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민 1위 김군자 할머니 · 시민운동가 박원순 · 정치인 노무현 · 경제인 안철수 · 언론인 오연호
월간 『참여사회』는 2000년 송년호 특집으로 전국의 시민운동가 100인 대상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총 5개 분야로 나눠 우리 시대 희망을 주는 사람과 희망을 뺏는 사람을 중복응답 가능한 주관식 문형으로 질문했다. 조사 결과 2인 이상 거명한 답변자는 거의 없었으며, 대부분 한 명씩 혹은 공란으로 비워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대부분의 답변서는 한 사람으로 모아지지 않았으며, 1%의 인지도를 차지한 경우 혹은 무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는 우리사회가 명망성 있는 사람에 대한 인지도는 높지만, 우리 사회 전체가 합의할 만한 ‘시민 상’이 없다는 안타까움이 드러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참여사회』는 이번 여론조사에서 전국의 시민운동가들이 어떤 사람을 ‘우리 시대 희망을 일구는 인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많은 경우가 적은 표 차를 보여 굳이 순위를 매기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최다 득표자와 5% 이상 득표한 사람을 무순으로 공개하기로 한다. 단, 시민의 경우 3% 이내로 한다. 그 구체적인 결과를 분석해 보자.

문1) 귀하께서는 다음 제시하는 분야 중 우리시대 가장 큰 희망을 주는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정치분야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주는 사람 최다 득표자로는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34%)이 선정됐다. 이하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 김대중 대통령,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이미경 민주당 의원 등이 추천됐다.

이번 정치인 관련 조사에서는 시민운동가들의 달라진 대북의식이 뚜렷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응답자 중 7%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추천했다는 것은 아마도 지난 6·15 남북공동성명 이후 변화된 남북관계에 따른 시민운동가들의 변화된 의식이 반영된 단면이 아닐까 판단된다. 또한 많은 시민운동가들은 민주노동당과 같은 대안정당보다 대중성 있는 기성정당 정치인에게 많은 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로 추천된 인물 중에도 자치단체장(김두관·남해군수 1%)은 있을 지라도 민주노동당 혹은 청년진보당 관련 인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등의 진보정당은 선거법 개정을 통해 소수정당의 한계를 딛고 대중정당으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분야에서는 안철수 컴퓨터 전문가가 12%를 얻어 최다 득표했다. 또한 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와 장흥순 터보테크 사장 순으로 득표했다. 그 외 몇몇 경제인들이 득표했으나 대부분 1%대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많은 시민운동가들은 경제인에게 별로 희망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시민운동가들로부터 최다 득표한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은 최근 전 직원 125명에게 평균 650주씩 무상으로 나눠줘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지난 10월 13일 메일을 통해 “회사를 키우기 위해 피땀을 아끼지 않은 임직원들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내가 갖고 있는 회사 주식을 나눠주겠다”고 밝혔다.

회사의 수익이 발생했을 때 오너의 전횡으로 모든 이익을 사유화하는 재벌들과 달리 이익금을 직원들과 함께 나누는 대표의 모습에서 시민운동가들은 새로운 기업경영의 모습을 보고 그에게 많은 표를 던진 게 아닐까 사료된다. 문국현 대표 등 5% 미만으로 추천된 인물들은 대개 시민운동관련 행사를 후원하거나 적극적으로 돕는 기업인들인 것으로 보인다.

언론인 중에 최다 득표한 사람은 총 29%를 얻은 오연호 『오마이뉴스(Ohmynews)』 대표다. 그밖에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 김중배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본지 발행인), 손석춘 『한겨레』 여론매체부장, 손석희 MBC 아나운서, 정연주 『한겨레』 논설위원, 정운영 『중앙일보』 논설위원이 각각 5% 이상 추천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인 관련 조사에서는 기성언론에 대한 저항이 강한 대안언론매체에게 시민운동가들이 압도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준만 교수의 경우 『조선일보』반대 시민운동의 선봉장으로서 시민운동가들에게 많은 점수를 얻고 있다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손석춘 『한겨레』 여론매체부장이나 정연주 『한겨레』 논설주간 등은 지면을 통해 ‘조폭신문’ 등을 거론하며 보수언론에 일침을 가해 시민운동가들로부터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분석된다.

시민운동가 중에서 최다 득표한 사람은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30%)이다. 5% 이상 득표한 시민운동가들은 남인순 여성연합 사무처장, 최열 환경연합 사무총장, 장하성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 문정현 SOFA개정국민행동본부장 등이다.

현재 Japan Foundation 초청으로 일본에 머물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는 “명성이 있다면 그건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여론조사로 한 명을 내세우기보다는 시민운동의 근본정신인 다두성 혹은 다대표성을 지향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 희망을 주는 시민운동가로 선정된 사람들 중의 대다수는 1%를 얻은 지역 활동가 및 사회단체 상근자들이 많았다는 것도 주목해볼 만하다.

우리 시대 희망을 주는 시민 최다 득표자는 누구인가. 사실상 대다수 시민운동가들은 이 난을 공란으로 처리했다. 따라서 최다 득표자도 소수에 불과하다. 그중 가장 높은 득표를 한 시민은 종군위안부 출신으로 공익재단에 전재산을 기부한 김군자 할머니(5%)다. 그 밖에는 전만규 매향리 주민대표, 김양순 초안산 골프연습장 주민대책위원장, 종군위안부 출신으로 전재산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에 기부한 고 문명금 할머니, 지난 90년 감사원비리를 폭로한 이문옥 감사관 등이며, 그 외에도 한글연구가 이오덕, 판화가 이철수,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가수 서태지 등이 있다. 우리 시대 아름다운 시민을 선정하는 것은 커다란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은 최다 득표한 인물이 5%의 인지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를 거꾸로 해석해보면 다수의 시민운동가들은 활동의 공간에서 ‘존경할 만한 시민’을 만나고 있지 못하다는 표현의 다름 아니며, 또 한편으로는 시민과의 만남이 그리 활성화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을 드러내주는 대목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시대 희망을 뺏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것 역시 주관식 문항으로 전국의 시민운동가 100인에게 물었다. 우선 우리 시대 희망을 뺏는 정치인으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57%를 얻어 최다 득표했다. 그밖에는 자민련의 김종필, 김대중 대통령,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 순으로 표를 얻었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보수정치’를 내세우거나 과거 군사독재정권시절 호가호위했던 구태 정치인들을 ‘희망을 뺏는 인물’로 선정했으며, 특히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에서 여러 발언을 퍼부어 시민들을 놀라게 하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압도적 표를 던진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특이할 만한 사실로는 김대중 대통령이 희망을 주는 정치인에도 뽑히고 희망을 뺏는 정치인에도 뽑혔다는 것이다. 이는 현 김대중정부를 바라보는 시민운동가들의 견해가 어떻게 다른 지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편차도 심각한 것으로 풀이해볼 수 있다.

희망을 뺏는 경제인 1위는 누구일까. 시민운동가들은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에게 46%의 표를 던졌다. 그 다음으로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순이다. 이밖에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의 주인공 정현준, 박성수 이랜드 대표 등이 뽑혔다. 응답자들은 현대그룹 3부자를 모조리 상위권에 랭크 시켰으며 최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한 이랜드 회장을 순위에 올리기도 했다.

경제인의 경우, 다수의 시민운동가들은 희망을 주는 사람보다 희망을 뺏는 사람 쪽에 많은 답변했다. 특히 응답자들은 무엇보다 재벌에 대한 반감을 심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최근 기업을 부도내고도 이렇다할 대책 없이 직원들을 ‘실업’으로 내모는 무책임한 대기업 경영주들은 사실상 시민운동가들의 표적이 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희망을 뺏는 언론인의 상위권은 모조리 『조선일보』 관련자들이 차지했다. 그 순차를 살펴보면 김대중 주필 37%, 조갑제 『월간 조선』 편집장 31%,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 17% 순으로 나타났다. 그밖에 김병관 『동아일보』 회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등도 우리 시대의 희망을 뺏는 언론인으로 선정됐다. 이처럼 시민운동가들은 『조선일보』 등이 보수적 발언으로 정국을 경색시킴으로써 건전한 시민사회 형성에 물의를 빚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운동가 중 우리 시대 희망을 뺏는 최다 득표자는 누구인가. 장원 전 녹색연합 사무총장인 것(40%)으로 조사됐다. 전체 응답자 중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장원 총장에 대한 평가는 지난 4·13 총선 이후 여대생에 대한 성추행 사건에 대한 반증으로 해석해볼 만하다. 이밖에는 시민운동가로서는 지나치게 김대중정부와 밀착돼 있거나, 권력과 친분관계를 쌓고 있는 인물, 정치권 진출의 경험이 있는 인물, 구설수에 오른 경력이 있는 인물 등이 나타났다. 특히 시민운동가의 경우는 장원 전 총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5% 미만을 보이거나, 대부분 공란으로 칸을 비워두기도 했다.

우리 시대 희망을 뺏는 시민 역시 대부분 무응답이 많았다. 그중 최다 득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 전체의 8%를 차지했다. 이밖에 치한, 폐업 의사집단 순으로 득표하기도 했다. 한편 개그맨 서세원, 영화배우 엄앵란, 소설가 이문열 등 소위 반여성적 인사로 지목된 연예인들이 거명되기도 했다.

이번 여론조사에 참여한 응답자 특성을 분석하면 성별로는 남자 41%, 여자 51%, 연령대 별로는 20대 37%, 30대 51%, 40대 5%가 각각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윤선(참여사회 기자)
2000/12/01 00:00 2000/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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