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희 대표께

지희 씨가 나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는 아마도 내가 너무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고 후배인 지희 씨를 한 번도 따뜻하게 따로 만난 적이 없어서 그에 대해 애교 있는 항의를 하려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네요. 역시 자격지심일까요?

먼저 한두 가지 내 마음에 걸리는 일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네요. 언제인가 구체적인 날짜는 생각나지 않는데 아마도 여성연합 총회 직후였던 것 같네요. 총선시민연대 발족식이었던가? 지희 씨가 반가이 다가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순간 성질 급한 내가 그 인사 받을 겨를도 없이 “참교육학부모회는 총회에 사람을 한 명도 안 보내면 어떻게 해요”라고 쏘아 부쳤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말한 순간 스스로도 이러면 안되는데 하고 반성했습니다.

사실 그 동안 속상함이 쌓여 있었거든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이사회에도 잘 참석을 안 했잖아요. 사실 유아교육문제 등 우리 내부에서도 참교육학부모회와 보육교사회의 견해가 다른 상황에서 여성연합의 공식 견해를 통일되게 내놓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갑갑한 노릇이었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일한다는 것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함께 하고 다루기도 하고 그러면서 정도 들고 또 계속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소속감도 갖게 되고 그러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도 그렇지, 그날 내가 한 태도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싶네요. 이쯤에서 여러 사람이 동의의 박수를 치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군요. 알았어요.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으니 회의할 때도 칼처럼 자르지 않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말하도록 노력할게요.

여성연합이 교육문제에 대해서 왜 소극적인가 하는 항의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있습니다. 여성운동이 여성들의 권익 향상이나 남녀평등의 진전뿐 아니라 이제는 가족성원 각자의 문제 등도 포괄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모든 여성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자녀교육문제를 여성운동이 놓친다면 여성운동의 대중화는 힘들 수밖에 없다고 몇 년 전부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중요 단체 대표자들에게 개인적인 충고 겸 부탁도 하고 협박성 발언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연합 소속 단체들로부터 현재의 업무 과부하 상태에서는 도저히 운동영역을 확장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결국 당분간은 참교육학부모회가 교육운동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여성연합 회원단체에게도 열심히 내용을 공급해 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함께 힘을 보태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네요. 그렇지만 주부를 대상으로 일하고 있는 단체들이 많으니 곧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시민사회운동 내에서 몇 안 되는 여성으로서 좌충우돌하고 있는 모습을 칭찬해 주어서 정말 민망합니다. 사실 나는 대학 졸업 때쯤 여성문제에 눈뜬 늦깎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집에서 자라면서는 별로 불평등을 못 느꼈거든요. 딸 둘, 아들 하나였는데 오빠는 내 기억으로는 집에 있었던 적이 별로 없는 것 같고…. 이효재 교수님을 만나면서 여성문제를 알게 되고 졸업 후 취업해서 처음으로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불평등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이효재 교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이 일 저 일 하다보니 그것이 바로 여성운동이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힘이 들 때면 이효재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진해에 내려가 계신 선생님을 찾아 뵙지도 못하고 제대로 제자노릇도 못합니다. 그래도 지금도 여전히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고 책을 쓰고 문제영화가 있으면 찾아가 보면서 정열적으로 사시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힘을 냅니다. 작년 금강산에 함께 갔을 때도 선생님은 앞에서 날아가시고 저는 뒤에서 기어가면서 ‘역시 자기관리에서도 못 쫓아가는구나’하고 반성했습니다.

지희 씨, 여성운동계에는 이런 대선배가 계셔서 행복하지요? 저도 이만큼은 절대 못 되겠지만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로 기억될 수 있도록 힘껏 일해볼게요. 언제 만나 차나 한 잔 합시다.

그리운 이효재 교수님께

선생님!! 날씨가 쌀쌀해지는데 건강하신지요?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한 후배가 저에게 공개편지를 보냈고, 거기에 답장을 쓰다보니까 선생님께 대한 그리움이 갑자기 밀려와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여성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실은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선생님이 거기에 그렇게 계신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요? 서울 일을 딱 정리하시고 살던 집마저 팔아서 교육장 만들라고 저희들에게 전부 건네주시고 훌훌 털고 진해 고향으로 내려가실 때만해도 저는 서운함이 있었습니다. 특히 선생님 뒤만 줄곧 쫓아다니던 저로서는 큰 울타리를 갑자기 잃어버리고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도대체 그 복잡한 정신대대책협의회 일은 어쩌란 말인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별은 저희들을 크게 만드시려는 배려였고, 선생님은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해 나가시는 역시 선생님다우신 뜻이 있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수십 년 전에 선생님께서는 ‘지역사회의 주인은 여성이다’라고 선언하셨고, 이제 진해 한 모퉁이에서 지역사회 여성들과 더불어 또 다른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불경스럽지만 선생님의 별명이 ‘감격시대’인 것을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또 하나 있습니다. ‘Pilot Study’의 대가.’ 선생님은 새로운 문제에 늘상 관심이 많으셨어요. 주류 여성운동이론보다는 제3세계 여성운동론에, 단순한 여성권익운동보다는 노동하는 여성들의 고통받는 삶에, 그리고 사회학계가 지나치게 구조기능론에 안착하고 있다고 늘 걱정하셨습니다. 선생님 자신이 미국에서 공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사회학계에 분단시대 사회학이라는 영역을 개척해 나가셨지요.

선생님, 저는 최근에 운 좋게도 백두산 지역을 6박 7일,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잔치에 참관하느라고 평양을 5박 6일 다녀왔습니다. 한 열흘 사이로 두 번 북의 모습을 실제로 볼 기회가 있었지요. 다니면서 저는 북한에 대한 선생님의 분석이 정당했고, 선생님 같으신 분의 줄기찬 통일 염원이 오늘날과 같은 남북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게 한 뿌리임을 자주 생각했습니다.

북은 정말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6·15 공동 선언의 이행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때는 9월 22일부터의 백두산 관광팀 110명을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10월 10일 당 창건일 준비행사로 전체가 술렁거릴 때였거든요. 거기다 우리는 평양을 보고 싶은 욕심에 합의된 일정에 없는 평양, 묘향산 관광을 고집했죠. 옛날 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텐데 북측은 우리 요구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북의 경제가 현재 어렵다는 이야기도 당당하게 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들에게 남북이 약속한 모든 것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이번 노동당 창건 기념일에 남쪽 정당 사회단체들을 점검하는 의미도 있었던 것 같고요.

천지 물에 손을 담그면서 또 그 옆에서 직접 끓인 산천어 어죽을 먹으면서 그리고 두만강 발원지, 압록강 발원지, 항일투쟁 유적지들을 돌아보면서 저는 마음 속으로 ‘남북 사이에서 더 이상의 전쟁과 대립은 없을 것이다’라고 확신했습니다. 더러 쉬기도 하고 약간 뒤로 물러나기도 하는 과정이야 있겠지만 그러나 대립의 역사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의지를 다졌습니다.

돌아와서 전화 드렸을 때 선생님께서 “나는 백두산은 중국 쪽이 아니라 꼭 북쪽으로 올라가 보려고 지금까지 안 가고 기다렸는데 너라도 다녀와서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실 때 정말 죄송했어요. 빨리 통일 현지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생님을 앞에 모시고 천지에서 남북여성이 함께 만나 통일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선생님 긴 이야기는 찾아뵙고 드릴게요. 그 동안 건강하세요.

항상 보살핌만 받아온 제자가.
지은희
2000/11/01 00:00 2000/11/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4139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