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2000/2000년 11월 :
2000/11/01 00:00
“이젠 지쳐서 병원에도 안 가요.”
의약분업을 두고 정부와 의사가 벌이는 지지부진한 분쟁의 볼모이자 최대의 희생자인 국민의 목소리다. 당장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두고 ‘국민의 건강’ 운운하는 게 도대체 얼마나 어불성설인가에 대한 얘기는 접어두자. 그 대신 이 말이 사실은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얘기해 보자. 단, 이 말을 한 환자가 병원 진료행위가 마비된 병동에 내버려진 중병환자나 응급환자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이다.
몇 년 전 영국에 갔을 때, 맨 처음 한 일이 동네 의원에 가서 등록을 하는 것이었다. 그 동네의원의 예비환자로 신고하는 것이다. 전국민 의료보장제도를 실시하는 영국에서는 유학생도 의료혜택을 자국민과 똑같이 받는다. 머나먼 남의 나라에 가서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돈이 없어 치료도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근심은 사라지는 것이다. 가족 모두 간단한 신체검사를 하고 주소를 적어내는 게 등록절차의 전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감기에 걸려 열이 나면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전화로 병원에 문의했더니 ‘예약’을 하라고 했다. 지금 당장 아픈데 예약이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응급상황이 아닌 경우 아무리 아파도 약속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얄짤 없는 일. 대부분 당일 의사에게 진찰을 받을 수 있지만 다음날로 넘어 가는 경우도 많다. 열 나고 아픈 아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때는 의사나 간호사 모두 원망스럽기 그지없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이 이런 환경에 적응하는 것인지 점점 아픈 데 대한 참을성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였으면 당장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했을 병이라도 하루 이틀은 너끈히 꾹 참고 지낼 수 있었다. 진료약속을 기다리는 수밖에 대안이 없다는 이유였지만.
“병원에 가면 뭘 해요. 하는 말이 뻔한데.” 영국에서 산지 몇 년 지난 한국 주부들은 아이가 열 나고 아파도 급하게 병원을 찾지 않는다. 의사들이 별 뾰족한 방법을 주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편히 쉬게 하고 물 많이 먹이고, 비타민 섭취를 늘려라”는 말은 환자가 미리 외우고 있다. 그래도 약을 좀 달라고 조르면 해열제 처방전을 써준다. 처방전을 들고 바로 옆에 있는 동네 약국에서(16세 미만이면 공짜로) 약을 받아 오는 일이 고작이다. 감기 정도는 푹 쉬면서 고칠 수 있는 병이란 사실은 의사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전까지 얼마나 부지런히 병원에 다녔었던가.
영국의 동네의원은 종합병원으로 가는 환자들을 걸러주는 골키퍼 역할을 한다. 조그만 병으로 쓸데없이 큰 병원을 찾지 않게 미리 체크해주는 것이다. 어느 사이 환자들 자신도 점점 병원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되어 간다는 사실을 느낀다.
영국에서 사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우리 가족도 다행히 병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몸이 스스로의 영역을 구축한 것 같았다. 웬만큼 아파도 몸이 스스로 저항하고 싸워서 다시 건강해지도록 자정역할을 한다고 할까. 병원과 의사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와 자립갱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요즘, 병의원 가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그러나 다행히 나의 발길은 그렇게 재빠르지 않게 되었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 내일까지 아프면 가보는 게 어떨까’ 하는 사이 내 몸은 신통하게 잔병들을 혼자서 물리친다. 가만히 보면 우리 몸은 정말 튼튼한 것이고 현명한 것이다.
의사파업으로 고통과 불편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작은 병에 너무도 쉽게 항복해온 이들은 이즈음에 자신의 몸과 조용히 홀로 얘기해볼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의약분업을 두고 정부와 의사가 벌이는 지지부진한 분쟁의 볼모이자 최대의 희생자인 국민의 목소리다. 당장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두고 ‘국민의 건강’ 운운하는 게 도대체 얼마나 어불성설인가에 대한 얘기는 접어두자. 그 대신 이 말이 사실은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얘기해 보자. 단, 이 말을 한 환자가 병원 진료행위가 마비된 병동에 내버려진 중병환자나 응급환자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이다.
몇 년 전 영국에 갔을 때, 맨 처음 한 일이 동네 의원에 가서 등록을 하는 것이었다. 그 동네의원의 예비환자로 신고하는 것이다. 전국민 의료보장제도를 실시하는 영국에서는 유학생도 의료혜택을 자국민과 똑같이 받는다. 머나먼 남의 나라에 가서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돈이 없어 치료도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근심은 사라지는 것이다. 가족 모두 간단한 신체검사를 하고 주소를 적어내는 게 등록절차의 전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감기에 걸려 열이 나면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전화로 병원에 문의했더니 ‘예약’을 하라고 했다. 지금 당장 아픈데 예약이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응급상황이 아닌 경우 아무리 아파도 약속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얄짤 없는 일. 대부분 당일 의사에게 진찰을 받을 수 있지만 다음날로 넘어 가는 경우도 많다. 열 나고 아픈 아이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때는 의사나 간호사 모두 원망스럽기 그지없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이 이런 환경에 적응하는 것인지 점점 아픈 데 대한 참을성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였으면 당장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했을 병이라도 하루 이틀은 너끈히 꾹 참고 지낼 수 있었다. 진료약속을 기다리는 수밖에 대안이 없다는 이유였지만.
“병원에 가면 뭘 해요. 하는 말이 뻔한데.” 영국에서 산지 몇 년 지난 한국 주부들은 아이가 열 나고 아파도 급하게 병원을 찾지 않는다. 의사들이 별 뾰족한 방법을 주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편히 쉬게 하고 물 많이 먹이고, 비타민 섭취를 늘려라”는 말은 환자가 미리 외우고 있다. 그래도 약을 좀 달라고 조르면 해열제 처방전을 써준다. 처방전을 들고 바로 옆에 있는 동네 약국에서(16세 미만이면 공짜로) 약을 받아 오는 일이 고작이다. 감기 정도는 푹 쉬면서 고칠 수 있는 병이란 사실은 의사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전까지 얼마나 부지런히 병원에 다녔었던가.
영국의 동네의원은 종합병원으로 가는 환자들을 걸러주는 골키퍼 역할을 한다. 조그만 병으로 쓸데없이 큰 병원을 찾지 않게 미리 체크해주는 것이다. 어느 사이 환자들 자신도 점점 병원으로부터 독립적으로 되어 간다는 사실을 느낀다.
영국에서 사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우리 가족도 다행히 병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몸이 스스로의 영역을 구축한 것 같았다. 웬만큼 아파도 몸이 스스로 저항하고 싸워서 다시 건강해지도록 자정역할을 한다고 할까. 병원과 의사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와 자립갱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요즘, 병의원 가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그러나 다행히 나의 발길은 그렇게 재빠르지 않게 되었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 내일까지 아프면 가보는 게 어떨까’ 하는 사이 내 몸은 신통하게 잔병들을 혼자서 물리친다. 가만히 보면 우리 몸은 정말 튼튼한 것이고 현명한 것이다.
의사파업으로 고통과 불편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작은 병에 너무도 쉽게 항복해온 이들은 이즈음에 자신의 몸과 조용히 홀로 얘기해볼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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