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방자치를 할까? 대통령도 뽑고 국회의원도 뽑는데, 왜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도 직선으로 뽑을까?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아마 시민들 중에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나마 대답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냥 민주주의가 발전한 외국에서 하니까, 우리도 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본다면,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중앙집권적인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로부터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민주주의이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는 4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국회의원 선거와 5년마다 돌아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정해진 후보자 명단’에서 1명을 골라 찍을 권리뿐이다. 이런 투표권 이외에는 일상적으로 정책결정과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시민들에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 또 투표권만 가지다 보니 국민 스스로가 민주주의에 대해 훈련받고 교육받을 기회가 없다. 이런 한계를 극복해 민주주의를 참여형으로 만들고, 주민들에게 자기 지역에서부터 참여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 지방자치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민선 지방자치단체장이 선출되어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지 벌써 5년이 넘었지만, 지방자치는 진정한 ‘주민에 의한 자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도 지방자치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고, 지방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자신이 주민의 대표이고 대리인임을 망각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방자치의 주체인 주민들이 지방자치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은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도시화에 따른 전통적 지역공동체의 해체, 도시지역의 개인주의 팽배 등의 요인을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 시민들의 참여의식 미비, 중앙정당의 공천권 행사로 인한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의 중앙정당 예속 등을 이유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민 없는 지방자치’를 단지 이런 요소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주민투표·주민소환·주민소송제 시급

오히려 문제는 주민이 지방자치에 참여하려 해도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즉 시민들로 하여금 자기 지역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은 ‘주민자치’를 불가능하게 만든 현재의 지방자치제도에 있는 것이다. 그 핵심적 요소로 들 수 있는 것이 대표적인 주민참여제도인 주민소송, 주민소환, 주민투표 제도가 현행 지방자치법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 지방자치법에 의하면,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의 위법한 예산지출행위에 대해 알게 되더라도 그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이 예산낭비의 청원을 요구해도,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거부하면 더 이상 주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 주민이 소송을 제기해 예산지출을 중지시키거나 위법하게 지출된 예산을 환수할 수 있는 주민소송(납세자소송) 제도가 인정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지방의원이 판공비를 함부로 쓰거나, 뚜렷한 목적도 없이 해외연수를 가면 곧바로 지역주민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송 제도는 주민을 지방자치단체 재정의 실질적인 주체로 인정하는 제도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 제도가 도입돼 있지 않다.

또한 지금처럼 주민에게 단순히 대표자 선거권만을 부여해서는 ‘주민에 의한 자치’는 실현될 수 없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해 기성의 제도권 정당이 공천권을 행사하고 기초의원에 대해서까지 내천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직접민주적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주민들에게는 ‘투표용지상의 기호 중에 선택할 권리’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의 이익과 의사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려도 주민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각종 비리로 구속되고, 예산을 낭비하고, 주민의 생활환경을 파괴하는 행정처분(러브호텔 건축허가, 난개발, 무분별한 용도변경 등)을 내려도 그에 대해 주민이 개입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이런 경우에 주민이 주민투표에 의해 지방자치단체장을 해임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도(recall)가 인정되고 있다. 주민소환은 주민의 대리인인 지방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주민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들을 할 경우에는 주민들이 그 위임관계를 파기하고 그 자리에서 해임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이 뽑은 대표인 만큼 그 대표가 자신들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들을 할 경우에는 소환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주민들의 자주적인 의사형성을 위해 우리의 지방자치법이 주민투표법을 제정할 수 있는 근거를 1994년 3월 16일 만들어 놓았음에도, 6년이 넘도록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13조의2는, ‘지방자치단체의 폐치, 분합 또는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결정사항 등에 대하여 주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주민투표의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 규정해야 할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이 조항이 사문화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입법부의 직무유기이고, 그로 인해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은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관료와 업자, 그들만의 잔치

지금 살펴본, ‘주민소송, 주민소환, 주민투표’ 이외에도 주민자치의 실현을 위해 고쳐야 할 제도는 많다. 대표적인 것이 자치입법권의 제한이다. 지금은 지방의회가 제대로 일을 해 보려고 해도 중앙정부가 조례제정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지역에서부터 개혁을 해나가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도 중앙정부의 관료들이 지역을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만약 우리 지역에서 참신한 내용의 조례를 만들어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주민들의 지방자치에 대한 관심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도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은 지방선거만 있을 뿐 지방자치를 위한 기본 제도조차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제도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정부와 정치인들은 주민들에게 지방자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이 잘못하고 있으니, 다시 중앙정부의 통제를 강화해야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 지방자치법은 일본 지방자치법의 체계를 본뜬 것임에도 일본의 지방자치법에 존재하는 주민의 권리조차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그것은 지방자치법을 입안하면서, 주민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고민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주민에게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이 관료와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주민참여를 가로막고 있는 법제도가 지방자치를 관료와 업자만의 잔치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가 실시된 이상, 그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주민들에게 참여의 권리와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장을 통제하는 것도 주민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시기에는 주민소송ㆍ주민소환ㆍ주민투표 등 주민참여권의 제도화가 ‘주민자치’ 실현을 위한 핵심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제도만 마련된다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에 대한 강력한 견제수단이 생김과 동시에 주민들이 지방자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 위한 기본전제가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토양 위에서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자치’를 꽃피우는 것은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지역주민들의 몫이 될 것이다.
하승수 주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
2001/01/01 00:00 200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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