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탈출구는 있다
2000/2000년 12월 :
2000/12/01 00:00
지난 3년간의 위기극복과정에서 광범위한 제도의 도입과 개혁정책이 추진되었으며, 여기에는 수많은 인력의 퇴출과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었다. 그 후 3년이 지난 지금, 그 동안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위기, 구조조정, 감원, 축소, 부실 등의 말들이 다시 튀어나오니 도대체 한국 경제는 3년 전 원점으로 돌아왔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그렇다는 것이며,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간 정부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더구나 과거 정부들이 저지른 오류를 자신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억울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평가는 그다지 너그럽지 못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완의 개혁이나 반쪽의 개혁은 실패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처음 개혁을 추진할 때의 조건은 좋았다. 본래 개혁이란 원론수준에서는 모두가 찬성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기상황의 긴장감은 기득권의 반발을 잠재우기에 충분하였다. 누군가 외환위기를 ‘감추어진 축복’(Blessing in Disguise)라고까지 했듯이 어차피 한번쯤은 겪어야 할 대변혁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단 몇 달 만에 150만 명에 육박하는 초유의 실업사태를 겪으면서도 더욱이 기하학적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의 부담을 져야 할 국민들은 정부의 개혁정책을 묵묵히 따라주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한 ‘무언의 축복’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고, 급기야는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정부의 개혁의지조차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재벌, 구조조정을 노동자 퇴출 기회로만
한국의 위기는 근본적인 원인에 기인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외환부족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였으며, 이는 곧바로 금융위기로 연결되었다. 천문학적 규모의 금융부실의 배후에는 기업부실이 있었으며, 이는 무모한 투자와 부실경영을 허용한 기업지배구조의 후진성에 원인이 있었다. 우선 외환 유동성 부족 문제는 한국정부가 신속하고 근본적인 개혁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외국 투자가들의 외채 만기연장이라는 방법으로 ‘일단’ 해결되었다. 다음으로 금융경색을 풀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여되었으며, 금융기관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구조조정, 특히 재벌개혁을 단행하였다. 소위 ‘빅딜’(Big Deal)이라는 업종전문화 방안이 추진되었고, 재벌의 부채 부담을 축소하기 위해 부채비율 200%의 목표가 설정되었다.
문제는 이 마지막 단계의 기업구조조정이다. 기업부실의 원인이 표면적으로는 부채경영과 사업다각화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경영행태를 허용한 기업지배구조에 있었는데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개혁이 용두사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전히 재벌총수는 기껏해야 5% 미만의 주식으로 전체 그룹의 경영을 좌지우지하고 불법적 상속이나 불공정 경쟁, 불법내부자거래도 끊이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부채비율의 감소도 부채의 감소가 아닌 유상증자의 급속한 증가로 달성되었으며, 이것도 계열사간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악용하여 상호출자 및 순환출자의 편법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때문에 연쇄부도라는 구조적 위험성도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부실채권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어 있으며, 이는 이미 대우사태나 현대사태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실기업을 신속히 정리하고 더 이상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특히 재벌 총수 집안들의 전근대적 경영행태와 계열사 지배가 단절되지 않고서는 한국경제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부실의 위험을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한다. 흔히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퇴출의 어려움에 대한 변명으로 노동자들의 반발을 들고 있다. 하지만 재벌들은 구조조정을 노동자 퇴출의 기회로 이용하였을 뿐 정작 부실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었다.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기는커녕 오히려 빅딜을 이용해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고, 소위 ‘왕자의 난’과 같은 형제간 이전투구를 거리낌없이 자행하였으며, 수없이 남발되는 자구계획은 거짓말의 연속이었다. 옛말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했다. 사정이 이런데 노동자들이라고 매양 당하기만 하겠는가. 희망이 보여야 희생도 가능한 것이다.
2001년 후반기쯤 제2의 위기가 닥치리라는 경제학자들의 예상과 달리 위기는 한 박자 빨리 다가왔으며, 이제서야 정부는 제2의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다. 위기를 예견하는 경제학자들의 판단은 상식에 근거하고 있다. 즉, 내년이면 97∼98년에 재벌들이 남발한 채권들이 만기가 도래하여 파도처럼 밀려온다. 2000년 월평균 2조 원을 상회하는 채권들이 만기도래하였으며, 특히 12월에는 8조 원을 상회하고, 더욱이 2001년에는 매월 2조 원씩 도래하는 채권이 8월이 넘으면 4조, 6조 원 규모로 급속히 증가하게 되어 있다. 경제학자들은 채권 규모가 막대해지는 2001년이 문제라고 보았는데 그나마 기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2000년 월 평균 2조 원의 채권에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미 사정이 이런데 내년에는 그 막대한 채권규모를 어떻게 막겠는가.
‘잃어버린 10년’ 같은 장기침체 경계해야
하지만 마지막 기회는 있는 법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일련의 부정대출 사건이 터지고 현대의 유동성 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닥치면서 금융·기업구조조정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과제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 이미 드러난 부실기업을 신속히 정리하여 이미 마비상태에 이른 금융시장을 정상화하고 이로써 생존가능한 기업을 살려야 한다. 여기에 공적자금의 투입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커지기는 했지만 우리 경제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채권자, 주주, 경영진, 노동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공정한 손실 부담원칙이 공적자금 투입과 동시에 적용되어야 한다.
둘째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감행되어야 한다. 전근대적인 경영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기업경영이 개선되기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집중투표제나 주주집단소송제는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이기 때문에 이것조차 당장 도입이 어렵다면 지배구조개선의 의지 자체가 없다고 해석될 것이다.
내년의 성장률이 5∼6%로 전망되고 있지만 이것도 구조조정이 착실하게 진행된다는 가정하에서 얻을 수 있는 조건부 예상치이다. 만약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이나마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며, 하반기에 이르러서 성장률이 더욱 저하될 우려가 있다. 우리는 흔히 97년과 같은 일시적 공황만을 위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장기침체 상태로 빠지는 것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지금 구조조정을 못하면 상당기간 동안 성장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그렇다는 것이며,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그간 정부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더구나 과거 정부들이 저지른 오류를 자신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억울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평가는 그다지 너그럽지 못하다. 간단히 말하자면 미완의 개혁이나 반쪽의 개혁은 실패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처음 개혁을 추진할 때의 조건은 좋았다. 본래 개혁이란 원론수준에서는 모두가 찬성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기상황의 긴장감은 기득권의 반발을 잠재우기에 충분하였다. 누군가 외환위기를 ‘감추어진 축복’(Blessing in Disguise)라고까지 했듯이 어차피 한번쯤은 겪어야 할 대변혁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단 몇 달 만에 150만 명에 육박하는 초유의 실업사태를 겪으면서도 더욱이 기하학적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의 부담을 져야 할 국민들은 정부의 개혁정책을 묵묵히 따라주었다. 하지만 정부는 그러한 ‘무언의 축복’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고, 급기야는 적지 않은 국민들이 정부의 개혁의지조차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재벌, 구조조정을 노동자 퇴출 기회로만
한국의 위기는 근본적인 원인에 기인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외환부족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였으며, 이는 곧바로 금융위기로 연결되었다. 천문학적 규모의 금융부실의 배후에는 기업부실이 있었으며, 이는 무모한 투자와 부실경영을 허용한 기업지배구조의 후진성에 원인이 있었다. 우선 외환 유동성 부족 문제는 한국정부가 신속하고 근본적인 개혁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외국 투자가들의 외채 만기연장이라는 방법으로 ‘일단’ 해결되었다. 다음으로 금융경색을 풀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여되었으며, 금융기관이 안고 있는 부실채권을 해소하기 위해 기업구조조정, 특히 재벌개혁을 단행하였다. 소위 ‘빅딜’(Big Deal)이라는 업종전문화 방안이 추진되었고, 재벌의 부채 부담을 축소하기 위해 부채비율 200%의 목표가 설정되었다.
문제는 이 마지막 단계의 기업구조조정이다. 기업부실의 원인이 표면적으로는 부채경영과 사업다각화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경영행태를 허용한 기업지배구조에 있었는데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개혁이 용두사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전히 재벌총수는 기껏해야 5% 미만의 주식으로 전체 그룹의 경영을 좌지우지하고 불법적 상속이나 불공정 경쟁, 불법내부자거래도 끊이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부채비율의 감소도 부채의 감소가 아닌 유상증자의 급속한 증가로 달성되었으며, 이것도 계열사간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폐지를 악용하여 상호출자 및 순환출자의 편법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때문에 연쇄부도라는 구조적 위험성도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의 부실채권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어 있으며, 이는 이미 대우사태나 현대사태에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실기업을 신속히 정리하고 더 이상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특히 재벌 총수 집안들의 전근대적 경영행태와 계열사 지배가 단절되지 않고서는 한국경제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부실의 위험을 영원히 안고 살아야 한다. 흔히 구조조정과 부실기업 퇴출의 어려움에 대한 변명으로 노동자들의 반발을 들고 있다. 하지만 재벌들은 구조조정을 노동자 퇴출의 기회로 이용하였을 뿐 정작 부실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아무것도 보여준 것이 없었다. 불필요한 자산을 매각하거나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기는커녕 오히려 빅딜을 이용해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고, 소위 ‘왕자의 난’과 같은 형제간 이전투구를 거리낌없이 자행하였으며, 수없이 남발되는 자구계획은 거짓말의 연속이었다. 옛말에 역지사지(易地思之)라 했다. 사정이 이런데 노동자들이라고 매양 당하기만 하겠는가. 희망이 보여야 희생도 가능한 것이다.
2001년 후반기쯤 제2의 위기가 닥치리라는 경제학자들의 예상과 달리 위기는 한 박자 빨리 다가왔으며, 이제서야 정부는 제2의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있다. 위기를 예견하는 경제학자들의 판단은 상식에 근거하고 있다. 즉, 내년이면 97∼98년에 재벌들이 남발한 채권들이 만기가 도래하여 파도처럼 밀려온다. 2000년 월평균 2조 원을 상회하는 채권들이 만기도래하였으며, 특히 12월에는 8조 원을 상회하고, 더욱이 2001년에는 매월 2조 원씩 도래하는 채권이 8월이 넘으면 4조, 6조 원 규모로 급속히 증가하게 되어 있다. 경제학자들은 채권 규모가 막대해지는 2001년이 문제라고 보았는데 그나마 기대에도 미치지 못하고 2000년 월 평균 2조 원의 채권에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미 사정이 이런데 내년에는 그 막대한 채권규모를 어떻게 막겠는가.
‘잃어버린 10년’ 같은 장기침체 경계해야
하지만 마지막 기회는 있는 법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일련의 부정대출 사건이 터지고 현대의 유동성 위기가 예상보다 빨리 닥치면서 금융·기업구조조정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과제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첫째, 이미 드러난 부실기업을 신속히 정리하여 이미 마비상태에 이른 금융시장을 정상화하고 이로써 생존가능한 기업을 살려야 한다. 여기에 공적자금의 투입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커지기는 했지만 우리 경제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위험한 수준은 아니다. 다만 채권자, 주주, 경영진, 노동자 등 이해당사자들의 공정한 손실 부담원칙이 공적자금 투입과 동시에 적용되어야 한다.
둘째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감행되어야 한다. 전근대적인 경영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기업경영이 개선되기란 연목구어나 다름없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집중투표제나 주주집단소송제는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이기 때문에 이것조차 당장 도입이 어렵다면 지배구조개선의 의지 자체가 없다고 해석될 것이다.
내년의 성장률이 5∼6%로 전망되고 있지만 이것도 구조조정이 착실하게 진행된다는 가정하에서 얻을 수 있는 조건부 예상치이다. 만약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면 이나마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며, 하반기에 이르러서 성장률이 더욱 저하될 우려가 있다. 우리는 흔히 97년과 같은 일시적 공황만을 위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나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같은 장기침체 상태로 빠지는 것을 더욱 경계해야 한다. 지금 구조조정을 못하면 상당기간 동안 성장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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