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재가 하정남에게
2000/2000년 12월 :
2000/12/01 00:00
지은희 씨
그 바쁜 중에도 나에게 띄운 릴레이 편지 반가웠어요.
내가 이곳으로 내려온 지 거의 4년의 세월이 지났군요. 금년 들어서는 지난 봄·여름 이런 저런 일로 서울을 몇 번 다녀온 후 그곳이 더욱 멀어지고 가고 싶지 않군요. 진해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다 도심지의 공공건물이나 서비스 시설도 걸어서 찾아다닐 수 있을 만큼 포근한 소도시의 분위기 등이 나의 노년생활에 알맞은가 봐요. 하루하루 해뜨고 지는 자연의 조화를 감상하며, 태풍이 지나가도 호수처럼 잔잔한 진해 앞바다에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맑은 하늘 아래서 드러내는 그 장관들, 때로는 구름이나 안개 속에서 숨바꼭질하듯 섬들이 떠도는 환상을 즐길 수 있지요. 진해만을 병풍처럼 둘러싼 가파른 산들은 이제 단풍으로 물들어 맑은 가을 햇빛으로 더욱 눈부시군요. 무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호흡하며 느끼는 한편, 아파트 단지 내에서 오며가며 만나는 어린 아이들과의 눈맞춤에서 약동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새삼 희열을 느끼지요. 무디어진 내 감성과 영성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지요.
이렇게 내 나름의 재미에 빠져 있는데 은희 씨의 릴레이 편지는 지난날의 인연을 일깨우는 듯 부담스럽게 느껴지네요. 마치 내 죽음을 추념하는 추도사를 읽는 듯… 과거를 미화하고 과장하는 추도사 말이오.
사실상 그곳과의 물리적·사회적 거리감은 멀지만 신문과 TV를 통해 접하는 이 시대적 현실이나 관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요. 여성운동이 시민운동과 연대하면서 여성연합과 은희씨의 활약이 다채롭게 확대됨을 보지요.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젊은 활동가들에게 애처로움을 느끼며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할 따름이오.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의 새시대가 시작되었으니 여성운동도 새로운 단계로 상승시켜야겠지요.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은 더욱 바빠지고 새로운 의욕을 느끼겠지요.
지난번 북측의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에 정현백 씨, 이경숙 씨와 함께 초대되어 다녀왔다는 소식은 참으로 희망적이에요. 분단의 장벽을 뚫고 북한 땅을 직접 체험하며 그곳 여성들과 만나 앞으로의 교류를 함께 의논했다니 오랜 숙원과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겠군요. 2001년의 3·8 여성대회를 남북여성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만들기로 합의했다니 참으로 기뻐요. 여성들의 교류와 만남으로 군사·정치적으로 심화된 불신과 반목을 해소시킬 수 있는 인간적 연대를 풀뿌리에서부터 형성할 수 있겠지요. 소수 엘리트층 여성들만이 아닌 각 계층의 여성들이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겠지요. 분단으로 인해 조성된 서로에 대한 무지와 자기중심적 오만을 극복할 수 있는 의식의 개방과 관용을 발휘하기 위해 교육과 문화운동이 여러 가지 형태로 창조되어야겠지요. 하지만 남북관계에 앞서 남쪽의 우리 현실이 더욱 염려되는군요.
지방에 살고 있으니 총선을 통해 나타난 소위 ‘반 DJ’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하는데 이로 인해 통일에 대해서도 냉소와 불신을 보이는 점이 참으로 염려스러워요. 정권교체와 시민운동·여성운동의 성과로 민주화를 위한 제도개혁은 여러 면에서 이뤄졌지만 부패와 비리의 구조는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개혁의 성과마저 매몰되는 것 같군요. 제도 개혁만으로는 공직사회의 도덕성을 바로 잡을 수 없겠지요.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고 사익보다 공익을 위한 법을 지키는 민주사회의 도덕과 질서가 자리잡아야 할 텐데….
지방자치제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가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영남지역에서는 도의회, 시의회 의장 선거 등에서 뇌물거래가 성행하며 자치단체의 방만한 행정과 예산낭비 등이 지방자치를 위협하고 있어요. 이 지역에도 여러 민간단체는 있지만 진정한 주인노릇을 하는 시민단체는 없어요. 이러한 문제를 의식한 소수 젊은층의 조용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는데 이들에게 풀뿌리 민주주의의 씨앗을 기대하게 되는군요.
더욱 재미있게 많은 일 하세요.
하 정남 교무께
하 선생님, 얼마 전 『여성신문』에서 ‘지역 여성운동가’로서 하 선생님의 에코페미니즘 실천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어요. 그것을 읽으면서 자연히 작년 여름 생각이 나더군요. 변산반도의 서해연안에 있는 원불교 수련지인 작은 섬에서 2박3일을 함께 지낸 일이 그립게 느껴졌어요. 소나무 숲이 우거진 작은 섬에서 바다와 서해의 석양을 함께 즐겼지요. 사면에 유리창을 달아 만든 원두막에서 밤늦게까지 달빛 아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가족·여성학을 비롯해 원불교의 사회개혁 사상과 ‘남녀권리 동일’을 실천하는 가르침에서 한국페미니즘 이론의 역사적·문화적 뿌리를 찾게 되었다는 체험을 감명깊게 들었지요. 원불교단 내의 가부장적 질서가 창시자 소태산의 평등이념을 구현하지 못한 데 대한 회의와 함께 서양의 여성신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 미국에 가서 비교종교학을 연구함으로써 원불교 사상이 지닌 에코페미니즘의 선진성과 우수성을 확인했다지요. 이러한 확신에서 영산 원불교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고, 여성문제연구소를 설립하여 세미나를 개최하며 연구와 저술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았지요. 더욱이 그 지역 농촌 여성들을 위한 문화축제를 해마다 마련하고 여성의 전화를 조직하여 중앙중심의 여성운동에서 소외된 농촌여성들을 위해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음을 『여성신문』의 기사를 통해 읽었어요. 하 선생님의 종교적 헌신성에 의해 실천운동이 더욱 생명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내가 이 지역으로 이사와서 지방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한 입장이기에 그러한 지방여성운동이 시작되고 있다니 참으로 반갑군요. 이념과 헌신성을 갖춘 활동가의 역할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알기에 흐뭇하군요.
사실상 하 선생님을 만나 알게 된 기간은 일년 남짓 하지요. 그러나 내 체험으로는 오래된 학우나 동지를 만난 것 같군요. 그곳 여성문제연구소에서 작년 3월 나에게 가족의 민주화에 관한 특강을 청했을 때 우리의 만남이 시작됐지요. 영산원불교대학의 하정남 교무라며 본인을 소개하면서 특강을 신청했을 때 반가움에 기꺼이 승낙했지요. 사실상 나는 영산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해 영광 근처라고 했을 때 영암으로 잘못 알아들을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반가웠던 것은, 전통종교로서의 원불교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있었으나 접할 기회가 없었고, 그곳 서해안 지역이 나에게는 생소한 곳이기에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던 탓이지요.
마산에서 무궁화호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광주로 가는 철도여행은 나에게 그야말로 “나의 살던 고향…”을 찾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했죠. 처음 가보는 철도선이며 순천·보성·화순 등지를 지나는데 그때가 3월 하순경이라 남녘의 작은 산촌과 뒷동산에는 흰 매화, 분홍 매화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어 지루한 줄 모르고 즐겼지요. 광주까지 마중 나온 하 선생님 차를 타고 함평·영광을 지나 영산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어요. 그 지역은 김제나 만경 평야와는 다르게 좁은 들녘과 가난한 촌락의 인상을 풍겼으며, 참으로 깊고 깊은 오지의 산촌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답니다. 자그마한 분지에 자리잡은 영산의 방문은 우리 종교와 민중사에 대한 나의 이해의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소태산과 그의 동지 아홉 분이 대한제국이 멸망하는 시기에 태어나 가난과 혼란의 질곡 속에서 새사회 새인간의 깨달음을 얻어 일제에 강점당해 신음하는 중생의 구원을 위해 원불교를 탄생시킨 성지임을 알게 되었지요. 60∼70년대에 내가 여성운동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바는, 동학과 증산교의 인간존엄·해원상생·정음정양 사상이 여성의 해방과 평등사회를 지향한 이념인데 교단이나 신도들 자신에 의해 실천적으로 계승발전되지 못하고 단절된 것이 무척 안타까웠어요. 원불교의 일원론을 기반으로 평등과 공동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실천요강이 제시된 것은, 전통 민중종교의 맥을 이어가는 근대적 사상임을 알게 되었지요.
더욱이 하정남 선생님이 교단에서 그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여성운동·시민운동을 전개하는 데 앞장서시니 참으로 희망적이지요. 서구사상에 기반한 여성학의 한계를 우리 에코페미니즘의 이념과 실천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면서 더욱 기대를 갖게 됩니다. 건강하시고 재미 많이 보세요.
11월 11일 진해 이·이효재
그 바쁜 중에도 나에게 띄운 릴레이 편지 반가웠어요.
내가 이곳으로 내려온 지 거의 4년의 세월이 지났군요. 금년 들어서는 지난 봄·여름 이런 저런 일로 서울을 몇 번 다녀온 후 그곳이 더욱 멀어지고 가고 싶지 않군요. 진해시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다 도심지의 공공건물이나 서비스 시설도 걸어서 찾아다닐 수 있을 만큼 포근한 소도시의 분위기 등이 나의 노년생활에 알맞은가 봐요. 하루하루 해뜨고 지는 자연의 조화를 감상하며, 태풍이 지나가도 호수처럼 잔잔한 진해 앞바다에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맑은 하늘 아래서 드러내는 그 장관들, 때로는 구름이나 안개 속에서 숨바꼭질하듯 섬들이 떠도는 환상을 즐길 수 있지요. 진해만을 병풍처럼 둘러싼 가파른 산들은 이제 단풍으로 물들어 맑은 가을 햇빛으로 더욱 눈부시군요. 무상으로 변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호흡하며 느끼는 한편, 아파트 단지 내에서 오며가며 만나는 어린 아이들과의 눈맞춤에서 약동하는 생명의 아름다움에 새삼 희열을 느끼지요. 무디어진 내 감성과 영성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지요.
이렇게 내 나름의 재미에 빠져 있는데 은희 씨의 릴레이 편지는 지난날의 인연을 일깨우는 듯 부담스럽게 느껴지네요. 마치 내 죽음을 추념하는 추도사를 읽는 듯… 과거를 미화하고 과장하는 추도사 말이오.
사실상 그곳과의 물리적·사회적 거리감은 멀지만 신문과 TV를 통해 접하는 이 시대적 현실이나 관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요. 여성운동이 시민운동과 연대하면서 여성연합과 은희씨의 활약이 다채롭게 확대됨을 보지요.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젊은 활동가들에게 애처로움을 느끼며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할 따름이오.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의 새시대가 시작되었으니 여성운동도 새로운 단계로 상승시켜야겠지요. 여러분들의 몸과 마음은 더욱 바빠지고 새로운 의욕을 느끼겠지요.
지난번 북측의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에 정현백 씨, 이경숙 씨와 함께 초대되어 다녀왔다는 소식은 참으로 희망적이에요. 분단의 장벽을 뚫고 북한 땅을 직접 체험하며 그곳 여성들과 만나 앞으로의 교류를 함께 의논했다니 오랜 숙원과 한이 조금이나마 풀렸겠군요. 2001년의 3·8 여성대회를 남북여성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만들기로 합의했다니 참으로 기뻐요. 여성들의 교류와 만남으로 군사·정치적으로 심화된 불신과 반목을 해소시킬 수 있는 인간적 연대를 풀뿌리에서부터 형성할 수 있겠지요. 소수 엘리트층 여성들만이 아닌 각 계층의 여성들이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겠지요. 분단으로 인해 조성된 서로에 대한 무지와 자기중심적 오만을 극복할 수 있는 의식의 개방과 관용을 발휘하기 위해 교육과 문화운동이 여러 가지 형태로 창조되어야겠지요. 하지만 남북관계에 앞서 남쪽의 우리 현실이 더욱 염려되는군요.
지방에 살고 있으니 총선을 통해 나타난 소위 ‘반 DJ’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하는데 이로 인해 통일에 대해서도 냉소와 불신을 보이는 점이 참으로 염려스러워요. 정권교체와 시민운동·여성운동의 성과로 민주화를 위한 제도개혁은 여러 면에서 이뤄졌지만 부패와 비리의 구조는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개혁의 성과마저 매몰되는 것 같군요. 제도 개혁만으로는 공직사회의 도덕성을 바로 잡을 수 없겠지요.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고 사익보다 공익을 위한 법을 지키는 민주사회의 도덕과 질서가 자리잡아야 할 텐데….
지방자치제를 통해 풀뿌리 민주주의가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영남지역에서는 도의회, 시의회 의장 선거 등에서 뇌물거래가 성행하며 자치단체의 방만한 행정과 예산낭비 등이 지방자치를 위협하고 있어요. 이 지역에도 여러 민간단체는 있지만 진정한 주인노릇을 하는 시민단체는 없어요. 이러한 문제를 의식한 소수 젊은층의 조용한 준비가 시작되고 있는데 이들에게 풀뿌리 민주주의의 씨앗을 기대하게 되는군요.
더욱 재미있게 많은 일 하세요.
하 정남 교무께
하 선생님, 얼마 전 『여성신문』에서 ‘지역 여성운동가’로서 하 선생님의 에코페미니즘 실천에 관한 인터뷰 기사를 읽었어요. 그것을 읽으면서 자연히 작년 여름 생각이 나더군요. 변산반도의 서해연안에 있는 원불교 수련지인 작은 섬에서 2박3일을 함께 지낸 일이 그립게 느껴졌어요. 소나무 숲이 우거진 작은 섬에서 바다와 서해의 석양을 함께 즐겼지요. 사면에 유리창을 달아 만든 원두막에서 밤늦게까지 달빛 아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가족·여성학을 비롯해 원불교의 사회개혁 사상과 ‘남녀권리 동일’을 실천하는 가르침에서 한국페미니즘 이론의 역사적·문화적 뿌리를 찾게 되었다는 체험을 감명깊게 들었지요. 원불교단 내의 가부장적 질서가 창시자 소태산의 평등이념을 구현하지 못한 데 대한 회의와 함께 서양의 여성신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 미국에 가서 비교종교학을 연구함으로써 원불교 사상이 지닌 에코페미니즘의 선진성과 우수성을 확인했다지요. 이러한 확신에서 영산 원불교 대학에서 여성학을 가르치고, 여성문제연구소를 설립하여 세미나를 개최하며 연구와 저술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았지요. 더욱이 그 지역 농촌 여성들을 위한 문화축제를 해마다 마련하고 여성의 전화를 조직하여 중앙중심의 여성운동에서 소외된 농촌여성들을 위해 눈부신 활동을 하고 있음을 『여성신문』의 기사를 통해 읽었어요. 하 선생님의 종교적 헌신성에 의해 실천운동이 더욱 생명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내가 이 지역으로 이사와서 지방 여성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한 입장이기에 그러한 지방여성운동이 시작되고 있다니 참으로 반갑군요. 이념과 헌신성을 갖춘 활동가의 역할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알기에 흐뭇하군요.
사실상 하 선생님을 만나 알게 된 기간은 일년 남짓 하지요. 그러나 내 체험으로는 오래된 학우나 동지를 만난 것 같군요. 그곳 여성문제연구소에서 작년 3월 나에게 가족의 민주화에 관한 특강을 청했을 때 우리의 만남이 시작됐지요. 영산원불교대학의 하정남 교무라며 본인을 소개하면서 특강을 신청했을 때 반가움에 기꺼이 승낙했지요. 사실상 나는 영산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해 영광 근처라고 했을 때 영암으로 잘못 알아들을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반가웠던 것은, 전통종교로서의 원불교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있었으나 접할 기회가 없었고, 그곳 서해안 지역이 나에게는 생소한 곳이기에 가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던 탓이지요.
마산에서 무궁화호로 다섯 시간이 걸리는 광주로 가는 철도여행은 나에게 그야말로 “나의 살던 고향…”을 찾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했죠. 처음 가보는 철도선이며 순천·보성·화순 등지를 지나는데 그때가 3월 하순경이라 남녘의 작은 산촌과 뒷동산에는 흰 매화, 분홍 매화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어 지루한 줄 모르고 즐겼지요. 광주까지 마중 나온 하 선생님 차를 타고 함평·영광을 지나 영산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어요. 그 지역은 김제나 만경 평야와는 다르게 좁은 들녘과 가난한 촌락의 인상을 풍겼으며, 참으로 깊고 깊은 오지의 산촌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답니다. 자그마한 분지에 자리잡은 영산의 방문은 우리 종교와 민중사에 대한 나의 이해의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소태산과 그의 동지 아홉 분이 대한제국이 멸망하는 시기에 태어나 가난과 혼란의 질곡 속에서 새사회 새인간의 깨달음을 얻어 일제에 강점당해 신음하는 중생의 구원을 위해 원불교를 탄생시킨 성지임을 알게 되었지요. 60∼70년대에 내가 여성운동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바는, 동학과 증산교의 인간존엄·해원상생·정음정양 사상이 여성의 해방과 평등사회를 지향한 이념인데 교단이나 신도들 자신에 의해 실천적으로 계승발전되지 못하고 단절된 것이 무척 안타까웠어요. 원불교의 일원론을 기반으로 평등과 공동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실천요강이 제시된 것은, 전통 민중종교의 맥을 이어가는 근대적 사상임을 알게 되었지요.
더욱이 하정남 선생님이 교단에서 그 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여성운동·시민운동을 전개하는 데 앞장서시니 참으로 희망적이지요. 서구사상에 기반한 여성학의 한계를 우리 에코페미니즘의 이념과 실천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이면서 더욱 기대를 갖게 됩니다. 건강하시고 재미 많이 보세요.
11월 11일 진해 이·이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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