우선의 과제이다…세계화는 곧 미국이다…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지 않는 주먹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 맥도널드는 F-15기의 설계자인 맥도널 더글라스 없이는 번창할 수 없다. 실리콘밸리의 기술을 위해 세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보이지 않는 주먹은 미 육군과 공군, 해군과 해병대이다.”
위장된 인도주의, 지식인들의 배반
이 때문에 지은이들은 세계 유수의 지식인들과 운동가들이 공습을 지지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인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명분 뒤에 감추어진 ‘이중잣대’와 ‘이성의 마비’, ‘정치의 종언’에 대해 깊은 우려와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심지어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발칸공습을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자유민주주의적 버전”이라고 명명했다.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특징은 민족국가의 주권을 유린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사례를 확인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근대 민족국가 체제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 이래 국제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이에 따라 폐기됐다. 리처드 고트는 ‘인도주의적 개입주의’ 프로젝트는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독립국가들과 민중의 문제에 거리낌없이 개입했던 지난 세기의 식민주의로 후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캘리니코스)”.
이 대목에서 나는 “재난지역에 대한 NGO의 접근권이 해당 국가의 주권에 우선한다”는 ‘쿠슈네독트린’과 함께, 국경없는의사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의 ‘인권과 주권의 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떠올랐다. 머리가 아프다.
“인도주의적 전쟁은 정서에 의한 지배에 의존한다. 정치는 이성의 전개를 요구한다. 인도주의의 헤게모니가 강요한 만장일치의 도덕주의는 민주주의를 살아있게 만드는 차이들을 질식시킨 것이다”(로베르 레데케르, 『현대』 편집위원).
“유고슬라비아의 인종청소가 죄악이라면 - 물론 죄악이다 - 터키나 팔레스타인, 아프리카, 아니 그 어떤 곳의 인종청소도 죄악이다. CNN이 보도를 멈춘다고 위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중의 기준이 있을 수는 없다”(에드워드 사이드, 전 콜롬비아대 석좌교수). “네타야후와 투즈만은 ‘우리편’에 서 있었고,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히틀러 비유의 유일한 기능은 정치담론을 흐리게 하고 무모한 군사행동을 자극하는 것이다”(알리).
그리고 이렇게 호소한다.
“재앙일 뿐인 밀로셰비치의 오랜 집권에 식상해하는 모든 세르비아인들의 비판에 그를 노출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평화의 구현뿐이다(의미심장하게도 강력한 저항운동이 솟구친 1996∼1997년은 평화의 시기였다)”(블랙번).
“기억과 보편주의 없이는 저항이 있을 수 없다. ‘민족’에 대한 충성을 모든 것 앞에 두고 있는 것…여기에는 지식인들의 배반과 도덕적 파산이 있을 뿐이다”(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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